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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벽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연재 주기
일로정진
작품등록일 :
2018.12.26 15:47
최근연재일 :
2019.03.27 18:5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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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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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2,300

작성
19.03.0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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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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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11쪽

제 34장 은령

DUMMY

그날 아침 마영성이 제갈세가의 안가를 빠져나와 길을 따라 남쪽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군풍진 마가무관까지 오백리가 넘는 길이었다. 말을 타고 습보(전력질주)로 달릴 때 보다 세배정도 빠른 속도로 산과 들을 가로 질러 갔다. 이 대로면 한 시진 이후에는 군풍진에 도착 할 듯 했다. 그의 경공이 어찌나 표홀해 졌는지 관도 옆을 지날 때 그가 달려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던 마영성이 상암현 옥화향으로 들어섰다. 앞 코 부분이 떨어져나간 가죽신을 보고 그것을 수선하거나 새로 하나 장만하기 위함이었다. 마을의 중앙에 들어선 마영성이 신발을 파는 곳이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일백여 호가 조금 넘는 작은 규모의 마을이었기에 옷이나 신발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곳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자신의 가죽신을 한번 흘깃 쳐다본 마영성이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장사에서 신발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마을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다 건물들 사이로 꼬마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해코지를 당하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어느 마을이나 저런 아이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지나치려 했다. 어차피 자신이 계속 책임져 줄 것이 아니라면 당장한번 도와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또다시 저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자신이 떠나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다시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지나치려는 마영성의 눈에 흙바닥을 굴러다니는 약첩들이 보였다. 약방에서 사서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처방받은 약첩들을 줍고 싶어 안달인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으며 괴롭혔다.

“네~~이놈들~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길가에 자라나 있던 나무의 가지를 꺾어와 회초리처럼 바닥을 쫙쫙 치면서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마영성을 보더니 골목안쪽으로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아이들에게 밟혀서 찢어져버린 약첩들 주변으로 약재가 흙에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흙먼지로 더럽혀진 볼 위로 눈물 자욱이 보였다. 자신을 도와준 마영성을 잠시 보던 아이가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하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약재 쪽으로 뛰어갔다.

“엄마....”

약재들과 그것을 쌌었던 종이들이 찢기고 더러워져 있는데도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여기저기 상처가 난 조막만한 손으로 약재들을 쓸어 모았다.

“얘야, 이름이 뭐니?”

“은령. 묵은령....”

“은령이구나. 예쁜 이름을 가졌네. 누가 지어준 이름이야?”

“아빠랑....엄마가....”

“그렇구나. 그런데 은령아 그 약은 어디에 쓸 거야?”

“엄마...아파...”

“많이?”

끄덕끄덕

“은령아. 그거 더러워져서 그 약을 먹으면 엄마는 더 아플지도 몰라. 그러면 안 되겠지?”

끄덕끄덕

“아저씨랑 같이 다시 약을 사러 갈까?”

마영성의 말에 아이가 잠시 망설였다.

“여기 당과 먹을래?”

“당과!”

마영성이 내민 당과를 넙죽 받아 입에 넣은 아이가 마영성의 손을 잡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 치고는 주눅 들지도 않고 꽤나 당당했다. 그리고 당과하나에 누군지도 모르는 어른의 손을 함부로 잡는 것을 보면 아직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듯했다.

“아빠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뭐 얻어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했...어...”

갑자기 아빠 엄마가 해준 말들이 생각났는지 입에 물었던 당과를 한손에 쥐고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당과 먹어도 돼.”

머뭇머뭇 당과를 먹을지 말지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중에 아빠 엄마한테 당과 먹은 거 이야기 안할게.”

표정이 밝아진 은령이 다시 당과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약방이 어디야?”

마영성의 말에 은령이 앞서 걸으며 손을 잡아 당겼다.

마을 중심을 지나 고개 너머 하천을 앞에 둔 가옥이 한 채 나왔다. 가옥의 정면에 옥화의원이라는 한 자 정도 되는 목패를 걸어놓았다. 허름한 가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보면 탕약을 끓이거나 약초를 말리는 것 같았다. 가옥의 앞으로 다가서자 약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코끝을 스치는 쓴 냄새에 온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약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인 한 명이 약초를 정리하다가 말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어서 오시오.”

노인이 마영성의 인사에 답을 하고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아니 너는 은령이 아니냐? 꼴이 왜 그렇게 되었어?”

후다닥 뒤쪽 문을 열고 바깥을 다녀온 노인이 수건에 물을 적셔 은령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약재는 어디에 있느냐? 벌써 달여 준건 아닐 거고?”

마영성이 은령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노인이 으깬 약재들을 은령의 상처에 발라주며 입을 열었다.

“고얀 놈들 평소에도 은령이를 많이 괴롭히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그 아까운 것들을······.에잉 쯧쯧”

잠시 혀를 차던 노인이 아까와 똑같은 약재를 꺼내고 적당한 양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뒤에 서있는 마영성이 들으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은령이 어멈이 아프다네. 제대로 서지를 못하고 한쪽얼굴이 마비되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이 걸렸어......하늘도 무심하지 저 착한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은령이 약을 지어가는 이유를 설명한 노인이 약재를 종이에 싸면서 다시 이야기를 했다.

“아이 아범은 산이나 들로 사냥을 하러 다닌다네. 이곳 옥화마을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냥꾼이지. 내로라하는 다른 마을의 사냥꾼들도 은령아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네. 다른 마을의 잘한다는 사냥꾼들 열 명이 한 달을 나갔다 돌아와도, 은령아범의 단 하루 사냥감에도 못 미친다면 믿을 수 있겠나? 허허허...걸물이야 걸물. 직업을 잘못 고른 것이지 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은령의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사냥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아는 마영성이었다. 그가 사는 동네에도 사냥을 업으로 사는 사람이 있어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리는 기본으로 알아야 하고, 계절의 특성과 바람의 방향과 세기, 사냥감의 행동방식, 습성을 줄줄 꿰고 있어도 정작 당사자의 능력이 모자라면 하루 종일 고생을 해도 토끼 한 마리 잡기 힘들 때가 있다고 들었었다.

“아무튼 아이 아범이 지금처럼 사냥을 나가고 나면 은령이가 약재를 가지러 온다네.”

약재를 적당히 덜어내고 종이에 싸기 시작한 노인이 ‘저 어린 것이...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에잉...쯧....저 발자국 좀 봐라.....’ 하고 다시금 혀를 차고 은령의 지저분해진 모습을 보며 속상해 했다.

“한....팔년쯤 전 이었을 거야. 이들 부부가 이곳 옥화마을로 들어온 것이. 그때 은령 어멈의 배가 불룩 나와 있었더랬지. 은령이를 배고 온 거야.”

약재를 종이에 싼 노인이 약첩을 하나 둘 쌓기 시작했다.

“은령이를 낳고 두해쯤 지나서였지 아마?...은령아범이 은령 어멈을 업고 겨울 새벽에 문을 두드리더군. 무슨 일인가 싶어 부리나케 나가보았더니, 아 글쎄 은령어멈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몸덩이가 불같이 뜨거웠더랬어.”

약재 첩을 하나하나 포개고 새끼를 꼬아놓은 줄로 그것들을 묶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은령 어멈이 아팠던 거야. 그래도 올 초 까지만 해도 열흘에 한번은 바깥으로 나가 조금씩 걸어 다니고 사람들을 알아보고 인사도 나누었더랬어. 그런데 봄이 지나고 부터는 병세가 심해져서는 시들..시들 누워만 있다네...그러고 부터는 은령 아범이 사냥을 나가는 횟수가 늘었어. 돈이 필요했던 거야. 여기 약재만 해도 은자 열 냥 치는 된다네...이런 작은 마을에서 은자 열 냥이면 엄청난 돈이야. 나에게서만 한 달에 적어도 약을 열 번은 지어가니 그것만 해도 일반사람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돈이지 않겠나. 그런데, 은령아범은 장사나 악양, 무한을 오가며 은령 어멈의 병에 좋다는 것들을 돈이 마를 때까지 사오는 걸세....쯧쯧..하지만 이 병을 고칠만한 약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 다네....그 약이 무엇인지 알겠나?”

마영성이 ‘음’하고 고민을 하자 노인이 다 싸놓은 약재를 은령이 앉아있는 탁자위에 올리고 찻잔을 가져와 은령과 마영성의 앞으로 놓았다. 언제 우린 차인지 좋은 냄새가 나는 약차를 두 개의 잔에 팔 할 가량 붓고 은령의 잔에는 빨리 식을 수 있게 반 정도 붓고는 먼저 차를 후륵 하고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바로 소림의 소환단이나 대환단, 화산의 자소단, 무당의 태청단 등이 그것일세. 그 외에도 구엽신초나 오룡신루 같은 전설적인 영약이 있다면 어떻게 저 병을 한방에 고쳐볼 생각을 해보겠는데....”

마영성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내공을 이용한 기치료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되는지 물었다.

“기치료? 되지 되고말고. 불가의 고승이나 도가의 선인들 중에 내공이 자연처럼 한없이 깨끗한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그래서 은령 아범이 무당과 소림에 몇 번 찾아갔었더랬어. 태청단이나 소환단을 얻거나 그게 아니면 혜원선사나 원명진인을 모셔오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그게 말이 되냐고....은령 아범 같은 사냥이나 하는 사람에게 누가 전설의 영약을 주겠나. 천금만금을 싸들고 가도 그 영약들 냄새한번 맡지 못하는데....마찬가지로 누가 은령 아범 같은 사람을 만나주겠나. 은령 아범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림, 무당의 문턱조차 넘어 본적이 없다고 하더군...하늘이 무심한 게야....그냥....하늘이 무심한 것이지...”

한숨과 함께 푸념을 뱉은 노인이 속이 답답해져 오는지 식지 않은 차를 한 번에 마시고는 식도가 뜨거운지 가슴을 몇 차례 두들겼다. 마영성이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노인을 보며 어떤 병인지 물었다.

“머리 쪽에 피가 고이고 혈관들이 죽어나가고 있어. 그래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영약들이 필요한 것이지.”

마영성이 노인에게 어떻게 그런 것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음...이런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이래봬도 한때 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진찰 해주었다네. 뭐 높은 자리 였던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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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 44장 언덕위의 전쟁 -3화 +3 19.03.23 1,614 44 18쪽
45 제 43장 언덕위의 전쟁 -2화 +9 19.03.20 1,861 56 20쪽
44 제 42장 언덕위의 전쟁 -1화 +5 19.03.17 2,106 54 24쪽
43 제 41장 마군 야화 +5 19.03.15 2,018 45 8쪽
42 제 40장 창궁검왕을 만나는 자리 +5 19.03.13 2,091 49 16쪽
41 제 39장 반격을 위한 첫걸음 +5 19.03.12 2,260 44 29쪽
40 제 38장 마영성의 배려 +4 19.03.10 2,166 55 33쪽
39 제 37장 암실속 흑련회의 +4 19.03.10 2,169 43 21쪽
38 제 36장 귀가 +4 19.03.09 2,030 48 13쪽
37 제 35장 암왕(暗王) +6 19.03.08 2,035 61 18쪽
» 제 34장 은령 +4 19.03.07 2,048 48 11쪽
35 제 33장 도원결의(桃園結義) +5 19.03.06 2,075 56 18쪽
34 제 32장 유월의 눈물 +4 19.03.03 2,038 56 10쪽
33 제 31장 마영성과 유월 +3 19.03.03 2,029 45 12쪽
32 제 30장 제갈세가 +4 19.03.02 2,435 5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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