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이계 표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새글

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19.07.18 06: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66,913
추천수 :
1,256
글자수 :
549,008

작성
19.04.08 08:35
조회
335
추천
6
글자
37쪽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8(재업)

DUMMY

토쿠 패거리는 신생 노예사냥꾼 집단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토쿠는 원래 에피제임에서 큰 노예사냥꾼 패거리를 이끌고 있다 다른 세력과의 다툼에서 몰락해 아사롬으로 이주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런 곳에서 세력을 키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부터 데리고 있던 마갑으로 무장한 3명의 부하와 함께 누구보다 잔인하고 포악하게 주변을 장악해나갔다.


근처에서 4개 이상의 마갑을 갖고 있는 패거리는 레하타 패거리밖에 없었다. 그런 만만치 않은 레하타 패거리에게는 살살 꼬리를 흔들며 비위를 맞추는 정치적 감각까지 지닌 토쿠는 자신을 견제하는 세력이 없는 틈을 타 이곳에 정착한지 1년 만에 50여명의 부하들을 이끄는 신생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매우 기분이 좋았다. 큰 세력들이 많아 힘든 세력싸움을 펼쳐야 했던 에피제임에 비하면 이곳은 낙원과도 같았다.

어제만 해도 별 노력 없이 6명의 아이들을 입수하지 않았는가. 에피제임이었다면 그렇게 거저먹는 물건들은 전혀 없었다. 항상 눈치싸움과 스피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들은 어젯밤부터 그들의 본부인 통나무로 만든 큰 오두막에서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미 모두 취할 만큼 취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어제 잡아온 수인족 아이들 중 여자아이 2명은 자신부터 시작해 부하들까지 끊임없이 범해 이미 울다 실신한지 오래였다. 지금도 실신한 여자아이에게 부하들이 달라붙어 하체를 놀리고 있었다.


“야이 자식들아. 적당히 해라!!! 그러다 죽으면 팔아먹지도 못할 것 아니냐!!!”


그 말에 부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아이들에게서 떨어졌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하체는 말라붙은 피와 정액들로 범벅이 되어 지저분해져 있었다.


“마지막 놈들이 좀 씻겨라. 상품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구매자도 값을 잘 쳐주는 거지.”

“크크크크 두목, 그건 이미 좀 늦은 거 아닙니까? 구멍이 이미 넓어져서 좋은 값 받기는 글렀는데요?”


그 말에 패거리 중 깨어있는 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나저나 두목 괜찮을까요?”


그 말에 토쿠는 자신에게 말을 건 부하를 쳐다봤다. 마갑을 입고 있는 건장한 체격과 길쭉한 두상을 갖고 있는 실눈의 사내였다.


“뭐가 말이냐?”

“저 것들을 가져온 거기 말입니다. 소문에는 그곳의 대빵인 바란이라는 놈이 엄청난 실력자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토쿠는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는군. 거기 있던 놈 실력을 보지 않았나. 마갑을 입으면 그런 수인족 쯤은 장난감에 불과해. 다 헛소문이었던 게지. 페스 너는 실력은 좋은데 예나 지금이나 간이 작아 문제야.”


그 말에 페스라 불린 사내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 간이 작은 제 말을 들으셨다면 에피제임에서 이런 촌구석으로 도망 올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 말에 토쿠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덕분에 우린 이런 낙원을 얻었지 않느냐? 무한한 가능성의 낙원. 이제 곧 이 빌어먹을 통나무집을 떠나 더 크고 멋진 집도 갖게 될 거고. 혹시 아나? 나중엔 시후 지방령에서 생활하게 될지.”


그 말에 페스가 다시 대답했다.


“뭐 시후 지방령도 그리 매력적인 건물은 아니던데 말입니다.”


그때 통나무집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말을 하던 페스와 토쿠도 뭔가 싶어 문 쪽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미친놈이!!! 문을 그렇게...”


문가에 서서 안을 살피는 남자는 밖에 서있던 보초를 서던 똘마니들이 아니었다.

건장한 체격의 갈색 고양이귀. 바란이었다.

바란은 방안을 냉정한 눈으로 주욱 둘러보고는 토쿠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토쿠인가?”


페스가 외쳤다.


“저 놈이 바란이란 놈이군요. 힘이여 오라!!!”


얇은 눈만큼이나 빠른 눈치였다. 시동어를 외운 마갑이 마갑의 외부에 새겨진 문양에서 노란 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페스를 만족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토쿠도 시동어를 외쳤다.


“힘이여 오라!!!”


토쿠가 입고 있던 갑주도 노란 빛을 내며 우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바란은 등에 맨 대도를 천천히 뽑으며 그들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차피 말을 섞기도 싫었는데 잘됐군. 미리 말해두지만 간단히 죽이진 않겠다.”


그 말에 토쿠가 폭소를 터트렸다.


“뭐? 푸하하하!!!! 재밌는 놈이로구나. 어디 간단히 죽이지 않는지 죽이지 못하는지 두고 보자. 참고로 나는 너를 간단히 죽여주마.”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있던 검을 잡고는 땅을 박찼다.

앞쪽의 공간이 순식간에 토쿠에게로 확대됐다. 토쿠는 마갑을 입고 느끼는 이 압도적인 느낌이 좋았다. 너무 황홀해 강간을 할 때만큼이나 흥분됐다. 그 흥분된 기분으로 바란에게 돌진한 토쿠는 온 힘을 다해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곰도 두 동강낼 법한 강맹한 일격이 바란을 두 쪽으로 갈라냈다.


“응?”


두쪽으로 갈라진 바란의 잔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토쿠의 오른팔이 갑자기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그 틈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 무슨. 으아아악!!!”


어느새 토쿠의 뒤쪽으로 온 바란은 다시 대도를 휘리릭 휘둘렀다.

순간 도쿠의 몸 주변을 대도의 잔영들이 감싸듯 빛났다 사라졌다.

그리고는 바란은 미련 없이 뒤돌아 페스 쪽을 바라봤다.

그런 바란의 뒤로 토쿠의 왼 팔과 두 다리가 피를 뿜으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이내 토쿠의 몸이 바닥으로 우당탕 떨어졌다. 토쿠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페스는 얼음이 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이미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그리고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모두 일어나!!!! 적이다!!!! 고투완!!! 케로!!! 마갑을 작동시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던 페스의 눈이 기둥에 묶여있는 다섯 수인족 남자 아이들에게 멈췄다. 그의 눈이 더 가늘어지고 입 꼬리도 가늘어졌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마갑을 입은 자신보다 빠를 수는 없을 테니 저 아이들로 인질을 잡고 시간을 끈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페스는 일단 땅을 박차고 아이들에게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 그 기둥 앞에 먼저 도착한 바란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그리고 다음 순간 의식이 사라졌다.

페스의 목을 깔끔하게 분리시킨 바란은 묶여있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구나. 몸들은 괜찮으냐?”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정신을 잃지 않고 있던 유조가 바란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근데 바란 아저씨. 무람바 아저씨와 바리아 아저씨가...”


바란의 눈이 부드러워졌다.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어디 갔니?”


그 말에 유조가 고개를 숙였다.


“두나와 피롱은...저자들이 씻긴다고 안으로 데리고 갔어요. 두나와 피롱이...”


거기까지 들은 바란의 눈이 침울해졌다.


“그래. 그렇구나. 알았다. 좀 쉬고 있으렴. 금방 끝내고 오마.”


그렇게 말한 바란은 도를 휘둘러 아이들을 묶고 있던 줄을 끊어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들까지 모두 일어나 무기를 뽑아들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의 몸엔 빛을 내는 마갑이 착용되어 있었다.

바란은 찬찬히 그들을 훑어봤다. 눈에 공포심이 깃든 자. 아직 제정신이 아닌 자. 투지를 불태우는 자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그간 너희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너희가 더 잘 알겠지. 오늘이 그 삶의 대가다. 잘 가라.”


그렇게 말한 바란은 팔에 힘을 주고는 허공을 향해 대도를 크게 휘둘렀다.


파앙!!!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통나무 집 안쪽의 공기가 폭풍이 일어난 듯 요동쳤다. 비틀거리던 몇 명은 그 바람에 휩쓸려 주저앉았고 집 안쪽을 밝히고 있던 4개의 등불들이 강풍에 휩쓸려 크게 일렁이다 꺼져 버렸다. 통나무 집 안은 갑작스런 어둠에 휩싸였다. 그 어둠 속에서 바란이 조용히 말했다.


“유조, 놀라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한 바란은 암흑 속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악!!!!”

“뭐야 뭐야!!!”


공포가 어둠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란은 몇 명의 목을 추가로 베어 버렸다. 어둠 속의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은 그에게 많은 감각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공기의 흐름, 냄새, 소리, 마나의 흐름 모든 것들을 통해 그는 밝은 낯과 다름없이 선명하게 적들을 볼 수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어디냐?!!!”

“다가오지 마!!!”

“이 자식!!!!”

“아악 나야!!!”


그 다음부터는 서로서로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베어갔다. 피와 공포가 가득한 난장판이었다.


바란은 먼저 마갑을 입은 두 명을 베어버리고는 한 쪽으로 피해 지켜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서로서로를 찌르고 베어간 그들은 결국 3명만 남기고 모두 쓰러져 버렸다. 남은 3명도 사방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사방에 신음 소리만이 가득했다.


“나와라 이 자식!!!!”

“오지 마. 오지 마!!!!”

“살려줘!!! 나는 끼어들지 않았어!!!”


그제야 바란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발자국소리에 안 그래도 공포에 질려있던 세 사람은 더더욱 움츠려 들어서는 고개만 여기저기 돌리고 있었다. 바란은 입을 열었다.


“너희가 한 짓들을 솔직히 털어놔봐라. 그럼...”


거기까지 말하자 그 중 한 명이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바란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바란이 있는 곳에 미치지 못하는 공격이었기에 굳이 피할 것도 없었다. 바란은 그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지켜보다 도를 사선으로 휘둘러 몸을 두 조각냈다.


“크아악!!!!”


그리고 다시 숨 막히는 침묵과 주변의 신음소리들. 잠시 후 한 명이 말했다.


“크, 크레일? 살아있어?”


대답이 들릴 리 없었다. 그러자 공포에 질린 한 명이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용서해줘!!! 용서해 주세요!!! 우리는 그저 레하타 패거리가 아직 민권을 받지 못한 어린 노예들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기에 찾아간 것뿐이요. 다 그 자들의 음모라구요!!!”


바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거기 있던 수인들을 헤친 것은 너희가 아니다?”

“그, 그건 어쩌다보니. 미안해. 아니,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바란은 기둥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꺼져 있는 모닥불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불꽃이 튀며 모닥불에 불이 붙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비추인 집안의 풍경은 끔찍했다.


방안이 온통 피에 절어 있었고,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과 그나마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이 짙은 음영을 남기며 온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2명은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


바란이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조용히 해라.”


그러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너희 둘을 살려둘까 한다.”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은 빛을 만난 듯 환해졌다.


“하지만, 너희가 지었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그러니 오른 팔 하나씩을 이곳에 놓고 가야겠다. 오른팔을 잘라라. 그럼 보내주지.”


이어지는 바란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사색이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물을 흘리면서도 덜덜 떨리는 오른팔을 자신의 무기로 내리쳤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잘리진 않고 칼이 박혀 피가 터져 나오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바란의 눈은 그저 무심할 뿐이었다.


“오래 기다려줄 생각은 없다. 10초 이후에도 팔이 붙어있다면 목을 잘라주지.”


그저 나지막이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의 반응은 격렬했다. 다시 고통을 참고 칼을 뽑아 들고는 잘 잘리지 않는 팔을 이를 악물고 잘릴 때까지 내리쳤다.

그 모습을 바란은 끝까지 냉정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들이 겪고 본 것을 모든 이에게 알려라. 모래바람 족을 건드리는 자, 지옥 끝까지라도 쫒아가 그 가족들까지 참살해 버리겠다. 내 경고가 우스워 보이는 자가 있거든 한 번 시험해 보라고 전해라. 언제든 환영이니까.”


그리고는 열려 있는 방 안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남은 두 사람은 상처를 움켜쥐고는 바란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바란이 들어간 방 안에는 두 명의 여자아이를 씻기러 들어갔던 남자 둘이 여자 아이들을 한 명씩 안고는 덜덜 떨며 서있었다.

아이들이 바란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아저씨.”


바란이 그들을 바라보자 한 명이 본능적으로 데리고 있던 여자아이의 목을 잡고 위협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며 의식을 잃었다.

순식간에 팔과 목을 베어 한 명을 죽인 바란은 다른 한 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한 명은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다시는 노예사냥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바란은 다가가 그의 팔 한쪽을 고통 없이 베어냈다.


“인질을 잡으려 하지 않은 것이 너의 목숨을 살렸다. 너 또한 지금 네가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을 사방에 퍼트려라.”


그리고는 도를 등에 매달린 도갑에 꽂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두나, 피롱. 아저씨가 너무 늦게 와서 너희들을 힘들게 했구나. 미안하다.”


그제서야 잔뜩 얼어있던 두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바란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으와와앙!!!! 아저씨!!!!!!!”

“그래, 그래. 괜찮다. 이제 괜찮아.”


단 1년의 짧은 시간동안 시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던 토쿠 패거리가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다.






레하타는 자신의 아지트에 틀어박힌 채 부하로부터 소식을 듣고 있었다.


“후우, 후우, 그래서. 후우, 바란 놈의 천막이 불타버렸다고? 후우, 후우.”


그 앞에 부하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그에게 말을 전달하는 중이었다. 주변 공간에는 20명 정도의 부하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잡담을 나누거나 무기를 손질하며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관심은 지금 이 대화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예, 토쿠 놈들이 갔을 때 마침 소나 공녀와 바란, 다말, 그리고 그 기사는 천막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거기 있던 성인 수인족 두 놈을 해치우고 수인족 꼬마들을 데려갔다는군요.”


“훅, 훅, 그래? 그놈들. 운도 좋군. 훅. 훅. 그나저나 실망인데? 같이 부딪쳐서 상잔하기를 바랐는데. 끄으응”

“아으윽!!!”


레하타는 한 참 자신의 하물을 밖아 넣고 있던 여자에게 사정하고는 그녀를 팽개쳐 버렸다. 일전에 붙잡았던 가족의 아내였다.

원래 계획은 한 번 부하들에게 돌리고 경고를 해서 풀어줄 계획이었지만 한 번 맛을 보니 꽤 괜찮은지라 남편은 죽이고 아들은 인질로 살려서 자신의 전용 장난감으로 쓰기로 결정한 터였다.

다른 부하들도 언제 레하타가 질리게 되면 그녀를 먹을 생각에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시면서도 앞에 있던 부하는 애써 시선을 레하타에게로 붙잡고 다시 말했다.


“뭐, 그 놈도 나름 전사라는 놈이니 복수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차피 서로 붙게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으흐흐흐.”


그 말에 레하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래서 머리를 못 쓰는 놈들은. 쯧. 자신의 동족들을 구원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놈이 그렇게 함부로 몸을 굴릴 것 같으냐? 이번 일로 몇 놈을 잃었든 그 놈은 토쿠 놈들에게 덤벼들기 힘들게다. 안 그러냐? 주카산?”


그러나 주카산은 방 안에 없었다.


“응? 주카산 못 봤나?”

“아, 제가 아까 정문 통나무집에서 보고 상황을 먼저 말했더니 심각한 표정이 돼서는 밖으로 나가던데요?”


그 말에 레하타는 괜히 찝찝한 기분이 됐다. 주카산이 심각한 표정이라. 뭔가 생각보다 안 좋은 결과인건가? 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자신의 머리로는 그걸 파악할 수가 없어 더 짜증이 났다.


“넌 나가서 빨리 주카산을 찾아와라. 당장 내게 오라고 일러라.”

“네? 네. 알겠습니다.”


레하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부하가 행여 불똥이 튈 새라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 나갔다.


“흠, 이런 기분이라니. 짜증나는군.”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발로 배를 퍽 소리가 나도록 찼다.


“아악!!!!!”

“자, 일어나서 빨아라. 지금부터 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네 아들 놈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리겠다. 이미 7개 밖에 안남은거 잊지 않았겠지?”


그 말에 여자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약에 취한 흐릿한 눈으로 일어나 읍 읍 거리며 레하타의 하물을 빨기 시작했다. 그 기분이 마음에 들어 레하타의 성난 눈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잠시 기분이 가라앉고 있던 레하타의 분노가 폭발했다.


“어떤 개자식이 문을 뻥뻥 차고 다니는 거냐?!!!!!”


문으로 들어온 건 아까 나갔던 부하였다. 다급히 들어와 레하타의 앞에 쓰러지듯 엎드린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두목, 큰일이, 큰일이 났습니다!!!”

퍼억!!!!


그리고 그 부하는 곧이어 날아온 레하타의 주먹을 얻어맞고는 저 쪽 구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큰일은 났겠지. 이제 내 놈이 죽도록 맞아야 할 테니 말이다.”


이죽거린 레하타는 목을 꺾으며 쓰러진 부하에게로 다가갔다. 그때, 레하타의 귀에 비명소리들이 들려왔다.


‘크헉!!’ 하는 멀리서 들리는 짧은 비명소리들이었다.


“응?”


레하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문 쪽을 바라봤을 때, 문에서 낯선 수인족 남자 한명이 걸어 들어왔다. 흙먼지에 지저분해져 잿빛으로 보이는 망토로 몸을 감싼 갈색 귀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깊은 눈의 수인족 남자. 바란이었다. 바란은 들어와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여긴 정말 쓸데없이 깊고 넓군. 누가 레하타인가?”


얻어맞고 날아간 놈을 보며 낄낄거리거나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던 레하타의 부하들이 순간 인상을 굳히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무기들을 뽑아 들었다. 챙! 챙!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레하타도 입고 있던 마갑의 시동어를 외웠다.


“힘이여 오라!!!”


레하타를 감싸고 있던 갑옷의 문양들이 노란 불빛을 내며 우웅 소리를 냈다. 그걸 보고 있던 바란이 태연하게 말했다.


“너인가 보군.”


레하타는 그 모습이 너무 불길하게 느껴졌다.

일단 여기까지 들어오기 위해선 긴 통로와 중간에 있는 2개의 방을 지나와야 한다. 그 2개의 방에는 부상당한 게로프를 제외해도 마갑을 입은 3명의 부하와 수십 명의 무기를 든 부하들이 있었다.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사이, 그들을 모두 통과해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제야 아까 자신에게 맞고 쓰러진 부하가 큰일이라고 외쳤던 것이 떠올랐다. 이야기나 들어보고 때릴 걸이라는 때 늦은 후회가 떠올랐다.


“누구냐. 네놈은?”


물어보면서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바란이지.”


레하타는 코웃음을 치고 다시 말했다.


“그게 뭐하는 물건이냐? 내가 네 놈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하냐? 더러운 고양이 새끼!!!!”


그 말에 바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알고 있을 텐데. 니가 이놈한테 내 집을 습격하라고 했다며? 그것도 바로 그제.”


그렇게 말하며 바란은 등에 매고 있던 무언가를 레하타에게 휙 던졌다.

레하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서 피한 후 땅에 떨어진 것을 쳐다봤다. 팔, 다리가 모두 잘린 채 머리만 남아 신음소리를 흘리는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어떤 것이었다.

대충 싸맨 팔다리가 있던 부분은 싸맨 천도 온통 피투성이고, 눈은 하얗게 까뒤집고 있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해도 레하타는 그가 토쿠라는 걸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싹을 밟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껄끄러워 손대지 못했던 놈이었는데.


“넌 2일 전의 것도 기억 못하는 저능아인가 보군.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야. 말을 섞을 지능도 없는 것 같으니.”


그 말에 레하타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헛소리마라!!!! 내가 저 놈에게 너희들을 치라고 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무단으로 가택을 침입하다니!!!!”


레하타의 말에 바란은 빙긋 보였다.


“증거라. 뭐, 그게 중요하겠냐 싶지만.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아 저쪽 방에 마갑을 입은 놈에게 물어봤다. 맞다더군. 솔직히 대답한 게 기특해서 죽이지는 않았지. 저기 저 놈처럼. 뭐하면 이따 서로 대화해 보던가. 아, 살아날 수 있다면 말이지만.”


레하타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부하들도 침을 꿀꺽 삼키며 움츠려 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해 버릴 수는 없었다.


“뭘 보고 있나? 상대는 고작 한 놈이다!!! 쳐라!!!!!”


레하타의 명령에 몸을 움츠리고 있던 부하들이 이를 악물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부하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레하타는 오히려 뒤로 빠지며 뒷문 쪽으로 달려갔다. 뒷문의 손잡이를 잡고서야 안심한 레하타는 뒤를 돌아봤다.


온 사방에서 둘러싸고 달려드는 부하들 사이로 바란이 자세를 낮추고 흡! 힘을 주는 모습이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레하타는 볼 수 있었다. 공간이 갈라지는 모습을.

어두운 동굴 안에 도광의 잔상이 온 세상을 상하로 분리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렇게 분리된 영역의 부하들이 위아래로 갈라져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크아아아악!!!!”

“아아악!!!!”


뒷쪽에서 그 영역에 닿지 않아 무사했던 부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칼을 떨어뜨린 채 주저앉았다.

레하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아, 안돼.”


그리고는 급하게 뒷문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뒷문으로 연결된 통로는 레하타만 이용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레하타가 모종의 장치를 해 놓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동굴의 기둥들에 폭발 마법진을 설치하고 그 마법진의 발동 스위치를 이 통로에 장치해 놨었다. 통로의 오른 쪽에 그려진 마법진 중심에 자신이 갖고 있는 마정석을 밖아 넣기만 하면 이 통로를 제외한 동굴의 모든 부분이 무너지도록.

문에서 5미터쯤 떨어진 마법진 앞으로 뛰어간 레하타는 마정석을 꺼내고는 광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이히히히히!!! 다 끝이다. 끝!!! 네놈이 아무리 강해 봤자지. 이 바위산아래에 묻혀버려라!!!!”


그리고는 마정석을 마법진 중간에 박아 넣었다. 근데 구멍의 약간 아래쪽에 마정석이 부딪혔다.


“뭐야?”


짜증을 내며 다시 마정석을 박으려고 하는데 마법진이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레하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철퍽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두 다리가 이미 잘려 버렸다는 걸.


“으아아아악!!!! 이게, 이게 어떻게!!!”


그리고 간신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니 바란은 어느 샌가 문 안쪽으로 들어와 도를 들고 서있었다. 레하타는 5미터 밖의 바란이 어떻게 자신의 다리를 잘랐는지를 바란의 도를 보고 깨달았다.


“오러...오러라니...”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황금빛 광채로 빛나던 바란의 대도가 서서히 빛을 잃고 평범한 대도로 돌아갔다.

바란은 천천히 레하타에게로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레하타가 공포에 질려 빠르게 말했다.


“살려줘. 나, 난 그저 주카산 그놈이 시키는 대로. 그래그래. 그 빌어먹을 수인놈. 그 주카산 놈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랬던 거야. 다 그놈이. 역시 검은 귀의 수인놈은 믿으면 안되는 건데. 그놈. 그놈이야. 그놈을 잡아야 한다고!!!”


바란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태연히 다가와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크군. 꽤 비싸겠어.”


그 말에 레하타가 얼굴에 화색을 띄었다.


“그, 그래. 그거. 원하는 거 다 줄게. 돈, 마정석, 여자. 뭐 또 원하는 거 있어? 내가, 내가 모래바람 족 노예들도 다 구해다가 줄게. 그럼 되지? 우린 좋은 동업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컵!!!!”


말을 하던 레하타의 입에 마정석이 틀어박히며 이빨이 몽땅 나가버렸다.

바란은 차가운 눈으로 레하타의 입에 마정석을 처넣고는 조용히 말했다.


“넌 오늘 죽는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기대해라.”

“읍, 읍, 므아아아아아압!!!!!”


방안에 주저앉아 레하타와 바란이 들어간 뒷문을 바라보던 레하타의 부하들은 그날 살아생전 다시 듣지 못할 끔찍한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딘가 억눌린 채 한 시간 이상을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고통의 비명을.

그것은 그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공포로 기억될 것이었다.


바란은 발동이 걸린 듯 토쿠 패거리와 레하타 패거리 이외에도 다른 세력이 큰 노예상인 패거리 하나를 지워버렸다. 시후의 황무지에 그의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바란은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사신, 갈색 베이모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후의 범법자, 노예 사냥꾼들 사이에 악마보다도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등극했다.

단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후를 다스리는 시후 지방령의 영주 코스카 남작은 골치가 아팠다.

자신이 다스리는 구역 내에서 이런 대량 학살이 일어나다니. 안 그래도 짜증나는 이 시후 황무지에서 어떻게 떠날 수 없을지 여기저기 줄을 대던 참이었는데 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지다니. 마수의 숲 카 네아로 가게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실제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짜증나고 또한 그래서 지금 자신의 앞에 묶여서 무릎 꿇고 있는 남자가 증오스러웠다.


“이 놈!!!! 무슨 배짱으로 스스로 온 것이냐!!!!”


팔과 몸통을 꽁꽁 묶은 채 무릎을 꿇은 상태였고, 십여 명의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 병사들의 눈에 공포가 서려 있는 걸 남작은 느낄 수 있었다. 남작 자신도 똑같은 감정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백 명도 넘는 인간들을 참살한 놈이 수배가 걸리면 도망이나 갈 것이지 왜 자수를 한단 말인가.

그때, 주변의 사람들 중 가장 태연해 보이는 사람, 바란이 입을 열었다.


“저의 상황을 알아주시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남작은 그 말이 더 어이가 없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 놓고 무슨 상황을 더 알라는 거냐!!!!”

“그들은 모두 악랄한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해친 악인들이었지요. 게다가 저의 천막을 습격해 민권을 갖고 있는 친우들을 해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구해낸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조금만 신경을 써 조사해 주신다면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아시게 될 겁니다. 부디 남작님의 공정한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조사를 받고도 그 죗값이 사형이라면 저는 그 결과를 다 받아들이고 깨끗이 죽겠습니다.”


그렇게 정중하게 말한 바란은 말을 마치고 남작을 향해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반항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진심어린 태도였다. 그러나 남작에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닥쳐라!!!! 네놈 때문에 내가 본 피해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갈아버려도 시원치 않다. 더러운 수인놈 같으니. 황제폐하의 소중한 신민들을 천한 수인놈 따위가 살해한 것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죄다!!! 내가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여 버리겠다!!! 당장 저놈을 가둬라!!!”

“예!!!”


병사들은 겁을 먹어 움찔움찔 거리기는 했지만 바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를 데리고 나갔고, 바란은 반항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작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 거리고 있었다.


바란은 병사들에 이끌려 걸어 나가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바란이 걸음을 멈추자 병사들은 모두 흠칫 놀라 한 발자국씩 바란에게서 멀어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바란은 뒤를 돌아 남작을 바라보자 씩씩 거리고 있던 남작도 흠칫 놀랐다. 바란은 남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작님, 저와 제 친우들도 아사롬의 민권을 갖고 있는 정당한 황제 폐하의 신민입니다. 그리고, 남작님께서 그들을 조사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혹시라도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다면...”


거기까지 말한 바란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작을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남작은 숨을 쉬기 힘든 느낌이었다. 우리에 갇히지 않은 맹수의 눈을 보는 느낌. 온몸이 묶여 있고, 주변엔 수많은 병사들이 있음에도 남작은 그런 느낌에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바란은 잠시 남작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병사들과 걸어 나갔다. 남작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저 더럽고 천한 수인놈 따위가...”


하지만 몸은 아직도 떨려오고 있었다.

남작은 굴욕감에 더욱 분노를 키웠다.


사실 바란의 말은 맞는 얘기였다. 이미 알고 얘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바란이 지워버린 3개의 집단은 코스카 남작에게 주기적으로 상납금을 내고 있었다. 척박한 시후 땅에서 남작이 돈을 모을 수 있는 길은 그런 범죄조직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남작 생각에는 그랬다.

남작은 그런 자신의 치부를 찌른 바란을 어떻게든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한 두려웠다.


남작은 사실 바란이 없애버린 레하타 패거리도 두려워했었다. 귀족이라곤 하지만 재산도 뭣도 없어 마갑을 착용한 무사 한 명 없는 코스카 남작에게 마갑을 몇 개씩 착용한 범죄 집단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그들의 상납금을 받으며 범죄행위를 눈감아 주었었다.

근데 그런 집단을 단신으로 멸절시키다니. 도대체 얼마나 강한건지도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를 사형시킬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남작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신관인 라우는 그런 남작을 속으로 혀를 차며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시절 소하라의 화야 신전 본관에서도 촉망받는 신관이었던 그는 고위귀족들의 더러운 짓거리와 그와 함께 정치판으로 변해가는 신전에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껴 이곳 시후로 스스로 내려왔었다.

그 후로 30여년, 이제 60세가 된 라우 신관이 시후에 있는 동안에 5명의 영주가 시후를 거쳐 갔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코스카 남작은 아주 악랄한 악당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단히 소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머릿속에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라우는 뻔히 보이는 듯했다.


‘조사하자니 자기의 죄가 들어날 것 같고, 죽이자니 무섭겠지. 쯧, 쯧. 사람을 다스리는 자가 소심하고 이기적이라는 것은 결국 다스려지는 사람들에겐 재앙일 뿐이지. 그냥 평범하게나 살았으면 악인은 아니었을 것을.’


코스카 남작을 보며 내심 혀를 차던 라우신관은 병사들에 둘러싸여 감옥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바란을 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범상치 않은 놈인 줄은 알았지만 정말 대책 없는 놈이었구만. 그렇게 조용하게 살던 녀석이 갑자기 피바람을 일으킨 건 시후의 노예사냥꾼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겠지. 적어도 저놈이 살아있는 동안은 시후에서 노예사냥꾼들이 활개 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리고 제 발로 남작 앞으로 걸어온 건 자신이 도살자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 앞으로 동족들을 구하는데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판단이었을 거고. 수인의 노예해방에도 도움 될 리 없지. 하지만 어설퍼.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놈이 죽어버리면 말짱 헛짓이 아닌가. 사형당하지 않고 다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라도 있는 겐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우 신관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깜짝 놀랐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화야 여신의 가르침을 추구하는 자신에게 이 아사롬은 화야 여신이 손대기 전 혼돈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젊은 시절, 그런 세상에 절망하고 시후로 온 후 라우는 그나마 때 묻지 않은 시후에서 세상과 떨어진 채 그런 절망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고민을 하게 하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 고민이 굳어있던 정신을 깨우고 있었다.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간의 자신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임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저 바란이라는 수인 무사가 화야 여신께서 자신에게 준 ‘하타의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계절을 관장하는 4남매신 중 여름을 관장하는 하타는 겨울의 여신 이루의 손을 잡고 있어 늘 추워하는 가을신 도타에게 자신의 뜨거운 몸 일부를 떼어 주었다고 한다.

그 작은 한조각의 온기로 가을신 도타는 형인 하타와 동생인 이루를 모두 사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늦은 가을 갑작스레 찾아오는 따뜻한 하루를 ‘하타의 선물’ 이라 불렀다.

그것은 또한 인생의 막바지에 찾아오는 뜨거운 사랑, 또는 운명을 뜻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잠깐 동안은 찾아오지만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따뜻한 행복을 선물해주는...


시후에 온 30년간 주어진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노신관 라우는 이제 30년간의 잠을 깨고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느껴졌다. 그래서 라우신관은 이례적으로 남작에게 말을 걸었다.


“코스카 남작, 어쩌실 생각이시오?”


일그러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코스카 남작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치려다 그 상대가 라우 신관임을 보고는 감정을 가다듬었다.


“신관님도 계셨군요. 뭘 어쩌겠소? 저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사형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오.”


라우 신관은 자신의 하얗게 센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인자한 눈으로 허허 웃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좀 아깝지 않으시겠소?”


그 말에 코스카 남작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깝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한 흉악한 범인을 코스카 남작이 붙잡은 거 아니요. 소하라에 보고하면 크게 치하 받을 일일 텐데 그냥 여기서 죽이고 끝내시려오?”


그 말에 코스카 남작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확실히 끌리는 말이었다.

사실 자기발로 걸어 들어오긴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면 자신의 공적이 아닌가. 그러나 역시 중앙에서 조사관이 나올 경우 자신이 범죄자들과 결탁한 사실을 들키게 될 까 불안했다. 그래서 그건 안 된다고 말하려 할 때, 라우 신관이 다시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 자는 공정한 조사 어쩌고 운운했지만 범죄자를 처벌하는데 그렇게 시간을 쓸 수야 있겠소. 소하라 신전에 연락하면 신전과 연이 닿아있는 분들께 부탁해 조사 없이 일을 빨리 처리할 수도 있을 것 같소만.”


그 말에 코스카 남작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 그게 정말이오?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신관님?”


그 표정을 본 라우 남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어디 안 되는 일을 꺼내기야 했겠소. 물론 코스카 남작께서야 저런 흉악한 범죄자는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으실 테니 제가 나서기 좀 그런...”

“아닙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신관님, 제가 중앙과도 연이 닿아 계신 줄 모르고 그간 결례를 범했군요. 범죄자도 처리하고 공적도 쌓을 수 있다면 제가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급박한 반응과 태도변화에 속으로 웃으면서도 라우 신관은 짐짓 생각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들려오는 거친 호흡소리에 그 심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라우는 속으로 셋을 세고는 눈을 떴다.


“그럼, 제가 한번 힘을 써 봐도 남작님께 폐가 안 되겠소?”

“그럼요. 그럼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소. 그럼 부디 그동안 저 수인을 잘 부탁드리오.”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을 하며 라오는 이제부터 어디다 연락을 해봐야 할지를 고민했다. 30년간이나 시후에 처박혀 있었기에 소하라와의 연 따윈 귀족은커녕 신관들 사이에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수를 써봐야 했다.


‘혼돈과 질서를 모두 사랑하시는 화야 여신이시여, 이 혼돈스런 세상에 한 가닥 질서를 세울 수 있게 미천한 종을 이끌어 주소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계 표류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6 19.06.08 503 0 -
73 5부 카 네아 18 NEW +2 17시간 전 94 3 18쪽
72 5부 카 네아 17 +4 19.07.16 159 2 16쪽
71 5부 카 네아 16 +1 19.07.14 165 4 12쪽
70 5부 카 네아 15 +4 19.07.11 207 5 14쪽
69 5부 카 네아 14 +2 19.07.09 204 3 13쪽
68 5부 카 네아 13 +1 19.07.06 217 3 13쪽
67 5부 카 네아 12-2 (외전: 그와 그녀의 평범한 하루) 19.07.04 192 1 20쪽
66 5부 카 네아 12 +1 19.07.04 188 5 18쪽
65 5부 카 네아 11 +2 19.07.02 209 4 11쪽
64 5부 카 네아 10 19.06.30 237 4 14쪽
63 5부 카 네아 9 (내용 추가) +3 19.06.27 284 5 18쪽
62 5부 카 네아 8 +1 19.06.25 289 7 17쪽
61 5부 카 네아 7 +1 19.06.23 322 11 14쪽
60 5부 카 네아 6 +2 19.06.20 335 8 13쪽
59 5부 카 네아 5 +2 19.06.18 345 11 12쪽
58 5부 카 네아 4 19.06.16 365 9 13쪽
57 5부 카 네아 3 +2 19.06.13 435 9 14쪽
56 5부 카 네아 2 19.06.11 440 10 23쪽
55 5부 카 네아. 19.06.09 464 9 17쪽
54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10(재업) 19.04.10 364 4 25쪽
53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9(재업) 19.04.09 312 5 19쪽
»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8(재업) 19.04.08 336 6 37쪽
51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7(재업) 19.04.04 364 4 30쪽
50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6(재업) 19.04.04 348 5 25쪽
49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5(재업) 19.04.03 382 4 38쪽
48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4(재업) 19.04.03 379 5 34쪽
47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3(재업) 19.04.02 419 5 18쪽
46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2(재업) 19.04.02 458 5 38쪽
45 2부 (외전) 갈색 베이모스 1(재업) 19.04.02 642 6 42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겨울반디'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