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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20.01.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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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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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0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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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9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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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8쪽

7부 세상 속으로 5

DUMMY

푸학!

아, 아프다.

나는 허벅지의 화살을 거칠게 뽑아내며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마갑을 입고 사방을 경계해!! 감지가 안 되는 이상한 화살이 날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푸욱!!

“크윽?!”


내가 시선을 돌리는 그 짧은 사이 또 하나의 화살이 내 반대쪽 허벅지에 꽂혔다.

그것도 아까 화살이 날아온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대체 뭐지?

이게 한 명이 쏜 거라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긴 거다.

그것도 내 심안에 감지되지 않는 상태로.


그리고 만약 이런 화살을 쏠 수 있는 게 한 명이 아니라면....그건 더 심각한 얘기가 돼버리고.


나는 다시 화살을 뽑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이젠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심안을 내 것으로 한 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닌가?

저게 다리를 노려 다행이지 처음부터 머리를 노렸다면...


휘익!

나는 순간 오른쪽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곤 몸을 회전시켜 내가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더니.

시익!

아니나 다를까.

내 있던 자리를 빛줄기가 되어 소리 없이 지나가는 화살.

그것도 눈으론 보이는데 여전히 심안에는 감지가 되지 않는다.

뭐야? 저건 대체. 환상도 아니고.

니므의 화살 버전인가?

그리고 지나간 위치를 보니 이번엔 팔을 노린 모양.


답답하다.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 기분.

지금 내가 화살을 피한 것도 그걸 느끼고 피한 게 아니다.

지금쯤 내 뒤쪽에서 쏘지 않을까 싶어 그냥 몸을 날려본 거지.

한 마디로 계산으로 피했다는 건데...그걸 한 번 더 할 자신은 없거든.


쿨론 요새에서 나는 최강의 저격수로 이름을 떨쳤었다.

활솜씨도 활솜씨지만 심안의 위력이 컸지.

어떤 빠른 움직임도 잡아내 정확히 저격해버리는 내 화살을 보고 동료들은 나를 신궁이라 불렀었다.


근데...

개구리가 된 기분이잖아? 이런 젠장.

어떻게 이런 저격수가 있을 수 있지?

그리고...이런 경우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지?


찰나의 고민 후 최선을 찾지 못한 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상대를 잡아낼 수 없다면 일단 맞지는 않기로.

도저히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는 저격수에 대응하기 위해 맞출 수 없는 과녁이 되어주기로 한 것.


내 몸이 한줄기 바람으로 화했다.

나는 속도를 올려 주변을 불규칙하게 돌기 시작했다. 이미 마갑을 입은 동료들도 눈으로 쫓아오기 힘들만큼의 속도.

허벅지의 상처는 이미 재생했고,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의 최고 속도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주변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대체 어디냐? 어디에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저격수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위치를 잡을 수 없는 저격수와 화살로 맞출 수 없는 과녁의 대결.


나는 다음 화살을 기다렸다.

한 번만 더 화살이 날아오고 내가 그걸 피해낼 수 있다면...

그땐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화살이 날아온 곳을 덮칠 생각이었다.

심장에 무리가 간다 해도 말이지.


아마 그 한 방으로 승부가 결정되겠지.


그걸 상대도 느낀 것인지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선가 그 자도 내 틈을 노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남은 기회가 한 번 뿐이라면,

이번 화살은 높은 확률로 내 급소를 향하겠지?


시간이 흐르고,

속도를 조절하며 주변을 원형으로 도는 내 움직임에 대기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는 대기.

일행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없이 이 상황을 지켜봤다.


그때 이 대결의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머어어어!”


미노타우로스가 끊어진 관절과 근육을 거의 회복시킨 듯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 그래.

너 아직 있었구나?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와중에 저 놈까지 끼어들면...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화살을 쏠 수 있다는 건 사람이긴 하단 얘긴데 왜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나를 공격한 거지?

설마...저 놈과 같은 편?

그게 말이 되나?

사람과 마수가 같은 편이 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가정에 고개를 저을 때 앞으로 엎어져 있던 놈이 팔을 받치고 거대한 상체를 힘겹게 일으키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

내 동료들의 능력으론 아직 저 놈을 상대하긴 이르겠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슈악!

내 몸이 상체를 일으키는 놈의 뒷목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측면에서 소리 없는 빛줄기가 내 다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샤아악!


다음 순간 화살에 꿰뚫린 내 잔상이 사라졌다. 그 순간 내 몸은 이미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빛줄기처럼 쏘아지는 중.

그리고 최고 속도로 돌진한 수풀 사이에서,

드디어 저격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잡았다!!”


내 눈에 그, 아니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놀라서 동그래진 눈과 당황한 얼굴.


“응?”


나 또한 살짝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저격수의 팔을 뒤로 꺾으며 복부에 가볍게 손을 갖다 댔다.

출렁!

“아윽!!”


극도로 긴장했던 것에 비해선 싱거울 만큼의 쉬운 결말.

그렇게 내 발경에 저격수가 몸을 구부리며 바닥에 주저앉는 것으로 우리의 대결은 끝이 났다.


아까 계속 그 상태를 지속했다간 불리해질 거란 판단 하에 나는 모험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 두 가지에 주목했다.


하나는 저격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목숨을 노린 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편일지도 모르겠다는 것.

이 두 가지에...


적인 내 급소를 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편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미노타우로스의 목숨을 노릴 때 급하게라도 나를 공격하려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서 허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그래서 미노타우로스를 덮쳐 가면서도 시선은 뒤쪽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순간이동으로 방향을 바꾼 후 가속해 상대를 덮친 거지.


생각이 적중해 상대를 잘 잡기는 했는데...


나는 배를 움켜쥐고 겁먹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저격수의 목에 칼을 대고는 황당함을 느꼈다.


이건...


“어린애잖아?”


그것도 17, 18살이나 됐을 법한 예쁜 여자아이.

이 소녀가 그 저격수라고?

그리고 이상하다.

이 소녀 분명 처음 봤는데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잡았다는 내 외침에 몸을 날려 내 쪽으로 온 일행들 또한 소녀를 목격했다.

트리니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세상에....이 아이...다크엘프 아니에요?”

“응?”


다크엘프라고?

그러고 보니...

귀가 기억의 호수에서 봤던 엘프들과 똑같다.

한 눈에 못 알아본 건 순백의 피부를 가진 엘프들과 달리 건강한 검은 색의 피부였기 때문에...


이 아이가 진짜 다크 엘프라고?

나는 새삼 신기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다크엘프라는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귀가 축 쳐지며 더 기가 죽은 듯 보이는 그 소녀를.


그때 로키가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저 미노타우로스를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 그렇지.

까먹을 뻔했네.


“다녀올 테니 잘 지키고 있어. 뱃속이 엉망이라 제대로 움직이진 못할 테지만 절대 방심하진 말고.”


그리고 놈을 향해 몸을 날리려 할 때,

다크엘프 소녀가 소리쳤다.


“안돼요!!”


나는 몸을 날리려다 말고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절박한 표정으로 내게 사정했다.


“부탁드려요! 제발 저 아이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절대 여러분께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할게요! 제발요...”


그런 가정을 하긴 했지만 진짜 미노타우로스와 한 편이었던 모양이다.

당황스럽네. 이게 가능한 거였구나.


하지만 놀라운 건 놀라운 거고 무리한 부탁은 무리한 부탁인 거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해라면 이미 끼친 것 같은데? 저 녀석은 우리를 습격했고 나를 죽이려고 했어. 살려달라고 말하기엔 뻔뻔한 거 아닌가?”


내 말에 다크엘프 소녀는 맺혔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그건 제가 부탁한 거였어요. 여러분이 아루크들을 죽이고 있어서 그걸 막아달라고... 다 제 탓이에요. 그러니 저 아이는 제발...”


와우, 아루크들도 한 편이었어?

뭐야? 이 아이. 마수 조련사라도 되나?

나는 솟구치는 호기심에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아루크들 또한 우리를 해치려 했다. 그럼 죽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말에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 아이들은 다른 곳의 아루크들과는 달리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아요! 단지 자신들의 둥지를 침입 당했기에 공격한 것뿐이에요! 제발...저 아이들을 더 이상 해치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아까의 기억을 떠올렸다.

확실히...내가 먼저 심안으로 아루크들의 존재를 읽고 습격하기는 했었는데...


이건...좀 묘한데?

어쩐지 마수를 상대로 가해자가 돼버린 것 같은 이상한 느낌?

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듯한 찝찝함에 무릎을 굽혀 그녀와 같은 눈높이로 맞춘 후 설득하듯 말했다.


“그 말이 맞다면 우리가 잘못했단 얘기가 되는데...미안하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구나. 마수란 존재가 사람을 습격하지 않는다고? 얘야, 넌 잘 모르겠지만 나는 마수가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어. 그들은 우리와 달라.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마기가 결정체를 이루어 형성되지. 그런 존재를 우리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건...”

“저도 그래요!!”


내 말을 끊고 절박하게 소리치는 그녀를 나는 멍하니 바라보며 되물었다.


“....뭐?”


다크엘프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어조로 절규했다.


“엘프들도 그렇다구요! 엘프는 세계수의 기운이 뭉쳐서 태어나요. 가지에서 맺힌 기운엔 엘프가, 뿌리에서 맺힌 기운에선 다크엘프가 태어나죠. 부모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등한 존재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저 같은 다크엘프가 싫다면 부디 엘프들을 생각해 주세요. 그렇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멍하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


그래, 그거였구나. 그거였어.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해서 대등한 존재가 아닌 건 아니라고? 하하...그렇지. 그랬네. 그랬었구나...하하하...”


며칠 간 고민했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



자신을 에유니라고 소개한 다크엘프 소녀는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완전히 회복해서 일어난 미노타우로스를 대화로 설득해 돌려보냈던 것.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무슨 외계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마수와 정말 소통이 가능하다니.

게다가 나와 그렇게 싸웠던 놈을 설득해서 돌려보내기까지 하다니...

열기구에서 봤던 드래곤과는 다른 의미로 상식 밖의 존재.


그리고는 우리에게 학살당한 아루크 무리들에게 달려갔는데...

거기서 또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그녀가 마수들에게 치유력을 발휘한 것. 손에서 나는 희미한 빛으로 부상당한 아루크들을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뭐야? 저 애는?

마수 조련사에 치료사, 게다가 저격수를 겸한 거야?

나 정도면 나름 다재다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여러 가지로 충격인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굳은 표정으로 로키가 내게 다가왔다.



**********



에유니는 죽어가는 아루크들에게 사력을 다해 치유력을 전개했다.

로란드 이외엔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능력을 알게 되면 모두들 자신을 이용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절대 남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는데...


다행인건 저들의 리더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자신에 대해 이제껏 본 적 없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그녀가 사람들에게 받은 일반적인 반응은 경멸과 탐욕.

그녀가 만나 본 사람들 중 로란드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다크엘프인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봤었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을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봤었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모두 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달랐다.

특히 저 검은 머리의 남자.


인간이면서 미노타우로스를 힘으로 제압하는 놀라운 실력.

게다가 바람의 정령으로부터 가호를 받는 자신을 결국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건 마을의 수호신인 카예리님조차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강자.


게다가...

그는 신기한 듯 자신을 바라보긴 했어도 그 시선엔 어떤 경멸도 탐욕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곤 무척 당황해하기만 했지.

에유니는 그 표정이 어쩐지 잊혀지지 않았다. 한없이 강하고 위험해 보이던 전사가 지은 그 우스꽝스런 표정을...

아루크를 치료하면서도 그 표정이 자꾸 떠올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힐끗힐끗 바라보곤 했다.

어쩐지 자꾸 신경이 쓰이는 마음.


어쩌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봐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젠 할머니가 된 로란드처럼...

그리고.

어쩌면 자신을 구원해줄 꿈에 그리던 왕자님일지도 모른다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그의 곁으로 일행인 검은 산족의 남자가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며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엘프의 청력은 다른 어떤 종족들보다 뛰어나기에 에유니는 그 말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검은 머리의 남자에게 말했다.


“지누크님, 전설에 따르면 다크엘프들은 마룡 헤와이 카 예아의 부하였습니다. 그때도 그들은 아루크나 샤벨타이거 같은 마수들을 타고 다니며 옛 영웅들과 싸웠다고 하지요. 만약 저 아이가 가진 능력이 그런 것이라면 저 아이는 너무 위험합니다. 전설과 같은 능력을 가진 마룡의 추종자, 그 후손이라니... 저 아이를 믿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쿵!

마음에 돌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루크에게 치유력을 쓰고 있는 에유니의 손이 덜덜 떨렸다.


마룡의 추종자, 그 후손.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그녀의 원죄.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 굴레를 벗어나기는커녕 죗값을 갚을 수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증오와 경멸을 말없이 감당하는 것뿐.


수없이 원망하고 증오했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그 굴레에 가둔 조상들과 다크엘프라는 존재로 태어난 그녀 자신을...


익숙한 절망감과 체념이 그녀를 덮쳤다.

역시...타인의 호의가 담긴 시선 따윈 그녀에게 주어진 몫이 아니었으니...

그녀를 구원해 줄 왕자님 따위는 그저 동화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 그것도 그녀가 아닌 다른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에유니의 귀가 축 늘어지며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때 검은 머리 남자가 입을 열어 검은 산족 남자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그걸 듣던 에유니의 눈이 번쩍 뜨이고는 점점 커졌다.

그가 대답했다.


“아니, 저 아이의 조상들은 잘못했을지 모르지만, 저 아이는 잘못한 적이 없어. 오히려 잘못한 게 우리였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해냈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가운데 그는 에유니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올곧은 눈과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로키, 만약 저 아이가 정말 위험한 아이이고 우리를 죽일 마음으로 움직였다면 나보다 너희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거야. 그리고 너희는 그 화살에 반응하지 못했겠지. 나 또한 그걸 막아주지 못했을 거고 말이야. 그리고 또 나와 싸웠던 내내, 저 아이는 단 한 번도 나를 죽이기 위해 화살을 쏜 적이 없었어. 그 급박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다리를 노렸었지. 저 아이의 진심은 명확하다.”


아아아...


에유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처음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진심을 읽어주고 믿어준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

다크엘프, 마룡의 추종자가 아닌 그저 에유니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해주다니...

그의 말, 그 눈빛에 에유니는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



문득 내 기억이 노포크 노예수용소의 일들을 되짚었다.


내 친구들.

밤소리족 토로라는 이유로 멸시받던 포투와 견인족이란 이유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드나우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도저히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포투의 그 선한 마음과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드나우의 고마운 마음을...


“로키, 너를 노예로 만든 자들이 옛 영웅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잊지마. 저 아이가 마룡의 추종자, 그들의 후손이기에 멸시받아야 한다면 너희를 노예로 만든 영웅들의 후손들 또한 원망해선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다크엘프 소녀와 눈을 맞췄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내 말이 그녀의 힘들었을 삶에 부디 조금의 위로가 되기를.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아이가 조상들처럼 잘못한 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조상들의 죄를 저 아이에게 전가시켜서는 안 돼. 저 아이가 지은 적이 없는 죄를 떠넘기고 갚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그저 약자를 괴롭히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건 정말 비겁한 짓이라고, 그리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아루크들을 치유하던 에유니는 이제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흐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 맺힌 서러운 눈물이 이제껏 그녀가 살아왔을 삶을,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기억해 냈다.

내가 그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의말

오늘도 8300자.

1인칭으로 돌아오니 분량조절이 안되네요^^;;

혹시 분량이 많아 읽기 힘드신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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