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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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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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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부 쿨론 요새-22 (지하-1)

DUMMY

어느 날 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침상과 물건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건.

내가 그걸 깨닫고 잠에서 깬 건 이미 진동이 심해져 침상이 달그락 거리고 있은 후 부터였다. 다른 동료들은 이미 대부분 잠에서 깨 있었다.

우우웅!!!

“뭐지? 지진인가?”


웨이브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일단 숙소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진동은 그 후로도 한 10분정도 더 강해졌다. 마치 땅 속에서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다행히 10분이 지난 후부터는 천천히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이 지날 때 쯤 진동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곳에서 8년간 있었던 다루가조차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찝찝한 마음으로 다시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아침이 돼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연병장 옆 암벽으로 난 구멍을.


근무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연병장으로 나와 구멍을 구경했다.

구멍의 크기는 수인족 한 명 정도가 들어갈 크기로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뚫었다기보다는 자연적으로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조장이상 간부급 들은 간단히 회의를 통해 수색대가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수색대는 횃불을 들고 들어간 지 10분 만에 다시 무사히 나왔다.

그리고 안쪽의 상황을 알려줬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안쪽엔 직경 10미터 정도의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다 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파고 지나간 듯 보이는 그 터널은 산맥 먼 쪽에서 우리 쪽으로 오다가 우리 연병장 근처에서 방향을 급격히 바꿔 다시 다른 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터널이 생긴 여파로 암벽이 얇은 곳이 무너져 연병장 까지 구멍이 뚫린 것인 듯 했다.


와아, 그게 진짜 생명체가 낸 진동이 맞는 거였어? 어제 뭔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진짜였다고?

그 거대한 생명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장들끼리 의견을 나눴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일부 조장들이 가장 비슷한 건 ‘가이아 웜’이라는 거대 벌레라는데 그 벌레는 암벽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루어 진 사박 산맥에는 가이아 웜이 서식할 수 없단다.

나는 물론 직경 10미터짜리 벌레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이 일에 가장 흥분한 건 토반이었다.


“멋지지 않아요? 직경이 10미터나 되는 미지의 생명체라니. 추적해서 조사해보고 싶어요. 이거야말로 내가 꿈꾸던 일이예요!!!”


흥분한 토반은 수색대가 꾸려지면 어떻게든 함께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지만 간부회의의 결과는 그런 토반을 실망시켰다.

구멍 안쪽엔 아직은 딱히 다른 존재가 없는 것 같았지만 수색대의 말로는 먼 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조사를 위해 인원을 파견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결국 이 구멍은 바위로 매워 없애기로 했다.


토반에겐 미안하지만 현명한 결정이지.

조사해봐야 위험부담만 높고 그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불명확하니. 가뜩이나 위험할 일 천지인 이 곳에서 굳이 위험한 일을 늘릴 필요는 없지.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며 풀이 죽은 토반을 위로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미오가 우리 숙소로 뛰어 들어왔다.


“지누크!!!!”

“응? 미오? 무슨 일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수우나를 힐끗 살피며 물었다.

수우나는 미오의 등장만으로 이미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토반, 토반이 사라졌어. 혹시 못 봤어?”

“아니, 아직 훈련 시작할 때도 아니고. 잠깐.”


그러고 보니 아침을 먹을 때도 토반을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제부터 없어 진거야?”

“오늘 아침부터. 먼저 아침식사를 하러 간 줄 알았는데.”


이런 젠장. 토반. 너 설마.

내가 우리 이과생 토반을 너무 쉽게 생각했군. 다들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혹시 횃불을 가지고 없어졌어?”


미오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곧 토반은 구멍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간부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토반 한 명을 위해 구조대를 편성하는 건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내일까지 기다려 보고 구멍을 메우기로 했다.


내일까지 토반이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돌아올 마음이나 먹을까?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저 어둠 속으로 구조대를 보내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래. 어둠 속에선 누가 됐건 위험하다.


나만 빼고 말이지.

심안을 가진 나만큼 어둠 속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은 아마 이 요새 안에선 절대 없겠지.


아, 제기랄. 토반아. 너 왜 날 시련에 빠트리는 거냐.

문득 반지를 샀다고 행복해 하던 토반의 해맑은 모습이 떠올랐다.

고블린을 같이 해부하며 즐거워하던 녀석의 모습도.


에이씨,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모를까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지. 나는.

남들이 오지랖이라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도리이니까.


“잠깐!!!”


나는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터에서 열리고 있던 간부 회의에 끼어들었다.


“내가 토반을 데리러 갔다 오겠어. 대신 이틀만 기다려 줘.”


내 말이 의외였는지 수성장 마록스, 수색대장 다카람을 비롯한 조장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어둠 속이라 해서 특별히 위험하진 않단 얘기지. 이건 다루가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다른 조장들이 다루가를 쳐다보자 다루가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내 말을 인정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단지 어둠 속을 볼 수 있다 해서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누크.”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다루가. 하지만. 토반은 내 동생 같은 녀석이야.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내 말에 간부들은 생각에 잠겼다.

그 때, 군중들 사이에서 치아투가 걸어 나왔다.


“와하하하!!!! 내 운명의 나타라가 가는 길에 내가 빠질 순 없지.”


그 옆에서 고개를 저으며 메라두도 같이 걸어 나왔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지만 뭐, 지누크라면 목숨을 걸 친구라 할 만 하지.”


2조의 드나우와 헤무도 묵묵히 걸어 나왔다. 우리 조의 타랍과 나무도.

이 자식들 진짜. 눈물 나게 시리. 지구에서도 너희 같은 친구들은 없었는데.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거기에 미오까지 가세하려 할 때, 다카람이 입을 열었다.


“이건 아닌 것 같군.”


그의 말에 모두들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 해서야 구조대를 편성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만약 잘못될 경우 요새 전력 손실이 너무 크지 않나.”


그 말에 다들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카람이 말해서 삐딱하게 들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말이 맞긴 하다. 내 위험한 결정에 다른 친구들을 끌어들일 순 없지.

그래서 나도 입을 열었다.


“나도 수색대장의 말에 동의한다. 인원이 많아지면 오히려 위험해 질 수도 있어. 그냥 혼자 가볍게 다녀올게. 다카람 대장. 그건 괜찮겠지?”


그 말에 다카람은 나를 무표정하게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친구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어줬다.


“빠르게 다녀올게. 고맙다, 친구들.”


결정이 난 후 나는 바로 횃불과 무기, 건조식량을 챙겨 안으로 진입했다.

들어가는 내게 다카람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명심해라.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이틀이다.”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자 주변의 거대한 공간이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미 들은 대로 터널은 우리 암벽을 기준으로 휘어져있어 안으로 들어간 나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 쪽 방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중 무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왼쪽이었다. 뭔가 기분 나쁘고 위험한 소리. 심안으로도 멀리서 무언가 꾸물꾸물 다가오는 듯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진로를 잡고 뛰기 시작했다.

이미 어둠이 방해가 아닌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지.

왼쪽 터널의 알 수 없는 것들이 내가 들어온 연병장 입구까지 도달하기 전에 토반을 데려와야 했다.


한참을 뛰었다. 느낌 상 몇 시간은 뛴 것 같은데.


심안으로 주변을 볼 수 있다 해도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시간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예전 안바이람에서 헤맸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뒤에서 꾸물꾸물 실체가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따라오는 듯한 찝찝한 느낌도 계속됐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내 체력도 무한대는 아니라 뛰는 것을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토반 이 자식 진짜 멀리도 갔네.

설마 왼쪽으로 간 건 아니겠지?


헉.

문득 생각한 이 가설이 갑자기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소리가 나잖아?

토반, 이 녀석이라면 소리 나는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설마, 수색대도 미지의 생물은 오른쪽으로 갔다고 말했었는데, 왼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그 쪽으로 가버리는 건.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역시 육체를 지배하는 건 마음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자 나는 다시 걸어갈 힘조차 잃어버렸다.

이럴 때는 마음을 먼저 정리하는 게 순서지.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을 정리해 봤다.

만약 토반이 왼쪽으로 갔다면 아직 살아있을까? 저 느낌이 뭔지 모르지만 위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어쨌든 데려올 가능성이 있는 건 이 방향이 맞는 거지?

그래, 어찌 됐든 하루만 가자. 하루만.

그래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두세 시간을 갔을 때 내 감각에 무언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내 팔뚝크기의 무언가가 터널 위쪽에 매달려 움직이고 있었다.

눈으로 안보이니 뭔지 알 수가 있나.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나는 녀석을 피해 반대쪽 옆으로 붙어 걸어가려다 문득 이상한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이상한 느낌.

느낌은 중요하다.

이 느낌의 정체가 뭔지 모른다 해도 찝찝한 느낌을 무시하는 건 좋은 결정이 아니지.

나는 미약한 느낌을 무시하고 전진하는 대신 내가 놓친 게 뭐가 있는지 서서 감각을 더 집중해봤다. 세밀하게. 더 정밀하게.

그러자 아까 느낄 수 없었던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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