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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8.01 06: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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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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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07,521

작성
19.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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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4부 쿨론 요새-18

DUMMY

오늘은 바로 그 날이다.

전설의 페이데이. 바로 월급날!!!!

내가 지구에 있을 때 그렇게 받아보고 싶었던 월급을 여기서 받게 되다니...그것도 노예의 신분으로...

기분 참...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며칠 전부터 잔뜩 들떠 있었다.

다들 돈을 받으면 ‘헤샨’으로 가서 여자와 술을 사겠다며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헤샨이라.

나는 조금 씁쓸해졌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1년간 그녀를 볼 수 없는 거겠지.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지. 단 하룻밤의 만남으로 이런 감정이라니.

이것도 지구에선 경험 못해본 일이기도 하네.

언강생심 그런 여자는 만나지도 못했겠지.

후우.

깊은 한숨으로 마음을 비워내려 노력하며 나는 그녀가 있는 방향의 하늘을 바라봤다.


보고 싶다. 그녀의 미소가.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살내음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월급은 다루가 조장을 통해 내려왔다.

한 명당 보따리 하나씩을 나누어 줬는데 풀어보니 내 보따리 안에는 50개의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동화가 들어있었다. 건국왕인 카에르의 얼굴이고 한 개당 1지언씩 다해서 50지언이라고 했다.

‘헤샨’에서 하룻밤 노는데 15지언이라고 하니까 이 돈이면 그 곳을 3일정도 갈 수 있는 거지.

뭐, 나는 안 갈 거지만.


이걸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며 훈련하러 나갔는데 우리 훈련 모임의 분위기는 또 좀 묘했다.


“너희 뭐하냐?”


메라두는 다른 사람들처럼 들떠보였고 치아투는 오히려 좀 침울해 보였으며, 토반은 거의 하늘을 날 것 같다.

나는 그들 중 침울해 보이는 치아투에게 먼저 물었다.


“치아투, 왜 그렇게 풀죽어 있어?”


치아투는 내 물음에 대답 없이 먼 하늘을 쳐다봤다.

응? 뭐야? 우리 뇌순이 왜이래?

그러자 메라두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라가 월급날부터 5일간은 오지 말라고 했거든.”

“응? 월급을 받았는데 왜 오지 마?”


그러자 치아투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영문 모르고 그를 바라보는데 메라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님을 받아야 한데. 생활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치아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군.”

“아아.”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다라의 직업은 매춘부지. 손님을 받는다면 남자와 관계를 갖어야 한다는 얘기고.

헐, 자기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져야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근데 좀 이상하다.

응? 남 얘기가 아니잖아? 마이야도 그럴 거 아냐?

헐.....


내 기분도 순식간에 다운됐다.

다리에도 힘이 풀리는 걸 보니 내상이 큰 것 같다.

내 표정 변화에 메라두가 놀라며 물었다.


“지누크, 넌 또 왜 그래?”

“아니야. 아니야. 우리 훈련이나 하자.”


그래, 씨바. 훈련이나 하자. 더러운 세상. 이 세계 따위 콱 멸망해 버리라지. 쿨론 요새? 흥!! 다 무너져 버려라!!!


그러자 메라두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이건 그냥 들은 얘긴데. 마이야는 요즘 손님을 받지 않는데.”


마이야란 이름이 나올 때부터 몸에 찌릿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가 메라두의 말이 끝나자 나는 빛의 속도로 돌아서 다급히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들은 얘기긴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가 더 이상 손님과 관계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데. 벌써 한 달 쯤 됐지.”


한 달이면. 나와 만났던...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나의 여신이시여.

세상이 갑자기 광명으로 가득 차 버렸다.

역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이야. 암. 저것 봐. 하늘도 저렇게 파랗잖아?

이 세계는 언제봐도 아름다운 곳이라니까.


내 표정변화를 보고 있던 메라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헤샨에 가보지 그래?”


에휴. 나도 그러고 싶지.


“아니야. 그러면 안 되지. 아무튼 고맙다. 메라두.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자, 오늘도 즐겁게 훈련하자!!!”


그리고 발견했다.

땅에 푹 주저앉아 조금 더 지나면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아 보이는 치아투를.


이런. 너무 내 생각만 했네. 미안하다, 치아투.

나는 치아투를 보다가 옆의 메라두에게 슬쩍 말했다.


“다라는 손님을 안 받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생활이 안 되나?”


내 물음에 메라두가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했다.

그러자 푹 찌그러져 있던 치아투가 입을 열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


“내가 돈이 나올 때마다 모두 그녀에게 주겠다고 그러지 말라고 해봤다. 그랬더니 다라가 자기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겠다고? 그럴 수 없다고가 아니고?


“자기가 손님을 받지 않아도 마이야가 어떻게든 자신을 챙기려고 하겠지만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의 삶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며 내 돈도 받지 않겠다고.”


나는 좀 감탄했다.

와우, 대단하네. 역시 다라답다. 여장부야.

하지만 치아투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 했다. 뭐, 당연하겠지만.


“내가 여전히 귀족이었다면 다라를 그렇게 두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치아투는 진심으로 슬퍼 보였다.

항상 단순하고 호탕하게 굴기만 하던 치아투가 보이는 약한 모습에 나는 마음이 짠했다.


“치아투, 네가 여전히 귀족이었다면 다라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기운 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쉽게 기운을 차릴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나만해도 아까까지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그래, 이해한다.


아무래도 오늘 훈련은 무리겠다고 생각하며 옆을 바라봤는데 치아투의 슬픈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이 토반이 해실거리고 웃고 있었다.

입을 헤 벌리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 같은데 마치 꿈꾸는 소년을 보는 것 같다.


“토반, 너도 ‘헤샨’에 가려고 그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데?”


내가 물어보자 토반은 그 꿈꾸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드디어 살 수 있어요.”


음, 토반다운 뜬금없는 말이군.


“응? 뭘 사?”


그러자 날아갈 듯 들뜬 어조.


“정말 오래 걸렸어요. 300지언이라 6개월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았거든요. 6개월 동안 살아남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다들 바보짓 말고 바로바로 쓰라고 얘기했었죠. 근데 해냈어요. 살아남아서 드디어 살 수 있게 됐어요. 꿈만 같아요. 이게 다 지누크 덕분이에요. 마지막 한 달을 못 버티고 죽는 줄 알았거든요. 진짜 고마워요. 지누크는 정말 성인임에 틀림없어요.”


대체 뭐가 이 꿈꾸는 소년을 이리 들뜨게 만든 것인가.


“그래그래. 난 물론 성인이 아니지만 그래도 네가 살 수 있다니 기뻐. 근데 뭘 사는데?”

“정신공유 마법반지요!!!”

“아, 그렇구나. 근데 그게 뭔데?”


그 말에 토반은 신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뭔가 앞뒤가 많이 어긋나 있어 해석하기 난해한 부분은 있었지만 대충 알아듣자면 정신공유라는 일회용 마법이 들어있는 마법 아이템 반지를 마을의 잡화점에서 팔고 있단다.

정신공유라는 마법은 시전자와 어떤 다른 생명체의 정신을 공유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박쥐나 새 같은 것에 마법을 시전해 성공하면 그 생명체의 정신을 지배해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야나 감각도 공유할 수 있단다.


“오, 그럼 아루크, 아니 오거 같은 것도 그걸로 조종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안돼요. 마법 성공률이 있는데 지능이 낮고 체구가 작은 동물일수록 성공률이 높아요. 마수는 이 마법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보면 돼요.”


그건 아쉽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멋지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재밌겠는데?


“근데 그런 멋진 마법을 쓰는 사람을 왜 한 번도 못 봤지? 가능한 만큼 마법을 걸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그 마법의 위험성 때문인데요. 정신공유 중인 동물이 죽거나 상처를 입으면 그 시전자도 역시 타격을 받아요. 정신공유 중인 동물이 죽을 경우 심하면 폐인이 되거나 죽기도 한데요.”


잉? 폐인? 사망?

와우. 뭐야? 자살 마법이야?


“그런 위험한 걸 너는 왜 사려고?”

“저는 그래도 해보고 싶거든요. 새가 돼서 날아가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고 그들의 생태를 관찰해 보고 싶어요. 제 어릴 적부터의 꿈이에요.”


그래,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토반은 이과생 타입이다.

우리 세계에 있었다면 과학자나 심하면 은둔형 오타쿠가 됐을지도.


그래서 얘기를 하다 결국 어차피 오늘 훈련은 무리인 것 같아 다 같이 잡화점을 가보기로 했다. 이곳 잡화점은 대장간도 겸하고 있어 무기도 살 수 있단 얘기에 치아투와 메라두도 흥미를 보였다.

잡화점의 위치는 2차 성벽의 바로 앞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전혀 몰랐네.

하긴 나가본 적이 없었으니.

치아투와 메라두도 보기만 했지 가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잡화점의 주인은 중년 쯤 돼 보이는 회색 바위족의 수인족 아저씨였는데 잡화점 바로 옆에 있는 대장간에서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대검을 만들고 있는 것 같지?


토반이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코모어 아저씨!!!!”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들어 토반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또 왔구나. 꼬맹이. 이번 웨이브에도 어떻게 잘 살아남았군.”

“드디어 돈을 모았어요!!! 반지 주세요!!!”

“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여전하구나. 건방진 꼬맹이. 알았다.”


그러면서 뒤에 서 있던 우리를 훑어 봤다.


“소문으로 듣던 검은 머리 인간이로군.”

“절 아십니까?”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대장간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얘기는 들었지. 다카람에게 한 방 먹였다고 다카람 쫄따구들이 부들부들 거리고 있다고 하더군.”


그렇게 말하며 큭큭거리는 그에게 나는 신기한 마음에 물었다.


“다들 그것 때문에 저를 안 좋아 하던데 다카람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보군요.”


그 말에 그는 코웃음 쳤다.


“흥, 다 눈이 삔 놈들 인거지. 싸움을 잘한다고 존경받아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다카람 그놈은...”


거기까지 말한 그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걸어 나왔다.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걸어 나오는 그를 보니 오른 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나무의족으로 되어 있고, 얼굴에도 큰 발톱자국 모양의 흉터가 남아 있었다. 순간 놀랐지만 혹시 기분 나빠 할까봐 모르는 척 있었는데 그가 먼저 그에 대해 얘기했다.


“5년 전 아루크에게 당했지.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나 요새인원 반 가까이 죽어나갔을 때. 수없이 죽어나갔는데 살아있으니 다행이지. 하지만 간신히 살아났어도 사제라고 하나 있는 게 그 치유력이 포션 마시는 것만 못해 흉터도 없애지 못했어. 나보다 먼저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너무 많았지 그땐.”


그의 눈이 과거를 보듯 침잠했다.

나는 숙연한 기분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리고 그를 따라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잡화점엔 말 그대로 여러 잡다한 것들이 모여 있었다.

가장 많은 건 한 쪽 구석에 진열된 무기류였고 그 외에 포션을 비롯한 약품들, 조리도구, 그릇, 악세사리, 인형까지 있었다.


토반은 가자마자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진열장 유리에 찰싹 붙어 일체화돼 안에 전시된 반지를 보고 있었다.


“저런 인형 같은 것도 팔리나요?”


내 물음에 코모어는 큭큭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들은 좋아하지. 저런 인형 하나 없이는 잠도 못자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 저 꼬맹이 놈과 같은 조의 미오는 새로 나온 인형 수집이 취미라고. 새 인형이 나오면 저 놈만큼 반짝거리는 눈으로 와서 사가곤 하지.”

“그, 그렇군요.”


그 시원시원한 미오가 밤마다 인형을 안고 잠든다니 뭔가 이상하다. 상상하게 되잖아?

코모어는 진열장에서 하얀 돌이 박힌 반지를 꺼내어 토반에게 건네줬다.


“우와아!!!! 드디어!!! 이제야!!! 우와아아아아!!!!”


우리는 기쁨에 몸부림치는 토반을 웃으며 보다가 나는 다시 코모어에게 물었다.


“저런 마법 물품이 많이 있나요?”

“응? 한 10개 정도 있지. 왜 자네도 관심 있나? 충고하건데 제대로 된 게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말게. 자이그 그 고블린 같이 생긴 마법사 놈이 자기가 연구해보고 쓸모없어진 걸 억지로 판 거니까. 손해가 얼마인지 생각하기도 싫군. 게다가 실제 마법이 걸려있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어.”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정도로 불량품이라고?


“그냥 한 번 써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내 말에 코모어가 코웃음 쳤다.


“모두 다 일회용 마법물품인데 한 번 써보면 어쩌라고? 아, 마법이 진짜 걸려있었구나 확인하고 그 다음엔 버리라고?”


크으, 그것참 난감한 상황일세.

나는 그의 짜증나는 기분을 공감하며 다시 물었다.


“무슨 마법들이 있나요?”


그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이름만 보면 쓸 만한 게 몇 개 있지. 요기 이 초록색은 치유마법, 요 빨간색은 근력 강화, 파란색은 방어막 여기까진 좀 쓸 만한데 나머지는 영 그래. 노란색은 땅파기, 요 주황색은 간지럼마법이라더군. 이건 정력강화 마법.”


응? 정력 강화? 탐나는데?


“그렇게 혹하는 표정 짓지 말게. 이것들 다 유지시간이 1분이야. 그 놈이 1분이라 했으니 아마 실제론 30초나 될까?”


30초 동안 정력 강화라. 조루마법이었군.


“저 꼬맹이한테도 몇 번이고 마법이 안 걸릴 확률이 높으니 돈을 모아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충고했지. 근데 전혀 듣지 않더군.”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토반이라면 그럴 수 있지.

우리가 그러건 말건 토반은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반지를 손바닥에 놓고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생물에게 써야 하나를 고민하는 것 같지?


우리는 그를 놔두고 무기진열대를 살펴보러 갔다.

풀이 죽어 한마디도 안하고 있던 치아투도 무기에는 흥미가 있는지 이것저것 들어보고 휘둘러봤다.

오, 새 것의 위용. 깨끗하고 좋아보인다.

아무래도 요새에 비치된 공동물품들에 비해서는 좀 더 질이 좋아보였다. 새것이 주는 깔끔한 느낌도 그렇고.

하지만 내가 굳이 구매해서 사용할 만한 것들은 없겠는 걸? 여전히 너무 커.

내가 잠시 살펴보고 대검을 내려놓으니 코모어가 입 꼬리를 살짝 올린 채 내게 말했다.


“너 같은 체격의 인간이 사용할만한 물건은 거의 없지. 불편하겠구만.”


맞는 말이긴 한데 저거 비웃는 건가? 너 같은 체격이란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살짝 빠직한다.

저거 비꼬는 거지? 도발하는 거.

그럼 받아줘야지. 자고로 걸려오는 시비는 막지 않는 것이 또 내 신조지.


“그러게요. 쓸 만한 게 없긴 하네요.”


나는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그의 올라갔던 입 꼬리가 순간 경직됐다.


“무슨 뜻이지?”


그래. 걸려라. 물고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그냥 말 그대로 쓸 만한 게 없다는 뜻인데요?”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대검은 소하라의 기사들이 쓰는 검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품질이 좋다. 아주 튼튼하고 날카롭지. 마법이 걸린 무기가 아니라면 비할 것이 없을 거다. 근데 쓸 만하지 않다니 무슨 소리지?”

“흠.”


나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거 주물로 만든 쇳덩어리를 단조로 두드려 만든 거죠?”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정성을 기울여 수없이 두드려야 좋은 검이 나오지.”

“흠. 이걸 말해줘도 되나 모르겠네.”


나는 다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뭘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냐!!!!”


그가 흥분해 소리를 지르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좋은 분인 것 같으니 말해 드릴게요. 원래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내가 그렇게 뜸을 들이자 코모어 뿐 아니라 메라두와 치아투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집중했다.

토반은 뭐...그래 꿈꿔라, 소년.


“일단 제가 외지인이란 건 아시죠? 제가 있던 곳에선 철 덩어리 하나로 검을 만드는 방식은 너무 저급한 방법이라서 말이죠.”


내 말에 코모어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그렇게 안하면 어떻게 검을 만든다는 거냐.”

“흠, 이건 진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아, 진짜 고민되네.”


그렇게 애를 태우며 잠시 코모어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폭발 일보직전에 입을 열었다.


“아저씨. 철 덩어리 한 개와 몇 개의 얇은 철 덩어리를 겹친 것. 둘을 부딪치게 한다면 누가 더 강할까요?”


코모어는 폭발하려다 말고 내 질문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다 대답했다.


“그야, 확실치는 않지만 여러 개를 겹친 것이 서로 지지가 돼서 더 강하지 않을까?”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그겁니다. 제가 있던 곳에선 철괴를 만든 후 그걸 그대로 검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반으로 쪼개 겹치고 그걸 다시 펴서 다시 겹치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검을 만들었죠. 그렇게 만든 검은 아주 얇고 날카로움에도 두꺼운 대검과 부딪쳐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죠.”


내 말에 코모어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잠시 후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그렇게 겹친 철 사이로 공기가 새어 들어간다면 그 검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부서져 버릴 거다!!!”


그의 말에 나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오, 잘 아시네요. 맞아요. 그 겹친 철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면 검을 만들 수 없죠. 그래서 그렇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장장이의 실.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는 입을 떡 벌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보인다 보여. 눈이 점점 불타오르는 게. 유후!!

그래. 장인의 승부욕이란 그런 것이지. 내가 알던 장인들도 그러더라고. 이제 아마 잠도 잘 안 올걸?

나는 그의 불타오르는 눈을 보며 슬쩍 한 마디를 더 남겼다.


“게다가 사실 여기에 쓰는 철은 다 같은 철이 아니라더군요. 안쪽에 연한 철, 바깥쪽에 강한 철을 써야 한데요.”


그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중얼거렸다.


“안쪽에 연철, 바깥에 강철이라고? 그렇게 하면...”


그리고는 놀란 눈으로 말을 토했다.


“그럼 검이 잘 부러지지 않겠군!! 휘어질망정 부러지지 않아!!! 그래!!! 그런 방법이!!!”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표정을 지금 본 것 같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검은 그 검날에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나타나게 되죠. 아저씨가 그 물결무늬를 만들어 내실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코모어는 결연한 눈으로 다급히 우리에게 말했다.


“자, 살 건 다 샀겠지? 당분간 잡화점은 문을 닫는다. 빨리 나가!!!”


그러면서 우리를 문 밖으로 몰아내고는 본인도 문을 닫고 빛의 속도로 절뚝거리며(패럴림픽 같은 곳에 나갔으면 금메달도 딸만했다.)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완전히 꽂혔구만.

토반에게 뭐라 할 게 없겠어.


나는 휘파람을 불며 생각했다.

다음에 왔을 때는 새로운 검이 나오려나? 혹시 우리 세계에서도 이젠 만들지도 못한다는 전설의 중동 다마스커스 검을 만들어내는 거 아냐? 아, 즐겁다.


결국 우리는 돈을 쓰지 못하고 요새로 돌아왔다. 토반을 제외하고.

치아투는 그렇다 치고 너는 왜 돈을 안 쓰냐는 내 물음에 메라두는 이렇게 대답했다.

코모어가 그 물결무늬 검을 만들게 된다면 그걸 사겠다고.

옆에 있던 치아투도 고개를 끄덕였다.


쿨론 요새에 온 지 한 달 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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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부 카 네아 4 19.06.16 532 12 13쪽
57 5부 카 네아 3 +2 19.06.13 606 12 14쪽
56 5부 카 네아 2 19.06.11 611 13 23쪽
55 5부 카 네아. 19.06.09 650 13 17쪽
54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10(재업) 19.04.10 482 5 25쪽
53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9(재업) 19.04.09 411 6 19쪽
52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8(재업) 19.04.08 446 7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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