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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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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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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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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4부 쿨론 요새-11 (관계-1)

DUMMY

돌아온 숙소에는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아, 오늘 정오까지 12시간 성벽 근무를 서고 들어와 취침한다 했었지?

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침상으로 가 정좌한 채 명상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어제 어떻게 보낸 걸까? 설마 여인을 앞에 두고 명상만 하고 있었을까? 아마 정중히 거절하고 돌려보냈겠지? 어찌됐든 나무가 여자와 열정적으로 얽히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타랍이 내게 말을 걸었다.


“지누크, 이른 점심을 먹는 게 어때?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배가 고프군.”


나는 그다지 속이 빈 느낌은 없었지만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앞으로 며칠을 굶어도 배고플 것 같지 않다.

왜냐고?

그녀의 마음이 내 속에 가득 차 있거든. 음하하하하!!!

물론 위장에 가득 찬 건 아니겠지만. 대장도 아닐 거고. 크크크. 크캬캬캬캬. 아, 행복하다.


4층에 있는 식당에는 우리 숙소와 달리 창문이 나 있다.

하긴 식당은 환기가 생명이지.

각자 나무로 된 쟁반에 고기와 빵, 그릇에 스프를 받고 자리에 앉았는데. 흠, 근데 영 입맛이 안 땡기는데. 어제 워낙 고급 음식들을 먹어서 그렇겠지?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지. 어제까지만 해도 이정도면 눈물 흘리며 먹었을 텐데.

그 때, 타랍이 말을 걸었다.


“근데 지누크. 어젠 정말 어땠어? 그, 마이야 라는 여인은?”


다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이. 으흐흐흐.


“뭐, 좋았지. 우후후.”


내 대답에 타랍이 애가 타서 재촉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의 말에 나는 표정을 굳히며 정색했다.


“여신님에 대한 것은 함부로 발설하는 것이 아니야. 천벌을 받을 수 있거든. 그,,,으흐흐흐.”


내가 웃음을 도무지 참지 못하고 몸을 베베 꼬자, 타랍이 빈정상한 얼굴로 스푼을 던졌다.


“됐다. 됐어!!! 이 자식의 뭘 보고 그녀는 참.”


타랍이 궁시렁궁시렁대며 빵을 뜯어 먹었다.

문득 그녀도 지금쯤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한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온 몸에서 기운이 솟구쳤다.


“아자!!!! 가자!!!”


난데없이 기합을 지르고 스프를 후르륵 마셔버리는 나를 타랍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미안, 난 먼저 일어날게. 나가서 대검을 좀 휘둘러 봐야겠어. 이따 보자고!!”


그리곤 휘리릭 달려 나갔다.

내 뒤로 타랍이 뭐라고 욕하는 것 같았지만 뭐 넘어가주지.

난 신비하고 관대한 남자니까. 으하하하하.



연병장에는 곳곳에서 대검을 휘두르며 대련하거나 연습하는 수인들이 보였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개인 훈련이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은 듯 했다. 하긴 딱 봐도 체계적으로 보이진 않았으니.

이제껏 본 수인들은 높은 신체 능력을 이용하기만 했지 체계적인 검술이나 전술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치아투는 빼고.

이들도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으면 훨씬 강한 집단이 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네. 그럼 사망률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거치대로 가서 대검을 먼저 하나 잡아봤다. 그나마 좀 얇고 작은 1.5미터 쯤 되는 대검.

기마자세를 하고는 아주 천천히 상단으로 올렸다가 내려 봤다. 단 한 번을 하는데도 팔 근육이 비명을 질러댄다.


이거 쉽지 않겠군. 이런 걸 들고 전투에 나서는 건 자살행위다. 적어도 내 팔을 휘두르듯 자연스럽게 쓸 수 없다면 무기를 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나는 호흡에 천천히 맞춰 검을 아주 느리게 움직여 상단 베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자꾸 해서 익숙해질 수밖에.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연습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니 조원들이 모두 복귀해 있었다. 이미 취침을 끝낸 모양인지 몇 몇은 외출 준비도 하고 있었다.

나를 본 타랍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몇 몇이 내게 차가운 눈빛을 보냈고 나머지 대부분은 나를 무시했다.


아, 더럽다. 뭐, 익숙해 져야겠지. 그래도 이미 큰 힘을 받았지 않은가. 그녀를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수건으로 쓸 천을 챙겼다.

이 쿨론 요새의 좋은 점 하나는 사박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간신히 씻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마음껏 씻어도 된단다. 씻는 곳도 식당과 같은 4층에 있었다.

막 씻으러 가려는데 맞은 편 침상의 황색 대지 일족 수인 하나가 말을 걸었다.


“어이, 검은 머리 인간.”


오,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어. 신기한 걸. 조금 돌파구가 보이려나? 근데 호칭은 영 맘에 안 드네.

난 잠시 녀석을 지켜보다 대답했다.


“호칭이 너무 길군. 지누크라고 부르지.”


녀석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누크.”


생각났다. 웃는 모습이 음흉했던 그놈이었군. 나랑 인연이 좋지 않은 황색 대지일족 중에서도 영 느낌 안 좋은 놈.

지금도 느낌이 좋지 않아. 어째 정이 안가는 인상이다.


“마이야와 잤다며?”


점점 더 녀석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을 저렇게 가볍게 부르고 있다는 게 일단 짜증이 나고 그 말에 전혀 존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더 짜증나.

내 말도 짧아졌다.


“그래서?”

“아니, 뭐. 어땠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다카람 대장 때문에라도 마이야와 잘 수 있는 녀석들은 거의 없거든.”


응? 거기서 다카람이 왜 나와?


“무슨 소리지? 다카람 대장이라니?”


그러자 녀석이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진짜 비열한 웃음. 캐릭터 확실하구나? 너.


“아, 모르고 있었구나? 마이야는 다카람 대장의 여자야. 벌써 몇 년 째 그 옆을 지키고 있지. 다카람 대장은 이런 신입을 위한 환영회가 아니면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도록 두지 않아. 거의 매일 그 옆을 지키지. 그러고 보면 너는 다카람 대장과는 정말 악연이구나.”


다카람 대장의 여자라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그럴 리 없지. 아마 짝사랑이라도 하는 모양이군. 진짜 나랑 악연이긴 하네.

내 웃음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인지 그의 인상이 약간 험악해졌다.


“이봐. 검은 머리 인간. 나는 네가 걱정돼서 충고해 주는 거야.”


뭐 딱히 그래 보이진 않는다만. 상대방의 웃음 정도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네가 날 걱정할 것 같진 않거든.

그리고 진심을 말하고 싶거들랑 그 웃음부터 좀 고쳐봐라.

나는 담백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충고 고마워. 근데 다시 말하지만 지누크라고 불러줄래? 네 말투 거슬린다.”


그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우리에게 밉보이고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라. 황색 대지일족은 수용소 때나 여기나 패거리 짓는 걸 좋아하나 보군.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보고 있자 그는 더 흥분해서 내게 소리쳤다.


“다카람 패들에게 밉보여놓고 이제 우리와도 척을 지겠다니 넌 진짜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오, 정보다. 다카람을 추종하는 애들과는 다른 패야?

이대로 말을 더 시켜보면 뭐가 더 나오겠는데?


“다카람 패와 너희가 뭐가 다른데? 기껏 너희 7명이 무슨 큰 패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하지?”


그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흥!! 7명? 우리 황색 대지일족은 쿨론 요새 전체 인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유마성주님 직속의 총관님께 보살핌을 받고 있지. 이른바 총관님의 직속 친위대란 말이다. 다카람 대장을 추종하는 패 따위가 우리와 비교될 것 같으냐.”


아, 그래? 황색 대지 일족은 총관에게 붙어 있다는 거지?

저쪽의 초원바람 일족 수인들이 비웃음 띈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아마 그로 인해 멸시도 받는 거 같고.

그걸 곁눈으로 보며 또 물었다.


“총관이라면 그 뚱뚱한 대머리 인간?”


그랬더니 그가 또 발끈하며 소리쳤다.


“총관님을 모독하다니!!!”


있는 그대로 얘기했는데 왜 모독이래?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게 왜 모독인데? 아까 봤던 그대로 말한 건데. 혹시 네가 총관님 외모를 부끄러워하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 그게 무슨.”


정곡을 찔렸군.

이 자식 다루기 쉽겠어. 너 별표 하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뭐 그렇다 치고 그럼 너희보다 더 큰 패들은 없는 거야? 총관 직속 아니면 다 다카람 대장 추종자들?”

“흥,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토로같은 놈들은 알 바 아니지.”


그래, 더 이상 패거리는 없나보군. 나머지는 그냥 중립.

방금 녀석의 말로 내 옆쪽의 회색 바위족 수인들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이 친구들이 중립인가 보군.

하긴 수성장 마록스도 회색 바위일족이었지. 생각해 보면 회색 바위 일족 친구들 중에선 유독 진중하고 조용한 친구들이 많다. 수용소에 같이 갔던 휴미나, 이곳에 같이 온 헤무나.

몽굴루만 좀 예외였지.

또 보고 싶네. 그 유쾌한 녀석.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주려는 거다. 우리와 함께 할. 다카람 대장을 한 방 먹인 실력이라면 우리에게 꽤 도움이 되겠지.”


한심한 놈들. 협력해서 살아남을 생각이나 할 것이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를 것들이 별 짓을 다하네.

난 예전부터 이렇게 패거리 나누는 놈들이 영 싫다.


“제안은 고마워. 근데 난 예전부터 토로가 좋더라고. 어감도 좋잖아? 토로. 오,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이야 여신님도 토로시군. 그러니까 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시 말하지만 제안은 고마워.”


그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씹어뱉듯 말하고는 자신의 침상으로 돌아갔다.


“너, 후회하게 될 거다.”


그래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너희와 함께하면 더 후회할 것 같거든.

그리고 둘러 본 다른 수인들의 눈빛은 아까보다 좀 덜 사나워 보였다.

흠, 이번 일이 점수를 좀 딴 건가?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왕따 생활은 그만하고 싶다.


그리고 씻으러 나가려는 데 숙소 문으로 눈꽃 일족의 미녀 두 명이 씻고 왔는지 살짝 젖은 채 들어왔다.

확실히 마이야를 보고 와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처럼 빛나는 느낌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이 둘은 그녀와 다른 매력이 있다. 쭉 뻗은 팔다리와 우락부락하지 않고 세밀하게 단련된 건강한 근육. 강하고 우아한 표범 같은 몸이랄까.

거기까지면 다른 수인족 여전사들과 비슷할 텐데 거기에 더해 순백의 머릿결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게 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그것도 그렇고. 큼. 큼.


나는 자연스럽게 자꾸 한 부분에 집중되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녀들을 피해 문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애교 많은 로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지누크?”


애교 섞인 목소리에 나는 살짝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아, 조심. 아래를 보면 안돼. 변태로 오해받아.

그녀는 예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얘기는 들었어요. 마이야에게 선택받았다죠?”


이게 진짜 이슈는 이슈인가 보구나. 오늘 하루 종일 이 얘기만 듣는 것 같네.


“흠, 그녀는 뭘 보고 당신을 선택했을까요? 혹시 다카람 대장과 있었던 일 때문인가?”


또 다카람 얘기로군. 근데 이 여자. 어째 의도가 순수해 보이진 않는걸.


“온지 얼마 안 되서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다카람 대장의 여자라는 소문이 있어요. 혹시라도 나중에 상처받을까봐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녀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내게 얘기했다.

하지만 퍽이나. 나 대충 눈치 챘음. 연기력이 아직 무르익지 못하셨군요. 그 곳의 다라 양을 따라가려면 엄청 노력하셔야겠어.

나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근데... 누구신지?”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서라. 네가 그냥 커피라면 그녀는 T.O.P 라고.

아, 그립다 이 드립, 내 고향.

그러자 로가의 뒤에 있던 얼음미녀 미가나가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녀는...잘 있어?”


앞 뒤 다 자른 말이었지만 그 ‘그녀’가 마이야를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어디에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그리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있어요. 어젠 많이 웃기도 했고.”


물론 울기도 했지만.

내 말에 미가나는 아주 희미하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의 작은 웃음.


“그렇구나. 잘됐어.”


그리고는 다시 걸어가려다 내 바로 옆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곤 아주 작게 말했다.


“다루가를 너무 믿진 마. 그는 공정한 사람이지만 다카람 대장의 추종자이기도 해.”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몸을 돌려 문을 나갔다.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다루가를 너무 믿지 말라고? 그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다면 미가나는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인걸까?


다음 날 아침은 우리 5조 인원이 다 같이 식당으로 갔다. 물론 아무도 나를 챙기지 않아 나무와 조금 떨어져 뒤따라가긴 했지만.

타랍이 계속 우리 쪽을 쳐다봤는데 그에겐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미 말해 놨었다. 오히려 지금은 나와 떨어져 있는 편이 더 좋다고. 그래서 먼저 적응하게 되면 그 때 챙겨달라고 말해 놨다.

그래도, 수인들은 순수해서 다행이지. 그냥 무시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가. 우리 세계 중고딩들은 왕따시키면 아주 잡아먹던데. 이렇게 순수한 세계로 떨어져서 다행이야.

긍정적인 마인드좋다!! 일체 유심조!!


식당에 가보니 근무를 서고 있는 2조를 제외한 나머지 조들은 대부분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하러 와 일찍 와서 먹었던 어제완 달리 매우 시끄럽고 번잡했다.

반가운 수용소 동기들과 눈인사를 하며 우리는 5조의 끝 부분에 살짝 떨어져 앉았다.


우와. 누가 봐도 왕따 같다.

원래 외로움은 그냥 혼자 있을 때보다 군중 사이에 혼자 있을 때 더 두드러지는 법. 마음을 굳게 먹긴 했어도 기분이 좋진 않다. 더군다나 같이 밥을 먹는 나무가 정말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으니(사실 무슨 얘기를 해도 웃으며 합장만 하니 말 거는 건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이 자리가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저 먼 쪽 테이블에는 다카람과 수색대 수인들도 보였다. 다음부터는 식사시간을 좀 피해서 따로 올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수색대 쪽에서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지난번에 이만 악물고 갔던 그 청색 귀의 수인이었다. 다피란(푸른강족) 부로스라고 했던가?


나는 딱딱한 고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한 쪽 입 꼬리만 올린 웃음을 띈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왕따가 된 나를 비웃어주고 싶은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게 다가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쓸어보며 말했다.


“생활이 아주 즐거워 보이는군. 검은 머리 인간.”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우걱우걱 먹으며 그를 계속 바라봤다. 무응답, 무반응.

그는 계속 나를 보고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자, 조금 빠직한 듯 했지만 애써 참으며 다시 말했다.


“뭐야, 기가 죽어 이젠 말도 못하는 건가? 그땐 잘만 지껄이더만.”


나는 여전히 고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누구신지?”


어제에 이어 두 번째 써먹는 ‘너 누구’ 전법.

그는 울컥 화가 난 듯 했지만 역시 꾹 눌러 참았다.

이거 재밌는데.


“윽, 너 여전히 짜증나는군. 한 번만 알려주지. 내 이름은 부로스다. 푸른강족의 다피란 부로스.”


근데 이 자식 왜 이렇게 참을성이 좋아? 이쯤 되면 폭발하거나 가야 되는 거 아닌가? 되게 친절하네.


“너 어제 마이야양의 선택을 받았다고 들었다.”


뭐야, 너도 그 용건이냐? 아, 그러고 보면 자꾸 다카람 얘기가 나왔지. 나는 다카람이 있는 곳을 힐끗 봤다. 등을 돌린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식사를 하고 있지만 자기 부하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그러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그런데?”

“그녀는 다카람 대장의 여인이다. 어제는 운이 좋아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무슨 초딩들이냐? 나 이거 왜 이렇게 웃기지?

나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그런 얘기 없던데? 어제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다카람 대장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못 들었어.”


그리고 곁눈질로 다카람의 등이 움찔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렇지. 계속 듣고 있다는 거지. 어쩌면 이 녀석을 보낸 것도 그의 의도일지도. 전부터 느낀 거지만 저 자식은 수인족 같지 않게 음흉한 면이 있단 말이지. 확실히 조심해야 될 놈이야.


내 말에 부로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그런. 거짓말 하지마라!!”


난 매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짓말이라니!!! 의심스러우면 나와 같이 마이야에게 가보던가!!”

“아니, 그, 그.”


그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당황했다.


“지금 가자!!! 내가 또 거짓말쟁이 취급받고는 못살지!!!”


내가 당장 일어날 것처럼 폼을 잡자 그는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뱉어냈다.


“너, 너 조심해야한다. 그녀와 잤던 사람은 모두가 죽었다. 다들 1년 안에 죽고 말았지. 너도 그렇게 될 거다!!!”

“뭐라고?!!”


나는 정말 충격 받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안도하는 모습.

나는 혼란스런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그, 그럼!!! 정말이다!!!”

“그러면...”


그는 뭔가 잘 풀려간다는 생각에 기대에 찬 눈으로 내 말을 기다렸다.


“다카람 대장은 마이야와 아무 관계가 없는 거네? 아직 살아 있잖아?”

“아니, 그, 그.”


나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곁눈질로 다카람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리는 걸 지켜봤다.


“너는 아까 마이야가 다카람 대장의 여자라고 했잖아. 근데 둘은 아무 관계가 없었던 거야?”


그의 얼굴이 정말 파랗게 질렸다. 어이 그러다 머리랑 피부색이 비슷해지겠어.

그 때, 저 쪽에서 다카람이 벌떡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부로스!!! 거기서 뭘 하는 건가?!!! 돌아가자!!!”


다카람이 부르자 부로스는 구원을 받은 듯 반가워하며 “네!! 대장!!!” 이라고 소리치며 돌아갔다.


유후!! 2대0!! 좀 미안하네. 순진한 수인족들 데리고.

근데 왜 콧노래가 흘러나오지?


그리고 문득 시선을 돌렸는데 우리 조원들의 시선이 아까보다 더 싸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런. 너희는 재미없었구나. 그래, 추종자들 앞에서 대놓고 망신 줬으니 열 받을 수 있지. 어제 좀 점수를 땄나 했더니만. 에이 씨.

왕따 생활은 아무래도 더 이어가야겠군. 이게 바로 전투에 이겼지만 전쟁에 진 상황인건가?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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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4부 쿨론 요새-16 (두번째 웨이브) 19.03.16 485 12 19쪽
32 4부 쿨론 요새-15 (관계-5) 19.03.15 507 14 10쪽
31 4부 쿨론 요새-14 (관계-4) 19.03.14 525 15 15쪽
30 4부 쿨론 요새-13 (관계-3) 19.03.13 509 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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