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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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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3.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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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쿨론 요새-15 (관계-5)

DUMMY

치아투와 메라두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다.

내 편이 있다는 정신적인 위로 뿐 아니라 지금 나에 대한 수인족들의 혐오가 이곳 사람들에게도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란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다.


왕따가 되는 것에는 여러 가지 힘든 점이 있겠지만 그 중 내게 가장 힘든 것을 들자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

내 행동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것.


하지만 지금 메라두 덕에 이곳 사람들의 기준으로도 내가 옳지 않은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돼지에게 몸을 의탁하기 전에 해 볼만 한 것들이 있다는 얘기지.


혐오는 전염된다.

지금 수인족들 사이에 생긴 나에 대한 혐오가 이와 같겠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내가 뭘 했는지 생각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내가 싫으니까.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이유 없는 증오를 배설하는 거지.

이런 혐오를 쉽게 풀 수는 없다. 이유가 없으니까. 노력한다 해도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혐오의 원인을 없애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이 혐오의 출처와 근거가 잘못됐음을 알게 만드는 것. 나는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게 뭐냐고?

당연히 대화지.

갈등을 푸는 건 역시 대화 아니겠는가.

진심이 담뿍 담긴 대! 화! 말이지.


나는 숙소의 문을 거칠게 열어 제꼈다. ‘쾅!!’ 소리를 내며 호쾌하게 열리는 문. 숙소 안에서 쉬고 있던 우리 조의 조원들이 놀란 눈으로 나에게 집중했다. 자, 깜짝 놀랐지? 한 판 붙어보자고, 친구들.


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숙소의 가장 안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갔다. 다들 놀란 눈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가운데 다루가만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곧장 다가가 소리쳤다.


“다루가!!! 대답해라!!!”


그러자 옆에서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초원바람 족의 마루간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게 무슨 행패냐!!! 인간?!!”


그렇게 외치며 내 팔을 잡으려 할 때 나는 그의 손을 툭 쳐내고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손바닥 장저로 그의 턱을 툭 올려쳤다.


“헉!!”


그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제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살짝이긴 하지만 턱에 발경을 담았으니 뇌가 울려 정신을 못 차리겠지. 그걸 보고 있던 다루가가 분노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지누크!!! 네가 기어코!!!!”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소리쳤다.


“대답하라!!! 다루가!!! 네가 명예를 아는 전사라면 내 질문에 답하라!!!!”


그러자 다루가가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분노한 그의 눈동자담긴 약간의 당혹감.

나는 분노를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챠루난이 죽은 것이 나의 책임인가?!!!”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의 눈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다루가의 얼굴이 그 상태로 굳었다. 잠시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 다시 한 번 말했다.


“전사의 명예를 걸고 답하라. 그의 죽음이 나의 책임인가?!!!”


시간이 흘렀다. 얼굴을 석상처럼 굳힌 채 침잠하던 다루가는 이윽고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힘없는 목소리.


“아니, 그것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그 일은 챠루난의 잘못이지 너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 이거지.

다행이다. 그가 사리분별을 아는 사람이라.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한테 했던 행동,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그는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적개심이 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힘없는 눈빛과 지쳐 보이는 표정. 그럼에도 잃지 않는 진중함.


“나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너의 책임이 아닌 일을 너의 책임인 것처럼 판단하고 그로 인해 잘못된 증오를 너에게 보냈다. 전사로서, 또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사과하겠다. 미안하다. 지누크. 부디 나를 용서해 주게나.”


그렇게 말한 다루가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와우, 여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와 적이 되지 않아도 돼서.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전사답게 너의 행동을 용서하겠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너를 존경한다. 사과해줘서 고맙다. 다루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그걸 하지 못해 생기지 않을 수 있었던 오해와 다툼을 만든다. 그리고 추하게 늙어간다. 그렇게 진짜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어가는 거지.

그런 면에서 충분히 외면할 수 있음에도 남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당당히 인정한 다루가는 역시 훌륭한 어른이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말 다행이다. 내가 그를 잘못 보지 않아서. 그를 믿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나서 나는 타랍을 바라봤다. 그는 아까부터 불안한 눈빛으로 나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타랍. 너에게 묻겠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음.”


나는 진중하게 물었다. 아까 다루가에게 한 말투가 도발적이었다면 지금은 진지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어투.


“너는 내 친구인가?”


내 질문에 타랍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외면하는 이를 친구라 생각지 않는다. 또한 명백히 잘못된 폭압에 마주쳤을 때 함께 싸워주지 않는 이를 친구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시 묻겠다. 너는 내 친구인가?”


내 거듭된 질문에 그는 온 몸을 떨다 마침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지누크. 내가 잘못했다.”


나는 흐느끼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나는 너의 친구이다. 너에게도 내가 친구인가?”


그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지누크. 내가 잘못했다. 나는 너의 친구이다.”


거봐. 역시 갈등을 푸는 건 진솔한 대화라니까.

나는 다시 다루가를 보며 말했다.


“조장. 같은 조원끼리 다퉈서는 안 된다는 너의 말을 존중한다. 하지만 서로 간에 풀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걸 푸는 예외의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 말에 다루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나는 등 뒤에서 보고 있던 수인족 들에게 돌아서며 모두에게 말했다.


“챠루난은 성벽 근무 중 어두워지면 성벽 앞으로 붙으라고 내게 말함으로써 나를 해하려 했다. 동료를 해치려 한 것은 명백한 규칙위반임으로 조장 다루가에 의해 처형됐다. 그것에 나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나서라. 그게 어떤 방식이 됐든 지금 결판을 내자!!!”


내 말에 수인족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부조장 눈꽃일족의 수우나가 침상에서 휙 일어나며 말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를 죽이려고 해서 처형당했으면 당연한 일이지 거기에 무슨 책임이 있다는 거냐? 별 쓰잘 데 없는 일로 시끄럽기는.”


그렇게 말하며 수우나는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커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보고 있던 로가도 노래하듯 말했다.


“나도 동감. 책임을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네요.”


그리고는 잠시 커튼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미가나도 동의한데요.”


항상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회색 바위 일족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그 대표격인 매카이가 말했다.


“우리도 그건 명백한 챠루난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지누크는 오히려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주변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황색 대지 일족들에게 집중됐다.

그 대표격인 토우찬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뭐, 우리도 동의한다. 검은, 아니 지누크의 잘못은 아니지.”


이제 한 팀만 남았군.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

나는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간신히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은 초원 바람일족의 마루간을 바라봤다. 그 뒤의 같은 초원바람일족 고단은 묵묵히 그런 마루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루간은 초점 잃은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건 분노일까? 쉽게 지나가진 못하겠는걸.

마루간은 잠시 그러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는 네 놈이 싫다. 검은 머리 인간.”


그렇게 말하며 잠시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그는 이내 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뺐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명백한 챠루난의 잘못이지. 됐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후우, 어려웠지만 한 고비 넘었구나.


“충분하다. 마루간.”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적아를 나누는 일이었다.

누가 나의 적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


기본적으로 나는 우직하고 순수한 수인족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들과 같은 편에 서고 싶다. 특히 타랍이나 다루가를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선을 긋고 싶었다. 누가 나의 적이고 누가 나의 친구인지. 가능하다면 설득을 하고 싶기도 했고. 때려눕혀서라도 말이지.

원래 진솔한 대화에는 몸과 마음이 함께 필요한 법이잖아.

다들 그렇지 않나?


다행히도 이들은 내 생각보다 더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증오의 근원은 잘라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미 퍼진 나에 대한 혐오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시작을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아, 참. 그래서 총관의 제안은 어떻게 하느냐고?

총관에게 전해달라고 토우찬에게 말해 놨다. 꿈속에 어머니가 나오셔서 절대 하지 말라고 꾸짖으셨다고. 그렇게 전해드리면 알거라고.

안녕,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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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5부 카 네아 11 +2 19.07.02 433 10 11쪽
64 5부 카 네아 10 19.06.30 473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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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5부 카 네아 7 +1 19.06.23 550 15 14쪽
60 5부 카 네아 6 +2 19.06.20 584 13 13쪽
59 5부 카 네아 5 +2 19.06.18 581 17 12쪽
58 5부 카 네아 4 19.06.16 621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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