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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이계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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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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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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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7(재업)

DUMMY

시후 지방령으로 가는 내내 네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소나는 가면서 힐끗힐끗 바란의 안색을 살폈다.

바란의 안색은 전에 본 적이 없을 만큼 어두웠다. 말을 잃었을 때도, 마수들에게 마정석을 얻지 못했을 때도 보인 적이 없던 어두운 표정이었다.

소나는 그런 바란의 표정이 불안했고 또한 화가 났다. 그렇게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나 싶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철부지 소녀 같은 마음을 갖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알아주길 바라지 말자. 내가 그를 위해 한 일을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다니.’


애써 마음을 달래며 바란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소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 마리 남은 말의 등은 기절한 남자를 실었기 때문에 모두가 걸어야만 했고, 그래서 시후 지방령까지 가는 길은 이틀이 꼬박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그날 저녁 해가 질 때 쯤, 기절한 남자는 눈을 떴다.

깨어난 남자는 묶여있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는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근처에서 보고 있던 바란은 남자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두 손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괜찮소?”


바란의 물음에 남자는 또 알 수 없는 언어로 뭐라고 말했다. 바란을 경계하는 표정이었지만 딱히 나쁜 말은 아닌 듯 한 느낌이었다. 바란이 다시 물었다.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합니까?”


그 말에 남자는 아무 대답 없이 바란을 바라보기만 했다. 대답이 없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란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다시 말했다.


“나는 바란 이오. 바란.”


남자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란의 말을 되풀이했다.


“바란.”


생각보다 매우 좋은 발음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진욱.”


바란은 그것이 그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다시 물었다.


“지누크?”


그 말에 그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진욱.”


바란은 다시 반복했다.


“지누크.”


그는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누크.”


바란은 살짝 웃음 띈 얼굴로 다시 천천히, 그리고 정중하게 말했다.


“지누크. 우리는 지금 먼 길을 가고 있소.”


그러면서 손을 뻗어 황무지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향해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당신이 이 말을 타지 않는다면 걸어갈 수밖에 없소.”


진욱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란은 그가 어디까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리를 묶은 줄을 풀어 편하게 해준 뒤 말에 태웠다. 팔을 묶은 줄이 불편한 듯 살짝 몸을 비틀었지만 그는 얌전히 말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소나는 그런 바란과 남자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외면했다.


이틀간 그들의 묘한 동행은 계속됐다.

그리고 그동안 소나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바란 또한 소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 코린은 살얼음판 분위기에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고, 다말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 그렇게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가이아 웜에 베이모스까지 만났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지방령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면서 바란은 그 남자와 다양한 대화를 시도했다.

그 남자는 무척이나 영특했다.

단 이틀 동안의 짧은 기간에 일행의 이름과 간단한 황무지에서 보이는 것들의 단어를 익혀나갔다. 아직 대화를 하기엔 부족했지만 몸짓과 표정으로 어느 정도 간단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갖고 있던 물건들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특히 ‘자동 소총’이라는 쇠막대기에 다말이 다쳤다는 얘기를 손짓발짓으로 전달하자 그는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시후 지방령은 바란 등이 출발했던 천막보다 훨씬 더 아사롬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천막이 있는 곳을 들리지 못하고 바로 지방령으로 직진했음에도 시간이 이틀이나 걸렸다. 다시 천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면 하루는 꼬박 되돌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네 사람이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사흘 후의 아침이었다.


시후 지방의 모든 곳이 누런 황무지와 구릉으로 가득했지만 지방령이 있는 곳은 푸른 잎을 가진 나무들이 꽤 여기저기 서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돌로 만든 작은 건물들이 모래먼지에 뒤덮인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지누크는 그런 나무들과 건물들을 무척 신기하게 둘러보았다. 어쩐지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바란 일행은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큰 2층 건물의 앞에 다다랐다. 다른 건물들처럼 흙먼지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낮은 사각뿔의 지붕과 다른 건물보다 훨씬 높은 1, 2층의 높이가 무척 웅장해 보였다. 시후 지방령을 다스리는 툴카 남작가였다.

바란은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 역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소나의 옆으로 걸어갔다.


“소나 아가씨.”


소나는 그런 바란의 눈을 외면했다.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어. 나는 이미 마음을 결정했으니.”

“우리가 그를 잘 모른다 해도 그는 적어도 악인은 아닙니다. 그건 아가씨도 느끼셨을 테지요.”


소나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 말대로 우리는 그를 잘 몰라. 이틀간의 동행으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


바란은 무거운 눈으로 소나를 응시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에게 해가 될 것이 뻔한 일을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가 위험한 자라는 확신이 있을 때 해야지요. 더군다나 이건 명백히 우리의 이익을 위해 그를 희생시키는 겁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란의 말이 옳아. 그러니까, 바란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 이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야.”

“아가씨, 이건...”

“그만!!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한 소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일체의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고집이 소나의 얼굴 가득 씌워져있었다.

바란은 안타까운 눈으로 소나를 바라보다 간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마음을 돌리실 생각은 전혀 없으십니까?”


소나는 천천히 그러나 가능한 단호하게 보이길 기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


바란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깊은 한 숨을 쉬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바란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아가씨. 그의 물건을 제가 맡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소나가 눈을 번쩍 뜨며 바란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야?”

“제가 그를 지방령에 데려다 주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나온다면 물건을 돌려주도록 하죠.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바란은 소나를 무겁게 응시했다.


“죄송하지만 아가씨의 호위무사를 하는 것은 오늘까지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나의 눈이 순간 크게 확대됐다.


“무슨...뜻이야?”

“더 이상 아가씨의 호위무사로 있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구요.”


소나는 잠시 멍한 얼굴로 바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머리가 멍해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왜? 어떻게? 고작?

많은 것들을 묻고 싶었지만 입속에서 맴도는 말 어떤 것도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나오는 순간 자신을 무너뜨릴 것 만 같았다. 눈에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느낌에 있는 대로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 상태로 두 사람은 그렇게 서있었다. 스쳐가는 메마른 바람들이 옷깃을 흩날렸다. 뿌옇게 날리는 흙먼지들이 일어났다가 다시 사그라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란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바란은 멍하니 서있는 다말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소나가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말했다.


“할 말은 그 것 뿐이야?”


그 말에 바란은 그 자리에 멈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소레스님께 말씀드렸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노예를 없애고 싶다고. 모래바람 족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 저는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말에 소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대신 나선 것이 아닌가. 바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제 의지를 꺾지 않기 위해 아가씨께서 대신 나서셨다는걸. 그리고 앞으로도 아가씨는 그렇게 하시겠지요. 하지만 아가씨, 그건 아가씨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한 것입니다. 그걸 묵인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저의 의지를 꺾음에 다름이 없지요. 그리고...예전에 소레스님은 저를 만났던 마지막 날에 소나 아가씨를 저에게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마지막이란 걸 아마 알고 계셨던 거겠지요. 저와 함께함으로 아가씨가 스스로의 손을 더럽힌다면, 저는 스승님의 유언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그게 저의 이유입니다.”


소나는 바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란이 아닌 자신이 행동하면 바란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결국 바란의 신념을 깨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하지만, 감정적으론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가 났다.

그 신념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떠나보내도 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다 알면서 낸 결정이 이런 것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 사실에 상처받고 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그게 너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지. 코린!!! 우리는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자신이 가능한 당당하게 보이기를 바라며.


“아, 네, 네.”


숨죽이고 둘을 바라보고 있던 코린은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다말과 바란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한 번씩 바라보고는 서둘러 소나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안쓰럽게 보고 있던 다말이 바란에게 다가갔다.


“바란,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3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란의 지치고 슬픈 표정을 보고서는.


바란과 다말, 두 사람은 지누크란 사람을 시후 지방령에 맡기고는 바리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천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막이 있는 부근까지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바란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다말은 그런 바란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붉게 물든 노을이 지평선 가득 물들 무렵, 갑자기 바란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그 말에 다말도 고개를 들고 코를 킁킁 거렸다.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본 저쪽 지평선에선 한줄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천막이 있는 쪽이었다.

바란과 다말은 바로 속도를 높여 천막 쪽으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의 천막이 서서히 확대되고 있었다. 천막은 불에 타고 있었고, 천막의 앞엔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바리아!!!”


바란은 눈에서 불꽃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분명 바리아였다. 근데 그의 한 쪽 팔이 보이지 않았다. 잘려진 팔에선 계속 피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바리아!!!”


바란이 바리아에게 달려들어 그를 팔에 안아들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어오른 바리아가 바란의 목소리에 눈을 희미하게 떴다.


“바, 바란? 바란이구나.”

“그래, 나다 바리아. 괜찮은가?”


바리아가 정신이 든 것을 확인한 바란은 서둘러 바리아의 팔을 지혈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양의 피가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란, 바란, 무람바가...무람바가...”


바리아는 하나 남은 오른팔로 불타고 있는 천막 안을 가리켰다.


“이런!!!”

“내가 간다. 바란!!!”


옆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다말이 불타오르고 있는 천막 안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바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미안하네. 바란. 내가 힘이 없어서...”


바란이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바리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아이들은?”

“노예 사냥꾼 놈들이...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바리아의 눈이 점점 감기며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지고 있었다.


“정신차리게. 바리아!!! 노예 사냥꾼?!! 레하타 패거리인가?!!”

“아니, 토쿠 패거리라고....했어....미안....내가....힘이...”


바란은 바리아를 거세게 흔들었다.


“정신을 놓으면 안돼!!! 바리아 정신 차리게!!!”


그때, 다말이 재 투성이가 되어 무람바를 안아들고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다말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란이 무서운 눈으로 다말을 쳐다보자 다말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란도 그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바란은 곧 다시 눈을 뜨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다말, 나는 바리아를 데리고 시후 지방령으로 가겠네. 그곳에 있는 신관들이라면 바리아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무람바는...”

“....이미 숨이 멎었어.”

“알았네. 이곳에서 뒤처리를 부탁하네.”


그리고는 바리아를 망토로 감싸고는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시후 지방령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늘 한 쪽을 온통 붉게 물들인 노을 아래로 해가 숨어들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황무지를 달리며 바란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바리아가 무사하기를.

그리고 원망했다. 자기 자신을.

소나아가씨에게 훨씬 전에 좀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다. 옳지 않다고. 그건 자신을 위한 것도, 모래바람족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그랬다면 굳이 시후 지방령을 들러서 오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무의미한 가정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다면...


바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소나를 말리지 않았던 건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지누크가 정말 어둠의 정령이 아닌지. 그를 지방령에 데려 가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대로 그를 놔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어쩌면, 스스로 아니라고 믿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몸값을 지불할 돈을 구하지 못한 것도 그 망설임의 원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모든 잘못들을 소나와 떨어지는 것 하나만으로 다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 핑계로 소나를 다시 보지 않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바란은 뛰어가며 목소리를 쥐어짜듯 속삭였다.


“바리아, 죽지마라. 죽지 마. 우나 여신께서 내신 시험을 잘못 푼 결과가 이것이라면 그 대가는 내가 받아야지. 왜 니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나. 바보같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죽지 마.”


바란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렸던 시절, 감옥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속에서 열불이 타올라 온몸을 불태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바란의 머릿속엔 소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가운 척 하는 표정과 검을 휘두르는 모습,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 자신에게만 보여줬던 그 햇살 같던 미소도.

지금 이 순간 바란은 미치도록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소나는 며칠 동안 시후 옆의 안달루 지역에서 머물고 있었다. 여관방을 하나 잡고는 그곳에서 그냥 숙식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며칠간을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오긴 했지만 소나 스스로도 자신이 잘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스스로도 경멸하는 행위가 아닌가? 바란이 보기에 얼마나 실망스럽고 추해보였을까.


사실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에게 추해 보이더라도 그의 목표를 이루는 데 내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오만이었다.

그렇게 실망하더라도 설마 자신과 갈라서는 결정은 내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니... 그렇지 않은가. 바란에게 자신이 뭐라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소나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며칠이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소나 아가씨!!! 안에 계시지요!!! 문 좀 열어주세요. 큰일 났습니다!!!”


코린의 다급한 목소리와 쾅쾅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찮았다. 그냥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면 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민도 됐다.


그러나 이내 요 며칠 코린이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방치해뒀었다는 자각이 떠올랐다.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 한심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있어. 그냥 들어와.”


코린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코린은 급하게 뛰어 들어온 것과는 달리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이 정말 심각한 일이 생긴 듯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


코린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가씨. 바리아와 무람바가 죽었답니다. 그리고...바란은 사형될 것 같답니다.”

“뭐?”


잠시 무슨 말인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멍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죽다니 무슨 소리야? 바란이 사형이라니? 우리가 거기서 떠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그런 소리를...”


그렇게 말하면서도 코린의 표정을 보며 소나는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진실이라는 걸.

코린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얘기해줘. 아는 걸 전부다.”


코린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코린이 시후로 다시 돌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소나가 방에 들어가 오일 동안 나오지 않을 때쯤이었다.

내내 안달루의 여관방에서 있는 것이 좀이 쑤셨던 것이다. 게다가 분위기 상 소나아가씨가 근시일내에 밖으로 나와 어딘가를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을 달려 하루면 갔다 올 수 있으니 시후로 가봐야겠다고 코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츄나양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시후의 바란과 다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인사도 없이 떠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달려 돌아간 코린이 본 것은 불에 타버린 천막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불길한 기분에 여관 ‘바람의 울음소리’로 달려갔다. 다행히 멀쩡한 여관의 모습에 안심하고 안에 들어갔더니 사색이 된 츄나양이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바란이 거의 죽어가는 바리아를 안고 시후 지방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지방령 건물도, 그 옆에 서있는 화야 여신을 섬기는 작은 예배당도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바란은 망설임 없이 지방령 건물 앞으로 돌진하며 소리쳤다.


“신관님은 어디 계십니까?!! 사람이 죽어가고 있소!!!!”


창을 든 채 건물 앞에 서있던 두 명의 보초들이 갑자기 뛰어온 바란에게 놀라 창을 들이댔다.


“웬 놈이냐!!!”


바란은 창끝을 목 앞에 대고도 상관하지 않고 절박한 목소리로 다시 크게 외쳤다.


“라오 신관님 어디 계십니까?!!!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렁찬 소리에 다급해진 건 보초들이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느냐!!! 이미 신관님은 잠자리에 드셨으니 돌아가고 내일 오너라!!!”


바란은 그런 보초들을 상관도 하지 않고 안쪽에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안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제야 바란은 보초들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바란, 지금부터 안으로 들어가 라오 신관님을 깨울 생각이오. 막지 않는다면 해치지 않겠소.”


그 말에 한 보초가 코웃음을 쳤다.


“이 놈, 미친놈이구나. 고이 보내주려 했더니 팔다리 하나가 잘려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만.”


옆에 있던 보초가 동료를 보고 다급히 속삭였다.


“제일, 저 놈 바란이야.”


그 말에 그게 뭔 소리냐는 눈으로 옆의 동료를 쳐다본 순간 창끝에 목이 겨눠지고 있던 바란의 몸이 순간 잔상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두 보초들은 양쪽으로 회전하며 튕겨나갔다.

순간이동을 한 듯 대문 앞으로 온 바란은 문을 열고 내원 안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라오 신관님!!!! 당신이 치료해 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나오지 않으시면 제가 직접 들어가 깨우겠습니다!!!”


우렁찬 소리가 내원 안에서 다시 한 번 울려 퍼지자 그제야 내관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잠시 후 내관의 문이 열리며 창을 든 병사들이 뛰쳐나와 바란을 둘러쌌다. 서른 명 정도의 병사들이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바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뒤로 역시 졸린 얼굴의 살찐 중년 남자가 외투만 하나 걸친 채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코스카 남작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지금 위급한 환자가 있어 본의 아니게 소란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바란이라고 합니다.”


둘러싼 병사들 사이에서 ‘저자가 바란이야,’ ‘왕실 무투대회 우승자?’ 라는 소리들이 웅성웅성 퍼져나갔다. 병사들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코스카 남작이라고 불린 살찐 남자도 그 말에 얼굴표정이 달라졌다.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얇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바란이라. 얘기는 많이 들었지. 엄청난 실력의 무사라던데. 그 실력을 믿고 이렇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건가?”


바란은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는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지금 저의 친우가 큰 상처를 입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여 신관님의 치료를...”


날카로운 목소리가 바란의 말을 끊었다.


“천한 수인족 따위가 내 앞에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이다. 한데 수인족인 니 친구가 죽어가는 것이 내 집에 쳐들어와 잠을 깨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말하고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저 놈을 당장!!!”


그의 말에 질끈 눈을 감았던 바란이 다시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이 사람을 치료해 준다면!!!!”


그렇게 말하고는 품 안에서 흑마석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흑마석을 남작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말에 남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바란이 들고 있는 검은 돌을 바라봤다. 짜증이 가득하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게...흑마석이라고?”


그리고는 바란과 그 흑마석을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게만 봐선 모르겠구나. 정말 흑마석인지 나에게...”


그의 말에 바란은 단호히 선언했다.


“제 친구를 치료해 주신다면 이 흑마석은 자연히 남작님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남작은 그 말에 분노한 표정으로 바란을 노려보았다. 바란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 눈을 마주 바라봤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남작이 사나운 어조로 바란에게 물었다.


“천한 수인족놈아. 자신이 있느냐?”


그 말에 바란이 천천히 대답했다.


“어느 쪽이든, 기대 이상의 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바란의 대답에 남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병사들에게 짜증내듯 명령했다.


“라오 신관님을 깨워와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신관의 의무이니 어서 오시라고 말씀드려라!!”


그런 남작을 보며 바란은 몸에서 힘을 풀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불려온 신관은 하얀 수염에 머리가 다 벗겨진 갈색 피부의 노인이었다. 잠에서 방금 깬 듯 대충 망토를 걸쳐 신관이라기 보단 농부처럼 보였다. 그는 바리아의 상태를 보고는 쯧쯧 혀를 찼다.


“너무 늦었군. 이미 이 세상에서 한발을 내딘 상태인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그 말에 바란은 신관을 보며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직 두 발을 다 띈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 친우를 살려주신다면 저의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런 바란을 보며 노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곤란해 보이기는 했지만 귀찮거나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자네 바란이라고 했지? 대단한 전사라는 소문은 들었네. 그런 전사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구만. 내 노력해 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말게.”


그리고는 병사들을 시켜 바리아를 자신의 방 안으로 옮기고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바란은 내관 앞의 마당에 주저앉았다.


아까 흑마석을 받고는 입이 귀에 걸려 안으로 뛰어 들어간 남작이 아무런 명령도 안한 탓에 어쩌지도 못하고 서있던 병사들도 우물쭈물 거리다 하나둘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밖의 보초들을 기절시킨 것은 문제화시키지 않을 모양이었다.


몇 시간 후 새벽이 되었을 때 다말이 도착했다. 바란의 이름을 들은 병사들도 이번에는 순순히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바란은 바닥에서 일어나 다말을 맞이했다. 오른손을 맞잡고 서로의 왼쪽 가슴에 손등을 차례로 갖다 댔다.


“고생했네. 다말. 무람바는?”


다말이 흙투성이가 된 몸으로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황무지로 보내줬네. 그 고지식한 친구, 갖고 있던 칼 이외엔 기념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더군. 허허허허...”


그의 메마른 웃음에 바란이 그의 손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마지막이라도 같이 보내줬어야 하는데.”

“바리아가 그 지경인데 거기서 시간을 끌었으면 그 친구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화를 냈겠지. 친구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긴 하구만. 어허허허. 허허... 바리아는...어떤가?”


그 말에 바란은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라오 신관님께서 최선을 다해 주신다 하셨네. 우나 여신의 뜻대로 되겠지.”


그 말에 다말도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바란은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말, 지금부터 나는 아이들을 찾으러 가려고 하네. 또 뒷일을 자네에게 맡겨야 하겠군. 미안하네.”


그 말에 다말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쳐들어 그를 바라봤다.


“어쩔 셈인가?”

“아이들을 되찾고 무람바와 바리아의 빚을 갚아줘야지.”


다말이 바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바란!!!”


그리고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란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들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네. 수인족이 인간족을 살인했을 때 사형이 구형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자네도 알지 않나?”


바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안되네. 무람바와 바리아에게 아무리 미안해도 자네가 구해내야 할 모래바람 족의 많은 사람들을 다 포기할 수는 없어. 참아야 하네.”


바란은 그 말에 잠시 입을 닫았다 다시 말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에게 뒷일을 부탁한다고 한 것이고. 다말. 자네 생각이 옳을 수도 있네. 분하지만 다 묻고 다시 동족을 구출하는 일에 매진하는 게 무람바를 위한 일일수도 있어.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다말. 생각해보게. 지금 이 일을 그냥 묻게 된다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바란의 물음에 다말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 다말을 보며 바란은 말을 이었다.


“난 그런 자들을 잘 알고 있네.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어뜯는 키요스같은 놈들이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물러난다면 그들은 집요하게 이런 짓을 반복할걸세. 우린 더 잃을 사람이 없어. 그들에게 경고해야하네. 우릴 건드리면 그들 또한 끝이라는 걸. 사실 다말 자네도 알고 있겠지.”


다말 또한 알고는 있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이고. 지금 여기서 물러난다면 어떻게 되는지. 하지만 그렇다고 바란을 잃을 수는 없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를 잃을 수는 없어. 자네 한 명의 무게가 얼마 만큼인지 자네는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차라리 내가 가겠네.”


그 말에 바란은 빙긋 웃었다.


“자네 실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들 패거리를 혼자서 상대하기엔 좀 무리이지 않겠나? 난 또 친구를 잃고 싶진 않군그래. 그리고 자네가 착각하는 게 하나있네. 일이 어찌되더라도 난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없어. 그런고로 날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얘기지.”

“물론 그 말도 맞네. 난 그만한 실력이 없지. 하지만 내가 가야하는 이유는 또 있네. 어쩌면...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사실 진작 말하려고 했었는데...”


다말은 여관‘바람의 울음소리’에서 코린과 함께 있었던 일들에 대해 바란에게 얘기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다말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바란은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거군. 다말, 착각하지 말게. 그때 일은 어쩔 수 없었어.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자네처럼 행동했을 거고 또 그걸 미리 말해줬다 해도 우리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을 거야. 그건 자네 책임이 아니네. 오히려...난 내가 좀 더 강경하게 소나아가씨의 뜻을 막고 바로 천막으로 돌아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네. 그렇다면 그건 내 탓이겠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다말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그 말에 바란이 빙긋 웃음 지었다.


“그렇지? 그럼 우린 서로 생각이 같군. 서로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얘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자, 그럼 이제 좀 더 실력이 괜찮은 내가 가면 되겠군. 그렇지 않나?”


다말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네는 정말...”


그리고는 깊은 눈으로 바란의 손을 꽈악 잡으며 말했다.


“뭘 하든 당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자네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군. 부디 몸조심하게. 부디 그대의 발걸음이 우나의 발걸음을 따라 걷기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거라고 믿겠네. 뒤를 부탁하네. 우리 모래바람족의 발걸음이 우나의 발걸음을 따라 걷기를.”


그리고 바란은 바로 몸을 돌려 지방령을 빠져 나갔다.

지평선조차 알아볼 수 없는 어두운 황무지를 바라보는 바란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돌이킬 수 없는 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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