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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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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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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부 세상 속으로 1

DUMMY

“므오오오옹!!!”


트롤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두 쪽으로 쪼개졌다.


“이제 한 마리!”


트롤을 두 동강낸 대검은 바로 다른 목표를 향해 휘둘러졌고, 그 일격에 옆에서 달려들던 트롤의 팔이 깔끔하게 베어져 날아갔다.


“므오오오옹!!!”

“손 맛 좋구만! 으하하핫!!”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남자는 대검을 휘둘러 남은 한 팔마저 날려버리고는, 곧바로 트롤의 머리 또한 날려버렸다.


3미터가 훨씬 넘는 큰 체격의 트롤은 0.4리온의 마갑을 입은 남자에게 제대로 반항조차 해볼 수 없었다. 그저 숨을 거둔 채 쓰러질 뿐이었다.


자기 주변의 트롤을 모두 처리한 남자가 대검을 어깨에 얹고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무오오오옹!!”

“무오옹!!!”


주변에도 비슷한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동안 숲의 포식자로 군림했을 트롤 무리는 마갑을 입은 인간들의 공세에 무력했다.

그것은 거의 일방적인 도살. 학살에 가까웠다.


남자는 역시 학살에 참여하지 않고 일행의 중심에 서 있던 검은 피부의 거한에게 말을 걸었다. 팔짱을 끼고 모든 인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테푼 형님, 여기 진짜 엄청난데요? 대박이요, 대박. 이런 식이면 이번 한 번의 원정으로도 부자 되겠수.”


그러자 검은 피부의 남자가 냉정한 눈으로 그에게 대꾸했다.


“마음을 놓지 마라, 마네크. 이 정도까지 마수가 많아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여기엔 분명 트롤 따위가 아닌 무언가가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는 여전히 냉정한 시선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현재 이들이 마수를 학살하고 있는 이곳은 사박 산맥의 지맥인 도린 산맥.

사박산맥과 도린 산맥의 깊숙한 곳은 ‘카 네아’ 못지않은 마수의 천국으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사냥꾼들도 많아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근 몇 년간 이곳에 깊숙이 들어왔던 사냥팀들이 모두 전멸해 버렸던 것.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기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사냥꾼들 사이에서 이곳은 어느새 기피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랬던 지역을 지금 마갑을 입은 10여명의 남자들이 돌파하려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다.

모두다 0.4리온의 마갑을 착용한 실력자들인데다 비장의 무기까지 동행했으니...

절대 실패할 리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마정석이다!! 와하핫! 벌써 12개나 모았어!”


한 남자의 환호성에 옆에서 다른 트롤의 속을 뒤집던 한 남자가 혀를 내두르며 대꾸했다.


“나도 찾았다고. 오늘만 10개째. 여기 정말 엄청나군. 단 이틀 만에 이런 수확이라니. 정말 천국이야, 천국.”


남자들이 마수들의 시체를 뒤지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테푼이라는 검은 피부의 남자는 냉정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 옛 말에 독을 먹이려거든 그 냄새를 향기롭게 하라고 하지 않나. 우리가 지금 향기에 취해 독을 먹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그의 혼잣말에 옆에 있던 마네크란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에헤이, 형님. 걱정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뇨? 뭐, 미노타우로스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지만...그렇다 해도 무슨 상관이요. 우리에겐 소드마스터가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마네크가 쳐다본 곳. 일행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갈색 머리의 중년 남자가 서있었다. 이 와중에도 마갑도 착용하지 않은 채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그를 힐끗 본 검은 피부의 남자는 동의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이번 원정 수익금의 7할을 약속했는데.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방심하지 마라. 비싼 값에 모셔온 소드마스터가 나서기도 전에 네가 먼저 죽어버리면 말짱 꽝이니.”

“네이, 네이. 명심하겠습니다요. 그나저나 수익금의 7할은 좀 사기 아니요? 이렇게 수익이 많은데 좀 깎을 수 있으면...”


마네크의 말에 테푼이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뒤에 서있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나직하게 꾸짖듯 말했다.


“쓸 데 없는 소리 하지마라.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으면. 넌 소드마스터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거냐? 그들은 수익금이 얼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을 얼마나 세워줬느냐가 더 중요한 인종들이다. 여기서 어설프게 거래라도 하려고 했다간 마수도 아닌 우리가 오러에 전멸당하는 수가 있다.”


그 말에 마네크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알겠소. 미안하우. 난 그저 아까워서...”


그러자 검은 피부의 테푼이 입꼬리를 올리며 음침하게 말했다.


“그리 걱정마라. 이번에 길만 잘 뚫어놓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곳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마수만이 아닐 게다.”


그 음침한 웃음이 전염된 듯 마네크 또한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흐흐, 하긴 그간 못 잡았던 수인족 노예들도 잡아야 할 테니 말이요. 눈꽃 일족 여자라도 있다면 딱 좋을 텐데...”


음흉한 상상에 흐르는 침을 닦던 그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근데 이렇게 마수가 많은데 여기에 수인족들이 살 수나 있겠수? 다 죽은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 말에 테푼이 코웃음쳤다.


“흥, 도린 산맥으로 숨어든 수인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전멸당했을까. 염려마라. 원래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것들이니 마수들도 잘 대해줬을 게다.”

“크흐흐흐흐, 그렇겠죠?”


그때,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갈색 머리의 소드마스터, 제티치 라 필리프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굉장히 무료하고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그대들이 말한 엄청난 마수란게 정말 있긴 한 건가? 이틀이나 지났는데 만난 건 죄다 잔챙이들 아닌가. 이런 트롤들이나 보고 있자고 내가 굳이 여기 들어온 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마네크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그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제티치 자작님. 많이 지루하시지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자작님께 드릴 돈을 더 크게 불리려면 마수를 최대한 많이 사냥할 수밖에 없어서...앞으론 자작님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좀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요.”


자신에게 줄 돈이 늘어난다는 말에 제티치 자작 필리프는 코웃음을 치며 사뭇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흥, 말은 잘 하는구만. 설마 내가 돈 따위 때문에 여기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고, 설마 그럴리가요. 자작님 같은 고귀한 분께서 어찌 돈 따위에 움직이시겠습니까요? 많은 인명피해를 낸 그 마수를 처리해 주시려고 친히 시간을 내주신 거지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요.”


그렇게 간도 쓸개도 다 내줄 듯 비굴하게 웃으며 마네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까시네. 돈 아니면 여길 왜 따라 들어와? 돈 달라고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고귀한 척은 개뿔. 게다가 우리가 마수 죽이는 동안 편안히 걸어와 놓고 어딜 지루하다고 지랄이야? 씨발, 소드마스터만 아니었으면...’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마네크의 얼굴은 버터가 녹아내리듯 매끄러웠다.


“바쁘신 자작님 시간을 아껴드리려면 그놈의 마수가 빨리 나와야 될 텐데 이게 참...자작님 오시는 걸 알고 어디 도망간 거 아닌가 싶습니다요. 그래도 이전까지 실종된 팀들도 대략 이틀째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걸 보면 아마 저희도 내일쯤이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싹싹하게 말하는 마네크의 웃는 얼굴에 필리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하루 더 기다려보지. 대신 너무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는 말도록.”

“아이고, 그러무닙쇼.”


하지만 말하는 필리프도 대답하는 마네크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 마수무리를 만나면 또 멈춰서 사냥에 매진할 것임을.


아사롬 남부의 유명한 소드마스터인 제티치 라 필리프 자작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자신이 저런 저급한 것들과 이런 숲속까지 오게 되었는지...


저들은 모르고 있지만 소드마스터의 감각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다. 그렇기에 필리프는 저들의 속삭이는 대화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자작은 저들이 마수사냥꾼인 동시에 노예사냥꾼인 것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그래야 저들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속한 서남부 귀족연합, 속칭 남미리해 연합은 공식적으로 수인족의 노예화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 노예 사냥꾼들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그걸 모른 체해야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것이 더 씁쓸했다.


그는, 그리고 서남부 귀족 연합, 남미리해 연합은 현재 많은 돈이 필요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병력, 그리고 더 많은 마갑.


남미리해 연합은 현재 남부의 3강 중 하나인 테크론 백작가와 휴전 협정을 맺고 있는 중.

하지만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그 휴전 협정은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메아리보다 공허한 울림이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아마도 빠른 시간 내에 힘의 균형은 깨질 것이었다.


자신과 함께 남미리해 연합을 지탱하고 있는 3인의 소드마스터 중 일인이자,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네페란 백작이 현재 위독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곧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테크론 백작가에서 아직 자신들을 대놓고 건드리지 않는 두 가지 이유.

삼강 중 다른 두 백작가들과의 세력다툼, 그리고 남미리해 연합을 지탱하는 삼인의 소드마스터.

그 삼인의 소드마스터가 2인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


그렇기에 남미리해 연합은 최대한 힘을 불려야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마갑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고.


이것이 긍지 높은 소드마스터 필리프가 지금 이 도린 산맥의 깊숙한 곳에서 저열한 노예사냥꾼들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보다 더한 짓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필리프 자작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산속의 해는 금세 사라지고,

곧 어둠이 찾아왔다.


무리의 대장인 테푼은 다른 인원들에게 소리쳤다.


“오늘은 여기서 캠프를 차린다. 불침번 순서는 어제와 같으니 자다가 마수들에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한 남자가 크게 대답했다.


“염려마슈, 대장. 이틀간 벌어들인 마정석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졸지 않을 테니. 안 그래?”


그 말에 남자들이 왁자지껄 소리쳤다.


“당연하지!”

“난 이걸 돈으로 바꿀 생각에 설레어서 잠도 안 올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불침번 다 할까?”

“그럼 내 몫까지 네가 해라. 난 꿈에서라도 미리 마정석을 돈으로 바꿀 거니까.”

“뭐야? 그런 거면 양보 못하지!”


왁자지껄 떠들며 웃어대는 남자들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던 테푼이 다시 그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시끄러우니 빨리 식사나 차려라. 제티치 자작님께 드릴 식사도 챙기고.”

“그래, 우리 소드마스터님 시장하시면 다 죽을 줄 알아. 이 자식들아. 요리할 때 마수고기랑 헷갈리면 안 되는 거 알지?”


그 와중에도 필리프에게 아부를 떠는 마네크를 보며 남자들이 폭소를 터트렸고, 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보고 있던 소드마스터 필리프는 굳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마네크는 무척 싹싹하고 공손히 그를 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얘기하다보면 어쩐지 놀림 받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가만히 두자니 기분 나쁘고 울컥하자니 자기가 속 좁아 보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애매함. 그래서 필리프는 차라리 신경을 끄는 쪽을 선택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숲 속은 벌써 어두침침해져 있었다.

해가 진 도린 산맥 아래의 숲은 무척이나 어둡고 음침했다. 소드마스터인 필리프마저도 오싹해지는 깊은 어둠.


필리프는 부디 내일 모든 일이 끝나고 이 숲을 나갈 수 있기만을 빌었다.

저 빌어먹을 인간들과 이 오싹한 숲에서 빨리 멀어질 수 있기를...




*****




산맥의 그늘, 그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우뚝 서서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즐거운 듯한 눈으로.


저 빛은 아마도 인간들이 피운 것일 불빛.

또다시 그것에게 즐거운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너무 설레어 직접 찾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꾹 참고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내일 있을 즐거움을 기다리는 것 또한 그것에겐 참을 수 없는 유흥이었으니까.


어차피 내일쯤이면 자신에게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즐거운 하루가 되겠지.

그것은 긴 혓바닥으로 입을 핥으며 웃음 지었다. 맛있는 음식과 장난감들의 즐거운 발버둥.

내일이면 눈앞에 있을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며 그것은 녹색으로 빛나는 눈으로 꿈을 꾸었다.


작가의말

복귀 기념으로 연참 갑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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