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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프레노아
작품등록일 :
2019.01.01 03:16
최근연재일 :
2019.04.25 03: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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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81

작성
19.03.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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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속의 공주 5페이지

DUMMY

8년 전. 나와 아리스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쯤 일어난 일이다.

하늘이 분위기를 맞춰주는지 딱 맞춰 비까지 내려서 참 우울한 날이었다.

아리스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아리아 아줌마의 장례식이었다.

장례는 교회에서 치러졌고 그날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리스.”

“이리나.”


그날의 아리스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리스를 보고 검은색도 잘 어울린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바보 같고 미안한 생각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리스의 빨갛게 부은 두 눈동자가 보였다.

엄청 울은 것 같다. 당연하다.

아리아 아줌마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리스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찾아와줘서 고마워. 이리나. 엄마도 기뻐하실 거야.”


아리스가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나를 반겼다.

나는 그 미소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미소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당시의 나는 아픔에 익숙해지려는 아리스에게서 괴리감을 느꼈던 거다.

아마 그때부터 아리스가 변했던 것 같다.

나는 아리스를 통해 이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배웠다.

아리아 아줌마가 돌아가시고 아리스는 변화를 시작했다.

평소의 활발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더 이상 나무를 오르거나 하지도 않았다.

백작 지위를 세습하겠다는 꿈은 버렸다. 대신 사교계에서의 매너나 무용 같은 것을 배웠다. 어머니를 동경했기에 꿈꾸었던 여행마저도 포기했다. 아리스는 그렇게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놓아버렸다. 아리아 아줌마를 동경하며 그 사람을 따라가던 아리스는 사라져버렸다.

아리아 아줌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걱정을 늘이고 싶지 않았기에 아리스는 그런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아리스를 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예전의 아리스로 돌아와 줄까.

나는 아리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내가 동경하는 아리스를 다시 보고 싶으니까?

아니면 아리아 아줌마와의 약속 때문에?

아니면 백작 가와의 인연을 만들어두기 위해?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니까. 소중한 친구니까. 아리스니까.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친구가 억지로 웃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아리스가 예전 같은 아리스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아리스는 아리스니까.

하지만 아리스가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며 다른 선택을 하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아리스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했다.


그렇기에 나는 먼저 나 자신을 바꾸었다.

조용하고 소심했던 내가 아닌 활발하고 당당한 나를.

언제나 그런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아리스]를 연기했다.

이런 모습은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고 그저 만들어낸 모습일 뿐이다.

내가 이러면서 아리스는 아리스답게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아리스가 아리스답게 있어준다면.


“아~리스!”

“이리나.”

“오늘도 무표정해서 예쁘네.”

“또 그 말이야?”


처음엔 연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소심했던 내가 억지로 밝아지려했던 것이니까.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새 그런 내 모습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연기가 어색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원래 내가 이랬던 것처럼.

내가 변했다는 것이다. 소심한 나에서 활발한 나로.

하지만 내가 이렇게 변해도 아리스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아픔에 익숙해져갔다.

어떻게 해도 나로는 아리스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고민조차 해결하지 못했을 때 새로운 문제가 나에게 나타났다.

정말 조금도 생각 못한 일이다.


학교를 다녀와 집에 들어왔을 때 마침 엄마가 밖에 나와 계셨고 엄마는 나에게 트집을 잡았다. 이유는 뭐였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별거 아닌 것이었겠지.

몇 년이 지나더라도 엄마는 여전했다. 여전히 귀족이라는 작위에 집착했고 나에겐 엄격했다.

그래도 익숙해져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겨버렸을 문제였다.

하지만 그 날은 어째서인지 예민했고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조금 짜증을 느꼈다.


“몇 번이고 말했잖니. 너는 프로이트 자작가의”

“?”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어져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손을 떨며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유를 알지 못해 엄마를 부르며 다가가자 엄마는 경악을 하며 나로부터 떨어졌다.


“엄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만들어준 것은 거울이었다.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사람의 모습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있었으니까. 어디서 자라났는지도 모를 가시 덩굴이 몸을 감싸고 눈의 색마저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손도 발도 가시덩굴로 가득했고 머리카락 마저도 끄트머리에 가시덩굴이 자라났다.

너무 이상하고 무섭고 두려워서 나는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엄마. 이거 뭐야? 나 왜 이런 거야? 엄마. 도와줘.”

“오지 마!!”


하지만 엄마는 나를 두려워하며 거리를 두었다. 소리치는 목소리로부터 공포감이 너무 잘 느껴졌다. 정말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반응이기에 살짝 마음이 아팠다.

나도 무섭고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데.


“엄마. 나야. 이리나야. 제발 내 목소리를 들어줘.”


어떻게든 엄마를 진정시켜보자 천천히 엄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이마를 강타한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시야가 기울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에 맞고 쓰러졌나보다. 통증 때문에 한쪽 눈조차도 잘 뜨여지지 않았다.

유리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내가 무엇에 맞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꽃병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던진 것 같다.


“으윽.”


어떻게든 힘을 내 몸을 일으켰다. 아픔 때문인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나면서 바닥을 짚은 탓에 손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머리가 아파서 감각이 희미했는지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 손바닥을 확인했다.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러면 정말 사람이 아닌 것 같잖아.


“괴물.”


그 단어에 마음이 완전히 꺾여버렸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를 두려워하는 눈빛이 더 강해졌다. 어째서? 왜? 나는 당신의 딸인데.


“어째서?”


당신의 딸인데, 이리나 프로이트인데. 어째서 무서워하는 거야.


“어째서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거야? 화를 내고, 소리치고, 꽃병을 던지고, 괴물이라고 부르고. 나는 당신의 딸인데 어째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하는 거야. 이런 행동에도 사랑이 있다는 거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마음의 울분을 토해내는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사랑 같은 건 없어.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잘못된 거야.”


아리아 아줌마의 말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섞여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고 아껴왔던 눈물이 쏟아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새로운 가시덩굴을 피워냈다. 이윽고 가시덩굴은 엄마를 감싸 안기 시작했고

엄마는 충격을 먹은 듯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가시덩굴의 정원 속에서 잠들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깨우려고 말을 걸고 흔들어 봐도 며칠을 기다려 봐도 엄마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이상한 병에 걸렸다 생각하고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많은 의사를 부르더라도 다들 처음 보는 증상이라 대답했고, 조금도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했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다. 살아계셨다. 몸의 장기들도 멀쩡히 움직이며 숨도 쉬고 계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는 못하셨다.

언제나 잠든 채로 침대에 누워계실 뿐이었다.

그 원인을 알던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 가시덩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에게만은 가시덩굴의 정원에 갇혀 잠들어있는 엄마가 보였으니까.


“괴물이네. 정말로.”


한탄하며 한참을 울었다. 이 힘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다시 그 모습이 되는 일이 없었기에 이 힘은 내가 조종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엄마를 살릴 방법을 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이 심란했다. 엄마를 싫다고 느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되어버리니

죄책감을 느꼈다.

이대로 엄마가 죽는다면 나는 살인자가 되는 걸까 싶어 더 무서웠다.

나는 이런 사실을 그저 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암.”

“왜 그래? 어제 못 잤어?”

“으음. 그런 건 아닌데. 요새 이상하게 자꾸 졸려져서. 저녁에도 잘 자고. 늦게 자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자세히 확인하지 않더라도 아리스에게 일어난 일들이 나 때문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증거가 있기에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리스도 엄마처럼 잠들어버릴지도 몰라서 나는 언젠가 아리스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멍한 얼굴로 그레이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리스의 목소리에 흔들려서 아리스를 붙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심란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길게 한숨을 쉬며 그레이는 고서에 다시 붕대를 감았다.

아직 이리나를 지우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단을 내리지는 못하기에

일단은 정리를 선택한 것이다. 고서를 그대로 들고 있어봐야 결점만 많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고서를 가방에 넣고 일어났을 때 발소리가 들려와 그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가시덩굴에 감싸여진 모습의 이리나가 자신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아리스를 구해주세요.”


이리나는 그레이에게 무릎 꿇었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간절히 애원했다.

그레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건냈고 가시에 닿지 않도록 조심히 그녀를 붙잡아 일으켰다.


“아가씨는 어디 있습니까?”

“안내할게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리나가 대답했고 그레이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여기에요.”


그레이가 낡은 문의 손잡이를 붙잡아 문을 열어 지하실에 들어왔다.

지하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레이는 아리스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구석에서 잠들어있는 아리스를 발견했다.


“아가씨. 일어나보세요. 아가씨!”


아리스를 깨우기 위해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이름을 불렀지만 조금도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소용없을 거에요...그런 식으론 깨울 수 없어요. 엄마도 그랬으니까.”

“뭔가 방법이 없습니까? 고서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면 자신의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 파악하셨을 겁니다.”


안타까운 얼굴로 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원본이 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저주를 받아 영원한 잠에 빠져든 공주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없다니까요!”


울분을 토해내듯 이리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레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없어요. 없다구요. 그래서 답답하다고요.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고 아리스에게서 떨어졌으면 이런 일 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다 나 때문이야.”


잠시 동안 그레이는 침묵했고 진정한 후에 입을 열며 이리나에게 사과했다.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같이 생각해봅시다. 아가씨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이리나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이리나양의 저주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감정을 느끼는 상대방을 잠에 빠지게 만드는 힘이에요.

처음엔 조금 졸려오거나 할 뿐이지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강해지고 마지막에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요. 분노, 슬픔, 공포 증오. 그리고 사랑.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렇군요.”


그레이는 턱을 괴고 한참을 생각했다.


‘감정에 따른 발동. 그리고 그 감정이 강해질수록 능력이 강해진다. 그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순간 저주에 걸린다는 것인가. 마지막에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잠을 깨울 방법은 없다. 정말 없는 건가? 무언가 방법이.’


기나긴 침묵 끝에 그레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의 반응을 이리나는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요?”

“뭐가 말이죠?”

“찾았잖아요. 방법.”

“찾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기엔 너무 티가 났어요. 말해주세요.”

“하아. 아가씨나 저처럼 고서의 규칙에서 벗어나게 되면 고서가 사라지더라도

규칙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기억도 물리적인 것도 모두 남게 되지요.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고서에게 목숨을 잃거나 하면 고서가 사라지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 말은... 그럼 아리스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건가요?”

“아니요. 방법은 있습니다. 아가씨에게 걸린 것이 이리나 양의 저주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지요.”

“그 방법이 뭔데요?”


그레이는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괴로운 듯 목소리를 짜냈다.


“이리나 양을 지우는 것입니다..”

“네?”

“이리나 양의 저주는 물리적인 것이 아닌 이리나 양이 존재함으로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리나 양이 사라진다면 저주는 힘을 잃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가씨는 자연스럽게 깨어나실 겁니다.”

“뭐야. 간단하잖아.”


마음을 잡고 말한 것과 달리 이리나는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양팔을 벌렸다.


“자. 어서 되돌려주세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아리스를 위한 것인걸요.”

“왠지 고민한 제가 바보 같아지는 군요.”

“아하하. 선생님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네요.”


그레이는 아리스를 벤치에 눕힌 후에 이리나의 페이지를 펼쳤다.


“뭔가 남기실 말은 없으십니까?”

“뭐 유언 같은 건가요?”

“고서가 지워지면 원래부터 없던 존재가 되어버리기에 고서가 남긴 것들 또한 사라집니다. 그렇기에 편지 같은 것은 쓸 수 없죠.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입니다.

아가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해 주십시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


“아가씨. 일어나세요. 아가씨.”

“으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아리스는 눈꺼풀 밖으로 따스함을 느꼈다.

무언가가 닿는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안심한 얼굴의 가정교사였다.


“선생님?”

“깨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눈을 뜬 아리스는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발코니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봐선 발코니를 통해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이리나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무시하며 아리스는 그레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리나는요?”

“죄송합니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이리나는 어디 있어요?”“이리나 아가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째서요?”

“죄송합니다.”

“어째서냐고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말을 원하지 않았어요!”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치는 아리스에게 그레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리스는 옆에 있던 책이나 베개들을 그레이에게 던졌다.

아리스가 던진 물건에 맞으면서도 그레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피하지도 막아내지도 않으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왜냐구요!! 왜! 왜!!”


그레이는 말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 어떤 변명도 그녀에겐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바닥만을 바라봤다.


“말이라도 해봐요. 어째서 에요.”

“죄송합니다.”


무엇을 물어보려는 걸까. 그런 것은 질문을 하는 아리스도 알지 못했다.

이런 행동이 그저 어리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었다.

울고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그렇게 자극적인 감정에 솔직해지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한참을 화를 낸 아리스는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가씨!”

“건드리지 마요.”


아리스를 걱정하며 그레이가 다가갔지만 아리스는 그레이의 손을 쳐내며 거부했다.


“나가요.”

“알겠습니다.”


그레이는 더는 말하지 않았고 그대로 발코니를 뛰어넘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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