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바람의 검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강희얀
작품등록일 :
2019.01.01 18:45
최근연재일 :
2019.01.24 12:11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121
추천수 :
53
글자수 :
72,585

작성
19.01.20 21:12
조회
84
추천
2
글자
11쪽

흥행 투사 비호룡

DUMMY

그는 아내에 아이까지 생겨 뿌듯했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주인을 모시는 일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월별로 치르는 호위들의 정기적인 비무에서도 매번 꼴찌였다. 일등의 반란이었다.


이에 따라 상전들의 전에 없던 꾸지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 무렵 려호룡은 모용성의 지방순시에 동행했다가 석 달 만에 돌아왔다.

지방 관료들이 바리바리 싸준 선물 짐을 주인댁에 풀자마자 려호룡은 상전에게 인사조차 생략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달려간 려호룡이었다. 그러나 어인 일이었을까? 그의 집에서 울려나온 소리는 환호성이 아니었다.


“으아악ㅡ.”

지붕이 떠나 갈듯 한 처절한 절규였다.


그의 눈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어여쁜 그의 색시가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아내는 겁간을 당한 채 목 졸려 죽어있었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죽은 어미의 배를 타고넘으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내 가솔의 거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아무리 호위 때문에 집을 비우고 있던 때라 해도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모두 범인을 색출하는데 전념을 다하라. 관에도 알려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고.”


“알겠나이다. 승상.”


그러나 당시 제국의 승상에 올라 있던 모용성이 직접 나섰음에도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어쩌면 려호룡의 헤이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한 상전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계획 하에 자행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숙덕거림 속에 려호룡은 심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편이 되어버렸다.


그저 상전이 시키는 대로 싸우고 물어뜯고 죽이는 감정 없는 호위종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칠삭둥이 자식인 나는 아예 찬모들에게 맡겨놓고 거들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걸음마를 배우고 입을 달싹이며 ‘아바바’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일이 나 때문이야? 왜 나를 찬밥 취급해? 그럴려면 엄마는 왜 사랑했고 나는 왜 낳았어? 말해, 말해보라고! 려호룡씨.”


워낙 무뚝뚝하고 감정이 없어서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 다니지 않으면 정말 남남인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려호룡 씨’ 반쯤은 타인을 부르듯 한 아버지에 대한 호칭은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어쨌든 훗날 모용성은 박투장을 건설하여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도박까지 가능한 용쟁호투의 간판으로 려호룡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대박의 열쇠가 되었다.


려호룡의 괴력 넘치는 격투실력은 연일 흥행을 이끌었고 ‘용문장원의 최강자 비호룡’으로 통하는 려호룡씨의 인기도 상종가를 쳤다.


검이면 검, 주먹이면 주먹 뭐든 호쾌하면서도 파괴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는 그는 매번 십년 묵은 체증이 확 가시게 하는 속 시원함을 선사해 주었다. 더하여 무패의 전적인 그는 배당량은 적었지만 믿을만한 승률로 돈까지 벌어주는 존재이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용문장원은 그들의 최고상품인 비호룡을 미끼로 박투에 나서는 그날그날의 투사들 개인 전적과 신상을 공개해가며 공공연하게 도박을 부추겼는데 이것이 또 일확천금이나 쉬운 돈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더 큰 흥행을 만들곤 했다.


용문장원이 들어서기 전 언제나 붐비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성행하던 투견장이나 투계장들이 파리만 날릴 정도였으니 박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만했다.


훈련된 투사나 무인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피 튀기는 싸움이 동물들의 싸움보다 전율스럽고 박진감 넘쳤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관중들은 점점 흡혈귀가 되어갔다. 피를 보지 않으면 광란했다. 어느새 박투장의 단골 연호조차 “이겨라! 이겨라!!”에서 “죽여라! 죽여라!!”로 변해갔다.


성도의 백성들은 그 도가 더욱 심해 ‘박투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박투이야기로 하루를 끝낸다.’ 할 정도로 박투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비호령이 버티고 있었다. 모용성은 이 모든 관중심리들을 이용해 도박을 시작했고 거대한 자금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 위악은 용문장원의 상술에 휘둘려 패가망신한 백성들이나 지나친 사행 심리를 우려하는 은거노사와 양심있는 지방 관속들 그리고 제국의 감찰부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암암리에 황제에게까지 보고되었다.


선황제와 달리 개혁성향이 강했던 황제는 은밀히 동창과 금위의를 불러 자세히 조사보고토록 하고 국책에 반하는 죄가 있으면 단죄하라 명했다. 그러나 그 책임자들은 모용성과 그의 정치세력들에게 구워 삶겨져 번번이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


“살펴보았사온데 그저 건전한 무술대회였을 뿐 모용성의 불의한 행적은 찾아볼 수 없었나이다. 아마도 낙향하여 즐기는 그의 여유자적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모함하여 투서한 것으로 보이오니 괜한 일로 성심을 어지럽히지 마옵소서 폐하.”


“그래? 것 참 다행한 일이로고.”


그러나 황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사병들을 훈련시켜 투견처럼 몰아 싸움을 시키고 승부 조작으로 백성들의 삶을 피폐케 한다. 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거늘. 이 생퀴들이 전부 한 통속이 되어 이리 나온단 말이지. 좋아 두고 보자.’


황제는 궁여지책으로 황궁과 별도로 자생하는 무림단체들에게 협조밀서까지 띄웠다. 용문장원이 보유한 전사들을 꺾어 세력을 약화시키고 사행심을 조장하는 음모를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증거가 확실하면 황제 직속 호위대를 보내 토벌할 계획도 넌지시 밝혔다.


그러나 황실이나 일반 세상에 간여하는 것을 꺼리는 대부분의 문파고수들은 외면했지만 더러 의협심이 남다른 고수들이 용문장원을 방문했다.


박투 도전자를 가장한 그들 중에는 정말 고강한 무위를 선보인 자들도 있었는데 비호룡조차 아슬아슬 했다.


그러나 일정한 형식없이 철저히 상대의 수준에 맞춰 약점을 찾아내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격해대는 비호룡의 동물적인 감각은 상대의 혀를 내두르게 했고 아차 하는 순간 가차 없이 물어 뜯겼다.


덕분에 황제의 밀지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고 물증은 있으나 확증이 없어 모용성을 징치하지 못했다.



나는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비호룡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그려 감동을 주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단지 누구와 어떻게 싸웠는지를 기록하는 수준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무공을 연구하는 중요한 공부가 되었다.


오직 이기기 위한 비호룡의 박투는 대결 상대가 쌓여갈수록 몸놀림이 간결해졌고 단순하면서도 강해졌다.


나는 그의 박투장면을 빠짐없이 기억하였다가 저녁이 되면 만화로 그리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사이 약관의 나이가 되었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박투 고수가 되어 있었다.


가상의 적을 앞에 두고 아버지의 동작들을 반복하여 따라하는 사이 저절로 박투의 오의가 체득된 셈이었다.


즈음 나는 용문장원 대서고에서 심법서 하나를 머릿속에 몽땅 저장하였는데 천마심법이란 비급이었다. 이는 앉고 눕고 잠자고 서고 걸어 다니면서까지 운기행공이 가능한 심법이었다.


게다가 다른 내공과 달리 혈맥의 순서에 따라 일주천 하는 일정한 경로가 없었다. 다만 삼백 육십 다섯 혈맥을 종횡으로 막힘없이 자유롭게 치달으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상응 상합하여 위력을 발하는 신묘한 심법이었다.


이는 일정한 형식을 갖지 않고 상대의 투로에 따라 쾌속한 공격과 방어, 방어와 공격이 이루어지는 아버지 려호룡씨의 박투술과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인 심법 같아서 나는 즐겨 운기행공을 했다.


덕분에 늦게 시작했지만 일정수준의 내공까지 터득한 나는 어느 십오야 밝은 달밤을 택해 홀로 연무장에 남아있는 아버지 려호룡씨를 찾아가 비무를 청했다.


거절의사를 보이기에 다짜고짜 선제공격해 들어가자 려호룡씨는 그 날카로움과 위력에 움찔하더니 곧 흥이 생겼는지 대련에 응했다. 그가 봐준 덕택이었겠지만 박빙의 비무로 대련을 끝내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도 당신 덕에 박투의 달인이 되었으니 투사가 되어보려고 해. 노비문서를 불태워주겠다던 주인은 여전히 우리를 제 잇속 채우는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으니. 이제 그걸 기다리기보다는 내 앞길은 내가 열어야지. 영웅투사가 되어 돈도 벌고 장가도 가야지. 당신처럼 어리버리 하게는 안살아. 내 가족 다치게 하지도 않을 거고. 아직도 날 남의 자식 보듯 하지만 아버지니까 최소한 주인에게 보단 먼저 그 이야기는 해주어야겠다, 생각해서 찾아온 거야. 언젠가 무대에서 비호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당신을 내 반드시 꺾고 영웅으로 서겠다는 선전포고도 할 겸. 당신이 수많은 상대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자비란 베풀지 않을 테니 미리 각오 해두는 게 좋을 거야. 아버지, 려호룡씨!”


나는 주저리주저리 내 할 말만 하고 돌아섰다.


“어, 어... 아... 안 돼!”


“뭐? 말도 할 줄 알았어? 난 벙어린 줄 알았는데? 근데 왜? 왜, 안 되는 데, 왜?”

나는 뒤돌아서며 추궁하듯 물었다.


“제발, 그것만은 안 돼! 아파, 아프다구. 여기도, 여기, 여기도.......”


려호룡씨는 어울리지 않는 불쌍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머리 배 다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슴을 짚으며 절대 안 된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에 가슴을 짚은 건 마음도 아프다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짐짓 외면하고 돌아섰다.


“절대, 절대 안 돼! 투사 그거 하지 마! 제발!”


어눌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과 말투였다. 아버지의 정이 뭉클 장풍처럼 불어 닥쳤다. 그도 어렴풋이 느꼈을까? 그의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였던 꽃 같던 여인 수이를 해한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모용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로 생긴 가족에게 정신이 홀려 전의를 상실한 투견을 격투장에 다시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주인이 명하여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그도 의심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더하여 어쩌면 그는 하나 남은 피붙이마저 협박도구로 내세우며 싸움을 종용하는 주인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는 내색조차 못하고 지옥 같은 박투장에 서 왔을 수도 있었다.


바보 같은 사나이. 아버지 려호룡씨.


나는 눈물에 젖어 있는 내 얼굴을 그에게 보이기 싫어 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여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표명한 ‘투사, 그거는 안된다.’는 의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람의 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절세무적 천마삼검을 봉안하고 19.01.24 138 0 10쪽
17 토사구팽 19.01.22 80 1 11쪽
16 영웅 호룡의 마지막 혈투 19.01.21 90 1 10쪽
» 흥행 투사 비호룡 19.01.20 85 2 11쪽
14 흥행 러시 박투장 +2 19.01.16 114 2 8쪽
13 야수의 승리 19.01.15 116 2 9쪽
12 판이한 승산, 유리한 내기 19.01.14 132 2 8쪽
11 무규칙이 규칙, 박투 시작 19.01.12 155 3 10쪽
10 백련화白蓮花 가희 시점 19.01.11 156 3 11쪽
9 비천12관문과 운명의 여인 19.01.10 163 4 10쪽
8 이곳이 미래비전 양양한 비천문? 19.01.09 175 3 8쪽
7 죽음 대신 비천문 19.01.08 188 3 10쪽
6 천인공노, 용문상단의 율법 19.01.07 182 3 8쪽
5 춘화와 날벼락 19.01.05 251 3 9쪽
4 비뚤어진 음모, 한 깊은 희생양 19.01.04 253 3 9쪽
3 맹세 그리고 불길한 징조 19.01.03 350 6 8쪽
2 바람의 검신 19.01.02 640 5 9쪽
1 프롤로그 19.01.01 854 7 4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강희얀'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