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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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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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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부 쿨론 요새-20 (샤벨 타이거-2)

DUMMY

나는 화살이 샤벨 타이거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느리게 지켜봤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가는 찰나 난 핑! 소리에 샤벨 타이거의 귀가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바로 화살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위로 올려 화살을 발견하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 동안 화살은 녀석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시선의 초점이 화살에 맞춰진 순간 녀석의 몸은 다시 빛살이 되어 옆으로 벗어났다.


“맞았나?!!!!”


다시 멈춘 녀석의 몸에는 확실히 한 대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노린 것처럼 머리는 아니지만 뒷다리 근처의 근육에 화살의 머리가 확실히 들어가 있었다.


녀석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다리에 꽂힌 화살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날려 연병장 옆면의 암벽에 거칠게 몸을 쓸었다. 화살이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꿀꺽, 시크한데?

으르릉 소리 한 번 없이 그렇게 화살을 제거한 놈은 고개를 들어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와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저 자연재해 같은 녀석이 어슬렁거리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이거야.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걸.


“후우, 할 수 있어.”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활을 겨눴다. 녀석의 몸속에 침투한 고블린 마비독이 효과를 내줄 거라고 믿으며.

녀석은 어슬렁 어슬렁 내가 있는 2차 성벽 쪽으로 다가왔지만 도저히 시위를 놓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쏘면 두 번 째 기회는 없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린다.


기다리자. 기다려.


녀석은 성벽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더니 순간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파바박!!!!

성벽을 사선으로 달려 빛살 같은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슨 닌자냐?

땀이 내 눈 옆을 주르륵 스쳐 내려갔다.

그래도 화살을 겨눈 채 기다렸다.

식은땀이 목 뒤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벽 옆쪽의 암벽을 박찬 녀석은 빛이 튕기듯 내 쪽으로 튀어왔다.


지금이다!!!


녀석의 이동 경로가 나를 향하는 순간. 녀석의 동선이 내 화살과 일직선이 되는 순간.

나는 시위를 놨다.


핑!!!!


그리고는 명중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대검을 뽑아 들어 내리쳤다.


“사아앗!!!!”

타탓!!!

내 대검의 경로에 녀석의 몸이 들어온 순간 녀석은 땅을 박차고 갑작스레 진로를 틀어 내 옆으로 비껴갔다. 대검을 내리치는 속도와도 비슷한 이동속도.

나는 헛친 대검을 그대로 돌려 몸을 회전시키며 왼쪽 어깨로 얹었다.


내 시선이 아직 녀석에게 닿지 않은 그 순간, 녀석은 내 뒤의 성벽을 빛이 반사되듯 두 번 박차고 다시 내 뒤를 덮치고 있었다.

내 시선의 사각으로.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검을 내리쳤다.


“하아압!!!!”

부아아앙!!!!


마침내 몸을 돌린 내 시선이 녀석에게 닿았을 때 나는 녀석의 당황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녀석의 발톱이 나를 훑으려 하고 내 대검이 녀석에게 내리꽂히려는 찰나의 시간.


파박!!!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그 상황에서 녀석은 먼저 발톱을 돌렸다.

땅을 강하게 차 몸을 비끼고는 그대로 2차 성벽 아래로 날아 내려갔다.


나는 다시 대검을 돌리고 성벽 아래를 바라봤다. 성벽 아래에서 그 놈이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앞다리엔 내 대검에 묻은 것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그 순간,


‘흐워워어어어어엉!!!!’


오거의 포효소리가 성벽 밖에서 들려왔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돌리고 살짝 절뚝거리며 걸어가더니 이내 속도를 높여 연병장 옆면의 암벽을 사선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는 1차 성벽을 훌쩍 넘어 사라져 버렸다.


“푸하!!!”

털썩.


그제야 나는 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다.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까지 방어가 아닌 공격을 선택한 내 선택이 나를 계속 살아있게 만들어줬다. 아까 녀석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면 나는 계속 녀석에게 휘둘렸겠지. 저 슈퍼 소닉, 플래시에 퀵실버 뺨치는 놈에게.

아하하하. 그래. 저런 놈들을 상대하며 1년, 아니 9년을 살아남아야 한단 말이지. 아하하하, 미래가 정말 밝구나, 젠장.


그날의 웨이브는 내가 더 이상 끼어들지 않은 채 오거가 성벽을 넘어오며 성벽 위의 1조에 2명의 추가 희생자를 낸 끝에 넘어갔다.

2조에서도 더 이상 다른 희생자는 없었다.


나는 더 머무르지 못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숙소로 내려와 잠들어 버렸다.

앞이 막막하다.

이놈의 쿨론 요새는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구나.

여기에 미노타우로스라는 최종보스 같은 놈들이 더 있단 말이지.

아하하. 아하하하.


기절 같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머리맡에는 세 명의 수인족들이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으으.”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 중 중간에 서있던 거구의 수인이 내게 씨익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일어났군. 지누크.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좀 더 오래 기다렸다면 더 놀라게 할 뻔 했으니 그것도 사과하지.”


응? 뭐라고?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견인족 남자가 말했다.


“그런 일은 내가 막았을 테니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그건 사과할 필요 없다.”


그러자 다시 중간의 남자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견인족 남자의 무뚝뚝한 대답.


“충분히, 당연히.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이게?


“으음, 그러니까 당신은.”


어쩐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 낯설어 알아보지 못했지만 머리 위의 갈색 귀를 보고는 그가 모래바람 족이란 걸 알 수 있었다.


“2조 조장 코타알?”


그가 웃는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옆의 나머지 둘은 드나우와 또 다른 견인족 남자였다.

우리 요새의 견인족은 단 2명이니 다른 한 명은 당연히 2조의 부조장 리욤이겠지.


“그리고 리욤, 드나우까지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코타알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정중하게 말했다.


“아까 너의 도움이 우리 조원들의 목숨을 살렸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힘이 담긴 손으로 주먹을 쥐어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져가 부딪혔다.

나머지 두 사람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대충 감사인사를 받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그들의 감사는 나로서도 좀 민망했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서 같이 고개를 숙이고는 민망함에 볼을 긁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결국 조원이 희생되는 걸 막지도 못했는데.”


그러자 코타알은 무겁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샤벨 타이거는 나타날 때마다 정확히 5명의 동료들을 잡아먹고 돌아가곤 했다. 무력이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이 아무나 덮쳐서 뜯어 먹고는 유유히 사라지곤 했지. 우리는 그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자연재해 같았거든. 녀석이 그러지 못하고 다쳐서 그냥 돌아간 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오늘이 처음이다. 다시 말해 너는 오늘 적어도 우리조원 3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지. 그 3명이 여기 서있는 3명이 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고로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지누크. 너의 목숨을 건 도움에 감사한다.”


나는 그의 말에 다시금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생각만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네.

그래, 정말 죽을 뻔했지.

혼란한 사이에 5명을 자유롭게 먹고 돌아가다니. 과연 대단한 놈 이로구만.

옆에서 듣고 있던 토우찬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 그 샤벨 타이거를 지누크가 물리칠 수 있다는 거야?”


그를 놀리고 싶은 마음도 약간은 있었지만 그보단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나는 쓴웃음을 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말 그래도 운이 좋았지. 성벽 위에서 쏜 첫 화살이 녀석에게 맞아 그나마 상대할 수 있었어. 화살에 고블린의 마비독을 발라놨거든. 그래서 확실히 처음보다 동작이 느려져 있었지. 그럼에도 죽을 뻔 했어. 다시 만날 때는 이런 행운을 기대할 수 없겠지.”


그제야 토우찬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 역시 그렇지? 그래. 지누크 네가 그렇게까지 강할 리가 없지.”


뭐냐 저 기분 더러운 납득은. 응징해 줄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코타알이 다시 말했다.


“고블린 마비독? 그런 건 어디서 났지?”

“아, 고블린에게서 채취했지. 요즘 성벽 근무 때마다 고블린을 잡고 있거든.”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기던 코타알이 내게 제안했다.


“그 마비독 혹시 우리 조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까? 물론 공짜로 받진 않겠다. 돈을 지불하지.”


나는 좀 의외라는 생각에 되물었다.


“그야 가능하지만 그걸 쓰려고?”


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쓸 수 있는 건 뭐든 써먹어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리지 않겠나.”


오오, 실용적이야.

나는 그에게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곳 수인들은 순수하고 정직한 반면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융통성이 다소 모자란 면들이 있다. 그래서 독 같은 걸 쓰는 건 전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터부시하지. 마수들을 상대할 때조차도.


우리 조장 다루가만 해도 수인족 전사치곤 나름 열려있는 마음의 소유자였지만 내가 독을 채취하든 뭘 하든 자유로이 놔둔다는 거지 그걸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대다수의 조장들이었다면 내가 그걸 쓰는 것 자체를 혐오하겠지.

그런데 이걸 사용할 생각을 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가 수인족 전사 중 있었다니, 과연 견인족을 부조장으로 임명할 만한 그릇의 소유자로군.


“나도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여유가 되는대로 건네주지. 어차피 계속 잡을 거라서. 동료를 살리기 위해 쓴다는 데 거기다 대가를 받고 싶진 않다. 어차피 취미로 하는 거고.”


그러자 코타알이 예의 장난꾸러기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가도 주지 않고 절대 그걸 받을 수 없다...라고 하기엔 내가 가진 게 별로 없군. 감사히 받지. 대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그렇게 말하며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나도 피식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나도 그럴 것 같군. 잘 부탁한다. 코타알. 그래도 은혜라고는 생각하진 마. 밖에서 모래바람족의 친구에게 내가 빚진 것도 있으니 나도 모래바람족 들에겐 갚을 것이 있다.”


물론 은혜인지 원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말이지.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 그건 몰랐군. 그럼 이 은혜는 잊도록 할까?”


헉, 이렇게 빨리? 이 자식. 정말 만만치 않군.

그러자 뒤에서 묵묵히 서있던 리욤이 아무 말 없이 코타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뻐억!!!

“아욱!!”


코타알이 뒤통수를 움켜잡고 주저앉자 리욤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가 대신 사과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코타알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끌고 나가며 말했다.


“바보 조장 때문에 실례가 많았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곧 우리 조 근무시간이라 다음에 보지.”


그렇게 끌려가면서도 코타알은 내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다음에 보자고 생명의 은인님.”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무척 호감가는 녀석이긴 하네.

그나저나 고작 세 명이 나갔을 뿐인데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했다. 그들이 나가고 조용해진 숙소 안에서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민망해져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말했다.


“밥들은 다 먹었어? 배가 고프네.”


그러자 끝 침상에 누워있던 다루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도 갑자기 배가 고프군. 같이 가지.”


다른 침상에 있던 수인들도 주섬주섬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오늘따라 배가 고프네. 한 번 더 먹을까?”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조원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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