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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20.01.18 17:31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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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6
글자수 :
1,00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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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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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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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1쪽

7부 세상 속으로 8

DUMMY

우리는 여러 종류의 과일을 잔뜩 따 가지곤 동굴로 돌아왔다.

에유니는 돌아와서도 내내 행복한 표정으로 트리니와 재잘거리다가는 밝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에유니가 돌아가자 트리니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으흐흐, 지누크님, 데이트는 즐거우셨어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데이트는 무슨, 이제 십대 여자애를. 그런 건 데이트가 아니라 청소년 인솔이라고 하는 거다.”


그 말에 트리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10대 여자애요? 뭐, 외모야 그렇긴 한데...에유니는 다크엘프잖아요.”

“응, 그렇지. 다크엘프지. 근데 그게 왜?”

“제가 알기론...엘프나 다크엘프는 수명이 400년쯤 된다고 하던데요?”

“.....그랬...지?”

“네 그래서 100살쯤 돼야 인간의 20대와 비슷해진다고...”

“...그래?”

“그렇죠, 그러니까 에유니가 보기엔 10대 소녀로 보이지만 나이는 아마...”


그러고 보니...나도 알고 있었는데...

왜 생각 못했지?

가만있자.

인간의 수명을 대략 80으로 친다면 인간나이 80살에 대한 17살은 엘프나이 400살에 대한....

85살?

헐.

누나, 아니 할머니셨네.

다음부터 존대를 해드려야 하나?


그 햇살 같던 미소가 다시 떠오른다.

85살이라고...?




*****




에유니는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행복했던 시간이 대체 언제였는지, 아니 있기는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없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렇게 행복하니까.

평생 살아온 이유가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진욱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웃는 표정, 따뜻한 표정, 진지한 표정, 당황한 표정까지.

그리고 그 표정들을 내일 또 볼 수 있다는 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집 앞까지 왔을 때,

에유니는 집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며칠 전 왔었던 도튼과 그의 아내 파라.

파라는 불이 붙을 것 같은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고, 도튼은 그녀를 외면한 채 땅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불길한 예감.

에유니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못 박힌 듯 서있는 그녀에게로 파라가 걸어왔다. 사나운 걸음으로...


“이 더러운 년. 내 새끼 죽인 더러운 년이 감히 내 남편에게 꼬리를 쳐?!!”


그 말에 에유니가 당황하며 말했다.


“네, 네? 그게 무슨?”


하지만 파라에겐 에유니의 말을 들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녀는 달려들어 에유니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으윽!”

“이 더러운 다크엘프!! 너 같은 저주받은 년을 우리 마을에 둬서는 안됐어!! 이 개 같은 년!!!”


에유니는 머리채를 잡히고 휘둘리면서도 사정했다.


“파라! 제발 저기로 가요! 저기 숲으로 가서!!!”

“가긴 어딜가!!! 네년은 오늘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안 돼! 여기선 안돼요! 아윽!”

퍽! 퍽!

파라는 한 손으로 머리채를 잡은 채 한 손으로 에유니의 얼굴을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사냥과 농사 모두에 익숙한 수인족 여인의 손은 남자들 못지않게 억셌고,

에유니의 얼굴은 곧 퉁퉁 부어갔다.


고통에 눈을 꼭 감고 있는 와중에도 에유니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지금 이 소리를 듣고 있는 로란드가 얼마나 속상해하고 있을지...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고통스런 비명마저 그녀가 듣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에유니를 패던 파라는 힘이 다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팔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이제 끝났나 싶은 생각에 에유니가 엉망이 된 얼굴로 눈을 뜨자 파라의 눈이 보였다. 여전히 분노로 불타고 있는 무서운 눈.

힘은 다했지만 마음은 다 풀리지 않은 듯한 모습.


그녀는 이제 에유니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소리쳤다.


“따라와!! 네년 오늘 끝장을 내줄테니!!”


에유니는 힘없이 그녀에게 끌려가며 닫혀있는 서글픈 눈으로 집의 문을 바라봤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슬퍼하고 있을 로란드를 생각하며...


파라가 마을 안쪽으로 그녀를 끌고 가고 있을 때 몇 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촌장인 마누아였다.

그와 몇 몇 추종자들.

마누아가 굳은 얼굴로 파라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 말에 파라가 하얗게 웃었다.


“무슨 짓? 무슨 짓이냐고? 촌장님이야말로 말씀해 보시죠. 그간 이 더러운 년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뭐?! 마을에 필요하니까 제물로 바칠 수 없어?!! 더러운 짓을 하기 위해 바칠 수 없는 건 아니고?!!!”


마누아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되물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다 들었어!!! 당신이 내 딸을 제물로 끌고 간 그날, 그 끔찍한 날에 저 인간이 뭘 했는지 알아?!!”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고개를 푹 수그린 도튼이 있었다.


“바로 그날!! 도튼은 저 년과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어!!”


그러자 촌장 마누아가 근엄한 표정으로 도튼을 꾸짖었다.


“도튼,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어찌...”

“바로 그날!! 바로 당신이 저 년과 그 짓을 한 바로 그 다음에!!!”


그 말에 마누아의 표정이 확 무너졌다.


“뭐, 뭐? 그게 무슨...”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들었어!! 당신, 아니 당신들이 그간 이년과 무슨 짓을 했는지!! 두고 봐!! 내가 마을로 가서 모두에게 말할 거야!! 다 엎어버릴 거야!!!”


마누아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만류했다.


“이보게, 파라. 자네가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일단 마음부터 가라앉히고 얘기를 좀...”


그러자 파라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마누아를 쏘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에 맺힌 비틀린 미소.


“오해? 오해라...그게 오해인지 아닌지는 어디 두고 보기로 하죠, 촌.장.님.”


그렇게 말하며 비릿하게 웃는 파라의 표정에 마누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간 쌓아온 그의 촌장으로서의 신망도 끝장일 터.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마누아가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아까완 달리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빛.

마누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는 게 뭔가?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네.”


그 말에 파라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웃음 지었다.

싸늘하고 위험한 웃음.


“그렇게 아니라고 버티시더니 어째 자신 없으신가 봐요. 촌.장.님.”


하지만 마누아도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고 원하는 걸 말하게.”


그러자 파라의 눈빛이 표독하게 변했다.


“우리 아이들을 제물 순번에서 아예 빼주세요. 당신이 저년에게 했듯이.”


그 말에 마누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그건. 에유니는 그럴 만한 상황이 됐으니 할 수 있었던...”

“못 하시겠다는 건가요?”

“........”


마누아는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손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녀의 남편 도튼 까지...


고민하던 마누아가 마침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렇게 해보지.”


그제야 파라가 개운한 듯 진짜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 이 더러운 년도 쓸모가 있긴 하네요. 그래서 촌장님도 그렇게 감싸고 도셨나 봐요.”

“으음...”


굳은 얼굴로 침음성을 흘리는 마누아를 두고 파라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에유니를 팽개쳤다. 그리곤 뒤돌아서며 말했다.


“다음 제물은 누가 될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그렇지 않나요? 오호호호!!”


그렇게 웃으며 멀어지는 그녀를 보다 마누아는 바닥에 널브러져 흐느끼고 있는 에유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한 후회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걸 알면서도 대체 왜 그랬을까. 아는 사람이 많은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린 시절에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일을 여기까지 키우다니.


그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을 넘겼다 해도 에유니의 문제는 언젠가 또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누아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3명의 수인족 남성을 스윽 훑어봤다.

이들은 자신의 심복들. 도튼과 파라라면 모를까 에유니를 처리하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터.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 마누아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허리에서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에유니에게 한 걸음 다가갔을 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약속해 주세요. 로란드는 지켜주겠다고. 나대신 그녀를 보살펴 주겠다고...”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마누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젊은 시절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에유니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누아의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하지만...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겐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약속하마. 내가 반드시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겠다.”


마누아의 무거운 말에 에유니는 마음을 놓은 듯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궜다.


늘 죽음을 준비해왔던 에유니에게 지금 상황은 그다지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모든 걸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평소 생각했던 것처럼 로란드 대신 수호신 카예리에게 제물로 바쳐져 죽는 건 아니었지만...무슨 상관인가. 로란드만 괜찮다면 이젠 다 상관없었다.


마음속으로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평생을 자신의 친구로, 엄마로, 할머니로 함께 해 준 그녀에게...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진작 죽었을 것이었다. 행복이란 것이 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진욱을 떠올렸다.

70년을 견뎌내서야 간신히 만나게 된 그녀의 왕자님. 하늘이 내려준 선물.

세상은 그렇게 힘든 곳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가장 행복한 날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녀는 이제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누아의 눈에 에유니의 가녀린 목선이 보였다. 부드럽고 까만 살결. 그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그녀의 싱그러운 몸.

그것을 바라보며 이를 악문 마누아가 마침내 단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일의 원인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있지.”


화들짝 놀란 마누아가 고개를 홱 돌려 언덕 위를 바라봤다.

에유니 또한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검은 머리의 남자, 진욱이 팔짱을 긴 채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검은 매 한 마리가 빙빙 돌며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고.


“외부인?! 어떻게?!!”

“진욱님!!!”


진욱은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걸 모르고 외부에서 그걸 찾으니...”


진욱의 차가운 눈빛이 촌장 마누아에게 꽂혔다.


“실패할 수밖에.”


작가의말

연참 갑니다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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