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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엔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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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트원
작품등록일 :
2018.12.15 04:34
최근연재일 :
2019.06.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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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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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추적(2)

DUMMY

여름임에도 해가 지니 쌀쌀해졌다. 셋은 마차의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곧 힐데릭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안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잠든 힐데릭이 괘씸했다. 그녀는 불안감에 눈을 감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잠이 잘 안 오십니까?”


힐데릭과 안느의 사이에 낀 늙은 집사의 물음에 그녀가 놀랐다. 안느는 힐데릭이 혹시 깰까 목소리를 낮추었다.


“예. 쟝 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쟝으로 충분합니다.”


자기 할아버지뻘은 될법한 노인을 이름만 부르는 건 힘들었다. 안느는 존칭을 한 단계만 낮추기로 했다.


“쟝 씨는 안 무서워요?”

“왜 안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왜 왕자님을 도우신 거예요?”


쟝은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누워 있는 힐데릭을 보았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온 터라 이 정도 대화로 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루한 옛날이야기지만 들어주시겠습니까?”


쟝 벨류. 그의 가문은 카롤링에게 멸문 당했다. 벨류 가문이 섬기던 백작은 상속세를 충분하게 주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가신들을 모아 벨류를 침략했다.

이에 당시 벨류의 가주는 백작의 높은 상속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다른 가신들을 모아 맞서 싸웠다.

백작은 수세에 몰렸고 그의 주인이던 카롤링 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궁재 샤를의 아버지는 군대를 모아 백작의 영지로 들어가 반란군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반란의 중추였던 벨류가를 멸문했다. 단 한 명 남은 벨류의 후손인 쟝은 왕성으로 가서 하인이 됐다.


고작 9살 때의 일이지만 그날의 참극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남매들과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뇌리에 깊숙이 남았다.

카롤링에게 복수를 꿈꾸었지만 불가능했다. 고작 하인의 신분으로는 카롤링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5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고, 고작 며칠 전 힐데릭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말 몇 마디에 따라가기로 했다고요?”

“예, 고작 말 몇 마디에.”


고작 말 몇 마디지만, 쟝은 자신의 인생을 걸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어봐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를 동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보다는 안느 님이 더···, 크흠. 죄송합니다.”


쟝은 이유가 있어서 힐데릭을 따라 왔지만, 안느는 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느는 자신보다 쟝이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족이 없기에 가족이 모두 죽는 슬픔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쟝이 부럽다고도 생각했다. 끔찍한 기억이나마 가족에 대해 알 수 있어서.


“가족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저도 너무 오래 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안느는 천천히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까지 느꼈던 불안감이 머릿속을 부드럽게 휘저으면서, 그녀는 잠에 들었다.

쟝은 안느도 잠에 빠지자 눈을 감았다. 작은 한숨이 그의 입술을 빠져나왔다.




기사 셋은 달을 배경으로 도로를 달렸다. 그러다가 맨 앞에서 달리던 기사가 멈추었다.


“이제 쉬자.”


그 말에 기사들은 도로 밖으로 말을 몰았다. 들판으로 나온 그들은 말에서 내렸다. 쩔그럭거리는 갑옷 소리가 빈 들판에 크게 울렸다.

전쟁에라도 나가려는 듯 전신을 중무장한 기사들은 풀을 침대삼아 그대로 누웠다.


“알랭.”

“왜.”

“나 아들 태어났어.”


알랭이라 불린 기사가 상체를 살짝 일으켰다.


“피에르, 그런 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그냥 부끄러워서.”


피에르가 킬킬 거리면서 웃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누워 있던 기사, 에바가 피에르의 고간을 건틀렛으로 툭툭 쳤다.


“새끼, 삐쩍 마른 게 남자 구실은 하네?”


에바의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피에르가 곧바로 에바의 손을 쳐냈다.


“천벌 받고 싶냐? 외간 남자의 고간을 만져?”

“건틀렛 때문에 아무것도 안 느껴지거든?”

“피에르, 축하한다.”


정상적으로 축하해주는 건 알랭밖에 없었다. 셋은 축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들 이름은?”

“루이로 하려고. 하, 자작님 딸이랑 결혼 시켰으면 소원이 없겠네.”

“지랄하네. 루이가 아폴론처럼 생긴 게 아니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네 성격 빼다 박았다고 치면 여자 앞에서 벌벌 떨겠구만.”


피에르가 에바의 투구를 퍽 하고 쳤다. 에바가 피에르의 다리를 무릎으로 찼다.

철이 부딪히는 소리에 귀가 거슬린 알랭이 그만두라고 하자 들판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왕자 새끼는 어디까지 간 거야.”

“마차로 갔으니까 얼마 가지 못했을 거다. 음, 예를 들어.”


알랭이 손가락으로 한 숲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


세 명의 기사는 추적대의 최선두였다. 식량이나 기타 물품도 최소한으로 가지고 신갑 도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왕성을 떠나 달렸다.

뒤에서는 수백의 기마병들이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야, 왕이 말하는 거 봤지? 아들은 제발 살려주게···. 그게 왕이냐? 시골 할아범 데려다 놔도 걔보다는 낫겠네.”

“어쩔 수 없잖냐. 그래도 왕자는 자기 아비보다는 낫네.”

“왕자 새끼도 그냥 아빠한테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밖에 못하는 병신이잖아.”

“병신이 신갑을 들고 도망갈 생각을 하냐? 내가 봤을 때, 걔가 왕이 됐으면 큰일 한 번 냈을 거다.”

“허어. 야, 아예 왕자 밑으로 가라. 잘 맞겠네. 여자 앞에서 벌벌 떠는 병신이랑 아빠밖에 모르는 병신.”

“개년이!”


피에르와 에바가 다시 투닥 거리자 알랭이 조용히 시켰다.


“새벽부터 또 달려야 하니까 잠이나 자 둬라.”


벌레 우는 소리가 사람의 말을 대신했다. 알랭은 조금씩 잠이 왔다.


“알랭.”


그러나 갑자기 피에르가 말을 걸어 잠이 달아났다. 알랭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왜.”

“궁재 님이 분명 왕자를 죽이라고 하셨지?”

“그래.”

“···.”


피에르는 몸을 살짝만 뒤척였으나 갑옷끼리 서로 부딪혀 기분 나쁜 쇳소리를 냈다.


“이제 메로빙도 끝이구나.”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무능한 왕가, 힘없는 왕, 멍청한 왕자.”


메로빙은 백 년 전부터 망조가 들었다.


“단지 우리 시대에 일어났을 뿐이지.”


세 기사는 카롤링 가문에 신서를 했다. 그리고 카롤링은 메로빙 가문에 신서를 했다. 따지고 보면 세 기사도 메로빙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알랭의 말에는 왕가에 대한 경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카롤링이 더 낫지. 애초에 메로비크도 힘으로 로마를 찍어 누른 거잖아.”


에바 또한 왕가를 존중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힘이 없으면 죽는 거야.”


그 말을 하는 에바의 머리는 왕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사냥도 잘 하지 않으면서 기사들끼리 싸우는 걸 보기는 좋아했던 녀석.

덕분에 마상시합은 질리도록 해봤다.


“왕자도 그래서 죽는 거고.”


힘이 곧 정의인 시대다. 아무리 기사도니 신이니 떠들어 봐도 결국 흐름을 결정짓는 건 검과 창이다.

왕자는 자신들이 죽이는 게 아니다. 시대의 칼날이 그에게 향한 것이다. 자신들은 시대의 칼끝일 뿐이다.




“추적자들은 우리가 오를레앙으로 향할 거라 생각하겠지. 가장 큰 도로고 정비도 잘 되어 있으니까.”


마차가 크게 흔들리자 힐데릭이 얼굴을 찌푸렸다. 음식을 깔고 앉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도 안느처럼 식료품 포대 위에 앉았다.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니에요?”

“그렇지. 그러면 다음 예상은?”

“도로는 잘 몰라요.”

“마법사면서 아는 게 적군.”

“누가 도로를 다 외우고 다녀요.”


그건 맞는 말이다. 이전 생에서 유럽 구석구석을 다닌 힐데릭은 자연스레 로마도로를 거의 다 외웠지만, 보통 사람은 자세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오를레앙으로 가는 길이 아니면 사르트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해도 저는 몰라요.”

“변경백, 그냥 내가 말하도록 두면 안 되나? 너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 말을 끝낼 수 없겠다.”


안느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신갑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마차에 있는 재료와 자신의 마력을 사용해서 신갑을 정비했다.


“그럼 쟝, 너는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이미 왕자님께서 말씀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뽐내고 싶었지만 맞춰주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서 오오 대단해, 그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했다.


“이것 또한 단순한 생각이지만 소로를 이용해야겠지.”


로마는 도로를 세 종류로 나누었다.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


대로는 폭이 10m도 넘는 거대한 도로다. 중로는 폭 10m 이하, 소로는 5m 이하를 일컫는다.

그런 도로가 대륙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다. 현대에는 그 어떤 강대한 국가라도 행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가까운 업적이었다.

그나마 비잔틴 정도라면 흉내라도 내볼 수 있을 것이다.


“통행량이 적은 소로만을 다니면 시간이 좀 지체될지라도 흔적을 적게 남기겠지.”

“···.”

“변경백, 대답을 좀 해주겠느냐? 왜 소로가 흔적이 적게 남는다는 건지···.”

“저 바빠요.”


새삼 힘이 없는 왕이란 얼마나 비참한지 체감했다. 힐데릭은 괜한 설명은 관두고서 안느가 신갑을 정비하는 것을 보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갑에 그냥 손바닥을 대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곧 질려버린 힐데릭은 마차 뒤로 점점 멀어지는 도로의 풍경을 보았다.


“왕자님 뭐 물어봐도 돼요?”

“허락한다.”

“추적자들이 언제 저희를 찾을까요?”

“빠르면 오늘. 느려도 일주일 정도.”


안느가 신갑의 정비를 멈추었다.


“빠르면 오늘?”

“우리는 처음에 대로를 이용했다. 오가는 사람도 꽤 있었고, 근처 밭에 있던 농부들도 보았겠지. 그 다음 중로에서 소로로 진입했고. 수소문하면 못 찾을 건 없으니···.”

“그럼 우리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하지. 그래서 네가 신갑을 정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


안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힐데릭을 보았다. 정작 힐데릭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한가로이 바깥 풍경이나 보고 있었다.

천막이 바람에 한가롭게 나부꼈다. 안느는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에 전염되지 않고 서둘러 신갑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노인 한 명. 마법사 한 명. 왕자 한 명.


마갑을 입은 기사가 한 명만 와도 전멸당할 수준의 전투력이다. 신갑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추적자가 왔을 때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변경백, 힘내도록.”

“왕자님이 춤이라도 춰주시면 힘이 참 나겠네요.”

“못할 것도 없지만, 농담이라는 게 뻔히 보이니 하지 않도록 하마.”


안느는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추적자가 쫓아와서 화살을 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말은 달리고, 마차는 그에 따랐다.

통행료를 내거나 잠을 자는 게 아니면 셋은 멈추지 않았다. 일부러 마을이 보여도 마차를 끌고 들어가지 않았다.


안느는 오랫동안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힐데릭은 자신이 사제의 자격은 없지만 성사를 할 수 있다고 했으나, 안느는 그 말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다.

사소한 불만들을 안고 마차는 계속 달렸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바콘이란 작은 마을의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 야영을 할 준비를 했다.

고작 5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셋은 이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정도가 됐다.

안느는 바닥이 딱딱하다는 불평을 접었고, 힐데릭은 육포나 말린 물고기 말고 다른 건 없냐는 불평을 접었다.


마차 천막 위에 나뭇가지와 수풀을 올리던 안느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윤곽을 가리기 위해서다. 마차는 자연물과 다르게 인위적인 외곽선을 가지고 있어서 밤에 잘 보인다.”

“제가 생각한 이유랑 좀 다르네요.”

“뭐냐.”

“마차 전부가 아니라 천막 위만 가리니까 위장놀이라도 하시나 했죠.”

“요즘 부쩍 불손해졌구나.”


안느는 힐데릭이 말한 이유에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어차피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느가 생각하기에 수풀로 가리나 마나 별 차이도 없어 보였다.


해가 지고 하루의 마무리 의식이 시작됐다. 마차 밖에서 도란도란 앉아서 조용히 시답잖은 잡담을 떨다가 자는 것이다.

숲지기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그래서 숲에서 나는 다른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쩔그럭, 쩔그럭.


갑옷을 입은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숲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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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열 명이 있으면 열 개의 길이 있다(2) +4 19.06.19 60 4 15쪽
31 9.열 명이 있으면 열 개의 길이 있다(1) +1 19.04.05 95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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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6.미래의 왕(1) +5 19.03.13 141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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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4.바이킹(2) +1 19.03.02 140 8 13쪽
13 4.바이킹(1) +3 19.03.01 148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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