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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재 주기
프레노아
작품등록일 :
2019.01.01 03:16
최근연재일 :
2019.04.25 03:37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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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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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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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잠자는 숲 속의 공주 4페이지

DUMMY

“하아.”

“학교 끝나려면 한참 남았잖아. 왜 벌써 왔어.”

“이리나야 말로. 학교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거야.”


두 사람이 약속한 장소.

학교 정원의 벤치에서 이리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혼자 앉아 아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뛰어와 지쳐버린 아리스는 숨을 고르며 이리나의 옆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게 성실한 아리스의 첫 탈선이구나.”

“조퇴라고 말하고 왔어.”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는데? 어디가 아프셨길래?”


이리나가 장난스럽게 묻자 아리스는 당당히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음이 아파서.”

“돌아가면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몰라. 그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그렇네.”


아리스의 당당한 태도가 조금은 기쁜 듯 웃으며 이리나가 말을 이었다.


“나. 전학 가.”

“들었어.”

“엄마의 병 때문이야. 그것 때문에 요양을 가게 돼서 나도 같이 가는 거야.”

“가족 사정이란 게 그런 거구나.”

“아빠는 학교도 있으니까 원한다면 이곳에 남아도 된다고 했지만...그래도 가족을 두고 혼자 남는 건 좀 그렇잖아.”

“나를 두고 가는 건 괜찮고?”


심술스러운 대답에 이리나가 놀란 듯 두 눈동자를 크게 뜨며 아리스를 바라봤다.

그 후 멋쩍은 듯 웃으며 이리나가 말을 이었다.


“아하하. 아리스 질투하는 거야?”

“응.”

“평소의 아리스답지 않은 당당한 대답이네.”

“이런 걸 질투하는 나도 바보 같아. 가족이랑 있고 싶다는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해한다곤 해도 이리나랑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걸.”

“마지막에 이런 아리스를 보게 되다니. 이러면 망설여지잖아.”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아리스가 얼굴을 내밀며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요양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 거지? 그런거라면 나 얼마든지 기다릴게.”

“고마워. 자주 편지할게. 많이 보고 싶을 거야.”


티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리나가 말했다.

아리스는 그 억지웃음에서 묘한 친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리나의 색다른 태도나 얼굴에서 친숙함을 느낀 이유도 알게 되었다.


“거짓말이구나.”

“응?”

“너랑 비슷하게 웃던 사람이 있었어.”


아리스의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이리나는 아리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리스는 살짝 손을 뻗어 이리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우리 엄마야.”


아리스의 손 안에서 이리나의 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고 느꼈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 이미 그런 얼굴을 봤었으니까 익숙하다고 느낀 거야. 엄마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얼굴은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의 얼굴이야.”


이미 한 번 겪었던 아픈 이별을 통해 아리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숨기며 웃는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그런 거짓말은 아리스에게 통하지 않았다.


“미안해..”

“왜 사과하는 거야? 사과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줘.”

“.......”

“역시 만나지 못하는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의 장난기 많은 얼굴이 아닌 진지한 얼굴로 이리나가 말을 이었다.


“아리스의 말대로야. 오늘 이후로 나는 아리스를 만나지 못해. 사정은 말해주지 못하지만.. 아마 편지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해.

아마 이렇게 만나는 것도 하면 안 될 거야. 괜히 미련만 생길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꼭 아리스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째서?”

“아리스. 내가 그때 했던 말 기억해? 아리스는 있는 그대로의 아리스 였으면 좋겠다는 그 말.”

“응”

“그때 아리스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해서 나한테 물어봤었지.”

“이리나는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대답했고.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고민 했었어 계속 신경 쓰여서.”


“응. 이곳에서 널 기다린 건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반드시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해.”

“어째서야?”“그야.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아리스를 옆에서 봐줄 수 없으니까. 고민이 있더라도 그걸 들어줄 수 없고, 힘들어 지치더라도 아리스에게 수고했어. 라는 말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최소한 그 대답에 대한 것만이라도 정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아리스가 그 답에 도달하지 못했다면...내가 알려주겠지만 그래도

아리스라면 그 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리스의 입으로 듣고 싶어.”


말을 끝낸 이리나는 얌전히 아리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대답을 이미 갖고 있던 아리스는 잠깐 눈을 감고 어렸을 적 이리나와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이 답이 틀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리나가 생각한 의미와는 전혀 다른 걸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적합한 해답이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기에 아리스는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했어. 평소답지 않게 이리나가 진지해졌었으니까. 하루 종일 노트에 이리나의 말을 써가며 생각했었어.”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감동인데.”

“이리나의 말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답이 전혀 안 나오더라.

그래서 잠깐 하늘을 보고 있었어.

하늘은 가장 멍 때리기 좋은 장소니까. 고민에 사로잡혀 그것만 생각하면 오히려 좋지 않아.

가끔은 넓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필요도 있어.

엄마가 해줬던 말이야.

그저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덕분에 답을 찾을 수 있었어.”


잠깐 쉬듯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을 바라보며 아리스는 말을 이었다.


“나. 어렸을 때랑 많이 달라졌구나.”


아리스의 대답에 이리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겉돌았다.


“어렸을 땐 조금 더 활발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너무 이른 나이에 포기하는 법을 배워버린 것 같아.

아마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부터였을까. 그 전까지만 해도 엄마처럼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아리스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눈치를 많이 봤으니까. 아리아 아줌마가 막 돌아가셔서 힘들어하는 아버지에게 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겠지.”

“응. 그래서 포기했지. 여행도, 세습도. 활발했던 성격도 억지로 죽이고 조용히 지내려 했어.

힘들어하는 아빠를 괜히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리나는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구나.”

“정답이야.”


이리나가 감탄하듯 박수를 쳤다.


“그 말대로야. 아리스는 포기하는 법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으니까.

좋게 말하면 어른스러운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슬픔에 너무 빨리 익숙해져버린 거지.

그런 모습의 아리스를 보는 게 힘 들었어.

물론 아리스는 아리스니까. 지금의 모습도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는 지금의 아리스도 좋아해.

아리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거야. 아리스가 변하더라도 새로운 아리스로서 받아 들일거야.

그것이 정말 아리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리스가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주면 좋겠어.

아리스가 원하는 대로. 아리스가 바라는 대로. 아리스답게.”


“어째서 이리나는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주는 거야?”

“그야 당연한 걸. 그만큼 나는 아리스를 좋아하고, 아리스가 소중하니까.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올곧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던 아리스를 좋아했어. 그러니까 아리스는 내가 좋아하는 아리스로서 있어주었으면 해.”

“이리나...”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이리나는 두 팔을 벌리고 아리스를 소중하게, 그리고 따듯하게 끌어안았다. 그 행동에 맞추어 아리스도 자신의 팔로 이리나를 끌어안았다.


“잘 있어. 아리스. 내 최고의 친구.”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그런 말 해주면 이 손 놓기 싫어지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은 아리스와 같았기에 이리나도 쉽게 팔을 풀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몇 초라도 더 좋으니 이대로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이대로라면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리나는 마음을 다시 잡고 아리스의 팔을 풀어냈다.


“그럼 안녕. 아리스.”


몇 년을 함께 해온 가장 소중했던 친구가 이별을 결심하며 일어났을 때 그녀의 안색이 일순간 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이리나?”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 경악해하는 이리나를 멍하니 보던 아리스는 자신의 옆자리에 작은 풀줄기가 자라나는 것을 확인했다.

기분 나쁘게 생긴 덩굴이었다. 가시로 가득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저주 같은.


“뭐야 이거? 가시 풀?”

“도망쳐!! 아리스!!”


이리나가 소리치고 그 직후. 아리스의 옆에서 자라나던 풀줄기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꽃으로 피어나지 않았다. 거친 가시 덩굴로 피어난 그 줄기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아리스와 이리나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가시덩굴로 이루어진 정원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 가시덩굴 정원의 한 가운데에는

가시덩굴로 이루어진 새장이 아리스를 감싸고 있었다.


“어?...새장?”

“안 돼. 안 돼! 아리스!!!”


가시덩굴의 새장이 아리스를 가두었다는 사실에 이리나는 경악하며

가시덩굴을 풀기 위해 맨손으로 붙잡고 잡아당겼다. 하지만 가시덩굴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거친 가시에 의해 이리나의 손에 상처가 날 뿐이었다.


“이리나! 그만둬! 손에 상처가.”


아리스의 만류에도 이리나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손에 상처만 늘어난다.

하지만 이리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가시덩굴을 붙잡은 이리나의 손의 상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이리나?”


이리나의 모습이 가시덩굴에 동화되어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리스는 머릿속에 떠올려진 한 가지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설마...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 순간 두 사람만이 있던 가시덩굴 정원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선명히 들려왔기에 아리스와 이리나는 행동을 멈추고 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곳에 찾아온 손님은 아리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검은색이었다.


“선생님?”

“혹시나 싶어 바로 학교로 왔습니다만, 역시 이렇게 되었군요.”

“누구?”

“처음 뵙겠습니다. 이리나 양. 아리스 아가씨의 가정교사를 맡고 있는 그레이 리슈타인이라고 합니다.”


한쪽 손은 앞으로. 반대쪽 손은 뒷짐을 진채로 고개를 숙이며 그레이가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내며 아리스에게로 다가오며

이리나에게 잠시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레이가 가시덩굴 새장의 창살을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고, 가시덩굴은 나이프에 베여져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베여져나간 가시덩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고, 잠깐 벌어진 틈 사이로 그레이는 손을 뻗었다.


“붙잡으세요. 아가씨.”


아리스가 그레이의 손을 붙잡았고 그 순간 그레이는 팔을 끌어당겨 아리스를 끌어안으며 가시덩굴의 새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괜찮으십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레이는 자신의 가방에서 붕대로 감싼 한 권의 책을 꺼내들고 이리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책을 감싼 붕대를 풀어 헤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리나가 있는 방향으로.

이리나를 향하던 그레이를 보며 아리스는 전날 그레이와의 만남에서 그레이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들려준 고서의 세 가지 이야기 중 그 세 번째를.


[그 세 번째는...]


“아가씨의 주변을 조사하다 프로이트 가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프로이트 부인께서 몇 달 전부터 소식이 없으시더군요. 그래서 프로이트 가에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곳과 같은 풍경을 보게 되었죠.”


[아가씨의 주변에 또 하나의 고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붕대가 완전히 풀어지자 그 안에 있던 낡은 한 권의 책이 모습을 보였다.

판도라의 고서.

형태를 가져버린 고서의 저주들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책.

이미 반 확정된 진실을 애써 부정하며 아리스는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다가가고 있는 그레이를 붙잡았다.


“아니에요. 선생님. 뭔가 오해가 있을 거예요.”

“판도라의 페이지. 29페이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아니라니까요. 선생님.”

“아가씨. 조금은 인정할 필요가..”

“그럴 리가 없어요. 이리나가 고서일리가.”


아리스의 반응에 그레이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프로이트 부인에 대한 소식은 아가씨도 들으셨을 겁니다.”

“네. 병 때문에 집에만 계신다고...”

“실제로 보고 왔습니다. 이곳과 비슷하게 가시덩굴로 뒤덮인 곳에 잠들어계시더군요. 무엇보다 저 모습을 보고 오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한쪽 눈만을 가늘게 뜨며 그레이는 이리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완전히 변해버린 이리나의 모습은 그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었다.

가시덩굴이 머리카락까지 뒤덮여버려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가시정원에 피어난 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을 가져왔다.


“거짓말. 뭔가 잘못된 거예요. 이리나가 고서일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이리나?

우리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었잖아.”


억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이리나의 정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돼는 억지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의미한 답을 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소꿉친구가 조금이라도 부정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도 이리나는 아리스를 바라보기 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잔인하고 거짓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기에 침묵을 선택했으리라.


“폭주한 고서는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저것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란 이야기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레이의 목소리에 아리스는 답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기에 그레이는 대화의 대상을 바꾸었다.


“형태를 가진 고서는 본래 자신이 고서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하지만 자신이 고서라는 정체성을 알게 되는 순간 고서로서의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겠군요. 이리나 프로이트. 자신의 힘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네.”


이리나가 포기하듯 대답했다.

이리나의 대답에 아리스 또한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고, 그 밑으로 살짝 씩 물방울이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아리스를 뒤로 하고 그레이는 책을 펼치며 이리나에게 다가갔다.


“......비켜주십시오 아가씨.”

“싫어요.”


그레이의 앞을 아리스가 보내줄 수 없다는 듯 팔을 펼치며 그레이를 막아섰다.


“선생님은 저를 지켜주실 거라고 했죠.”

“네. 그랬습니다.”

“아마 선생님은 제가 고서를 만나게 되는 걸 두려워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셨을 거예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틀렸어요. 제가 두려워했던 것은 고서를 만나서 목숨을 잃거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제 주변에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어요.

저와 가까운 사람 중에 고서가 있다는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그 사람이 누구라도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니까 .

설령 그것이 만들어진 설정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과의 시간은 모두 소중한 시간일 테니까. 저는 그 사람과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아리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며 자신이 겪은 첫 번째 이별을 떠올렸다.

너무 사랑하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마음 아팠던 첫 번째 이별.

그런 아픈 이별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에 아리스는 각오를 다졌다.


“아가씨. 이리나 양은 고서입니다. 지금은 이런 가시덩굴일 뿐이지만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고서의 힘은 고서 본인이 조절하려고 한다 해서 조절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감정의 틈이 생기는 순간 폭주하고 멈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 부인의 경우 가시덩굴에 휩싸여진 채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죠. 아가씨도 그렇게.. 아니 그 이상의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어요... 이리나와의 기억이 더 소중하니까요.”

“그저 어린아이처럼 고집 부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고집이면 어때서 그래요!!! 억지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옳지 않은 판단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 같은 거 못해요. 왜냐면... 이리나니까. 이리나와의 시간은 저에게 진짜였어요. 모두 소중하고 따듯한 기억들이에요.

설령 그것이 만들어진 기억일지라도. 이리나가 그런 설정으로 이루어진 가짜라 할지라도

이리나는 저에게 진짜이고 가장 소중한 친구란 말이에요!!!”


마음의 울분을 토해내듯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전하는 아리스에 그레이는 조금 위축되었다.

그저 어린 아가씨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상으로 자신의 학생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레이가 망설일 정도로.

이 일 순간 그레이는 아리스에게 위축되어 고서화를 포기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정도로 아리스의 목소리에는 진심과 각오가 담겨있었다.

그레이가 살짝 틈을 보이자 아리스는 뒤돌아 이리나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레이는 늦게나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있었기에 닿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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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지하실. 여러 괴담이 있어 학생들이 자주 출입한 탓에 평소에는 잠겨져있기에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2학년 때 담력시험삼아 몰래 지하실에 찾아왔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자물쇠가 낡아서 핀 같은 것을 넣고 조금 당기기만 해도 쉽게 풀린다는 것을

아리스는 이리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도망쳐왔다.


“하아. 일단 여기에 있으면 안 들키겠지.”


숨을 고르며 아리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이리나를 바라봤다.

자신과 눈을 전혀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피하며 가시덩굴로 덮인 자신의 팔을 부끄러워하며 팔짱을 꼈다.

아리스는 이리나의 옆으로 걸어와 자켓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아리스를 거부하듯 이리나는 아리스로부터 떨어졌지만 아리스는 오히려 더 이리나에게 들러붙었다.


“오지마.”

“싫어.”

“다칠 거야. 나 지금 가시투성이라고.”

“안 다쳐.”

“거짓말 하지 마. 이미 손도 상처투성이잖아.”


가시덩굴 투성이인 이리나의 손을 붙잡았기에 아리스의 손은 멀쩡하지 않았다.

통증을 애써 참으며 겉으로 내보이지 않을 뿐 사실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가시에 찔리고 베인 상처들로 가득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옷도 찢어질거야. 다시 가져가.”

“옷은 새로 사면 돼. 상처도 치료하면 그만이고.”


손수건을 손에 묶어 지혈하며 아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한 손이라 묶는 게 능숙하지 않은 탓에 엉망이었다.


“으음.”

“...이리 줘봐.”

“응?”

“손 내밀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아리스는 손을 내밀었고 이리나는 자신의 가시가 아리스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대신 손수건을 묶어주었다.


“왜 바보같이 나를 데리고 온 거야.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잖아. 이러면 미움 받을 거야.”

“괜찮아. 이리나가 더 소중하니까.”

“바보야.”


실없이 웃으며 대답한 아리스 때문에 긴장이 풀렸는지 이리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기다렸다가 밤이 되면 나가자. 어두워지면 찾기 힘드니까 선생님을 피해 잘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그 다음에는 마차를 구해서 마을을 빠져 나가자. 늦은 밤이라도 바로 옆 마을까지 가는 마차는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다음에는 같이 생각해보자.”

“설마 지금 같이 마을을 나갈 생각이야?”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이리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아리스는 그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으로는 밖에 다니기 힘들잖아. 게다가 옆 마을이라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있어. 그곳에 사는 후작님인데, 부탁하면 아마 힘을 빌려주실 거야.”

“나 때문에 아르마를 떠나려는 거야?”

“잠깐 동안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야. 선생님과 타협을 해야지. 네가 돌아올 곳을 만들기 위해.”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이미 한 번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경험이 있는 아리스는 그때 들은 소꿉친구의 대답을 생각하며 질문에 답했다.


“그야 당연한걸. 그만큼 나는 이리나를 좋아하고, 이리나가 소중하니까.”


자신을 위해서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아리스도 같았다.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는 그런 친구였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무섭지 않아? 이런 괴물의 모습인데.. 네가 아는 이리나 프로이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데.”

“으음.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어. 네가 고서라는 사실에 마음이 살짝 꺾이기도 했고. 근데 그때 네 목소리가 들려왔어.”

“나는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들렸어. 미안해. 헤어지고 싶지 않았어. 더 같이 있고 싶어. 라고.”


아리스의 대답에 이리나의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였기에 보인 반응들이다.


“아마 네 마음의 소리? 같은 게 들렸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도 계속 들리고 있어.”


[미안해]

[같이 있고 싶어]

[아리스가 좋아]

[고마워]


며칠 전에도 들었던 이 목소리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이리나의 진심이었다. 거짓말 하나 섞이지 않은 이리나의 진심이 아리스에게 들려왔던 것이다. 아마 고서의 힘이 폭주한 영향이 아닐까 하고 아리스는 유추했다.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이리나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며 아리스는 이리나를 바라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버렸다.


“웃지 마.”

“부끄러워할 이유 없는데. 이 목소리가 네가 이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으니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어떤 형태가 되더라도 너는 내 친구 이리나 프로이트야. 그러니까 나는 너를 도우지 않을 이유가 없어”


아리스는 가시투성이인 이리나의 손을 붙잡았다.

자신의 가시가 아리스에게 상처를 줘버리니까 이리나는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아리스는 이리나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놓으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 이리나는 포기하고 손에서 힘을 풀었다.


“엄마는 나를 무서워했어. 내가 이렇게 된 건 처음이 아니야. 전에도 한 번... 이렇게 괴물이 된 적이 있었어. 엄마랑 싸웠던 날이야. 그때는 나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무서워져서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그런 내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고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도망치시더라. 그때 힘이 폭주해서 엄마를 잠들게 만들었어.”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히자 이리나는 기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이 힘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정말 저주일 뿐이라고. 네가 자주 졸려하던 이유도 전부 나 때문 인 것 같아. 그리고 언젠가는 이 저주가 너도 엄마처럼 만들어 버릴 거야. 그게 너무 무서워서 너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는데...이렇게까지 말해주니까 흔들리잖아.”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이리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 내렸다.

아리스는 그런 이리나를 끌어안았고 토닥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흔들려버려. 참지 않아도 돼. 계속 같이 있어줄 테니까. 이리나.”


아리스의 옷에 피가 베어들고 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탓이다. 가시덩굴로 휩싸인 자신을 끌어안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에도 아리스는 이리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따듯함의 이리나의 마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참아왔던 것들을 모두 쏟아냈다.


“흐아아아앙. 아리스 진짜 바보야. 바보. 흐윽.”


아리스는 아무말없이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달래듯 토닥였다.


“흐윽. 고마워. 계속 같이 있겠다고 말해줘서. 이런 나를 받아들여줘서.”

“나야말로 고마워. 내 친구가... 되어줘서.”


아리스의 목소리 끝이 힘이 빠져버린 듯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리나는 아리스를 불렀다.


“아리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을 끌어안은 팔이 힘이 빠져 바닥에 내려앉은 순간 이리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시덩굴의 정원에서 저주를 받은 공주님이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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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데렐라 2페이지 19.03.21 32 0 23쪽
10 신데렐라 1페이지 19.03.18 30 0 19쪽
9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마지막 페이지 19.03.08 28 0 19쪽
8 잠자는 숲 속의 공주 5페이지 19.03.03 25 0 17쪽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4페이지 19.02.28 26 0 25쪽
6 잠자는 숲 속의 공주 3페이지 19.02.18 30 0 17쪽
5 잠자는 숲 속의 공주 2페이지 19.02.11 29 0 17쪽
4 잠자는 숲 속의 공주 1페이지 19.01.26 51 0 16쪽
3 판도라의 고서 3페이지 19.01.16 67 0 14쪽
2 판도라의 고서 2페이지 19.01.09 43 0 15쪽
1 판도라의 고서 1페이지 19.01.02 11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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