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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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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6(재업)

DUMMY

어느새 비가 그치고 땅굴의 밖이 환해졌다.

햇살이었다.

얘기를 하는 동안 하룻밤이 지난 것을 두 사람은 그것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바란이 말했다.


“베이모스는 햇살이 비칠 때는 활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이제쯤 나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말과 코린경이 무사할는지 모르겠군요.”


소나는 그제야 다말과 코린을 떠올렸다.


“아.”


밤 내내 두 사람에 관한 것과 현재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땅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아래쪽에는 거대한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가이아 웜이 뚫어놓은 땅에 빗물이 찬 것이었다. 바란이 말했다.


“여기서 씻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요?”


두 사람의 몸은 가이아 웜의 체액과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더럽혀져 있었다. 두 사람은 웅덩이로 뛰어들어 몸을 대충 씻고는 밖으로 나갔다.


다말과 코린은 다행히 무사했다.

바란과 소나가 먼저 몸을 피하기로 했던 바위산 근처에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웅덩이를 나와 1시간 쯤 지난 후였다.

그들의 얘기론 바위산으로 올라가서 몸을 피하니 가이아 웜은 잠시 주변을 돌다 어딘가로 가버렸다고 했다.


네 사람은 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하며 무사함을 기뻐했다. 더군다나 바란들이 베이모스를 만났다는 말에 다말과 코린은 크게 놀랐다.


“이야, 그럼 바란은 베이모스의 눈과 날개를 베어 낸 거야? 이건 거의 전설의 용사급 아닌가?”


다말이 흥분하며 말했다. 코린도 질투심이 나기는 하지만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할아버지께 들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바로 재생했을 거야. 베이모스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가 재생능력이라고 했었거든. 과거에도 그 정도 상처를 입힌 사람들은 꽤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그 자리에서 재생해 버린다고 하더군. 그 증거로 내 대도가 그 자리에 떨어져 있었어.”


바란이 자신의 어깨에 맨 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마 그러고 바로 가이아 웜의 내장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살아있지 못했겠지.”

“크으, 역시 전설의 마수답군.”


그 전설의 마수에게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며 다말은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코린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 말에 모두들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린내강으로 가서 마정석을 구하기는커녕 갖고 있던 말마저 다 잃고 한 마리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마정석을 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마수사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큰 문제일 듯했다.

아무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다말이 입을 열었다.


“어제 우리가 해치웠던 마수들의 시체 쪽으로 가볼까? 가이아 웜이 덮치는 걸 보기는 했는데 운이 좋다면 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다른 방도가 없었던 그들은 일단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그곳에서는 마수들의 시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가이아 웜이 뚫고 지나간 땅들도 거의 황무지의 흙들로 메워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남은 사체들을 살펴봤지만 마정석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아...”


다말이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하늘은 파랗게 개어있건만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코린 조차도 침울한 표정으로 가이아 웜이 뚫고 지나간 땅의 흔적들만 바라볼 뿐이었다.

바란이 입을 열었다.


“잠시 쉬도록 하지. 생각도 정리할 겸.”


소나는 바란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이 평상시보다 어두워 보이는 건 그녀의 착각만은 아닐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소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원래도 바란에 대한 감정을 헷갈려 하고 애써 부정해왔었지만, 어제 이후로 소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란은 그녀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소중한.

그래서 결심했다. 어떤 힘들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바란을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고. 그것이, 프시바크 공작가의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이라도,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이라도. 그것이 지금 소나에게는 삶의 의미인 것만 같았다.

그때, 바란이 말했다.


“무언가 오고 있군요.”


바란의 말에 다들 긴장한 눈으로 먼 지평선을 응시했다.

어제 일 이후로 그들에게 바란의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 할만 했다.


“사람...인가? 그 뒤를 마수들이 쫒고 있는 것 같군.”


일행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란의 말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먼 곳에서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코린이 참다못해 바란을 보며 물었다.


“네놈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거냐? 혹시 신의 계시라도 듣는 것이냐?”


바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감각이 좀 예민한 것뿐입니다.”


그 말에 코린이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게 감각으로 되는 문제라고? 혹시 신이 아니면 악마랑 계약이라도 한 거 아닌가? 아니고서야 수인주제에 그런 실력에 이런 감각까지 말이 될 리 없지 않나! 안 그렇습니까. 아가씨?!!”


그 말에 물끄러미 코린을 보던 소나는 이내 피식 웃더니만 대답했다.


“바란이 좀 예민하잖아.”


그 대답에 코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무슨 저걸 보고 예민이라뇨?”


다말도 거기에 덧붙였다.


“사실 예민 하다기 보단 쪼잔한 거죠. 돈 관리할 때 보면 아시잖아요. 하여간 남자가 성격은 안 좋아가지고. 쯧.”


코린은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바란이 오러 마스터임을 아직 코린에게 알릴 수 없다는 소나와 다말의 이심전심이었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코린 입장에선 두 사람 다 자신의 말을 받아주지 않는 이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말이 되느냐고 다시 말하려 할 때, 멀리서 달려오던 사람이 뭐라고 소리쳤다.

순간 모두가 그 사람을 향해 집중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코린이 물었다.


“처음 듣는 언어로군요. 게다가...수인족은 아닌데 머리 색깔이 검은색입니다.”


바란의 말에 다들 달려오는 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검은색 머리? 수인족인 검은 산족, 밤 소리족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도 그런 머리색의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소나의 말에 코린이 말했다.


“혹시 안바이람에서 뛰쳐나온 마족이 아닐까? 아니면 악룡 헤와이 카 예아의 유산이라던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코린이 다시 흥분하며 말했다.


“아니 왜, 헤와이 카 예아는 온몸이 검은색인 흑룡이었다고 하잖아? 안바이람 방향에서 뛰어 오는 처음 듣는 언어를 지닌, 검은 머리의 사람이라면 악룡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 말에 모두 뛰어 오는 사람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잠시 바라봤다.

다말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근데 그런 위험한 사람치고는 뛰어오는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죠? 게다가 저 뒤에...”


바란이 말을 이었다.


“쫒기고 있군. 아루크 네 마리에게.”


그때, 달려오고 있던 그 남자는 다시 뭔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뭐라고 소리쳤다.

소나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아루크 네 마리에게 쫒기는 악룡의 유산이라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겠군. 일단 구하도록 하지.”


그리고는 붉은 빛살처럼 뛰쳐나갔다. 다말도 코린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바란과 함께 뛰어나갔다.

소나가 가장 앞 쪽에 오는 근육질 늑대 아루크를 뛰어올라 간단히 두 조각내고 다른 한 마리씩을 다말과 바란이 각각 처리했다.

그러자 남은 아루크 한 마리를 향해 다가가던 코린은 엉뚱하게도 검은 머리 남자의 뒷통수를 검집을 가볍게 휘둘러 가격했다. 뒤쪽의 아루크에게 뭔가를 하려고 하던 검은 머리의 남자는 맥없이 픽 쓰러졌다.

다들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코린은 무안한지 머쓱하게 말했다.


“아니, 혹시 악룡과 관계있는 자이면 어떡할까 싶어서. 마침 뒤를 보고 있길래... 아니, 근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쉽게 기절하고 그래?”


그리고는 달려드는 아루크를 특유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발검으로 가볍게 두 조각냈다.

아루크 네 마리 중 한 마리에게선 다행히도 마정석 하나가 나왔다.


정신을 잃은 검은 머리의 남자는 일단 천막으로 옮기기로 했다.

다말이 코린에게 때린 사람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코린은 투덜거리면서도 그 남자를 들쳐 엎고는 천막에다 조심스럽게 눕혔다. 아마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이상한 물건들과 검, 매고 있는 배낭도 그 옆에 내려놨다.


“그나저나 복장도 이상하네. 옷도, 갖고 있는 물건도, 머리색도 다 이상한 사람이군.”


그렇게 말하며 코린이 배낭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말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정신을 잃은 사람의 물건을 뒤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정의로운 코린 기사님.”


그러자 코린이 근엄한 얼굴로 대꾸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말거라. 이 사람이 정말 이렇게 살려둬도 될 사람인지 정보를 얻어야 할 게 아니냐. 어쩌면 정말 악룡과 관계된 사람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악룡은 무지하게 집착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말의 생각에도 이 사람이 이상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가방에서 제일먼저 나온 건 재질을 알 수 없는 얇은 천이었다.


“이거 보라고. 이거 신기한 걸? 이렇게 얇은데 엄청 질겨. 실을 엮은 것도 아닌 거 같고 무슨 가죽인가?”


코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얇은 천을 당겨보며 말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바란의 눈이 변했다.


“잠깐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바란의 뜻밖의 말에 코린이 흠칫하더니 신이 나서 말했다.


“이것 봐라. 관심 없는 척 하더니만 바란 네놈도 신기한 모양이구나?”


그렇게 말하며 천을 바란에게 건네주었다.

바란은 그 천을 받자마자 그것을 바닥에 펼쳤다.


“이건...”

“이럴 수가!!”

“....”


펼쳐진 천을 바닥에 깔자 그 천은 완벽히 바닥에 동화되어 버렸다. 옆에서 보면서도 어디까지가 천이고 어디까지가 황무지 바닥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

바란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마법의 물품 같군.”


지켜보던 코린이 말했다.


“근데 바닥과 똑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걸 어디다 쓰지?”


그러자 다말이 대답했다.


“황무지 바닥에서 저걸 덮고 자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떻소. 베이모스도 발견 못할 것 같은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실제 있었던 사실을 말한 다말의 말에 코린은 아하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이게 있으면 안바이람 안에서도 살 수 있는 건가?”

“장담할 순 없겠지만 그럴 확률이 높겠지요. 어쩌면 이사람 정말 안바이람 안에서 왔을지도 모르겠군요.”

묵묵히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바란도 입을 열었다.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지. 만약 어떤 사람이 저걸 뒤집어쓰고 뒤에서 사람을 습격한다면...”


그렇게 말하고는 바란은 모포를 들어 올려 자신의 위로 뒤집어 씌웠다. 그 상태에서 바닥에 앉아 높이를 낮추자 영락없는 흙무더기로 보였다.


“어때 보이지?”


다말이 대답했다.


“감쪽같군.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질 않아.”


바란이 천을 벗으며 말했다.


“만약 낮이 아닌 밤에 이 천을 덮고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다른 누군가를 습격한다면 그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겠는걸.”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소나가 입을 열었다.


“혹시, 어둠의 정령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바란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래바람 족 전승에 따르면, 안바이람의 어둠의 정령은 어둠속에서 주변과 동화되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덮친다고 합니다. 누구도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 무섭지만, 사실 그 힘 자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하죠. 만약...”


거기까지 말한 바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코린이 흥분해 말했다.


“그럼 이자가 그 어둠의 정령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군!!!”


바란이 그런 코린을 자제시켰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아직 지나치게 이른 것 같군요.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될 문제입니다.”


하지만 코린은 이미 흥분해 있었다.


“아니, 이쯤 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은 거잖나? 안바이람에서 나타난 검은 머리의 알 수 없는 언어를 쓰는 이방인이 어둠의 정령이나 쓸 법한 마법 물품을 갖고 있다니. 오, 우리는 어떻게 된 게 안바이람에 오자마자 가이아 웜, 베이모스를 만나더니 이제 어둠의 정령까지.”


바란이 쓰게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그것만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요. 일단 다른 물품들을 더 살펴보는 게 좋겠군요.”


그 말을 들은 코린은 흥분해서 배낭을 거꾸로 뒤집어 물품들을 떨어뜨렸다. 알 수 없는 금속재질의 원통과 물병 같은 것, 작은 육면체, 그리고 안에서 바늘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이상한 원형 물체 등이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검은 광택이 나는 구슬 같은 것 5개가 굴러 떨어지자 네 사람은 순간 숨을 멈췄다.

코린이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그거지?”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건 흑마석이었다.

다른 마정석들이 일정 기간 에너지를 방출하면 빛을 잃고 방전되어 버리는 것과 달리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동안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그래서 일반 마정석보다 5배는 비싸다는 검은 마정석.


과거 안바이람의 황무지 속에서 발견된 적이 있어 당시 몇 마수 사냥꾼들이 목숨을 걸고 안바이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결국 그들 중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 그 이후로 아무도 흑마석을 찾겠다고 욕심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흑마석이 5개나 한꺼번에 굴러 나온 것이다.

코린이 말했다.


“이거 가격이 하나당 5000지언 쯤 하지 않나? 그럼 이것 다하면 2만5천 지언이네.”


다말이 그 말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실제론 그 희귀성 때문에 더 비싸다고 하지요. 이것 하나만 있어도 레하타 패거리에게 빚은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겁니다.”


코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 잘됐구만. 그럼 그 개자식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거기까지 말한 코린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무튼 모래바람족의 경사로군.”


그때, 바란이 코린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우리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의 것이지. 다시 말해 모래바람족의 경사일 이유가 없지요.”


그 말에 당황한 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란을 바라봤다.


“아니, 왜? 저 사람? 아니, 저 무언가가 어둠의 정령이라면 흑마석은 그걸 잡은 우리 거잖아? 내가 잡았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모래바람족을 위해 쓰자는데.”

“저 사람이 어둠의 정령이라고 결론 난 적이 없으니까요. 그게 확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마수에 쫒기는 한 사람을 때려서 기절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짐을 함부로 뒤지고 있는 중이죠. 짐을 뒤지는 거야 저 사람의 정체를 판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그 물건까지 가져간다면 그건 강도에 불과합니다. 코린경이 모래바람족을 위해 그렇게 말해준건 고맙지만 이건 옳지 않은 일이지요.”


그 말에 코린은 입을 뻐끔거리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다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바란. 이 사람은 분명 수상해. 언어나 복장이나 갖고 있는 물건 모두. 민패도 갖고 있지 않잖아. 어쩌면 위험한 인물일 수도 있는 거고. 그렇다면 시후 지방령에 신고해서 조사받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마 그렇다면 잘해야 노예로 팔려 갈 거야. 조사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말이지. 그리고 갖고 있는 물건들은 아마 부패한 관리들에게 다 뺐기겠지. 아니, 이 물건들 때문에라도 관리들은 이 사람을 반드시 죽일 확률이 높겠군.”


다말의 말에 코린이 얼굴에 화색을 띄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 말이 바로 그거다. 이 사람이 정말 어둠의 정령이 아니어서 우리가 이 사람을 그대로 놔 준다고 해도 어차피 이 사람은 노예 신세가 되거나 죽임을 당할 뿐이라는 거다. 이런 흑마석을 지닌 채라면 더더욱 죽을 확률이 높을 거고 말이지!!!”


바란은 깊은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사람의 물건들을 더 조사해 보지요. 먼 곳의 여행자일 수도 있는 거고, 아직 결론을 내기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없군요.”


네 사람은 다시 다른 물건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코린은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검을 검집에서 뽑아 살펴보았다.


“이건 엄청나게 잘 만든 칼이로군. 재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얇고 가볍고 날카로워. 너무 얇아서 쉽게 부러질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검과 챙!! 소리가 나도록 세게 부딪쳐 봤다.


“이런 세상에!! 오히려 내 검에 흠집이 생겼어. 이 칼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건 보물이잖아?!!!”


한 쪽에서 코린이 호들갑을 떨며 검을 살펴보는 사이 다말은 그 사람이 아까 들고 있던 손잡이가 옆으로 달린 짧은 쇠막대기를 살펴봤다.


“난 아까부터 이게 제일 궁금하더구만. 아까 아루크가 있을 때 이걸로 뭘 하려고 했었거든.”


그리고는 쇠막대기를 이리저리 만져봤다.


“여기 구멍도 있는데 뭐가 들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구멍에 눈을 대고는 안을 들여다봤다.


“안이 막혀있나 보군. 아무것도 안보여.”


그리고는 눈에서 떼서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중간에 튀어나온 돌기를 손가락으로 잡고 흔들어보았다.


따다다다당!!!!!

“으아악!!!!”


다말은 순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막대기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를 맞고는 비명을 질렀다.

다말의 왼쪽 상완의 살점이 뜯어져 나가며 피가 튀어 올랐다. 다말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막대기를 떨어뜨렸다.

막대기는 땅에 떨어지며 다시 한번 굉음을 토했다.


따다다다당!!!!!


다말의 비명에 놀라 그 쪽을 바라보던 코린의 마갑위로 무언가가 따다당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뭐야, 뭐야 이게?!!!”


코린은 갑옷위로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에 본능적으로 몸을 감싸며 검을 뽑아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소음도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터진 굉음에 몸을 움츠렸던 바란과 소나는 굉음이 끝나고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자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다말에게로 뛰어갔다.


“괜찮은가. 다말?!!!”

“괜찮아?!!”


다말은 오른손으로 왼쪽 상완을 감싸고 주저앉아 있었다.


“피가 많이 흐르는걸. 소나아가씨 깨끗한 천을 좀!!!”

“알았어.”


소나는 염동력을 사용해서 천막 안에 놓여 있던 가방을 공중에 띄워 손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깨끗한 천을 꺼내 바란에게 건네주었다.

바란은 피가 흐르는 부분에 천을 대서 피를 급히 닥아 내고는 환부를 보며 말했다.


“다행히 살점만 떨어져 나갔어. 소독만 좀 하고 출혈을 막으면 치료가 가능할 것 같군.”


그 말에 다말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행이라고, 바란? 너도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맞고 싶은가?”


바란이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이 팔이 다 낫거든 기꺼이 그래주지. 아까 저 막대기에서 뭔가 튀어나가던데 그걸 뼈에 맞았으면 뼈까지 으스러질 뻔했어. 그나마 살점만 맞고 떨어져 나간게 다행이야. 코린경. 아까 마갑 위에 맞은 것 같던데 괜찮습니까?”


그 말에 자신의 마갑을 살펴보며 코린이 대답했다.


“마갑 위에 맞아서 나는 괜찮은데 마갑이 살짝 우그러졌군. 이거 경도강화마법도 걸려있는 마갑인데 엄청나군. 머리라도 맞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쇠막대기에 손을 가져갔다.

소나가 그런 코린을 바로 제지했다.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위험한 물건이야.”


다말도 동의했다.


“그렇소, 코린경. 나처럼 다행히 살점만 떨어지란 보장은 없지 않소.”


그렇게 말하며 다말은 고통스럽게 웃었다.

바란은 그 물건을 살펴보며 말했다.


“아까 보니 한 쪽에 난 구멍으로 아주 작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더군. 그 정도의 속도와 파괴력이면 아루크 정도의 마수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 사람은 왜 도망쳤던 건지 모르겠군.”


불을 피워 다말의 환부를 지져 소독하고 천을 감아 지혈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코린이 입을 열었다.


“바란, 니가 뭐라고 하던 저자는 정말 위험한 자가 맞는 것 같다. 그냥 깔끔히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엄밀히 따지면 저자는 내가 잡은 거긴 하지만 흑마석은...음, 하나만 내가 갖고 나머지는 모래바람 족을 위해 모두 양보해 줄 테니.”


그 말을 듣고 잠시 다말의 상처를 바라보던 바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운 말이군요. 코린경. 우나 여신의 손길이 그대의 손을 끌어주시길 빌겠소. 하지만, 그 말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다말이 다친 건 우리가 그의 물건을 만졌기 때문이지요. 그가 하지도 않은 일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뿐더러, 억울하게 노예가 된 동족들을 구하겠다는 우리가 다른 무고한 이를, 적어도 아직 어떤 죄가 있다는 확신도 없는 이를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지도 모르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 말에 코린이 답답해하며 물었다.


“그럼 어쩌겠다는 거냐? 어차피 우리가 그를 놔줘도 그의 운명은 뻔할 터인데. 게다가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는 수상한 자를 그냥 놔준다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지 않느냐?”


바란이 빙긋 웃으며 코린을 달랬다.


“일단 그가 깨어나면 대화를 시도해보지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알게 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때,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란, 저 사람을 잡은 건 코린이야. 그렇다면 그 처리방법은 코린이나 적어도 코린의 고용주인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소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그 눈은 어쩐지 뭔가 결심을 한 듯 보였다.

바란은 소나의 뜻밖의 말에 잠시 소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는 어떤 다른 생각이 있으십니까?”


소나는 바란의 눈을 살짝 피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그를 시후 지방령에 넘길 거야. 그의 물건들은 어차피 시후 지방령에 빼앗길게 뻔하니 내가 맡아둘 거고. 그곳에서 조사해서 그가 아무 수상한 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때 물건을 돌려주면 되겠지.”


바란은 굳은 얼굴로 소나를 잠시 응시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가씨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소나는 여전히 바란을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죄 없는 아이들이 다시 노예 사냥꾼들에게 돌아가지 않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저 사람이 정말 죄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쓴 돈은 나중에라도 갚아줄 수 있어. 이게 모래바람족이 믿고 있는 우나 여신의 가호일지도 모르잖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바란은 무겁게 가라앉은 안색으로 고개를 저으며 소나에게 말했다.


“우나 여신의 뜻은 결코 양심이 꺼리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있다면 그건 여신께서 인간을 시험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요.”

소나는 단호한 얼굴로 바란의 눈을 바라봤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이게 내 의지니까. 바란이 하는 게 아냐. 내가 하는 거지.”

“아가씨....”


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으려는 바란의 말을 끊으며 소나는 코린에게 말했다.


“코린, 저 사람을 내 뜻대로 처리해도 되겠어?”


처음 보는 두 사람의 대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던 코린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물론 그러셔도 되지요.”

“그럼 바로 가자.”


몸을 돌려 기절한 남자에게 가려는 소나의 어깨를 바란이 붙잡았다.


“소나 아가씨!!!”


소나가 고개를 돌려 바란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바란의 뜻을 존중해. 계속 그래왔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뜻을 존중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두 사람의 마주친 눈이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소나의 단호한 눈과 바란의 안타까운 눈이.

먼저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것은 소나였다.


“다른 할 말이 없다면 난 지방령으로 가겠어. 따라와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아. 가자! 코린.”

“네, 네.”


천막으로 단호한 걸음을 향하는 소나를 바란은 어두운 눈으로 바라봤다. 다말이 바란의 곁에 다가와 조심스러운 말투로 바란에게 말을 걸었다.


“바란, 아가씨가 저러시는 건...”

“알고 있네. 다말. 더 말하지 않아도 되네.”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깊은 한 숨을 내쉰 바란이 무거운 음색으로 대답했다.


“일단 따라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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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2(재업) 19.04.02 292 5 38쪽
45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1(재업) 19.04.02 432 6 42쪽
44 4부 쿨론 요새-27 (로가-3) +3 19.03.27 657 22 12쪽
43 4부 쿨론 요새-26 (로가-2) +2 19.03.26 549 19 15쪽
42 4부 쿨론요새-25 (로가-1) 19.03.25 532 18 11쪽
41 4부 쿨론 요새-24 (지하-3) 19.03.24 521 17 12쪽
40 4부 쿨론 요새-23 (지하-2) 19.03.23 538 15 11쪽
39 4부 쿨론 요새-22 (지하-1) 19.03.22 560 17 11쪽
38 4부 쿨론 요새-21 19.03.21 564 19 15쪽
37 4부 쿨론 요새-20 (샤벨 타이거-2) 19.03.20 549 18 12쪽
36 4부 쿨론 요새-19 (샤벨 타이거-1) 19.03.19 550 17 9쪽
35 4부 쿨론 요새-18 19.03.18 570 18 20쪽
34 4부 쿨론 요새-17 19.03.17 560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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