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 홀-After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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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
작품등록일 :
2019.01.02 21:20
최근연재일 :
2020.08.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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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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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천체충돌

DUMMY

한순간이었다. 손가락이 허공을 날아올랐다. 천천히 회전하며 추락하는 손가락이 바닥에 닿는 순간, 재이가 신음을 뱉었다.


“독한 새끼.”


윤오의 팔꿈치가 재이의 명치에 닿아 있었다.


재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윤오는 재이의 팔을 잡은 손을 놓았다. 재이의 손끝에서 떨고 있는 침들이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윤오는 자신의 오른손바닥을 내려 보았다. 잘린 마디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재이의 공격을 막는다 해도 다음을 예상할 수 없었다. 윤오에겐 재이처럼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능력은 없었다. 강화된 신체의 힘 뿐이었다. 자신의 능력은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하지만 대인전에 있어서 만큼은 윤오의 기본기와 함께 최고의 효율을 내었다. 크라브 마가는 강한 무기를 든 상대를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한 실전의 무술이었고 윤오의 능력은 어떤 공격이든 반응할 수 있었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재이의 양 손을 모두 빗겨낼 순 없었다. 진동하는 칼날의 침은 하나의 공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칼의 모음이었다.


양 손으로 나누었던 힘을 왼 손에 집중시키고 그대로 재이의 공격을 받았다. 왼손에 쥔 단도가 수 없이 오고가며 공격을 받는 찰나의 순간 벌어진 틈으로 팔꿈치를 집어넣었다.


팔꿈치가 재이에게 닿는 찰나, 무조건적인 공격에 당황한 재이는 몸을 비틀었다. 재이의 몸을 따라가는 사이 손가락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었다.


아직도 손가락이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능력자끼리의 싸움이라 해도 재이와 같은 능력은 기술에 의해 결판이 났다.


몸을 쓰는 기술,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에 있어서 윤오는 또래의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었다. 남들이 학교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 윤오는 우성 밑에서 몸을 굴려왔었다.


손을 오므려보던 윤오는 기절한 재이를 내려다보았다.


“선을 넘어 버렸어.”


자신은 괜찮았다. 손가락 두 개 쯤이야 현대의 기술로 충분히 복구 가능했다. 문제는 이 모습을 본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재이는 무진의 무리였다. 무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돌발행동을 한 것일까. 그동안 의 일을 통해 무진과 친구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그게 아니었던 것인가.


윤오는 급한 데로 소매를 찢어 오른손에 둘렀다. 매듭을 묶으며 신음을 삼켰다.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긴 놀이터가 아니야.’


윤오는 그대로 멀리, 자욱하게 먼지가 피어오르는 골목을 향해 뛰었다.


지상은 전후의 도시를 보듯 난장판이었다. 교회 근처의 건물들이 모두 무너져 있었고 그 너머의 골목에선 굉음과 함께 먼지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아, 누나 답답해.”


아연은 휘연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휘연이 이 모습을 본다면 또 정신없이 날 뛸 것이다. 벽장 너머 환상의 나라라도 발견한 것처럼 해맑게 뛰쳐나갈 것이다.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거 같아!”


휘연이 괴물이 서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눈을 가린 휘연의 손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왜이러실까. 그냥 가면 재미없잖아. 조금만 참아 휘연아.”

“그런가?”


휘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아연의 손길을 따라 움직였다.


“누나 나한테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그럼. 거기 가면 휘연이가 좋아하는 사탕이랑 과자가 잔뜩 있다니까.”


휘연은 이내 또 신이 난 듯 재게 발을 놀렸다. 그런 휘연을 이끌며 아연은 불안한 듯 주위를 살폈다. 아연은 근처 주택들을 돌아다닐 때 미리 봐 두었던 굴속으로 휘연을 이끌었다.



“저 애꾸눈 새끼를 막아. 이놈은 내가 맡을테니.”


어느새 재현 옆으로 다가온 무진이 말했다. 재현은 주변 건물로 주먹을 내지르는 암석괴물과 무진을 번갈아보다 말했다.


“혼자서 되겠어?”

“몸집만 크지 속도는 느려서 별거 아냐,”

“그래도 우리 불꽃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것 같은데.”


무진이 재현을 아무 말 없이 노려봤다. 마주보던 재현이 눈을 깔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놈이 나타날 거다.”

“알겠어. 근데, 그놈이 도대체 누군데.”

“있어,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


재현이 긴장한 듯 불꽃을 피어 올렸다.


“걱정마, 너보다 약할 테니.”


괴물이 무진과 재현 근처의 건물을 부쉈다. 재현과 무진은 재빨리 몸을 굴렸다. 신체능력이 강화된 그들에게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를 피하는 일 따위는 애들 장난과 같았다.


“저기 온다. 절대 괴물 근처로 오게 하지마.”


무진은 불꽃을 만들어 야구공처럼 뭉친 후 괴물의 이마로 날렸다. 불꽃에 맞은 괴물이 무진을 봤다. 무진은 영과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재현은 어리둥절하게 무진의 뒷모습을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오고 있다는 말인가. 무진의 불꽃이 강해진 만큼 그의 시야도 늘어난 것인가. 재현은 절망함과 동시에 양 손에 불꽃을 크게 키웠다.


괴물은 무진을 쫓아 점점 재현과 멀어졌다. 재현은 멀리,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다.


재현은 길을 막아섰다. 마주한 아이는 양쪽 눈의 색이 달랐다. 왼쪽 눈에는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하얀 티끌이 있었다. 그 티끌은 살아 숨 쉬는 듯 크기를 키웠다 줄였다했다. 영이 괴물 쪽을 바라보자 그 티끌은 왼쪽 눈을 다 덮더니 검게 물들었다.


재현은 초승달 눈의 사내를 떠올렸다. 그가 찾던 아이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막 싱크홀로 가라앉았을 때 재현은 넘어지는 책장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었다. 눈을 떠 보니 재현은 의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던 재현은 신음을 흘렸다. 온 몸이 저렸다.


“큰일 날 뻔 했어요. 제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죽었을걸요?”

“당신이 날 구한건가?”

“그렇죠! 거기다 말예요. 손을 뻗어봐요.”


재현이 머뭇거리다 사내의 재촉에 손을 천천히 뻗었다.


“자, 그대로 있어요.”


뒷걸음질 치던 사내가 순간 손에서 무언 갈 던졌다. 작은 돌멩이였다. 하지만 그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재현은 던졌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뿐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죽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재현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돌을 그대로 집어삼킨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을 듯 재현의 손바닥 위에서 타올랐다.


“전과 비교도 안 되는 불꽃이죠?”

“당신 누구야.”

“잘 봐요. 이게 네 힘을 강하게 해준 검은 구체예요. 뭐 검은 돌, 검은 구체, 괴물의 알맹이 뭐라 부르든 상관없지만.”


사내는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지으며 검은 돌을 던졌다가 받았다. 재현은 무엇보다 애초에 자신이 성냥개비 하나 만큼의 불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사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더군다나 싱크홀에 빠져 정신을 잃었고 지금 막 깨어난 상태였다. 상황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사내는 순간 무언가 속에서 울컥한 듯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무언가를 다시 집어삼킨 사내는 재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잘 들어요. 전 두번 말 안해요. 이 검은 구체는 괴물의 핵예요. 정확히는 변종 괴물의 핵이죠. 이 구체를 흡수하면 괴물의 힘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괴물로 변할 수도 있죠.”


사내의 팔이 갑자기 부풀었다. 이어 뱀처럼 늘어난 팔이 재현의 눈앞으로 검은 구체를 내밀었다.


“이 구체를 찾으면 제게 가져와주세요. 제가 이번처럼 부작용 없이 흡수시켜 줄 테니. 대신······.”


이번에는 사내의 다른 쪽 팔이 흐물거리며 땅으로 뚝 떨어졌다. 작은 웅덩이를 이룬 팔이 스멀스멀 재현 쪽으로 미끄러지더니 그곳에서 팔 하나가 우뚝 솟아났다.


“이런 색색 돌도 모아와요. 이 돌 열 개 마다 검은 구체 하나의 값을 쳐줄게요. 이건, 당신과 같은 혜성고아들이 죽을 때 생기는 돌이죠.”


그의 손에서는 마치 보석처럼 강렬한 색의 엄지손톱만한 돌무더기가 빛을 내고 있었다.


“가끔 강한 힘을 가진 인간이 이보다 색이 옅고 작은 돌을 떨구기도 하는데, 그건 스무 개에 검은 구체 하나 값을 쳐줄께요.”


흐물거리던 손이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사내의 잘린 팔이 돋아났다.


“아, 마지막으로.”


사내가 천천히 재현에게 다가왔다. 재현은 그 믿지 못할 광경 앞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와 같은 눈을 한 네 또래의 아이를 본다면 내게 데려와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힘을 줄 테니까요.


사내와 눈을 마주한 순간, 재현은 사내의 굽어진 초승달 눈 사이 하얀 티끌 같은 점을 보았다. 눈동자보단 작은, 정말 티끌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 티끌은 재현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크기를 키웠다가 줄였다가, 이내 검게 변했다가 다시 흰 티끌로 돌아왔다.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재현의 방 베란다로 향했다.


“아 저,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아참, 깜빡했네요.


초승달 눈의 사내는 자신의 귓불 밑에서 수신기를 뜯어 재현에게 던졌다. 재현은 허우적대며 수신기를 놓쳤다.


“비싼 거예요. 그 정도로 망가지진 않을 거지만 조심히 대해주세요.”


사내는 창문을 뛰어넘기 직전에 웃으며 말했다.


“수신기가 꺼지면 제가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재현은 방금 전의 감각을 떠올려 가슴 부근에서 힘을 끓어 올렸다. 사실 평소 손끝에 불꽃이라기엔 뭐 한 불꽃을 피울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누가보아도 놀랄 만큼 커다란 불꽃이 자신의 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사내가 말한 아이였다. 오른쪽의 평범한 검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왼쪽 눈은 괴물을 쫓고 있었다. 초승달 사내와 같은 눈이 확실했다.


“넌 도대체 누구지?”

“너야말로 누군데 날 막는거야.”

“난 무진의 동료다.”

“나돈데.”


고개를 기울이며 말하는 영의 모습은 기괴했다. 양쪽 눈알이 다른 쪽을 향하는 모습은 마치 또 다른 변종 괴물 같았다.


“너 같은 괴물이 무진의 동료라니. 믿을 수 없어.”

“손에서 불을 피워 올리는 너도 괴물이라면 괴물 아닌가?”

“무진은 널 막으라고 했다.”


점점 길어지는 대화 속에서 재현은 영의 능력을 가늠했다. 부푼 다리로 보아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 같았다. 달려오던 속도는 능력을 사용하는 재이 보단 조금 느리지만, 가장 강한 신체를 가진 무진보단 빨랐다.


재현은 양 손에 불꽃을 더 크게 피워 올리며 영에게 물었다.


“왜 무진에게 가려는 거지?”

“당연한 거 아냐? 네 눈엔 저 괴물이 안 보여?”

“저 괴물은 무진이 알아서 할 거야.”


그때 영이 왼 손으로 왼쪽 눈을 감쌌다. 신음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뭐, 뭐야!”


재현의 양 손바닥이 영에게로 향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영이 왼쪽 눈알을 파낼 듯 손끝을 오므리며 소리쳤다.


“비켜. 안 비키면 죽을 거야.”


고개를 든 영의 눈은 완전히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재현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닥쳐! 날 만만하게 보지마!”


재현의 양손에서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단발성의 불꽃이 아닌, 물줄기와 같은 불꽃세례가 영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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