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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20.01.24 21:43
연재수 :
1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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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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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7부 세상 속으로 4

DUMMY

하늘을 두껍게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혔다.

드디어 보게 된 파란 하늘과 환한 햇살.

3일 만에 해가 뜨는 것을 보다니 나름 감격스러운데?

근데...

이상하다.

뭔가 방향이 좀 이상한데?


“저게...왜 저기서 뜨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온 소리.

해가 저기서 뜨면 안 되는데...

저기가 동쪽이면 우리는 지금...


“왜 그래요, 지누크님?”


내가 멍하니 해를 보고 있으니 트리니와 쟈크, 로키도 뭔가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려 해를 바라봤다.

그러다 제일 먼저 이상함을 깨달은 쟈크가 입을 열었다.


“지누크님....설마...아니겠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나는 차마 울먹이는 쟈크를 마주보지 못하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런 젠장....”



**********



이틀 전.

열기구는 산맥의 중턱에 내려앉았다.

밤이었고, 온통 짙은 구름이 껴있어 어찌 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들은 일단 산맥을 내려가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틀 동안 하늘에 짙게 낀 구름으로 방향조차 판별할 수 없어 그냥 진로를 유지했었는데...


그 2일간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마치 ‘카 네아’로 돌아간 듯한 기분. 무슨 마수들이 그렇게 많은지...


생각하면 그것부터가 좀 이상하기는 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건 이곳이 사박산맥의 남쪽 지맥인 도린 산맥일 거고, 그래서 산맥을 내려가면 아사롬쪽, 그러니까 동쪽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런데...


아침 해가 산맥의 위로 뜨고 있었다. 우리 등 뒤, 우리가 이틀간 내려온 그 산맥의 위로.

이틀 사이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이 바뀐 게 아니라면 우리는 해가 뜨는 반대방향, 즉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카 네아’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얘기.

와우, 서프라이즈.


이런 XXX같은!!

대체 어디로 떨어진 거야?!!

이 망할 놈의 붉은 용 같으니!!!



*********



“그러니까 쟈크 네 말은 여기가 도린 산맥의 뒤편일 거란 말이지?”

“네, 아마 그럴 거예요. 방위상 그게 아니면 사박 산맥의 뒤쪽 ‘카 네아’ 안이란 얘긴데....설마 그럴 리는 없을 테니까요.”


트리니가 주변에 깔린 트롤들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정말 확신할 수는 있을까?”


방금 전 또 조우한 트롤 무리의 흔적이었다. 아니 잔해라고 해야 하나?


내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확실히 ‘카 네아’는 아니야.”


꼭 집어 왜냐고 말하면 대답하기 좀 그렇지만 확실히 여기는 ‘카 네아’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마수들의 느낌도 뭐랄까...훨씬 순하다. 좀 방어적이랄까.

거기서 두 달이나 있었던 나는 그걸 확실히 느낄 수 있지.


하지만 트리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불퉁한 어조로 말했다.


“지누크님은 2일 전에도 여길 내려가면 확실히 아사롬일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으음...날카로운데...


“그, 그때야 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그래도 이번엔 진짜 확실하다니까.”


그러자 찌릿한 눈으로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트리니가 한 번만 봐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이번에도 믿어드릴게요.”

“....그래. 고맙구나.”


그런 우리를 보며 쟈크가 킥킥거리고 로키도 빙긋 웃었다.


요즘 트리니는....뭐랄까 나한테 좀 개기기 시작했다.

퉁퉁거리며 떼를 쓰는 모습이 약간 말 안 듣는 여동생을 보는 느낌?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변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 같다.


이들을 만나고 이미 깨닫긴 했었다.

내가 어딘가 망가졌다는 걸...

하지만 망가진 사람이 자신의 문제점을 고치는 건 쉽지 않은 일.

어디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 건지 나는 감을 잡지 못했었다.


그 후, 그래도 선하고 밝은 동료들 사이에서 조금씩 자신을 회복하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 밤 열기구에서의 일을 계기로 나를 덮고 있던 무언가가 깨져버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갑자기 눈이 밝아진 듯.

미몽에서 깨어난 듯.

이제까지의 내가 다른 사람처럼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깨달았다.

이제까지의 나는 전혀 나답지 않았다는 걸.


나는 그토록 오래 백수생활을 한 주제에 자존감이 꽤 높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나라는 인간을 내 스스로 좋아했으니까.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잘못된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항상 유쾌함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이...

그리고 이 세계에 온 후 나는 나 스스로를 더 좋아하게 됐었다.


심지어 힘도 뭣도 없이 안바이람에 떨어져 죽을둥살둥 발버둥 칠 때조차도 유쾌함만은 잃지 않았었는데...

어떤 시련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항상 웃을 수 있는 멘탈이 내 최고의 강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어느 샌가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갑자기 밀려오는 쪽팔림.

내가 진짜 미쳤었지...


이걸 마이야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부끄럽다.

나를 위해 자기자신을 포기해준 여자 때문에 정작 나는 사이코패스가 됐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쪽팔려서 진짜...


아무튼 그간 해온 게 있기에 동료들 앞에서 갑자기 변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무언가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좀 달라졌다는 걸.

특히 트리니가 그걸 확 느낀 것 같았다.

저렇게 사정없이 개기는 걸 보면 말이지.


가끔 좀 난감하긴 한데 그런 그녀의 태도가 싫지는 않다.

꼭 동생 진영이를 만난 것 같은 느낌도 들고...또 이제야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의 편한 친구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무튼 꽤 즐겁다.


그 밤,

신비로운 운해 위에서 붉은 용과 조우했던 그 꿈같던 밤.

나를 깨우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날 밤 달빛이 비치는 운해의 아름다운 광경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먼지처럼 작게 느끼게 해준 초월적인 존재와의 조우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위해 하늘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 쟈크 때문이었는지...


다만,

그 모든 것들을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아름답고 무서웠으며 신비했던 경험을...




*****




“트리니! 발을 멈추지 마! 힘도 약하면서 스피드가 느려지면 어쩌자는 거야?! 쟈크! 눈을 크게 떠!! 겁을 먹는 순간 지는 거라고 했지?!! 로키!! 힘으로 부딪치지 말고 흘리라고!!”


뭐하고 있냐고?

싸움 구경...이 아니라 세 동료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는 중이지.

이왕 마수의 숲에 들어온 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어?


지도편달을 하는 자세치곤 너무 편안한 거 아니냐고?

뭘 그런 걸 가지고...

햇빛이 뜨거우니 나무 그늘로 들어온 거고 이왕 쉬는 거 편하게 쉬자고 누운 건데 뭘.


전투력 착취?

에이, 설마.

저런 트롤 따위야 아무리 잡아도 나한텐 수련도 안 되는 걸. 도움이 되는 애들이 하는 게 낫지.

다 애들 잘되라고 하는 거야. 설마 나 편하자고 이러겠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같다고?

그럴 수 있지.

원래 진리는 흔한 말 속에 있다고 하잖아?


근데....

누우니까 졸리네.


잠시 후, 10여 마리의 트롤을 모두 처리한 세 사람이 하품을 하고 있는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시체처럼 푹푹 쓰러졌다.

날 보는 눈빛이 독기로 가득 차있다고 느껴지는 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숨을 헉헉거리는 트리니가 이를 악물고 나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나쁜 자식.”


...아닌가?


“...트리니? 그건 트롤 얘기겠지?”


그러자 트리니가 코웃음쳤다.


“그럼요. 트롤 얘기죠. 이 나쁜 새끼.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어.”


그래, 맞네. 트롤 얘기네.

내 눈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이미 죽은 트롤들의 눈을 볼 수는 없잖아?

그럼그럼.


나는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박수를 짝짝 쳤다.


“자아, 그럼 또 가볼까?”


나를 째려보던 트리니는 물론 완전히 대자로 뻗어있던 쟈크와 로키 또한 헉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쟈크가 일주일은 밤을 샌 듯한 거무죽죽한 눈으로 흐느끼듯 말했다.


“또, 또 가요? 이제 막 끝냈는데?”


로키 또한 반쯤 풀린 눈으로 사정했다.


“지, 지누크님, 조금만 더 쉬면...”


하지만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의 시선을 단호하게 무시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이미 말했지? 극한 상황에 처해야...”

“자신의 진정한 저력을 알 수 있다구요? 네, 물론 그러셨죠. 하지만 저희는 이미 극한 상황에 쳐해 있었다구요. 벌써 이틀 동안이나...흑. 조금만 쉬게 해주세요. 조금만 더 쉬게 해주시면 제 모든 걸 지누크님께 드릴게요.”


트리니가 금세 눈에 독기를 풀고는 애써 가련하고 섹시한 여인을 연기하려 노력하며 내게 사정했다.

하지만...

이미 넝마가 된 몰골이 가련해봐야 얼마나 가련하다고.

그리고 섹시함은....거지한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자, 자 시끄럽고 빨리 일어나!! 셋을 셀 동안 안 일어나면 마수들 사이에 던져줄 거다! 하나! 둘!!...”


나는 지난 이틀간 이 셋을 마구 굴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꾸 개기는 트리니 때문에.......는 절대 아니다. 진짜다. 흠, 흠.


사실 이유는 이렇다.

트리니, 쟈크, 로키, 칼론 이 넷 중 가장 뛰어난 건 칼론이었다. 기본기도, 열정도, 성실성도, 심지어 재능마저도 넷 중 가장 뛰어났지. 그렇기에 짧은 시간임에도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었고.


그에 비해 이 셋은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씩 있다.

먼저 쟈크의 단점은 소심함.

노력도 재능도 괜찮은 편인데 그 겁 많은 소심한 성격이 항상 성장을 가로막는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자꾸 도망갈 생각만하니 실력이 늘래야 늘 수가 없지.


하지만,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는 법.

나는 그의 가능성을 보기로 했다.

그 얘기를 반대로 생각한다면 ‘두려움만 잊을 수 있다면 쟈크도 꽤 훌륭한 성장을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라고...


이게 내가 자크를 굴리고 있는 이유다.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 없이 전투본능만 남아있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그 효과는 벌써 꽤 나타나고 있다.


본인은 인식 못하는 거 같지만...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헤쳐 나오려다보니 투쟁심이 매우 향상됐다. 악에 받쳐 마수에게 달려드는데, 보는 내가 뿌듯할 만큼 저돌적이다. 가끔 그 독기를 나한테 뿜어내려 하는 부작용이 좀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잖아?

어떤 일이든 약간의 부작용은 있을 수 있지.

크으, 역시 굴리는 게 답이라니까.


두 번째, 트리니의 단점은 열정.

사실 그녀의 재능은 꽤 훌륭한 편이다.

특히 마나에 대한 친화력은 놀라울 정도지.

열기구 위에서 마나의 폭풍을 가장 먼저 느낀 것도 트리니였고...

내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걸 가장 먼저 느끼고 대응방식을 바꾼 것도 트리니였다.

그녀에겐 본능적인 감각이랄까 센스? 그런 게 있었다.

어쩌면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오러를 발현하는 건 트리니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그 좋은 재능을 갖고도 하고 있는 노력이 전혀 내 성에 차지 않는다.

본인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한국인의 고3과 취업전쟁을 겪은 나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노력은 그냥 취미생활에 불과한 수준. 나로선 도저히 용납해줄 수가 없다.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야지!

재능 아깝게 말이지.


고로 트리니는 굴릴 수밖에 없단 얘기다.

본인이 안하겠다면 하도록 만들어 줘야지.

그럼!


마지막으로 로키의 단점은,

의외로 재능이다.


검은 산족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로키가 재능이 모자라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로키의 경우엔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이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 버렸다.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보니 몸에 부드러움이 사라져버린 거지.


모든 운동이 그렇듯 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떤 동작도 제대로 소화할 수가 없다. 부드러움이 없는 강함 따윈 존재할 수 없는 거지.

이러한 부드러움, 자연스러움이란 것이 로키에겐 극도로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발전이 넷 중 가장 느릴 수밖에.


결국 로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몸에 힘을 빼는 방법이란 얘기.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로키를 굴리는 이유였다.

몸에 힘을 빼주려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지면 힘을 못주게 되잖아?

..........

개소리 같다고?

훗, 믿어라.

실제로 운동할 때 쓰이는 방법이니.

모든 힘을 다 소진시키고 자연스런 동작이 나오도록 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쓰여진 검증된 방법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난 이 셋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절대 사심은 없다.

아, 마갑도 못 입게 했다.

그걸 입으면 수련이 안 되니까.

그래서 지난 이틀간 이들은 마갑 없이 마수들과 구르고 있는 중이란 얘기지.


본인들이야 그저 죽을 것 같고 아무 생각도 없겠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마갑의 힘을 빌려 마수를 사냥하던 쟈크와 트리니는 이제 맨 몸으로도 트롤 2,3마리를 상대할 수 있는 진정한 마수사냥꾼이 되었고.

몸의 뻣뻣함이 사람보단 로봇에 가까웠던 로키의 동작도 이제 제법 유연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수련의 성과.

크으,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난 진짜 명교관이다.

무료로 가르치기 아까울 정도구만.


그리고 방금 만난 리자드맨들을 향해 달려가는 세 사람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

“죽여버릴 거야!!!”

“지옥에 떨어져라!!!”


.......음, 마수들에게 하는 얘기겠지? 그럴 거야.



*****



이틀이 더 지났다.

그 이틀 간 몇 무리의 마수를 더 만났고 세 사람은 더 많이 성장했다.

욕도 좀 많이 늘었고...


우리는 지금 도린 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쟈크가 의견을 냈던 여기를 벗어나는 두 가지 방법 중 첫 번째 안을 따르기로 한 것.


쟈크와 트리니의 말로는 남쪽으로 내려가 산맥이 끝나는 곳에서 아사롬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했다.

남쪽은 목적지인 수도 소하라의 반대방향이긴 한데...

그래도 도린 산맥을 넘어가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다.


저 첩첩산중의 깎아지는 절벽들을 타고 올라가 만년설 덮인 산맥을 넘는 것 보다야...

게다가 열기구가 불시착할 때 봤는데 여긴 와이번도 사는 것 같더라고.

절벽을 타고 올라가다 비행마수를 만나게 되는 건 절대 사절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도 있다.

마이야가 그렇게까지 하며 떠밀어준 돌아가는 길. 그 길이 더 멀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

하지만 늘 그랬듯 돌아가는 길이 서두르는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음을 믿는다.

지금 내 주어진 상황에 온전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내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 줄 것이라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말이지.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아루크 떼를 상대하는 세 사람에게로 정신을 집중했다.

거대한 청색의 아루크를 중심으로 무척 잘 짜여진 아루크 무리였는데 꽤 만만치 않다. 무척 지능적이고 단단한...

다른 마수들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들기보단 지휘관인 청색의 아루크를 중심으로 방어 위주로 셋을 상대하고 있다.

상당히 영리한데? 체계적이야.


거기에 대응해 세 사람도 삼각형으로 진형을 짜 마수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맨 앞에서 로키가 아루크의 공격을 받아 버텨주면 뒤에 있던 쟈크와 트리니가 달려들어 한 마리씩 죽이던가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방식.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진형을 짜는 모습이나, 중간 중간 로키에게 정신이 팔린 아루크들에게 쏜살같이 돌진해 기습을 날리는 모습들이 아주 훌륭하다.

칭찬해, 칭찬해.

이젠 단점들을 커버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들을 100% 끌어올리는 모습이라니....

흐뭇하구만.


게다가 오늘 아침 만난 첫 마수들이어서 그런지 아직 다들 쌩쌩하다.

욕도 별로 안하고 말이지.


참고로 그간 식사 준비와 야간 불침번은 나 혼자 담당했다. 그리고 잘 때는 마갑도 입고 자게 했고.

수면, 식사, 그리고 마갑의 회복마법이 혹사시킨 육체를 회복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인 거지.

굴릴 때 굴리는 것만큼이나 회복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다 저들을 위해서 이러는 거다. 절대 내가 움직이기 귀찮아서 이러는 게 아니란 얘기지. 뭐, 난 어차피 잠을 안 자긴 하지만 말이다...흠흠...


그때,

흐뭇하게 동료들을 지켜보던 내 심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감지됐다.

거대하고 위험하며 또...낯익은 무언가.


세상에...

‘카 네아’에서 두 달간 짱 박혀 있을 때도 다시 만나지 못했던 놈이었는데...


나는 상상도 못한 놈의 존재에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와우, 깜짝이야...저 녀석도 있다고? 여기 정말 ‘카 네아’인거 아냐?”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빛살처럼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다들 빠져!! 미노타우로스다!!”


내가 튀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놈이 숲 속에서 튀어나왔다.


“머어어어어어어!!!”


거대한 소머리, 그 위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뿔과 녹광이 빛나는 섬뜩한 눈. 6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격의 붉은 근육질 몸매.

여전히 솜털이 곤두설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내 일행들은 물론 아루크들 또한 공황상태에 빠져 놈을 바라 보는 중.


근데 나는 왜 저 녀석을 본 게 반갑지?

꼭 옛 친구 만난 기분이잖아?

반가움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반갑다, 친구. 우리 1차전은 내가 좀 얍삽했지? 함정이나 준비하고 말야. 그러니 이번엔...


“남자답게 부딪쳐주지!!!”


정면으로 달려드는 나를 향해 놈이 포효했다.


“머어어어어어!!!”


그리고 유성처럼 내리꽂히는 거대한 도끼.

그 순간 나는 가속해 빛줄기로 화했다.

쿠와아아앙!!!

운석이 떨어진 듯 폭발하는 대지, 그리고.

츄아악!!!

동시에 반쯤 갈라지며 피를 뿜어내는 녀석의 발목.

놈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른다.


“머어어어!!!”


축발을 베인 놈이 어쩔 수 없이 비틀거리는 사이.

나는 놈의 시선 사각. 뒤쪽으로 돌아갔다.


지난 번 미노타우로스와의 싸움에서 내가 고전했던 건 물론 내가 약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놈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 더 컸다.

놈은 오거만큼이나 커다랗지만 전혀 둔하지 않다는 걸 몰랐던 거지.

둔하기는커녕 속도와 반응속도가 거의 샤벨타이거에 육박하는 데다 무엇보다도 그 엄청난 집중력.

그런 상대를 일반 마수 잡듯이 상대하려 했으니 고전할 수밖에.


한 번의 일격에 온 힘을 실어 그 이후 허점이 훤히 드러나는 다른 마수들과 달리, 이놈은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조절할 줄 안다.

마치...

무술 고수처럼.


그렇기에 나 또한 이 녀석을 상대할 때엔 고수를 대하듯 상대했어야 했단 얘기지.

무슨 얘기냐고?

공격 이후의 허점을 노리는 게 아니라 공방중에 허점을 만들어 공격해야 했다는 얘기다.


방금 나는 일부로 속도를 적당히 조절해 녀석의 일격을 유도했다.

그리고 놈의 공격과 동시에 속도를 확 높여 발목을 공격했고.


그것도 먼 쪽 발을 노리면 피할 수 있으니 가까운 쪽 축발에다가.

아무리 반응 속도가 빨라도 힘을 실은 쪽 발은 쉽게 움직일 수 없거든.


그것으로 놈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사각으로 돌아간 지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다른 마수였다면 바로 급소를 노렸겠지만 이놈은 다르지.


놈이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도끼를 광포하게 휘둘렀다.

부아아앙!!


저것 봐라. 저 산맥이라도 쪼갤 듯이 터프한 수평베기.

무너진 자세와 놓친 시선에도 바로 내가 뛰어들까 도끼를 뒤로 휘두르잖아?

어설프게 머리를 노리고 뛰어들었다면 바로 저기 휘말렸을 거란 얘기지.

하지만!


슈아악!!

보라색 오러가 씌워진 내 검이 놈의 반대쪽 발목을 두 동강냈다.


“머어어어어어어!!!”


놈의 고통스런 비명.

그리고 균형을 잃고 앞으로 무너지는 상체.


난 고수를 상대하듯 놈을 대하는 중이다.

섣불리 한 방을 날리지 않고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거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시 내 위치를 발견한 놈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한 시선.

근데, 그래도 상관없거든!

슈아악!!

“머어어어어!!!”


놈이 앞으로 쓰러지며 땅에 받친 팔.

빛줄기가 되어 그 손목을 베며 지나갔다.

설사 움직임을 보고 있다 해도 반응할 수 없는 공격.


그리고도 나는 주변을 바람처럼 휘돌며 놈을 스치고 지나갔다.

녀석의 몸에 흠집을 내주며...


잠깐 사이 놈의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이젠 팔다리의 관절과 근육을 대부분 끊어버려 행동불능이 된 상태.


“므오오오오...”


놈이 애처로운 비명을 지른다.

거 가슴이 아프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근데 미안하지만 이제 안녕이다!


짜릿한 쾌감이 극에 달하며 이제 돌진해 마지막 일격을 목에 날리려는 순간.

푸욱!


“큭?!!”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내 허벅지를 꿰뚫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어버린 머리.


나는 정신없이 몸을 옆으로 날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이게 말이 돼?

화살이 내 속도를 따라잡는다고?

게다가 화살이 심안에 감지되지도 않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머리가 멍해질 만큼...

나는 도무지 이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계표류기 지도1.jpg

이계표류기 지도2.jpg


작가의말

9700자.

두 편으로 나누고 싶은 충동을 매우 크게 느꼈지만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그냥 올렸습니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다시 1인칭으로 하니 진욱이 잡생각이 엄청 많아져 분량을 잡아먹더라구요^^;;

스토리 전개는 안 하고 자꾸 주절주절 떠들어서...

아무튼 다시 1인칭을 시작하니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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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아사롬 인근 지도 19.11.17 434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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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8부 남부전선 21 +6 20.01.24 317 22 17쪽
140 8부 남부 전선 20 +9 20.01.23 410 19 18쪽
139 8부 남부전선 19 +10 20.01.21 441 22 9쪽
138 8부 남부전선 18 +6 20.01.21 396 18 11쪽
137 8부 남부전선 17 +16 20.01.18 482 26 17쪽
136 8부 남부 전선 16 +10 20.01.16 488 26 15쪽
135 8부 남부전선 15 +7 20.01.14 524 25 17쪽
134 8부 남부전선 14 +15 20.01.11 580 36 18쪽
133 8부 남부전선 13 +18 20.01.09 592 31 13쪽
132 8부 남부전선 12 +10 20.01.07 585 32 18쪽
131 8부 남부전선 11 +6 20.01.07 508 25 19쪽
130 8부 남부전선 10 +12 20.01.04 620 28 12쪽
129 8부 남부전선 9 +17 20.01.02 639 31 13쪽
128 8부 남부전선 8 +3 20.01.02 541 28 12쪽
127 8부 남부전선 7 +6 19.12.31 632 36 14쪽
126 8부 남부전선 6 +7 19.12.28 676 32 15쪽
125 8부 남부전선 5 +12 19.12.26 717 34 18쪽
124 8부 남부전선 4 +9 19.12.24 716 35 18쪽
123 8부 남부전선 3 +13 19.12.21 784 30 17쪽
122 8부 남부전선 2 +11 19.12.18 758 34 12쪽
121 8부 남부전선 1 +15 19.12.16 845 34 22쪽
120 7부 세상 속으로 16 +12 19.12.12 867 37 17쪽
119 7부 세상 속으로 15 +5 19.12.09 776 26 13쪽
118 7부 세상 속으로 14 +6 19.12.07 787 36 17쪽
117 7부 세상 속으로 13 +14 19.12.05 804 38 16쪽
116 7부 세상 속으로 12 +3 19.12.03 813 36 14쪽
115 7부 세상 속으로 11 +2 19.12.01 873 3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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