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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녀와 마왕에게 ...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연재 주기
레관홍
작품등록일 :
2018.12.20 18:50
최근연재일 :
2019.04.28 23: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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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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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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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4. 망했어요

DUMMY

"오늘은 아무런 걱정 없이 처먹자아아!!"


"우와아아앙!"


내 고함에 뒤이어 렌이 함성을 내질렀다.


닥쳐, 여기 방음 시설 부실해.


마르시온 백작에게서 훔쳐온 금괴. 내 모가지값에 비하면 초라한 금액이지만 이 정도 돈을 번 사람이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다.


다시 말해서, 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말....은 개뿔이.


이 금괴 더미는 어디까지나 공금. 대의를 위한 제물이기에 내가 독단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건 명백한 공금 횡령이지만, 여기서 몇백 실버 써도 쓴 티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먹고, 마시고, 놀자!


빠르게 맥주를 시켰다. 이건 항상 빵과 물만 처먹은 가여운 날 위한 보상. 떼돈을 벌었으니 헬라 산맥으로 돌아가기 전에 즐기자고.


맥주가 유리잔에 담겨 나오자마자 나는 목구멍 너머로 넘겨버렸다. 혀뿌리부터 얼얼하게 느껴지는 쓴맛과 탄산의 미묘한 조화.


"크흐-"


작은 탄성을 내지르고 옆을 돌아보는데 렌이 나랑 똑같은 잔을 들고 있었다. 검집을 렌이 든 잔의 손잡이에 끼워 홱 낚아챘다.


"얌마 너 미성년자야. 이거 마시면 안 되거든?"


"되거든?"


렌이 장검을 뽑아 내 술잔의 손잡이에 걸더니 술잔을 뺏어갔다.


이거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치?


"어린이는 우유나 마시세요."


"어린이 아니라니까안!"




주인을 잃은 8,000,000실버 상당의 금괴 더미. 아니, 내가 좀 썼으니까 약 8,000,000실버로 정정하자.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제 이거 내 돈이잖아? 주인을 잃은 것도 아니네.


근데 사실상 내 돈도 아니잖아?


...한도끝도 없네. 하여튼 이 무지막지한 양의 금괴들.


"이제 이걸 어떻게 헬라 산맥으로 보내느냐가 문제인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최종 목표인 마르시온 백작을 털었으니, 이제 우리 측 조달자에게 이 금괴를 넘겨줘야 한다.


거처인 헬라 산맥은 대륙 최서단에 위치한다. 조달자는 금괴를 본거지로 옮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조달 루트가 들키지 않게끔 우리가 시선을 끌어줘야 한다.


조달자에게 넘겨준 다음 살인사건을 일으켜 소드마스터의 주의를 돌리고, 우리는 내리 도망치다가 적당한 때에 복귀하는 것. 그게 우리의 계획이다.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전에는 병력을 조금씩만 기용하던 유니온이, 지금은 6명 단위의 기사들을 추적대로 보내 매섭게 뒤를 쫓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거에 꼬리가 잡혀서 꾸준히 도망다니는 중인 거고.


소드마스터와 기사들 간의 역할 분담이 가능해졌고, 우리와 접촉할 조달자 역시 신변이 위험해졌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우리가 기사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제압하는 것.


딸려올 소드마스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1대1로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제1기사단 수준의 거물이 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는 이길 수 있다.


뭐, 사실 고민해봐야 방법이 없다. 가능하면 소드마스터와 기사 모두를 처리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냅다 튀는 수 밖에.


"적당히 하면 되겠지. 적당히."






"여기 어디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전의 마을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향하면 나오는 새로운 마을. 마을의 크기는 꽤 크지만 그만큼 우리가 들킬 위험도 적다.


이런 곳에서는 간단하게만 변장하고 구석진 곳만 찾아서 돌아다녀도 들키지 않는다.


가방에서 정교하게 만든 인조 피부 가면을 꺼내 얼굴에 덮었다.


뚫린 눈구멍 너머로 보이는 거울,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은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내 나이가 22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파격적인 변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성인 남자와 금발 소녀의 조합은 꽤나 위험하니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아청아청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우리 듀오의 정체가 너무 널리 퍼졌다는 의미.


그렇다고 해서 떨어져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개격파의 위험이 있으니까.


해결 방법은 나만 좀 삭아보이게 변장을 하는 것. 이렇게 되면 평범한 부녀로 볼 테니 걱정 끝. 대충 안심이다.


금발의 소녀와 성인 남자라는 특징만으로 현상수배범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수상쩍긴 하겠지만, 단정짓기에는 너무 성급하니까.


거리를 거닐며 주위를 둘러보는 건장한 남자와 어린 금발 소녀. 아무리 봐도 동안인 남자와 그 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현상수배범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다. 우리의 변장은 그만큼 완전무결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정신병자가 등판했다.


"어, 부단장님?"


"제발 밖에서는 그 호칭 좀 자제해줘..."


마타아오의 간부급 도적 중 하나인 레온. 금괴를 전달받기 위해 여기서 대기하고 있던 조달자.


나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팔린, 간부인 레온 역시 변장을 하고 있어 먼저 부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성공하신 겁니까?"


"그럼 실패했겠냐?"


"이야, 부단장 님의 대서사시가 곧 막을 내리겠군요."


"그 호칭 자제하지 않으면 네 인생도 곧 막을 내릴 걸?"


금괴 보따리를 그에게 던졌다. 쩔그렁거리는 소리가 요란해 잠시 주변을 살폈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휴, 다행이다.


"물건 받았습니다. 보아하니 무사하신 거 같네요?"


"너 내가 죽길 바라고 있지?"


"하핫, 들켰군요."


"너 오늘부로 제명이다."


"히이이이익!!"




"그래서, 전 언제쯤 출발하죠?"


레온이 금괴를 가방 안으로 휙휙 집어던지며 물었다.


조심해서 다루라고 핀잔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런다고 고칠 놈이 아니라서 괜히 입 아프게 떠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못 가니까 꿈 깨셔."


"에엑? 저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구요!"


"지금도 실컷 쉬고 있잖아."


담배연기 뻑뻑 피워대며 투정부리는 그에게 대답으로 한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대여섯 시간 전부터 레온이 계속 저 질문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 아무래도 구체적인 시간을 말해줄 때까지 저럴 심산인 듯 싶다.


반쯤 포기한 나는 그에게 일단 자두라고 말했다.


"최대한 일찍 가면 더 좋지 않나요? 부단장이야 더 돌아다녀야 되겠지만 전 하루빨리 가는 게 나을 텐데."


"기사들한테 꼬리를 잡혔어. 지금 마을 나가면 도중에 마주칠 가능성이 크니까 발 닦고 잠이나 자."


"에엑?! 기사들한테 들켰어요? 그럼 어떡해요?"


"뭘 어쩌긴 어째. 다 쓰러뜨리고 가야지. 내일쯤에는 기사들이 올 거니까, 넌 숨어있다가 다 끝나면 그때 가도록 해."


기사들이 오기 전에 출발했다가 도중에 만나면 금괴를 뺏길 가능성이 있다.


말단 기사 6명이나 소드마스터 한두 명 정도는 나 혼자서도 문제 없이 처리 가능하지만 지금 내게는 지켜야 할 물건이 있다.


금괴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대여섯 명의 기사들을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할까.


비단 섬멸이 아닌, 단순한 추적 따돌리기조차 요원한 상황이다.


따라서 내가 세운 계획은, 기사들이 레온의 마차를 검문할 때 기습하는 것.


금괴를 뺏기면 우리는 끝장이다. 레온에게 소드마스터로부터 금괴를 지킬 정도의 전투력은 없고, 그대로 뺏기겠지.


그러니 내가 빠르게 그들을 쳐서 제압하고, 시간을 번 다음 안전하게 떠나는 것이 훨씬 낫다.


이게 그나마 금괴도 지키고 추적도 방해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아, 귀찮아라."


"귀찮은 걸로 따지면 내가 제일 귀찮다, 이 자식아."


조달자 레온과 금괴 보호.


기사 6명 제압.


소드마스터 처치.


이 3가지 중 하나만 수틀려도 상황이 꼬인다.


보호에 실패하면 간부와 공금을 잃게 되고, 기사를 제압하지 못하면 추적을 지연시킬 수가 없고, 소드마스터를 처치하지 못하면 여기서 전멸이다.


결론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끝을 내야 한다.


"뭐, 그거야 딸려올 소드마스터가 누군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날이 밝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니, 꽤 걸렸다. 내리 쳐자고 있어서 몰랐을뿐.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들뜬 레온은 진작에 일어난 채로 대기하고 있었건만 아침잠이 많은 렌이 짐이었다.


덕분에 매복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레온이 미리 준비한 마차에 숨기로 했다.


사실 이게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는 게, 마차 안에 숨어있다가 기습하면 훨씬 가까이에서 기사들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검문을 하기 위해 기사들이 접근하면....


"다 뒤지는 거지, 뭐."


그 다음은 간단하다. 나와 렌, 레온이 각자 빠르게 기사를 2명씩 제압. 그리고 소드마스터가 나타나면 둘을 먼저 보내고 내가 소드마스터를 처치.


마차 안에서는 밖의 풍경을 볼 수 없기에 기사들이 짐을 검사하러 마차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별 수 없다. 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흔적을 쫓는 기사들. 우리가 마을에 머무르고 있으면 기사들 또한 마을에 머무른다.


괜히 시간을 낭비했다간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사들의 맹공에 제압될 가능성이 있으니, 빠르게 처리하고 튀어야 한다.


금괴 더미는 최대한 들키지 않게 마차 안 구석에 최대한 넣어놓고, 그 위로 볏단 등을 쌓아올려 감췄다. 기사들이 오면 일일이 검사하겠지만, 그땐 우리가 나서면 그만이다.


볏단 더미가 선사하는 간지러움과 열기를 간신히 참으며 검문소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렸다. 검문소에 도착하면 레온이 적절한 신호를 줄 것이고, 그때 우리가 준비하면 된다.


응? 신호를 어떻게 주냐고?


"부단장님, 준비하세요."


...이런 식으로.


속삭이듯 말하며 레온이 경고했다.


그래, 이제야 이 찜통에서 나올 수 있는 거구나.


볏단 아래의 나와 렌은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무기를 들었다.


"아하하, 이런 날씨에 고생들 하십니다."


"됐고, 마차 안에 뭐가 있는지 검사하겠다."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볏단 정도..."


"그건 봐야 알 일이지."


음, 저 기사 정말 불친절하네.


마타아오의 간부를 무시하는 그 태도를 높이 사서 내가 쓰러뜨릴 첫 대상은 너로 정했다.


레온이 뭐라고 둘러댔음에도 불친절한 기사와 그 파트너들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거, 죽여달라는 말이겠지?


알았다. 소원이라는데 들어줘야지.


"렌, 준비해."


"응."


볏단에 가려 렌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서슬 퍼런 장검의 금속음을 통해 렌 또한 준비를 마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볏단을 거칠게 헤치는 소리. 눈앞의 볏단 더미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을 췄다.


한 두어 번 정도 더 헤치면 들키지 싶은 시점에 나와 렌은 주저하지 않고 마차 바닥을 박찼다.


"아, 잠깐ㅁ..."


그러나 곧 레온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고, 난 일이 잘못 흘러갔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쌍검을 내지르며 나선 나는 이내 눈앞에서 팍 튀는 불똥을 목격했고, 그 자리에서 저지되었다.


내가 저지된 모습을 본 렌은 아예 제자리에 멈춰선 상태였다. 장검을 휘두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 저러면 위험한데.


아니 그보다, 일개 병사가 내 검을 막았다고?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나름 유명 도적단의 부단장이다. 민첩함으로 따지면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데, 그런 내 검을 막았다고? 말단의 기사가?


그러나 곧 나는 내가 왜 공격에 실패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쌍검과 검을 맞대고 있는, 이 적색 망토의 기사. 그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이 공격이 왜 실패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대륙 제일의 무력 집단.


엘리트 중의 엘리트 소드마스터들로만 구성된 유니온 최강의 기사단인, 제1기사단.


그 괴물 집단에서도 가장 빠른 검술을 지녔다고 알려진, 대륙 최속의 검사.


케레딘 마르티엘.




"드디어 찾았다, 수배자."


그가 내 앞에 서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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