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섬1
얼음섬에는 얼음 광산이 총 36개 있었다. 해동청도 없는 마당에 이동 수단을 걱정했는데, 얼음 뿔 사슴이 끄는 썰매는 웬만한 탈것 부럽지 않았다. 매복해서 덮치는 흰곰도 타이밍을 못 맞춰 터럭 하나 못 건드렸다.
모습을 노출한 흰곰은 바로 뒤에서 오는 드워프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했다. 행렬 가장 뒤의 빈 수레가 흰곰 사체를 싣고 마을로 돌아갔다.
설탕을 발견한 개미 떼처럼, 얼음 뿔 사슴 썰매가 길게 줄을 이었다. 얼음 광산에 도착하자 썰매를 걷어서 한쪽에 모아뒀다. 얼음 뿔 사슴들이 궁둥이를 광산 쪽으로 향하고 뿔을 바깥으로 향했다. 혹시 흰곰이 덮칠 걸 대비해서 수비 진형을 짠 것이다. 총을 든 얼음 드워프들도 흰곰 가죽을 쓰고 매복했다.
먼저 들키는 놈이 당하는 짜릿한 게임.
네크로는 제이크와 둘이 광산에 들어갔다. 이미 광산 지도를 제이크가 숙지했기에 헤매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였다. 이름답게 온통 얼음뿐이었고, 얼마 안 가서 보석 골렘이 나타났다.
보석 골렘이라고 해서 무척 영롱하고 이쁜 줄 알았는데, 드워프들이 지은 이름인 얼음 골렘이 더 맞는 말이었다. 전체적으로 얼음으로 이뤄졌고, 투명도가 조금 낮은 얼음을 통해 몸통 중심에 보석 비슷한 실루엣이 어렴풋이 비쳤다.
빙결 면역.
얼음의 정령왕 축복으로 네크로는 골렘에 근접해도 아무 타격이 없었다. 무지막지한 방어력과 어마어마한 생명력. 거기에 회복력도 트롤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망치를 세 번 놀리자 골렘이 무너졌다. 제이크가 잽싸게 다가와 골렘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빙정을 칼로 도려냈다.
골렘으로부터 얻은 빙정을 무기에 갖다 댔다. 얼음처럼 말갛지만, 액체가 얼어서 고체가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고체가 분명한 빙정이 사르르 녹았다.
시스템 메시지도 없고 절대영도 스킬 숙련도를 확인할 수도 없어서 빙정 먹인 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쭉 돌며 광산 1층의 인간형 골렘을 다 해치웠다. 대략 3마리에서 빙정 하나 줬다. 1층을 다 정리한 네크로는 계단을 밟고 2층에 진입했다.
2층 골렘은 얼음 뿔 사슴 모양도 있고 흰곰 모양도 있고 게 모양도 있었다. 얼음 뿔 사슴은 뿔이 너무 커서 접근이 어려웠고 흰곰 골렘은 은신을 잘했다. 게 모양 골렘은 공격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틈을 찌르고 접근하는 게 어려웠다.
'그건 다른 유저 얘기고.'
방어력과 생명력을 믿고 네크로는 무턱대고 다가갔다. 상대의 첫 공격은 방패로 막아버렸다. 운이 좋으면 카운터 판정이 내려지기도 하고, 안 그래도 상대를 죽이기까지 기껏해야 한 대 맞으면 되었다.
이름 : 얼음 뿔 사슴
분류 : 탈것
등급 : 레어
이름 : 달그림자 곰
분류 : 탈것
등급 : 레어
이름 : 얼음꽃 게
분류 : 탈것
등급 : 레어
빙정을 제외하고도 레어 탈것을 드랍했다. 얼음 뿔 사슴만 2개 드랍했고 달그림자 곰과 얼음꽃 게는 하나씩 드랍했다. 2층을 다 정리할 때까지 겨우 넷 얻은 네크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레어 탈것은 수량이 제한되었기에 네크로가 많이 얻어서 독점한다면 벼락새나 암흑 드레이크를 비롯한 다른 레어 탈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3층이 되니 긴 창을 든 얼음 기사가 나타났다. 말은 타지 않았지만, 딱 중세 시대 서유럽의 기사 복장이어서 기사로 부르기로 했다.
말이 없어도 얼음 기사의 돌진 스킬은 웬만한 말보다 빨랐다. 네크로는 방패로 창을 비낀 후 어깨치기로 얼음 기사의 가슴을 타격했다. 돌진이 막혀버린 얼음 기사는 카운터 판정으로 가만히 멈췄고, 네크로는 망치로 기사의 오른팔을 두드렸다.
얼음으로 된 오른팔이 깨지며 무기를 잃은 얼음 기사는 네크로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피통이 두꺼워서 오래 버텼다. 스킬이 안 터지면 수십 대 때려야 했다.
이름 : 얼음 왕국의 창기사
분류 : 용병
등급 : 레어
맷집이 강한 창기사 상대로 3층에서 꽤 시간을 소모했다. 3층을 깨끗이 정리하고 4층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풍경이 달라졌다.
3층까지는 바위벽 대신 얼음벽, 종유석 대신 고드름이었다. 4층에 이르러 드디어 얼음이 안 보이고 바위벽과 흙바닥이 나타났다.
- 준 보스몹 미쳐버린 얼음 정령이 나타났습니다.
"더워. 더워 죽겠어. 더워서 못 참겠다고."
얼음 정령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났다. 체형은 얼음 드워프를 닮았지만, 털이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 대륙섬에 갓 도착했을 때 봤던 문지기 드워프처럼 눈에 불만이 흘러넘쳤다.
얼음 주제에 화가 넘치는 미친 정령은 네크로를 보자마자 얼음 화살을 쏘았다. 느린 화살을 슬쩍 피한 네크로는, 방향을 돌려 뒤를 공격하는 얼음 화살을 망치로 후려쳤다.
"네놈이냐? 이 더위를 만든 게 네놈이냐고!"
얼음 화살이 부서지자 얼음 정령이 화가 나서 더 날뛰었다.
"얼음 상자."
맑고 투명한 기운이 얼음 정령의 몸에서 나와 네크로를 덮쳤다. 때려도 소용없고 피하려고 해도 기운이 더 빨랐다. 쿨타임이 돌아온 지옥의 심판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데, 네크로 몸을 덮친 기운이 그대로 사라졌다.
빙결 면역 특성에 얼음 상자 마법이 무효가 된 것이었다.
"나쁜 놈."
다짜고짜 혼자 공격해놓고 네크로를 나쁜 놈이라고 비하했다. 3층까지 해치운 골렘이 얼음 정령의 부하라면 조금 미안한 감이 있지만, 서로 상관없는 사이라면 네크로는 정말 억울한 셈이다.
"내가 도울 수 있을까?"
"그냥 죽어!"
굵고 뾰족한 얼음 창이 네 개 생성되어 네크로를 덮쳤다. 대화가 통할까 해서 수비만 하던 네크로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빠르게 쏘아진 창을 두 개는 피하고 하나는 방패로 막고 하나는 무기로 때렸다.
"얼음 갑옷."
얼음 정령의 바깥에 두꺼운 얼음이 덮였다. 갑옷이 아니라 알껍데기처럼 꽁꽁 감싼 수준이었다. 네크로는 망치에 힘을 줘서 세게 내리쳤다. 웬만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 네크로인데, 얼음 정령의 목소리와 말투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몸과 팔에 힘이 들어가더니 괴력 특성이 발휘됐다. 괴력 덕분에 강해진 공격력은 얼음 갑옷을 깨고 얼음 정령에게도 강한 타격을 줬다.
"더워. 너무 덥다고."
정령은 마지막까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말투와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고 죽었다. 제이크가 빙정을 도려내 네크로에게 건넸다. 네크로는 무기에 먹이는 대신 아공간에 넣었다. 꽤 많은 양을 무기에 먹였는데 아무 메시지도 없고 무기 정보에도 변화가 없었다. 돌아가서 대도서관 사서한테 확인한 후 빙정을 먹이려고 마음먹었다. 빙정 가격이 보석보다 10배 비싸다는 말에, 혹시나 헛짓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4층에서 미쳐버린 얼음 정령을 십수 마리 잡았다. 처음엔 그래도 대화부터 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지막엔 그냥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다. 4층을 정리하고 5층에 내려갔다. 제단 비슷한 것이 있었다.
"저게 얼음 정령을 만드는 것 같다."
빙결 면역을 믿고 네크로는 주저함 없이 제단에 올라 주먹 크기의 빙정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 얼음 광산의 문제점을 해결했습니다.
- 해당 광산에서 얼음 정령 생산을 멈춥니다.
- 보석 골렘은 자연 발생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생깁니다.
- 얼음 정령의 농간이 없으면 보석 골렘은 드물게 생성됩니다.
- 소유주가 있는 광산이기에 점령할 수 없습니다.
5층을 수색해 채굴이 필요 없이 바닥에서 나뒹구는 빙정 몇 개를 찾아내 수습한 후 밖으로 나갔다. 광산에 당분간 골렘이 사라졌다는 말에 드워프들이 환호했다. 즉석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얼음처럼 차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숯덩이처럼 뜨겁게 변하는 얼음 드워프의 럼주를 마셨다. 마실 때는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주고, 마시고 나면 뜨끈한 국물을 먹고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을 줬다. 술을 별반 즐기지 않는 네크로도 얼음 럼주의 매력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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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는 중급 빙정을 무기에 먹였다. 열흘 동안 33개 광산의 문제를 해결하며 얻은 빙정이 너무 많았다. 인벤토리는 물론 아공간에도 여유가 부족해 하급과 중급은 그냥 무기에 먹이기로 했다.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니 설마 아무 효과도 없겠냐 싶었다.
상급과 최상급 빙정이 가득한 인벤토리와 아공간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보석을 이 정도로 채워도 그 가격이 장난 아닌데, 10배 가격이라니 즐겁기만 했다.
'보석꽃 못 얻으면 우르크 수도 공성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인데.'
철혈팔기가 드디어 욕심을 버렸다. 만리장성, 고구려, 프리덤이 세 방향에서 우르크를 공격하고 철혈팔기는 도시를 희생해 우르크 군대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철혈팔기는 수도를 조금 동쪽으로 이전했다. 일직선으로 쭉 들어온 우르크를 조금 더 유인한 후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친 듯이 공격해 숫자를 줄였다. 그 과정에 철혈팔기가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데 없었다. 가미카제와 네크로 그리고 초인동맹의 지원군이 함께했지만, 수성전과 달리 공격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수성전은 명성이나 국가 공적치를 많이 주지만, 공격에서 우르크 몇 죽여봤자 명성은 주지도 않고 국가 공적치는 아주 조금 줬다.
우르크가 보급로를 회복하려고 부대 하나 더 출정시켰을 때 세 국가가 세 방향에서 출정해 우르크 도시와 마을을 공격했다.
빙하시대를 해결하긴 했지만, 일정 기간이라도 얼어붙었던 땅은 회복이 빠르지 않았다. 식량이 부족한 우르크들은 동시에 펼쳐진 여러 전선에서 제대로 대응 못 하고 우왕좌왕했다. 철혈팔기도 보급이 끊긴 우르크를 소멸하고 잃었던 도시와 마을을 빠르게 되찾았다.
네크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르크 황제의 왕관이 드랍형이라면 운에 맡겨야 하고, 드랍형이 아니라면 다른 세력들에 뭔가 양보하고 보석꽃 씨앗을 얻어야 한다.
만약 우르크 황제의 왕관에서 보석꽃 씨앗을 얻는 데 실패한다면, 남은 건 아쿠라온스텐즈밖에 없다. 최강 드래곤의 보물 창고에 있는 보석꽃을 얻어내야 한다. 신이 준 퀘스트여서 실패하기 두려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고.'
비록 광산 5층 제단에 있는 최상급 빙정을 치웠지만, 얼음 골렘은 계속 생성된다. 다만 그 숫자가 적어서 종일 돌아다녀도 서른 마리나 잡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이미 6천 마리 가깝게 잡았는데도 보석꽃 씨앗을 얻지 못했는데, 하루에 30마리씩 잡으면 어느 세월에 드랍해줄지 막막했다.
"최고신이 그렇게 박하진 않겠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양보해 줬는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미 서른세 번이나 반복한 일을 능숙하게 해치웠다. 이번 광산은 3층부터 얼음이 보이지 않았다. 제이크는 얼음섬 지도에서 광산을 찾아내 숫자 3을 적었다. 숫자 4가 가장 많고 5가 드물게 있었으며 3은 처음이었다.
'뭔가 규칙이 엿보이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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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드워프들이 모여서 축제를 벌였다. 기름기 뚝뚝 떨어지는 흰곰 고기들이 찬 공기에 맞서 김을 모락모락 피웠다. 칼집에서 배어 나온 육즙이 커다랗게 뭉치다가 뚝 떨어졌다. 모닥불에서 칙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독함에 비교해 향은 무척 청아한 얼음 럼주 냄새가 마을을 은은하게 덮었다. 젖을 떼면 럼주 잔을 드는 드워프여서 너도나도 커다란 맥주잔으로 럼주를 즐겼다.
36개 광산의 문제를 모조리 해결했기에 드워프로선 모든 게 끝난 셈이다.
다행히 보석꽃을 얻지 못한 네크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광산에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라진 왕국의 부활 단서를 찾았습니다.
- 신화 등급 퀘스트 '얼음 왕국의 부활'을 시작합니다.
- 얼음섬에는 고대 얼음 왕국의 유적지가 있습니다.
- 유적지에서 얼음의 정령왕이 태동했습니다. 얼음의 정령왕이 얼음섬에 태어나면 얼음 왕국이 부활합니다. 왕국이 생기면 얼음 드워프와 얼음 뿔 사슴, 달그림자 곰, 얼음꽃 게 등이 서로 안 싸우고 화목하게 지냅니다.
얼음 정령들이 덥다고 한 것이, 얼음의 정령왕 후보가 냉기를 흡수하며 생긴 문제였다. 네크로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얼음 왕국의 유적지를 찾아서 얼음의 정령왕 후보가 정령왕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얼음의 정령왕이 얼음 왕국의 왕이 되면, 얼음섬에서 나는 보석꽃 씨앗 정도는 보상으로 내려줄 수도 있다. 일국의 왕 정도면 원래 다른 보상이 정해졌다고 해도 네크로가 말만 잘하면 보석꽃 씨앗으로 바꿔줄 수 있다.
'가까운 곳일수록 냉기를 많이 흡수당했겠지. 3이 몰린 곳에서 유적지 찾으면 된다.'
잔치 이튿날 박학다식한 드워프들에게 유적지 후보로 짐작하는 곳들을 알아낸 후 네크로는 제이크와 함께 얼음 뿔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출발했다. 이미 정해진 목적지가 있기에 고민도 짧았다. 얼음 벌판, 얼음 협곡, 얼음 폭포 등 곳을 지나며 아름다운 풍경을 실컷 구경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얼음 독수리 산에서 얼음 왕국의 왕궁 유적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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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 왕국'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 얼음 왕국은 드래곤과의 전쟁에 패해 멸망했습니다.
- 드래곤 피어에 죽은 얼음 왕국 정령들이 흩어지지 못하고 악령으로 뭉쳤습니다.
- 서브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 얼음 왕국 국왕의 정통 후계자가 냉기를 흡수하는 걸 방해하는 악령을 처단하라.
왕궁 유적지는 모든 게 얼음으로 이뤄졌다. 바닥도 얼음이고 기둥도 얼음이고 반쯤 허물어진 지붕도 얼음이었다. 다 얼음이어서 빛이 잘 들 텐데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창문도 얼음이었고 창문 유리도 얼음이었다.
그저 건축물 잔해뿐이라면 그렇게 을씨년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도처에 얼음에 얼어 죽은 얼음 정령의 '주검'이 있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하여 오래 바라보기 힘들었다.
'여긴 동영상 올릴 때 19금 표기해야겠구나.'
몹이 보이지 않자 제이크가 앞장서서 네크로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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