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를 지어3
이름 : 명예로운 늑대 이빨
분류 : 무기 - 전사와 도둑
등급 : 희귀
능력 : 초당 공격력 30
특별 : 높은 확률로 출혈 유도
비수는 옵션이 나쁘지 않았다. 초당 공격력 30이면 비수 중에서도 최상급. 게다가 출혈은 상대의 저항을 낮추고 일정 확률로 어지러움을 유발할 수 있다.
'이건 일단 금고에 넣어둬야지.'
이름 : 우르크의 긍지
분류 : 목걸이 - 제한 없음
등급 : 희귀
능력 : 모든 저항력 상승
특별 : 소환수와 파티원에게도 차등 적용
'차등 적용이라. 착용자보다는 효과를 덜 받는다는 말인가? 이건 팔기도 아깝지만 내가 쓰기도 부담스럽다.'
팔기엔 옵션이 너무 잘 빠졌다. 하지만 쓰자니 하루에 PK를 몇 번 당할지 상상도 안 된다. 도둑의 스킬 중 '훔쳐보기'라고 있는데, 타인이 착용한 아이템 옵션을 볼 수 있다. 도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다.
'내가 너무 조심하는 건가? 하지만 이건 잠깐 즐기는 곳이 아니라 직장이다. 저거 없으면 사냥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금고에 두자.'
이름 : 불신의 성기사
분류 : 퀘스트 아이템
등급 : (없음)
능력 : 퀘스트 활성화
특별 : 에픽 퀘스트 '불신의 성기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자격 아이템, 귀속.
'이것 때문에 업데이트가 생긴 거였구나.'
은행 창구의 NPC에게 감정 비용을 지급하고 레어 아이템을 금고에 넣은 후 로그아웃하면서, 네크로는 자신이 너무 소심한 게 아닌지 고민했다. 앞장서서 남을 이끄는 결단력 있는 리더형 인물이 아닌 걸 알지만, 돈만 관련되면 너무 소심해지는 자신이 조금은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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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공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화분이나 조화는커녕, 회의실에 앉아있는 세 사람 앞에 차나 커피조차 놓여있지 않았다.
"두 사람. 잘못한 거 알지?"
유니콘 한국 지사의 마녀. 여자의 몸으로 부장 자리를 꿰찬 자타공인 여장부.
"부장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선처만 바랍니다."
"박 대리, 신 사원. 원래는 그냥 삼 개월 감봉 처분으로 끝내려 했는데, 방금 일이 터졌어. 아무래도 두 사람 회사 그만둬야겠어."
'이 마녀는 회사 남자 직원을 다 쫓아내야 성에 차려나? 그런데 야근이 일상인 개발팀이나 언제든 전화 받아야 하는 유지보수팀 등 남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인데.'
"부장님, 거듭 반성합니다. 감봉 조치도 달게 받겠습니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부하 직원들뿐 아니라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까지 마녀로 통하는 이예지 부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두 사람 때문에 우리가 게임 DB에 접근할 권한을 잃어버렸어."
"부장님.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2천 명에 가까운 유저 정보를 일주일 안에 전부 정리하라고 시킨 건 부장님입니다. 우린 부장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무리해서 실수한 겁니다. 우릴 회사에서 내보내면 인권위에 진정서 올리겠습니다."
박 대리는 속으로 '신 사원 나이스'를 연신 외쳤다. 마녀의 악랄함을 제대로 겪지 못한 신 사원이 신입의 패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두 사람. 제 지시를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요? 제가 그때 뭐라고 했어요?"
반말에서 갑자기 존대로 바뀌었다. 박 대리는 목덜미에 돋은 소름을 긁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2천 명이 넘는 유저 명단을 주시고 저희에게 기본 정보를 정리해서 일주일 뒤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하룻강아지 신 사원은 여전히 용감했다.
"제가 일주일 안에 끝내라고 했나요? 그저 일주일 뒤에 보고하라고 했죠? 일주일 뒤에 어디까지 했는지 보고하라고 한 건지, 정리한 데까지 보고하라고 한 건지, 일주일 안에 모두 끝내고 보고하라고 했는지 저한테 질문한 적 있나요? 본인들이 제멋대로 지시를 왜곡한 거 아닐까요?"
박 대리와 신 사원은 한약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입은 쓰고 속도 쓰린데 하소연할 데 없다.
"게다가 저는 두 분이 게임 게시판을 검색해서 해당 유저들의 기본정보를 정리하길 바랐어요. DB에 들어가 데이터를 직접 만질 줄은 몰랐습니다. 저한테 DB 접속해도 되냐고 질문한 적도 없잖아요. 업무 지시를 자의로 과대 해석해서 저지른 본인들의 실수를 저에게 책임 지우려는 나쁜 심보, 잘 봤습니다. 이것도 상부에 회부할 겁니다."
"부장님, 저 결혼 날짜 잡았습니다. 제발 사정 봐주십시오. 어떻게든 퇴사만큼은 안됩니다.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직 패기가 남아있는 신 사원과 달리, 30이 넘어 새로 회사 구하기 힘든 박 대리는 거의 무릎을 꿇기 직전까지 갔다.
"두 사람이 DB를 건드린 바람에 AI가 모든 아이디의 DB 접속 권한을 정지했습니다. 심지어 단순 검색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유저 중에 버그를 사용하거나, 시스템이 일으킨 버그로 이득을 얻는 자가 생겨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AI가 알려주기만 멀뚱멀뚱 기다려야 합니다. AI가 근래 매우 비협조적으로 변한 거 아시죠?"
"부장님, 그런데 왜 갑자기 징계 수위가 올라갔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감봉 조치로 끝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저희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불온한 의도를 가지고 농간을 부리는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생기는군요."
"개발팀 예상으로 3개월 뒤에나 발동해야 할 대규모 업데이트가 조금 전 발생했어요. 우르크 마을에서 정말 어려운 조건을 만족해야 나타나는 다이아몬드 등급 상자에서 3% 확률로 등장할 에픽 퀘스트 아이템이 서버에 나타났거든요. AI가 게임을 멈추고 업데이트를 선언했습니다."
멀뚱멀뚱해있는 두 사람에게 이예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책했다.
"이래서 남자들이란. 가상현실로 전환한다는 뉴스 나가고 첫날에 8천 명, 이튿날에 1만4천 명, 사흘째엔 2만 명 신규 유저가 유입되었어요. 그리고 내일이 곧 주말이란 말이에요. 이래도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만. 그게 무슨?"
마녀가 말을 멈추고 쏘아보기만 하자, 박 대리가 마지못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마케팅 부서에서 사장님에게 주말에 최소 5만 신규 유저의 유입을 장담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주말 내내 업데이트만 하게 생겼어요. 지금 마케팅 부서는 물론 개발팀 모두 주말 대기인 거 알아요? 업데이트 내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서 홍보해야 하니까."
그제야 두 사람은 자기 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 보았는지 알았다.
"부장님, 그런데 업데이트하고 유저 유입이 더 많아질 수도 있잖아요."
"남자들은 참 말이 안 통하네요."
화가 났지만, 두 죄인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 이번 업데이트는 두 분 잘못과 상관없어요. 문제가 된 건 업데이트가 갑자기 생겨서가 아니죠. 업데이트가 발생했는데도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DB에 접근하면 누가 어떤 경로로 해당 아이템을 얻었는지, 그 과정에 해킹이나 다른 부정행위가 없었는지 알 수 있는데, 두 분 '덕분'에 그걸 알 방도가 없어요. 업데이트 결과가 무척 좋다고 해도 두 분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두 분 실수로 생긴 업데이트는 아니니깐요."
"둘째. DB에 접근하면 업데이트 규모나 시간을 대충 예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영업팀과 개발팀 전체가 주말에 회사 나와서 대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저녁 시간에도 수시로 출근할 준비를 해야 해요. 사장님도 주말 골프 약속 다 취소하고 회사에 나와 대기합니다."
박 대리와 신 사원 얼굴이 점점 하얘졌다. 이건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조건 잘못한 일이다.
이런저런 잘못보다 사장님이 골프 약속 취소하게 만들고 주말에 잔업 하게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퇴사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마지막. DB에 접근할 수 없기에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최소 60명, 최대 200명 규모의 운영팀을 꾸며야 합니다. 게임 안과 게시판 그리고 경매장을 24시간 감시하면서 특이 사항을 체크해 홍보팀과 개발팀에 보고해야 하죠. 그 불확실한 정보로 홍보팀이 홍보 전략을 짜야 하고, 개발팀은 말이 안 통하는 AI와 대화하여 문제점을 해결해야 합니다."
"부장님. 그 운영팀에서 하루 16시간 일할 테니, 제발 자르지만 말아주세요."
"이미 사장님 선까지 올라간 일이에요. 제가 그 정도 파워가 없다는 건 두 분도 잘 아실 텐데요. 이름만 마녀지, 저도 두 분과 같은 월급쟁이랍니다. 미팅 약속이 있어서 더 많은 위로는 못 해 드리겠네요."
망연자실한 둘을 뒤에 두고 이예지는 회의실을 떠났다. 이예지가 떠나고 조금 후 박 대리는 흑흑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과장 정도 달고 회사 떠나면 오라는 데가 많겠지만, 겨우 대리에서 회사 그만두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인사팀들이다. 없는 사정에도 유니콘 대리라는 직함 덕분에 결혼을 허락받았는데, 이대로라면 결혼 약속도 무로 돌려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 세상의 더러움을 잘 모르는 신 사원은 서글피 우는 박 대리를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5인조 실내 축구장으로 써도 될 커다란 회의실. 크고 작은 화분에는 나무와 풀과 꽃들이 심어졌다. 가운데 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회의실 테이블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테이블을 비추는 조명만 10개는 넘었다.
이예지와 고려신문 반 실장이 마주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우리 회사를 무척 싫어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고려신문에서 말입니다."
"뭐. 그거야 다 현재 사장인 큰아버지가 밥그릇 싸움이라 오해하고 일방적으로 싫어했던 거지요. 유니콘과 저희 고려신문 사이에 딱히 트러블은 없었지 않습니까."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용건은 뭔가요? 제가 이래 봬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요."
언론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건 맞지만, 가상현실 기기 출시에 사사건건 태클 걸면서 편파 보도를 일삼던 고려신문이라, 웃는 얼굴로 상대하기 힘들었다.
"유니콘에 작은 트러블이 생겼다고 들어서, 도움의 손길을 뻗을까 해서 찾았습니다."
"고려신문이 그 정도 능력이 있었나요? 다음 달 유니콘이 중국 지사 설립하는 건 아시죠? 외국 게임에 있어서는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중국마저 무너뜨린 유니콘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니콘에 작은 흠이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유저들이 친 사고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말입니다."
"뭔가 아는 게 있나 봅니다."
"WM과 OB. 유니콘에서 통제할 수 있습니까?"
"큰일 날 소리 하시네요. 게임사에서 유저를 왜 통제합니까."
"통제까지는 아니지만, 둘의 내부 사정을 저는 속속들이 알고 있죠. 만약 저에게 레전드 게임 내에 언론사를 차릴 기회를 주신다면, 이 부장님이 원하는 대로 여론을 만져드리겠습니다."
이예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여자 몸으로 부장까지 온 것만으로도 다들 대단하다고 했다. 그것도 삼십 대 중반 나이로. 하지만 이예지는 그런 평가들이 기쁘지 않았다. 남자라면 상무가 떼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운영팀을 내 밑에 두고 고려신문과 손잡으면, 잘하면 마흔 전에 팀장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팀장이 되고 큰 실수만 없으면 상무 자리는 시간 문제.'
"이거 회사끼리 아니고 저랑 실장님 개인 거래 맞죠?"
"당연하죠. 회사끼리라면 달랑 실장 한 명만 보내진 않겠죠?"
'썩을 새끼. 나 부장이라고 지금 까는 거야?'
'얼굴은 반반한데 성깔 더러워 시집 못 갔다더니. 딱 소문 그대로군.'
이예지가 아무리 웃는 낯으로 이야기해도, 언뜻언뜻 드러나는 사나운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기본 정보라도 미리 주시죠. 어떻게 협력할지 저도 생각해 둬야 하니까."
반경운은 자신이 준비한 파일을 이예지에게 건넸다. 이 정보를 보고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다 계산해서 작성한 계획서다. 반경운이 원하는 협력 방식의 남은 부분은 이예지가 이 계획서를 보고 완성해줄 거다. 숨통을 점점 조여오는 할아버지 손아귀에서 힘을 풀게 하려면, 이번 계획은 차질이 없어야 한다.
"괜찮네요. 명함 한 장 주시면 최대한 빠르게 연락 드리죠."
"개인 명함입니다. 아는 사람 몇 없는 전화번호라서 통화 중일 가능성이 전혀 없죠."
본론을 끝낸 반 실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대화를 한참이나 더 이어갔다.
유니콘 회사 건물에서 나온 반 실장은 바로 전화했다.
"응. 우리 쪽 기자들보고 여성 인권 관련한 기사 많이 올리라고 해. 이 부장 만나봤는데 소문이랑 한 치도 차이 없더라. 그리고 이 부장이 존경한다는 그 여교수 있잖아. 그 교수 인터뷰해서 좀 빨아주고 그래. 한국 여성 인권 운동의 선두주자 이런 타이틀도 달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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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한 업데이트가 아닌가? 왜 언제 끝나는지 아직도 안 뜨지?'
벌써 월요일이다. 거의 일 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 하는데, 업데이트 공지엔 여전히 서버 개방 시간은 미상이라고만 적혀있었다.
"깜짝이야."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광해가 무척 놀랐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순간 공교롭게 전화가 울렸다.
"형. 지난번에 형 계산했지? 이번엔 진짜 내가 산다. 술도 안 마실 거니까, 형 시간 되지?"
현성이가 안부도 묻지 않고 횡설수설했다. 대학 2년을 같이 다닌 경험으로, 광해는 현성이가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래. 이번엔 좀 비싼 거 먹자. 집도 잘 사는 놈이."
광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몇 없는 사람 중 하나가 현성이다. 둘 다 사교성이 별로인데, 복학해서 첫 만남부터 서로 어색함이 없었다.
"형, 내가 형 있는 근처로 갈게. 형은 맛집 검색해서 내게 알려줘."
1층 금수저 고시생에게 근처 맛집을 물어본 후,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위치를 현성에게 보냈다. 회사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광해는 싱크대에서 머리를 대충 감고 드라이기로 말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약속장소로 잡은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 작가의말
내일부터 6시 18시 2연참으로 연재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생기면 18시 연재를 우선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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