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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엔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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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트원
작품등록일 :
2018.12.15 04:34
최근연재일 :
2019.06.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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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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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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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5.아퀴텐느(2)

DUMMY

힐데릭 일행은 말을 타고 산지를 달렸다.


바이킹 사건 이후 샤를의 추적망은 더욱 촘촘하게 펼쳐졌다. 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숲이나 인적이 없는 들판을 지나는 것도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마차는 눈에 너무 잘 띄었기에 버려야만 했다. 대신 한 명씩 말을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원래 힐데릭의 마차에는 말 두 마리가 있었고 아히엘도 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가 부족했다.

도시나 큰 영지에서 사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위험했다. 이에 아히엘은 하루만 기다리면 자신을 말을 구해오겠다고 했다.


딱 하루 뒤. 아히엘은 말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훔쳐왔다고 했다. 안느는 훔쳤다는 말에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으나 힐데릭은 아히엘을 칭찬했다.

결국 넷은 모두 말을 탈 수 있었고 신갑은 나머지 하나의 말에 실었다.


넷은 아퀴텐느를 향해 길을 떠났다. 힐데릭은 안전한 길로만 다녔고 주변의 경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쟝이 농장에 들러 식량을 사곤 했다.


“라마르셰 백령.”


힐데릭이 뿌듯한 목소리로 넓게 펼쳐진 언덕과 들판을 보았다. 저 멀리 양떼와 양치기들이 보였다.


“이제 조금 남았다.”

“진짜 도착할 줄 몰랐어요.”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니까 정신 놓지 말도록.”


힐데릭이 앞장서자 다른 일행들이 뒤를 따랐다. 목가적인 풍경에 저절로 몸이 나른해졌다. 목적지가 가까워오니 긴장이 조금씩 풀린 이유도 있으리라.

라마르셰 백령의 서쪽은 아퀴텐느 공령이다. 원래 푸아르 백령이었으나, 현재는 아퀴텐느 공작이 푸아티에를 점령하여 공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양치기들은 힐데릭 일행의 모습이 보이자 그들의 경로에서 멀어지도록 양을 몰았다. 말을 탄 자들이라면 신분이 범상치 않으리란 것을 알고 한 행동이었다.


“우리를 봤는데 죽이지 않아도 괜찮아?”

“고작 양치기들인데 무얼. 산에서 잘 내려가지도 않을 텐데 우리의 소식을 들었을 리 있겠나. 애초에 우리가 서 있던 위치에서부터 들켰을 거다.”


단순히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죽였다면 힐데릭은 지금까지 사람을 백 명도 더 죽였어야 했다.

아히엘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까 양들이 가득했던 들판을 지났다. 언덕 산병선에서 이쪽을 보는 양치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죽여야 할 거 같은데.”


들판을 통과하자 아히엘이 말했다.


“아히엘 씨.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어. 저 녀석들 계속 우리를 보는 게 심상치 않아.”


그 말에 안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히엘은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사실에 깊은 불쾌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몸을 숨기면서 살았을 테니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방식은 아니었지만, 의심이 간다고 무조건 죽인다니. 안느로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들었다.


“죽일 수는 있겠나?”

“말까지 있는데 못 죽일 건 뭐야.”

“저 양치기들은 이 들판과 숲, 산에서만 산 자들이다. 우리가 모르는 지형이나 길을 잘 알고 있을 테지. 세 명을 전부 죽이는 건 무리일 거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도망갔다면 설령 도망간 왕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윗선에 이 이야기를 알릴 거다.”


한 마디로 죽이러 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히엘은 혀를 한 번차고 양치기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깊은 밤. 양치기 셋은 허름한 오두막의 앞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수다를 떨었다. 한 명은 잠이 온다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벌써 자고 있었다.


“그거 기사였을까?”


이제 갓 어른 티가 나기 시작한 양치기, 롤렌이 나뭇가지로 모닥불의 마루를 툭툭 두드렸다.

벨도는 모닥불에서 뒤로 돌아앉아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면서 건성으로 답했다.


“갑옷은 안 입었던데.”

“그럼 고귀한 분들인가?”

“그 동물모피 입은 사람은 노르만인 아냐?”

“노르만인 중에서도 고귀한 사람은 있어.”


롤렌은 노르망디라는 땅을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곳의 귀족들은 북쪽의 먼 바다에서 온 자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을 사제님은 노르만 사람 중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귀족은 있지만, 그들의 행태는 야만족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신성한 왕가가 노르망디를 야만족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 어떤지, 롤렌은 알지 못했다.


“다음에 마을에 가서 얘기할 거 하나 생겼네.”

“소피는 그딴 얘기에 흥미 없다니까.”

“뭐, 뭐? 소피 말한 거 아닌데?”


롤렌이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벨도는 킥킥 웃으면서 풀을 배개 삼아 누웠다.


“소피는 양치기보다 멋진 기사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어쩌라고!”


결국 롤렌은 화가 났는지 벨도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사제님한테 물어봐.”

“옛날에 음유시인한테 들었는데,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사람을 고귀한 분들께서 기사로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

“전쟁은 뭔 전쟁이야.”

“너는 기사가 되고 싶지 않아?”


벨도는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롤렌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고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거, 예쁘지?”

“어? 어.”

“전쟁터에서 네가 밤하늘을 본다면 너의 운명을 저주하게 될 거야.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아니라, 저 하늘을 맘 편히 볼 수 있게 해주는 들판에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 깊이 기도할 거라고.”


그 말에 롤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벨도는 30이 넘은 양치기였다. 3년 전 이 마을로 온 방랑자였는데, 양을 훔치려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잡혔다.

마을의 규칙대로라면 흠씬 두들겨 팬 다음에 마을 밖에 버렸어야 했지만 사제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양치기 임무를 맡겼다.

벨도의 몸은 이미 수없이 두들겨 맞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3년 간 양치기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전쟁은 좋은 게 아니야.”

“···전쟁터에 나가봤어?”

“아니. 그래도 알 수 있잖아.”


그는 어깨동무를 풀고는 다시 누웠다. 롤렌도 따라서 누웠다. 그때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둘 다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벨도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나머지 한 명의 양치기를 깨우려고 했다. 혹시 말을 타고 오는 자의 의도가 사악하다면 도망가야 했기에.


말은 빠르게 달려왔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벨도는 비몽사몽한 양치기를 깨워서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도망갈 기회는 없었다.

마갑을 입은 기사들이 벌써 모닥불 근처로 다가와 있었다. 롤렌은 어떻게 대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한 기사가 말에서 내렸다.


“이 근처에서 금발의 남자 하나, 로브를 입은 여자 하나, 늙은 노인 하나가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지 못했나?”

“어, 예.”


롤렌이 소심하게 답했다. 기사는 투구 가리개를 위로 올리고 롤렌을 노려보았다.


“성실하게 생각해라.”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보고 롤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기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 진짜 모르겠···.”

“롤렌.”


벨도는 롤렌의 어깨를 잡고 뒤로 물리면서 기사의 앞으로 나왔다. 기사는 벨도의 몸을 보고 그가 무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얇은 천옷 밖으로 드러난 근육만 보아도 명확했다. 그의 근육은 검을 사용하는 자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 말을 탄 일행을 보긴 했습니다.”

“그래?”

“금발의 남자와 로브를 입은 여자, 노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동물모피를 어깨에 걸친 여자도 함께요.”


기사가 벨도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벨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롤렌이 크게 외쳤다.


“오, 오늘 낮에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됐다.”


기사는 다시 말에 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벨도를 보았다.

무슨 사연으로 무인이 이런 산에서 양이나 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딴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방향은?”

“저쪽 언덕을 따라서 갔습니다.”

“서남···. 오늘 낮이라고?”

“예.”

“알겠다.”


기사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은화를 하나 꺼내어 벨도의 발 앞으로 던져주었다. 롤렌의 눈은 휘둥그레졌으나 벨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가자!”


기사들이 서남으로 향했다. 벨도는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기사들 중 한 명은 거리가 좀 벌어지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베, 벨도. 이거 봐. 은이야!”


벨도가 은화를 보았다.


“샹파뉴 백작이 발행한 거네.”

“응?”

“저 기사들, 왕성에서 왔을지도 몰라.”

“왕성? 그럼 왕의 기사야?”

“글쎄.”


롤렌이 은화를 소중하게 쥐고 있는 데 비해, 벨도는 왜 기사들이 그 일행을 찾으려 했는지 생각했다.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의 남자. 그 머리칼을 보았다면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다.

메로빙 왕가.


‘너무 넘겨짚는 걸 수도 있겠지.“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다. 정치건 전쟁이건, 이제 절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베리아에서 마인들을 죽였던 성기사는, 어둠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아닌 밤하늘의 별로 눈을 돌렸다.




”이제 내일이면 아퀴텐느 공령이다.“


힐데릭 일행은 삼일을 더 움직여서 아퀴텐느 공령 근처에 도착했다. 노을이 비치는 작은 강과 숲에서 야영 준비를 마친 일행에게, 힐데릭이 말을 꺼내었다.


”긴 여정이었지만, 여기까지 왔던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갑자기 오글거리게 왜 그래요?“


안느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힐데릭은 그녀를 보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변경백은 처음이랑 아주 많이 달라졌군. 처음에는 흙바닥에서 다소곳이 앉고 육포도 입을 가리면서 먹었는데.“


지금 그녀는 넓적한 돌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육포를 으적으적 먹고 있었다. 힐데릭의 말에 안느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요?“

”나쁘다고 한 적은 없다. 잘 적응한 거 같아서 뿌듯하구나.“

”뭔···.“


안느는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육포를 한 입에 삼켰다.


”그리고 내 최고의 충신 쟝. 그대에게는 항상 감사했지. 늙은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불평 한 마디 없이 와주어 고맙다.“

”아닙니다 왕자님.“

”음. 그대의 충의는 미래에 꼭 보답을 받을 거다.“


다음으로 힐데릭은 아히엘을 보았다. 그녀는 곰 모피를 바닥에 깔고 앉아서 도끼를 갈고 있었다.


”루앙 백작은···, 음. 고맙다.“

”마지막처럼 말하지 마. 괜히 부정 타니까. 그딴 말은 아퀴텐느에 가고 나서 해도 되잖아.“


힐데릭은 아퀴텐느가 가까워질 때마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났다. 이번 생은 정말 다를지도 몰랐다. 그리고 기쁨이 커질수록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도 더욱 커졌다.


”그래, 부정 타겠군. 오늘 밤도 무사히 보내고, 내일은 꼭 아퀴텐느로 가자.“


네 사람은 불침번을 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아퀴텐느에 갈 수 있다.

첫 불침번은 안느였다. 그녀는 나무 밑동에 기대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어둠을 응시했다. 얼마 전에는 저 울음소리도 무서워서 몸을 떨고는 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달라졌다.


안느는 흙바닥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누워 있는 힐데릭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오랜 여행으로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건 쟝이나 안느라고 다르지 않았다.

힐데릭이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했을 때는 오글거렸는데, 이 여행도 곧 끝난다고 생각하니 힐데릭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이러다 진짜 변경백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니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녀의 귀에 무언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울음이나 바람소리도 아니다. 아주 작게 들리는 무언가의 소리. 그것은 점점 커졌고, 곧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되었다.


’쇳소리···.‘


이전에 기사들을 만났던 악몽이 살아났다. 안느는 곧바로 힐데릭과 쟝, 아히엘을 깨웠다.

얕게 잠들었던 그들은 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안느가 들었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힐데릭이 아히엘을 보며 말했다.


”말을 타고 도망갈까?“

”어차피 말이 없으면 신갑도 못 옮겨.“


힐데릭이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 새벽, 아퀴텐느에 도착한다.“


그의 말을 신호로 모두가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 소리는 숲과 들에 크게 울렸다.

모두가 들었던 날카로운 쇳소리가 점점 빠르게, 크게 들렸다. 그 쇳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도 들려왔다.


힐데릭 일행은 아까 있던 자리에서 멀리 달려왔다. 그리고 숲에서 나오는 일단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마갑을 입은 기사 서른. 그 엄청난 숫자에 모두 놀랐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기사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특정하고 이곳에 왔다는 말인가?


”저기다!“


한 기사가 손가락으로 힐데릭 일행을 가리켰다.


”죽도록 달려라!“


힐데릭이 속도를 더욱 높였다.


만약 오늘 잡힌다면, 지금까지 했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된다.


작가의말

이제 곧 1권 분량이 끝나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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