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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19.01.01 12:57
최근연재일 :
2020.01.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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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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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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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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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7부 세상 속으로 11

DUMMY

검고 거대한 입이 내 몸을 덮쳐오는 순간.


“흥!”


나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휙 돌리고는 애검 살라딘을 휘둘렀다.

슈아악!

검날의 두 배만큼 뻗어나간 오러가 불꽃이 폭발하듯 허공에 잔상을 만들고.

허공중에 피어난 보라색 꽃이 놈의 입 안에서 만개했다.

어디 한 번 입을 다물어 보시지!


“캬아아악!!”

“쳇!”


근데 빠르다.

입을 다물지 않고 순식간에 올 때와 같은 속도로 빠지는 놈의 머리. 관성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입 안을 공략할 좋은 찬스였는데...


그리고 내가 땅에 착지하려는 순간 내 뒤로 놈의 두꺼운 몸통이 나를 덮쳐왔다.

거대한 검은 벽이 밀려 오는 듯한 모습.


“흥!”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몸통을 양단할 듯 검을 내리쳤다.


“타앗!”

채캉!!

“우와아앗!!”


둔중한 충격.

내 몸이 뒤로 붕 뜨며 튕겨난다.

일도양단 실패.

그나마 오러에 비늘이 깨지며 살짝 검이 박히긴 입히긴 했었는데 역시 깊지 않은 수준.


[감히!!]


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와우, 엄청 열 받은 모양인데?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심안에 놈의 긴 몸통이 내 주변으로 원통을 그리며 둘러싸는 것이 감지됐다.

어라 이건?


그리고 그대로 확 조여오는 몸통.

젠장, 압사시킬 셈인가?

저 놈 몸은 한 번에 안 끊어지던데?

게다가 내 몸은 아직 공중에 떠서 튕겨가느라 피할 수도 없는 상황.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원통형의 벽이 순식간에 나를 압착하듯 좁혀왔다.


[가루로 만들어주마!]

“젠장!!”

화악!

뱀의 또아리를 튼 몸이 순식간에 완전히 조여졌다.

그리곤 놈이 그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웃음 지을 때.

나는 20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 달리기 시작했다.

뱀의 반대방향으로.


일단 튀자! 불리할 땐 튀는 거지!


그제야 나를 발견한 뱀이 소리 질렀다.


[어떻게?!!]


진짜 나는 울비나스 제사상이라도 차려줘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블링크 때문에 살아난 게 몇 번째야?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고 속도로 도망치는 나를 놈이 맹렬히 뒤쫓아 왔다.

금방 좁혀지는 거리.

아, 이 자식 빠르네. 잡히겠는걸?


바로 지척까지 따라온 놈이 내 뒤에서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덮쳐왔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몸을 휙 돌리며 검을 휘둘러 다시 오러의 꽃을 만들어냈다.

츄아아악!!

모를 줄 알았지, 짜식아?

입 속을 난도질해 주마!!


근데, 아니었다.

놈은 그걸 예상한 듯 유연하게 몸을 꺾어 피해내더니...

나를 지나쳐 앞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다시 놈의 몸으로 둘러싸여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와우, 세상에.

뱀한테 수싸움으로 졌어.

이 자식, 진짜 고단수잖아?


[다시 또 잔재주를 부려 보거라.]


그리고 다시 원통형으로 확 조여 오는 놈의 몸통. 검은 원통의 벽이 밀려온다!

에라잇!

나는 위쪽으로 뛰어올랐다.

조여드는 원통의 꼭대기.

그곳에서 놈이 녹색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거기 닿기 전에 놈의 몸이 먼저 둥글게 말리며...

하늘이 닫혔다.


그리고 머리 위 공간이 닫히기 바로 직전,

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 짓는 그 순간,

나는 거미줄 한 뭉치를 놈에게 쐈다.

촤악!

“키이익!!”


놈의 한쪽 눈 위에 끈적한 거미줄이 덮이고,

순간 한 쪽 시야가 가려져 당황한 놈이 머리를 흔들어댈 때.

순간이동한 내가 그 눈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우욱!!

“키아아아아아악!!!”


상상도 못한 고통에 놈이 거칠게 몸부림쳤다.


“우와아앗!”


바로 튕겨 나간 내 몸.

어떻게 잠시도 못 버티고 이렇게...


그리고 몸부림치던 놈의 하나 남은 눈이 나에게 초점을 맞췄다.

와우, 살벌한 눈빛.

놈은 힘껏 숨을 들이마시더니,

숲으로 떨어지는 나를 향해 무언가를 토해냈다.


“캬아아아아아!”

푸아아악!!

저건 뭐야? 브레스?


그건 흰 색의 기둥이었다.

뭔지 알 수 없는 흰색의 원통이 여의봉처럼 뻗어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안 되지!”

타닥!

다행이 먼저 나무에 발이 닿은 나는 나무를 박차고 몸을 날려 그걸 피해냈고.

콰지지직!!!

뒤이어 흰 기둥에 휩쓸린 나무들이 산산조각 났다.


뭐지 저건?

공기포 같은 건가?


다음 순간 그 하얀 기둥에서 자욱한 흰 안개가 흩어진다.

아무래도 하얀 기둥은 저 안개 같은 것이 응축된 것인 모양.


그리고 다시 숨을 깊게 들이 마쉬는 놈의 모습이 보이고.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몸을 날렸다.

이자식! 무슨 드래곤이야?! 왜 자꾸 브레스 같은 걸 날려!


“캬아아아아아!”

푸아아악!!

콰콰쾅!

나는 놈으로부터 멀어지며 다시 하얀 기둥을 피해냈다.

몇 번의 도약으로 이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다행이도 놈은 더 이상 나를 쫓을 생각은 없는 모양.


나는 계속된 몇 번의 브레스 같은 기둥을 피해 숲 속으로 도망치며 고통스러운 듯 몸을 꿈틀거리며 하얀 기둥을 쏘아내는 놈을 바라봤다.


쳇, 이렇게 도망가는 건 오랜만이로군.




*********




검은 뱀, 카예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등한 인간 따위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다니,

화가 났다. 도저히 믿을 수도, 참을 수도 없을 만큼.

그것이 수치심이라는 건 카예리로선 아직 알 수 없었다.


[키이이이이아아!!!]

푸하아아악!!!

콰콰쾅!!!

그는 미친 듯 몸부림치며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이미 검은 머리 인간놈이 도망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온 몸에 가득 찬 이 열기를 내뿜는 것만이 중요했기에.


콰콰콰콰쾅!


한참을 그렇게 화를 풀고 제정신을 차렸을 때, 뱀은 자신의 반경 1키로미터 정도가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깨달았다.

숲은 사라지고 온통 황토색의 흙먼지로 뒤덮여버린 공간.


카예리는 다시 분노했다.

그는 숲을 좋아했었다.

숲의 초록색과 축축함, 그리고 그 그늘.

그 안에 있으면 늘 둥지 같은 아늑함을 느꼈었는데...


이게 다 그 찢어 죽일 인간 놈 때문이었다.


[죽여버리겠다!! 갈갈이 찢어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그 순간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아까 온 인간들 중 2명밖에 잡아먹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2명은 이미 다 먹어버렸기에 마을의 수인들에게 갖다 줄 살아있는 인간이 없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뱀이 분노에 찬 포효를 터트렸다.


[키아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다아!!!]




*****




도린 마을.

수인들은 오늘도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야채를 뜯고 과일을 따며 가족들과 함께 걱정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푸근한 일상.

이미 몇 십 년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내일 또한 이렇게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수호신 덕문이기에, 조금 무섭기는 해도 마을 사람 중 수호신 카예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카예리의 검고 거대한 몸체가 마을 광장에 갑자기 나타났을 때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차례가 한참 남은 수인들은 오히려 반갑게 웃으며 소리 질렀다.


“수호신님이 오셨다!”

“수호신님!”

“어서 오십시오!”


그런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카예리가 말했다.


[사냥꾼들이 왔었다. 내일 제물을 준비하도록.]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그러다 한 수인 남성이 카예리에게 물었다.


“수호신님, 그런데 이번엔 왜 사냥꾼을 안 보여주십니까?”


그리고 그 질문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던 카예리를 폭발시켰다.


[감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인가!!!]


검은 뱀의 폭발하는 안광과 격한 반응에 놀란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 그, 그런 말이 아니라...”

[건방진 놈!!]

와득!

누가 반응할 새도 없이,

카예리는 그 남자를 덮쳐 한 입에 삼켜버렸다. 그러자 그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수호신님!!”


그리고 그 비명은 카예리를 더더욱 자극했다.


[시끄럽다!!]

덥썩!

“흐읍!”


뱀은 다시 비명을 지른 사람들 몇 명을 그 자리에서 삼켜버렸다.

광장에 있던 다른 수인들은 이제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두려운 눈으로 카예리를 바라보며...

그때.


“으아아아앙!”

“안 돼! 조용히 해! 조용히!!”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5,6살 된 어린 사내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엄마는 다급한 얼굴로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은 채 카예리를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다.


“수호신님, 아직 어린 아이라서 그렇습니다. 부디 용서해...꺄아아악!!!”

와득!!


그걸 용서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뱀은 망설임 없이 두 모자를 집어삼켰고,

그 끔직한 광경에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면서도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카예리의 목으로 무언가가 스르륵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제 긴 몸을 천천히 세워 고개를 들고는 광장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제물을 준비해라. 벌레 같은 것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사람들은 틀어막은 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수호신님이 왔다는 소식에 광장으로 달려오고 있던 촌장 마누아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카예리가 숲으로 사라지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진욱이 했던 말들이 떠올라 어지럽게 맴돌았다.

‘이 닭과 당신들은 다른가?’

라고 물었던 그의 질문이...



****



카예리는 이제야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벌레 같은 것들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줬다는 만족감이 그의 마음을 조금 안정시켜 줬다.

그리고 그 검은머리 인간에게 입었던 육체의 상처가 복구되고 있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카예리가 사람들을 마구 잡아먹은 건 단지 화가 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래 전 그는 산맥을 넘어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이상한 건 그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

생각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이름이 카예리라는 것과 무언가를 잡아먹고 싶다는 식욕뿐이었다.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지만 별로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곳에 와 수인족 한 명을 잡아먹게 됐다.

그리고, 그때 이상한 감각이 찾아왔다.


묘한 쾌감과 함께 자신의 몸이 성장하는 느낌. 시간이 가며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언가가 훅 달라지는, 격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

그건 그에게 있어서 충격이자 희열이었다.


바로 산맥을 뒤져 수인족 몇 명을 더 잡아먹어 봤다.

하지만, 그는 많이 먹을수록 그 느낌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많이 먹을수록 좋은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꾸준히 먹어야 하는 음식이란 걸.


그리고 그 후 미노타우로스 두 마리와 싸우고 상처를 입었을 때, 수인족들을 몇 명 먹자 자신의 몸이 빠르게 복구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저들은 정말이지 카예리에게 있어 소중한 보양식이 아닐 수 없었다.


카예리는 그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섭취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방법.


그리고 결국 카예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을 마수로부터 보호해 주고 옆에서 번식시키는 것.

마치 그들이 가축을 보호하고 키워 잡아먹는 것처럼...


몰래 그들을 관찰하다 동물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된 방법이었다.


그 일은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었다.

그 멍청한 놈들이 우습게도 자신을 수호신님이라 부르며 떠받드는 것도,

자신에게 제물로 바칠 희생양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자신의 자식을 바치고 슬퍼하다 또 멀쩡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렇게 한심하면서도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 하등한 존재들을 비웃으며 카예리는 자신이 진짜 신이 된 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마저도 착각하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자신이 이들의 진짜 수호신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다시 명확해졌다.

저들은 그저 먹잇감.

자신이 키우고 있는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




촌장 마누아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들이 저 거대한 뱀의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오래 전.

그가 아직 열정을 잃지 않았던 시절.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둥지를 찾아보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망설이며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데려가기로 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만을 이끌고 이동했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만에 되돌아와야 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을 대부분 잃고...


그때 아직 어렸던 자신의 아이 둘이 죽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그런 시도를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순번이 돌고 돌아 마누아의 집에서 제물을 바쳐야 하는 해가 돌아왔다.

그때 그는 14살 된 딸을 제물로 바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 때 자신의 여동생을 죽이지 말라며 길길이 날뛰던 18살 된 아들 하나가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떻게 됐을 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도린 산맥은 마수가 아닌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그 기억들을 떠올린 마누아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자신들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검은 머리 소드마스터의 말은 분명히 맞는 얘기였지만...

그럼에도 지금 그들에겐 대안이 없었으니까...

한 명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모두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마누아는 이제 카예리가 떠나고 울음바다가 된 광장으로 걸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시 촌장으로서의 책무를 다 할 시간이었다.


“자, 다들 정신 차리게. 수호신님이 저렇게 하셨다고 해서 우리에게 변할 건 없네. 우린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하고, 그러기위해 내일 희생될 사람을 결정해야만 하네.”


그러자 울고 있던 수인족 여인 한 명이 원망 섞인 말을 토해냈다.


“촌장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지금 이런 상황에....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닌가요?!!”


하지만 마누아가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대꾸했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어떻게 힘을 모아 그 뱀을 잡으러 가자고 말하기를 바라나? 어떤가? 그럴 수 있겠나?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벗어나 마수 가득한 도린 산맥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건 어떤가? 그것도 아니면 아사롬으로 돌아가 노예로나 팔려갈까? 말해 보게. 내가 그런 말을 해주길 바라나?”


그의 차가운 말과 냉정한 눈빛에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다른 방법이 없네. 뱀의 가축이 되어 생명을 부지하는 것! 이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길이니까. 그러니까...이제 와서 외면하려 하지 말게. 이게 우리의 현실이네...”


마누아는 알고 있었다.

이건 사실 그 자신에게 하는 얘기라는 걸.

도망갈 수 없는 외통수 같은 현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옥죄어왔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내일 제물을 고민할 필요가 있나요? 에유니를 보내면 되잖아요?”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마누아를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그녀는 도튼의 아내, 파라였다.

그녀는 광기어린 눈빛으로 마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씀해 보시죠, 촌장님. 다음 제물은 에유니가 아니었던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만약 에유니를 제물로 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그 순간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그냥 다 털어내고 조용히 살았으면 편했을걸...


하지만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촌장이기에 몇 순번이 돌도록 그의 손주들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있다는 걸.

자식을 수없이 잃은 그가 손주들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걸.

그렇기에 이 짓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걸...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에유니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재수 없는 다크엘프가 제물이 되는 게 맞아요!”

“이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다시 또 우리 가운데 희생을 낼 수는 없어요!”

“에유니가 아니라면 로란드 할머니라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 순번에서 빠져있었어요!”


그들의 목소리는 이내 하나가 됐다.


마누아는 건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있어 에유니는 여전히 마을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수없이 많은 마수를 막아내 사람들을 구해왔음에도...

그가 젊었을 때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변했지.


헛웃음이 나왔다.

마누아는 다시 한 번 진욱의 말을 인정해야했다.

오랜 시간 자신은 사람들이 에유니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자기자신에 대한 환멸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 또한 이젠 어쩔 수 없었다.


마누아는 숲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에유니! 듣고 있다면 나오거라!”


그러자 잠시 후 숲에서부터 에유니가 걸어나왔다.

은빛 머리칼에 검은 피부, 슬픈 눈을 한 다크엘프 소녀가...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는 차마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오직 파라만이 독기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볼 뿐.


마누아가 그런 그들을 스윽 둘러본 후 에유니에게 말했다.


“이번엔 너희 집에서 한 명이 제물이 돼 주어야겠구나. 로란드 할머니와 너. 둘 중 누구를 제물로 해야 할까?”


슬픈 눈으로 자신의 집이 있는 방향을 잠시 돌아 본 에유니는 다시 마누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갈게요. 대신...”


그녀의 무거운 목소리에 마누아가 바로 말을 이었다.


“걱정 말거라. 로란드 할머니는 내가 잘 보살펴드리마.”


에유니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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