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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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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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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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련(3)

DUMMY

다행히 사제의 치료를 받아 가웨나의 증세는 금방 가라앉았다. 가웨나는 다시 잠들었지만, 사제가 오늘 하루는 푹 자야할 거라고 충고했기 때문에 아빌라드는 캐트시에게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교단을 빠져나갔다.


치체니어 대장장이, 락스퍼에게 맡긴 용의 발톱의 제련이 다 끝났을 시간이었다. 교단에게 약속한 센티누스의 추적이 언제 시작될지 몰랐으니, 아빌라드는 지체 없이 그것을 받아갈 생각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성검의 의식 때문에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던 아빌라드가 대장간에 나타나자 락스퍼가 휘파람을 불었다. 하루 전만 해도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던 의뢰인이 갑자기 확 달라져서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만.


“의뢰했던 건 완성했나?”


“당연하지. 자, 여기 있소.”


락스퍼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작품을 내밀었다. 그가 용의 발톱을 제련해 만든 화살은 무기 보는 눈이 높은 아빌라드의 입장에서 봐도 품질이 좋았다. 마물을 잡는 용도에 맞게 화살촉 역시 큼직하게 깎여있었다.


“사람 잡는 용도였으면 화살촉을 얇게 만들어서 더 만들 수 있었겠지만, 마물 잡는 데 쓸 거라면 역시 저지력이 좋아야하지 않겠소? 그래서, 마음에 드시는가?”


“더 바랄 나위가 없군. 남은 보수는 여기 있소.”


락스퍼의 작품에 만족한 아빌라드가 금화 3개를 건넸다.


“그리고 이건 좋은 품질에 대한 감사의 표시.”


추가로 내밀어진 금화 한 개까지 받아든 락스퍼가 씨익 웃었다.


“모든 손님이 댁 같았으면 소원이 없겠어. 뭐 더 찾는 건 없소?”


“지금은 없소. 나중에 필요한 게 생긴다면 들리도록 하지.”


“안녕히 가시오!”


손에 쥐어진 보수금 때문인지 락스퍼는 어제 보였던 퉁명한 태도를 버리고 공손하게 손님을 배웅했다.


대장간 밖으로 나와 칼리고의 시장바닥을 걷던 아빌라드의 눈에 옷가게가 띄었다. 색색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그는 가웨나의 옷이 꽤 낡아보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잠시 후, 아빌라드는 새 옷을 사들고 옷가게를 나섰다.



&



아빌라드가 교단 앞에 도착하니 갈란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 아빌라드 님.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센티누스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중요한 일임을 알아차린 아빌라드는 갈란과 함께 교단 내에 있는 작전회의실로 갔다. 그곳에선 사제들과 함께 서적들을 옮기느라 분주한 길버트 대사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빌라드 공, 오셨군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어떤 정보가 들어온 겁니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센티누스가 마인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가족의 원수인 것도 있었지만, 센티누스에 대해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형태를 한 마물, 마인인 것도 한 몫 했다.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마인이라는 건 굉장히 드문 존재였으니까.


“에라도스 왕국에서 검은색의 마인이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물론 마인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센티누스일 거란 확증은 없습니다만, 우선은 그런 정보라도 확인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확인은 하지 못한 겁니까?


“성전사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최근 마경에서의 전투가 너무 치열해서 조사나 순찰을 위해 누굴 보낼 여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목격된 도시가 발라리아라고 하더군요. 그곳에 있는 교단은 더더욱 여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 제가 확인하러 가야겠군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센티누스와 직접 전투를 벌이는 일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요.”


아빌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을 얻긴 했지만, 그것이 그를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5년 전 겪어봤던 센티누스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그 전투는 반드시 성기사들과 함께 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수색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발각되어 덤비기라도 한다면 그땐 방어하기 위해서 싸워야겠지만.”


“제 뜻을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마인이 목격된 곳은 에라도스 왕국의 도시, 발라리아입니다. 성벽을 지키는 경비병이 도시 외곽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봤다고 하더군요.”


“발라리아라면 칼리고에서 꽤 멀리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발라리아까지는 휴식 없이 말을 달려도 열흘이 걸리는 거리였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수고롭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을 이동에 쓰면 정작 목격지에 찾아가더라도 이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확률이 컸다.


“저희가 최대한 지원할 것입니다. 순간이동 마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순간이동 마법이 있다면 대륙 끝에서 끝으로 가야한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넘어갈 수 있다. 물론 마법을 준비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수고가 들기 때문에 칼리고 정도의 대도시가 아니면 마법진이 설치되지도 않고, 비용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그러나 교단의 입김이 있다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길버트 대사제가 약속하기도 했고.


“하지만 발라리아에는 순간이동 마법진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킹스톤에서 직접 이동하셔야 할 것 같군요.”


“그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킹스톤에서 출발한다면 쉼 없이 말을 달린다는 가정 하에 하루면 충분했다.


“그 외에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우선 채비를 하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빌라드가 회의실을 나서자 갈란이 그 뒤를 따랐다.


“아빌라드 님, 성검의 선택을 받으셨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경도 몇 달 전 성검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아직 미약하지만 여신께서 절 어여삐 봐주신 거겠지요. 성검의 주인으로서 앞으로도 부끄럼이 없도록 더 노력해야겠죠.”


역시나 갈란은 성검의 선택을 받고도 전혀 우쭐한 기색이 없었다. 아빌라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숱한 전장을 겪어온 늙은 몸이었고, 갈란은 아직도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뛰어난 재능과 행운을 가지고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아빌라드는 그가 옛 이야기 속의 용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준비할 게 많으실 텐데, 제가 붙잡고 있었네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이만.”


갈란이 아빌라드를 따라 나온 것은 단순히 축하해주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그답다면 그다운 행동에 아빌라드는 가볍게 목례하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 가보니 가웨나는 침대에서 나와 캐트시와 함께 간식으로 잼이 듬뿍 발린 빵을 먹고 있었다. 오전에 캐트시가 먹던 것과 똑같이 생긴 것이, 아무래도 또 식당에 가서 얻어온 것 같았다.


“아빌라드 씨 오셨어요?”


“그렇게 자꾸 빵을 가져오는데도 사제들이 가만히 내버려 뒀나?”


“헤헤, 다 부탁해서 가져온 건데요 뭐.”


캐트시의 친화력을 생각해보면 없을 법한 일도 아니었다. 피식 웃은 아빌라드가 가웨나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괜찮니?”


“네.”


“오면서 네 선물을 좀 사왔는데, 한번 보렴.”


아빌라드가 옷가게에서 사온 옷을 내밀자 가웨나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가웨나의 표정은 뭔가 이상해보였다.


“가웨나? 옷이 마음에 안 드니?”


가웨나의 표정을 본 아빌라드는 일상복을 산 것이 실수인가 고민했지만, 캐트시가 웃으면서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빌라드 씨, 이건 가웨나가 기뻐하는 걸 참는 표정이에요.”


“아, 아니에요!”


아빌라드는 가웨나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왠지 창피한 것을 들킨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가웨나와 그런 그녀를 보며 놀리는 캐트시. 둘은 아빌라드가 없는 사이에 꽤나 가까운 사이가 된 듯 했다.


“그럼 아빌라드 씨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그것도 아닌데...”


솔직하게 기뻐하는 것은 창피하고, 그렇다고 선물을 받은 게 싫은 것도 아닌 가웨나의 얼굴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결국 그녀는 캐트시의 놀림을 버티지 못하고 아빌라드가 선물한 옷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거 봐요, 좋아하는 거 맞죠?”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가웨나는 얼굴을 옷으로 가린 채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을 본 아빌라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급선무였다. 그는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난 곧 일이 있어 떠날 거야.”


“네?”


캐트시는 대놓고 놀란 눈치였고, 가웨나 역시 얼굴을 가리던 옷을 내려놓았다.


“당분간 교단의 일을 돕게 됐거든.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서 같이 가긴 어려울 것 같아.”


“저는 괜찮아요! 위험한 곳이라도 제 한 몸 지킬 수는 있어요!”


캐트시는 아빌라드의 예상대로 따라오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 역시 캐트시 본인이 원한다면 굳이 따라오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제 몸 건사할 재주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가웨나였다.


“...”


앞으로 맡게 될 센티누스 탐색 임무는 위험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기 딸도 아닌 아이를 그저 닮았다는 이유로 계속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체 왜 밀리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알고 싶었지만 아이는 기억을 잃은 상태고 아이의 친족 역시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아빌라드의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계속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가웨나.”


“네.”


“솔직하게 네 생각을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내가 가는 곳엔 위험한 일들이 잔뜩 있을 거고, 네가 거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단다. 네가 원한다면 이곳 교단에서 널 거두어줄 테고. 어쩌면 네 가족이 널 찾을지도 모르지.”


“...”


“선택은 네 몫이란다.”


가웨나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캐트시는 장난을 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조용히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긴 고민을 끝내고, 가웨나는 아빌라드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아저씨를 따라가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지만 아빌라드는 놀란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대답이 기뻤다. 센티누스를 찾는 여정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여기서 가웨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아빌라드의 욕심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밀리아와 닮았다고 해도 죽은 딸이 돌아온 것이 되지는 않는다. 가웨나에겐 가웨나의 가족이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아빌라드는 기쁜 마음을 감추고 가웨나에게 다시 물었다.


“가웨나, 다시 말하지만 아주 위험한 일이란다. 잘 생각해보렴.”


“아저씨와 같이 갈래요.”


가웨나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설령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고 싶어 한다 해도, 아빌라드 본인이 얼마든지 떼어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빌라드는 그러지 못했다. 죽은 딸의 얼굴을 한 아이가 자신을 따라오고 싶어 한다. 비록 기억을 잃고, 어딘가에 그녀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빌라드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래서 그는 가웨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 정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



결국 아빌라드는 가웨나와 캐트시와 함께 출발하게 됐다. 캐트시가 같이 가는 것에 대해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가웨나를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다. 물론 가웨나의 친족이 나타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것을 말릴 수는 없었다.


길버트 대사제 역시 아빌라드의 결정에 적극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았다. 아빌라드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 가웨나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충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킹스톤 쪽에는 말을 두 필 준비하도록 연락하겠습니다. 발라리아로 이동하는 중에 드실 음식 같은 것은 말에 미리 실어놓도록 얘기했으니 곧바로 출발하셔도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탐색이 끝나는 대로 교단을 통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여신의 은총이 함께하길.”


순간이동 마법이 발동되고, 아빌라드 일행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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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약초꾼과 사냥꾼 +5 19.01.02 390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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