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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엔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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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트원
작품등록일 :
2018.12.15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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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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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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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대탈출(1)

DUMMY

눈을 떴다. 자신, 힐데릭의 생일파티가 한창이다. 거대한 홀의 가장 위에는 힐데릭의 아버지인 클로비스가 왕좌에 앉아 있었다.

한 칸 아래에 힐데릭을 포함한 왕족들이. 약간 아래에는 유력한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기사들이나 군소 영주들은 벽면에서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자들의 앞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중앙에는 음유시인과 광대의 연극이 진행됐다. 정작 연극에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자는 없었다.

저마다 옆에 앉은 사람이나 이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사람에게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힐데릭의 생일파티였지만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이곳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모인 이유는 힐데릭의 삼촌, 샤를 마르텔 때문이다.

이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인 그와 인사라도 나누기 위해서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영주와 기사들이 모였다.


힐데릭은 자신의 왼쪽 아래에 앉아 있는 삼촌, 샤를을 보았다. 그의 누나는 왕인 클로비스와 결혼했기 때문에 왕족의 층에 앉을 권리가 있었다.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만 보임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체감상 보지 못한 게 수십 년은 지났음에도 증오가 옅어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졌다.


‘침착하자.’


그의 반란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생을 살았고 셀 수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샤를의 반란은 하늘이 정한 것처럼 항상 일어났고 항상 성공했다. 막을 수 없다.


‘그건 기정사실이야.’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파리에서 당장이라도 도망가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힐데릭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축하를 받고 덕담도 받았다. 지겨웠다. 그리고 마침내 파티가 끝나자 도망가듯이 방으로 달려갔다.

방 안에 오자 오래된 책의 냄새가 반겨주었다. 책상에 앉아 잉크와 깃펜, 양피지를 꺼냈다.

생각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양피지가 점점 차기 시작했다.


수많은 세월과 실패, 경험이 집약되어 계획을 물 흐르듯이 써 갔다.

아침이 밝았을 때 양피지 다섯 장이 가득 찼다. 힐데릭은 단도를 꺼내서 양피지를 모두 조각냈다. 그리고 마력을 이용해 재로 만들었다.

종이 안의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라면 뻔하다.

문이 자연스럽게 열리면서 늙은 하인이 들어왔다. 아기일 때부터 힐데릭을 돌보아 주었던 자, 쟝이었다.


“왕자님,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씻으실 준비를 하겠습니다.”


하인들이 커다란 대야를 고급스런 손수레에 담아 몇 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방 안 구석에 있는 욕조에다 물을 붓기 시작했다.

욕조에서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방 앞에서 데운 것이었다.


쟝을 제외한 하인들이 나가자 힐데릭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신이 된 그는 욕조에 들어갔다.

아침에는 항상 이렇게 씻는 게 일과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정신이 점점 풀렸다. 쟝은 침대를 정리하러 갔지만, 전혀 어질러지지 않을 것을 보고는 힐데릭에게 물었다.


“어제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몸 상하십니다.”

“그래.”


힐데릭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의 첫 번째가 쟝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궁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그였다. 그가 가진 경험은 이곳에서 탈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를 포섭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충성심에 있었다.


자신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메로빙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이전의 생에서 그는 샤를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결을 택했다.

한 번이 아니라 모두 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물어보기까지 했다. 만약 반란이 일어나서 왕인 클로비스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거냐고.


‘왕자님을 보호하겠습니다.’

‘왜?’

‘제 목숨은 메로빙 왕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가 죽으면?’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겠습니다.’

‘왜?’

‘제 목숨은 왕자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그렇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쟝은 믿을 수 있다.


“왕자님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주무시지 않는 것은···.”

“쟝. 삼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쟝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주름진 눈으로 힐데릭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듯 유심히 보았다.


“좋은 군주이십니다.”

“메로빙 왕가를 손에 쥐고 흔드는 개새끼지?”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하인인 그가 입을 열어서 좋을 문제가 아니었다.

왕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용서받을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에 하인 나부랭이가 맞장구를 친다면 용서의 여지는 없다.


“나 이제 못 참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쟝, 나를 도와줘.”


힐데릭이 욕조에서 나오자 그가 천으로 몸을 닦아 주려고 했다. 하지만 힐데릭이 천을 빼앗아 스스로 닦기 시작했다.

이내 혼자서 옷까지 다 입은 그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대에 가서 앉았다.


“파리에서 탈출할 거야.”

“···후우.”


쟝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둘 밖에 없는 고요한 방이었다. 조금이지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왕자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주십···.”

“가보를 들고 도망갈 거야.”


그 말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메로빙 왕가의 보물. 메로빙의 시조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최강의 마도구다.

그는 그 마도구 하나로 프랑스를 세웠다.


“이제 곧 건국절이야. 아버지가 입으셔야 할 테니까 집중적으로 관리하겠지. 창고로 드나드는 사람도 많을 테고. 그럼 충분히 훔칠 수 있어.”


지금까지 훔친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건국의 시조가 사용했고 역대 왕들도 전쟁 때마다 입었던 극히 중요한 보물이다.

훔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훔치지 않으면 앞으로의 계획이 성립되지 않는다.


“신갑을 손에 넣으시면, 무얼 하실 겁니까?”


드디어 쟝이 반응을 보였다.


“아시겠지만 아무리 신갑이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혹시 샤를님과 싸우실 생각이라면 접어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비루한 목숨,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쟝은 굳이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지금도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쟝은 이게 진실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갑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서 아퀴텐느 공작에게 의탁할 거야.”

“···.”

“그 다음 샤를을 반역자로 선포하고 전쟁을 시작할 거야. 공작에게는 노르망디와 브루타뉴를 약속하고. 당연히 걔네한테는 말 안 해. 신갑과 왕자가 아퀴텐느에 있어. 샤를이 프랑스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니까, 거기에 가기만 하면 지지자가 모일···.”


쟝이 굳은 얼굴로 힐데릭에게 다가갔다. 힐데릭은 불타는 것 같은 그의 시선에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쳐다보았다.


“왕자님, 지금 하시는 말씀 전부 사실입니까?”

“그래. 프랑스를 원래대로 되돌릴 거야. 가장 처음, 시조께서 세웠던 그 모습 그대로.”


궁재에게 휘둘리는 프랑스가 아닌, 왕이 강력하게 모든 군주들을 다스리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쟝이 힐데릭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감히 하인이 왕자의 옥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을 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힐데릭은 제지하지 않았다.


“제게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 전부 사실입니까?”

“그래. 시조인 메로베크께 맹세할게.”


쟝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어깨에서 손을 뗐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힐데릭의 미소와 함께 금발이 빛났다. 기쁨에 몸 안에 있는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말과 마차. 추적자들이 출처를 알아낼 수 없게.”


구체적은 계획은 나중에라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말과 마차는 빨리 구하면 구할수록 좋았다.




왕도 파리.

왕도라고 해도 번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왕령지의 정치적인 기능만이 집중된 곳이고 상업적으로는 뛰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체류하고 있는 귀족과 기사들이 많아 사치품이 많이 수입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왕성만은 다른 모든 군주의 성을 압도했다.


고대제국 로마가 세운 거대한 왕성. 현재는 실전된 건축술로 더 이상 지을 수 없는 고대의 신비는, 메로빙의 자랑이며 왕가의 위용을 나타냈다.

성 안에는 여러 편의기능을 제공하는 온갖 마도장치가 가득했지만 그 전부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마도장치, 마도구를 에너지원은 마법사다. 그리고 메로빙 왕조의 왕령지는 적었으며 당연하게도 마법사의 수 또한 적었다.

왕도에 체류 중인 귀족들이 몇 명 마법사를 데려오기도 했지만 왕성의 장치를 가동시키기 위해 빌려주지는 않았다.

마법사는 엄청나게 비싼 인적자산이다.


그렇지만 건국절이 가까워져 오면 귀족들은 의무적으로 왕도에 마법사를 보낸다.

메로빙의 가보, 마도구 신갑을 작동시킬 마력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갑이 모셔져 있는 지하로 들어가는 데만 해도 마법사가 세 명은 필요하다.

마법사 세 명이 마력을 운용해야 잠금장치를 모두 해제할 수 있었다.

도대체 로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비효율적인 잠금장치와 관문을 만들었을까. 지금에서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건 신갑의 재가동을 위해 마법사들이 모인다. 지하는 수시로 열리며 마법사들이 이리저리 드나든다.

힐데릭의 입장에서는 기회였으며 위기였다.


대부분의 잠금장치가 열려 있는 게 기회였으나, 수많은 마법사가 들락날락 거리는 건 위기였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실행하려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러 생을 겪으면서, 훔치기로 시도해본 적은 없어도 쓸 만한 정보는 여럿 알았다.


“거기.”


힐데릭이 한 마법사를 불렀다. 검은색의 헐렁한 로브를 입은 마법사였다. 머리카락이 길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복도에서 갑자기 왕자에게 불리자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몸을 돌리고 예법에 맞추어 인사를 했다.


“예, 왕자님.”


적갈색의 곱슬머리를 한 여자였다. 신갑 재가동 작업으로 몸을 혹사했는지 안색이 좋지 않고 다크서클이 진했다.

그녀가 이번 계획의 히든카드다.


“이름이 뭐지?”

“안느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안느는 고아였다. 성당에서 길러지다 마력적성이 발견되어 교육을 받은 후 왕실 마법사가 된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성이 없었다. 앞으로 공을 세우거나 대단한 발견을 하게 된다면 성과 영지를 하사 받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전 생에서 그러한 일은 없었다.


“잠깐 따라와라.”


힐데릭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안느가 불안한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둘이 도착한 곳은 힐데릭의 방이었다. 안느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왕자가 여자인 자신을 방 안에 끌고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지 못할 리 없었다.


‘어쩌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신 건가? 기뻐해야 하나?’


어쩌면 출세할 수도 있었다. 고아인 자신이 왕실 마법사가 된 것도 꿈만 같은 일이었지만, 만약 왕자의 처나 첩이 된다면 이보다 팔자가 더욱 핀다.


‘아냐···.’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올랐다. 힐데릭의 외모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메로빙 왕족 대대로 전해지는 금발에 남성적인 얼굴, 훤칠한 키에 적당한 근육.

그래도 갑자기 왕자에게 선택받았다고 좋아할 정도로 머리가 꽃밭은 아니었다. 안느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마법사로서의 자긍심이 있었다.


“와, 왕자님 저는···.”

“부탁 좀 하지.”

“아, 안 됩니다!”


안느가 앙칼지게 소리를 쳤다. 힐데릭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안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횡설수설하는 안느를 앞에 두고 힐데릭은 그 이유를 알아냈다.


“뭔가 착각을 한 거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나는 네 몸에 일절 관심도 없다.”

“···예?”


힐데릭은 전생에서 많은 여자를 보았다.


수도사로 평생을 살기도 했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

용병으로 살면서 돈을 벌면 창녀에게 탕진하기도 했다.

전쟁에 나가 겁탈하기도 했다.


남자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삶을 살아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여자를 알았기에, 취향도 확고했다.

안느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일어나라.”

“···.”

“내가 부탁할 건 따로 있으니.”

“부, 부탁이라니. 무엇이든 명령만 해주시면 됩니다.”


안느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일어났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친해져야 할 사이다. 이런 시작은 그다지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 나누려고 했는데.


“신갑에 대해 많이 알지?”

“예.”


안느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한 게, 그녀는 왕실 마법사이며 신갑의 유지 보수를 담당했다.


“내가 곧 열여덟이 된다. 그러니 내년부터는 전하 대신 내가 신갑을 입게 되지.”

“예.”

“그러니 미리 입어보고 싶다.”

“···예?”


무엇이든 명령하라고 했지만 이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신갑은 프랑스의 왕만이 입는 게 허락된다. 그리고 세자가 열여덟이 되어서도 왕의 허락이 없다면 입을 수 없다.

어제 파티에서 클로비스는 내년에 힐데릭에게 신갑을 입히겠다고 했지만, 그게 오늘이 아닐 것은 분명했다.


“무엇이든 명령만 하라고 했지?”

“···.”


안느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그래, 명령한다. 신갑을 입게 해다오.”


작가의말

 마법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실제 역사가 배경이 아닙니다!

 지명과 지리가 다르기도 합니다. 중세 전기, 중기, 후기의 특징이 모두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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