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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c61
작품등록일 :
2019.01.0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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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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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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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DUMMY

아르마스의 십제자라 하면 라베스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지나 무인들이야 자존심 때문에 실력까지 인정해주진 않지만 그래도 이름만큼은 알려진 편이었다. 그 이름난 제자 중 하나인 도리스가 단 한 수에 나가떨어졌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도리스는 호쾌하게 몸을 튕겨 일어났다.


자기 실력이 아니란 사실을 아는 영대는 표정관리에 힘썼다. 매직슈트를 벗더라도 이기긴 하겠지만 방금처럼 멋있게 받아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금 미안했다. 힘을 빼고, 상대방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다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기를 불어넣어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 삼절곤이 살아있는 뱀처럼 휘감겨 들어왔다. 부딪힐 때마다 목검이 조금씩 부서졌다.


‘이건 아니지 시발!’


눈에 띄게 당황하는 영대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구경꾼들은 영대가 내원의 무인이 아니라는 점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목검이 부러지려는 찰나, 해피가 진압봉을 꺼내주었다.


“아닛, 방금 뭡니까?!”

“그······마법인데요.”

“마도의 술법이라고요!?”

“아뇨! 사악한 거 아니고요, 제가 쓰는 기술이 따로 있어요.”

“사형! 괜찮은 겁니까?”


도리스는 요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영대 신령님께선 부디 선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 쓸게요.”

“좋습니다.”


특별히 만든 진압봉이라 내력을 실은 강타도 잘 버텼다. 머지않아 도리스가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체력과 진기를 동시에 소모하는 만큼 느껴지는 부담은 배로 컸다.


“이제 그만하실래요?”

“휴, 제가 졌습니다. 도저히 길이 안 보입니다.”


요라를 비롯해 나머지 제자들도 잘 싸웠지만 패배했다. 오제자부터 수준이 부쩍 높아져 기를 날카롭게 쏘기도 했는데 영대에겐 거의 타격을 못 주었다.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요라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동문들을 정렬시킨 다음 인사했다. 영대도 꾸벅 인사했다.


“전 별로 한 거 없어요.”

“예. 훗날 영대 신령님의 진심을 끌어낼 만큼 실력을 키우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내가 할 말은 아닌데······.’


별로 부질없는 후회였다. 아무것도 안 한 주제에 뿌듯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도아 곁으로 돌아갔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훌륭한 제자들을 거느리는 상상을 해봤어요. 여기 오길 잘했네요.”

“어차피 도아는 저 사람들 못 이기잖아요.”

“영대한테 배우면 달라지겠죠.”

“저한테 배운다고요?”


뭐라 대답해주기 난감한 발언이었다.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영대 본인의 성취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아는 건 있으니 조언 정도는 가능하겠다 싶었다.


“아르마스님한테 배우는 게 낫지 않아요?”

“아조네파 장문인한테 무공을 전수받으라고요?”

“그러면 안 돼요?”

“전 장박파 장문인이에요. 스스로 갈고닦아야할 초식이 있다고요.”

“방금 스스로라고 그랬어요?”

“그, 그거랑 이거는 달라요! 어쨌든 도와줘요. 부탁할게요.”

“네, 뭐 제 일 다 정리되면요. 저한테는 그게 훨씬 중요하니까요.”

“알았어요.”


저녁이 되자 낮에 장난을 쳤던 세 명이 사과하는 뜻으로 식사를 대접했다. 십제자 도리스, 구제자 이영, 팔제자 척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무술대회에 참가했다가 아르마스의 눈에 들었다. 셋은 아주 친했다. 일은 항상 도리스가 저지르는 편이었다.


“저희가 여기 단골입니다. 보신탕이 기가 막히지요. 얼른 들어가시죠!”


한약을 듬뿍 넣은 갈비탕 같은 음식이었다. 외계인의 식사 치곤 나쁘지 않았다. 도아도 몸에 열이 나서 좋다며 잘 먹었다.


정의로운 마음씨를 가진 세 제자는 영대와 금방 의기투합했다. 다들 절세고수가 목표였으나 진정 마음을 울리는 단어는 영웅이라고 답했다.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현 시국을 타파하여 영웅으로 칭송받는 일이야말로 제자들이 꿈꾸는 바였다. 이는 내원을, 특히 지나를 무력으로 제패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도아 소저께서 불편하실 텐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경지만 이루면 돼요.”

“어떤 경지인지 감히 여쭙겠습니다.”

“입신지경이요.”


영대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신의 경지! 무인이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경지지만······.”


입신지경은 무의 끝으로서, 신체적인 차이를 일컫는 신령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예전에 도아가 영대를 두고 신의 경지라 농담처럼 언급한 적은 있지만 입신지경은 그 이상을 뜻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에요?”


영대의 물음에 제자들은 각자 아는 대로 떠들썩하게 묘사해 주었다. 날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나뭇가지로 땅을 가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거의 뭐든지 가능한 수준이었다.


“제가 비슷한 사람 알아요.”

“예?! 차, 참말이십니까!!”

“참말이긴 한데 증명은 못해드려요. 제 맘대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나뭇가지로 땅 가르는 건 못 봤어요.”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어······.”


제자들이 마음에 든 데다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꺼내놓은 말이었는데 막상 하려니 곤란했다.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을지 영대는 전혀 몰랐다. 행운의 여신 본인은 그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안했었다. 유명해지려면 능력과 배경이 필요한 법이니 적당히 말하기로 했다.


“검술에 능통한 건 아니고요,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엄청 빠르게 움직여요. 축지법 같은 것도 쓰고요.”

“노, 농담도 잘하십니다.”

“진짠데요. 그 사람이 저한테 이거 가르쳐줬어요.”


영대는 잠깐 시간을 멈춘 다음, 빈 그릇들을 한곳에 쌓아올렸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갑자기 팍! 하더니 그릇들이 쌓여있는 것만 보였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말을 잃었고 도아 역시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릇······쌓기를 말씀하신 건 아니시겠지요?”

“당연히 아니죠!”

“저희한테 전수해주십시오!”

“저는 못해요. 그 사람만 돼요.”

“그럼 그분을 소개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까 제 맘대로 못 만난다고 했잖아요.”

“언제쯤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아마 평생······.”


‘아오, 잘못 말했다. 좀 미안하네.’


제자들은 엿 먹은 얼굴이 되었다. 이를 다독여준 사람은 도아였다. 적어도 영대가 하는 만큼은 자기들도 가능할 거라는 논리였다. 영대는 기대를 잔뜩 받았으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영대 신령님. 그분의 존함은 무엇입니까?”

“행운의 여신이요. 본명은 몰라요.”

“신령님께 찾아든 행운이셨군요.”


뭔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맞는 말이었다. 이날 일을 계기로 영대는 제자들과 부쩍 가까워져 아조네파에서 지내기가 썩 편안해졌다.


얼마 뒤 켈라의 어느 주루.


“뭣이?! 거짓은 용서치 않는다!”

“보고 들은 그대롭니다. 게다가 영대가 십제자를 전부 꺾은 듯합니다.”


틸라스가 방금 가져온 따끈따끈한 정보가 갈킨의 머리를 잔뜩 달궈주었다. 빗나간 예측은 그렇다 치고 상대가 너무 나빴다.


“크음-. 여신, 여신이 가르친 신령, 그 신령이 보호하는 도아! 이게 다 무엇이냐? 도아 그년은 대체 뭐냐!”

“형님,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빚은 다른 방법으로 변제하시지요. 저희가 가보라도 내놓겠습니다.”

“쏙! 이건 손 씻고 돌아서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여신이라는 존재와 얽혀 있단 말이다.”


병든 노모의 약값을 갚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갈킨은 조금 더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고객이 모를 수도 있고, 여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쳐도 영대 그자의 움직임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한 자를 제자로 둔 인물이 대체 얼마나 뛰어날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말수가 적은 편인 틸라스가 갈킨 대신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신의 힘이 아니라 선인의 사악한 마법이라면?”

“그만 됐다!”


갈킨은 나직하게 일갈했다.


“신이든 선인이든 누군가가 이미 선을 넘었다. 너희는 내가 왜 이런 더러운 일을 맡았는지 잘 안다. 어머니의 안녕을 위해서다! 이 사건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구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아야겠다.”

“강대한 힘······. 장차 암운이 내원을 뒤덮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우리가 그걸 막을 필요까진 없다. 그러나 내막을 알아야 한다. 도아 그년과 영대를 예의주시해라.”

“허면, 임무는 관두시는 겁니까?”

“자존심은 상하지만 우리 능력 밖이다. 고객에게 알려라.”

“예! 형님.”


갈킨은 이 선택이 자신의 목을 어떻게 죄어올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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