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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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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
작품등록일 :
2019.01.05 03:24
최근연재일 :
2019.02.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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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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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청현제일 무술대회(5)

DUMMY

대라선마의 암자 주변에는 나무 건조대 여러 개가 설치돼있다. 약초들을 말리는 용도다. 청지촌의 주민들은 대라선마의 암자 앞에 모두모여 침울한 표정으로 약초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대라선마가 암자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라선마가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훔치자 그의 흰수염이 살짝 나부꼈다. 살짝 뜸을 들인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수를 누릴 수 없는 것이 인세이거늘. 백수를 살았으니 하늘이 부르는 게야.”


왕춘칠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음성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이 이 상황을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그는 심검의 경지라네 반로환동을 해도 모자랄 판에 늙어 죽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라선마는 제자리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건만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말해야했고 해야하는 것은 본인이었다.


“그냥 온대로 가는 것이네.”


염류도가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노응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대라선마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노영감 누굴 호구로 알아? 개소리 말게. 뒈지고 나서 자연사라고 우기면 우리가 믿을 것 같나? 죽은 사람도 살리는 것이 대라선마거늘 솔직하게 말해주게.”


대라선마는 염류도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아 엄밀히 말하면 그의 기운 때문이네. 타고난 음기로 천하에 둘도 없는 고수가 되었지만 음기가 몸 전체를 집어삼켰어. 지금까지 버틴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네.”


혈우진이 다가와 염류도의 팔을 붙잡았다.


“염가... 그 손 놓게 노영감에게 화내서 무얼 하나. 다 스스로의 업보인 것을.”


염류도가 손을 놓으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설마 자네는 알고 있었나?”


“지금까지 버틴 것도 정말 기적이라네.”


“쓰벌... 말해줄 수 있나?”


혈우진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의 눈은 곧 과거를 뒤쫓았다.


“대략 구십 년 전일세. 고명옥과 난 사부에게 양음공(陽陰共)이라는 절세의 내공심법을 익혔으나 그 무공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네. 바로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지. 알다시피 나는 양강의 무학을 익혀 후천적으로 양기를 키웠지만 얼음귀신이 괜히 얼음귀신인가? 이 친구는 태어날 때부터 귀신의 자식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음기를 타고났다네. 조화를 이뤄야 배울 수 있는데 한 가지 기운에 치우쳤으니 당연히 양음공을 배울 수 없었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기운을 중화시키며 양음공을 익히는 편법을 사용했네. 이제 내가 왜 백여 년의 세월간 저 얼음귀신과 함께했는지 알겠는가?”


“그런데 어찌 자네는 괜찮은가?”


염류도가 잔뜩 인상을 쓰며 물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행색이 역력했다.

혈우진은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의 양기는 후천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순전히 노력으로 이룬 경지라 내 것처럼 다룰 수 있지만 고명옥은 아니네. 선천적인 재능에 노력이 더해졌으니 그 힘을 어찌 사람이 감당하겠는가?”


“아까 서로의 기운을 중화해준다 하지 않았나?”


“약 이십 년 전부터 그의 기를 완벽히 중화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했다네. 다행이 심검의 경지에 올라 어느 정도 그의 기운을 누그려트릴 수 있었지만 얼음귀신의 경지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올라 그마저도 불가능했다네. 경지에 오를수록 그의 음기도 강해졌으니... 그의 음기는 이미 인간의 수준이 아니네.”


“아...”


모든 이의 입에서 이해와 안타까움의 탄식이 아스라이 흘러나왔다.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 타고난 재능으로 모든 무림인이 꿈꾸는 심검의 경지에 발을 디뎠으나 그 타고난 재능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다니!


흡혈마 왕춘칠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음기를 내가 흡수하면 도움이 안 되겠는가?”


혈우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기운을 흡수하면 자네도 며칠을 고생할걸세. 그리고 소모한 음기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음기를 만들어내며 몸에 심각한 부담을 주겠지. 세간에 고영감의 기운은 단순한 음기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천음절맥을 타고났다네.”


천음절맥이라는 소리에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버렸다.

간간이 천음절맥(天陰竊脈)이라는 것을 타고나는 이가 있다. 이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뛰어난 오성을 지녔다. 공부를 시작한 이는 일찍부터 문관으로 성공해 녹봉을 받았고 무공은 말할 것도 없다. 십대에 일갑자의 내공을 얻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병을 달고 살았고 대부분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몇몇 무지렁이들은 그들의 불꽃같은 삶이 부럽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살아가며 겪는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그야말로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백세에 가까운 고명옥의 나이를 보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게 장수한 셈이었다.

천하의 이름을 떨친 대라선마가 포기했다면 누가와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염류도는 차마 대라선마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채 물었다.


“노영감이 보기에 얼마나 갈 것 같은가?”


“아마 내일? 이틀은 못 넘길 것이네.”


모든이의 안색이 절망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다음날 고명옥은 피곤한 얼굴로 대라선마의 암자 앞에 놓인 마루에 앉아 한명씩 전음으로 인사를 했다.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것은 대라선마 노응칠이었다.

청현이 목 놓아 울고 있었기에 노괴들은 억지로나마 울음을 꾹 참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도 아니건만 몇몇 노괴들이 코를 훌쩍거렸고 차마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뒤로 광마 마천존, 귀명염도 염류도, 흡혈마 왕춘칠, 흑수, 일보신권 나완권, 화룡도 혈우진이 인사를 나누었다.


제갈연 또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내 눈가를 훔쳤다. 같이 산 세월이 있기에 정이 들어도 단단히 들은 것이다. 제갈연은 고명옥을 꼬옥 안아준 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이는 청현의 등을 다독였다.


“할아버지께 인사 해야지.”


“훌쩍... 싫어요.”


청현을 물끄러미 바라본 제갈연은 옛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예전 엄마에게 너무나도 친한 사매(師妹)가 있었단다. 친동생보다 더 친했지. 어느날 칼을 맞고 돌아와 하루를 못 넘길 거라면서 인사를 하라는데... 그때 엄마는 차마 인사를 할 수 없었단다. 사매의 창백한 얼굴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 뒤로 사매와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데 그 일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단다. 하기 싫다면 강요는 하지 않으마. 허나 엄마는 현이가 엄마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청현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명옥은 아직 전음을 사용하지 못하는 청현을 위해 말로 대화를 했다.


“현아 고맙다. 이 할애비는 노년에 우리 현이를 만나서 너무나도 즐거웠단다.”


청현은 끅끅 거리며 울음을 참았다. 콧물과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와 소맷자락으로 닦아보려 했지만 이미 소맷자락은 이미 젖을대로 젖어 잘 닦이지 않았다.

청현은 꺽꺽 넘어가는 숨을 억지로 참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야말로. 할아버지를. 만나서. 너무도. 즐거웠어요.”


고명옥이 팔을 벌리자 청현은 고명옥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노괴들은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어 하늘을 보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현이 어느 정도 진정 되자 고명옥은 말을 이었다.


“이 할애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테냐?”


“당연하죠.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세요.”


“사실 할애비는 북해빙궁 출신이란다. 기회가 되면 북해에 가줄 수 있겠느냐?”


고명옥의 출신지를 듣자 혈우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외의 세력인 북해빙궁은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 전설로 치부되는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고명옥이 북해빙궁 출신이라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청현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북해빙궁은 어떻게 가야하는데요?”


북해빙궁을 찾아가는 방법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제갈연을 비롯한 노괴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언젠가 이 청지촌을 나가게 되면 요녕에 위치한 모용세가를 찾거라. 그곳에서 북해를 가기위해 준비를 끝내고 길림성을 지나 흑룡강 지역까지 쭉 올라가다보면 흑룡표국이라는 거대한 표국을 만날 수 있을게다. 그곳에서 흑왕을 찾아 북왕을 찾으러 간다고 말하면 안내인을 붙여줄 것이다. 그 안내인과 함께 북서쪽을 향해 삼천리가량 이동하면 그곳에서 북해빙궁을 찾을 수 있단다.”


삼천리면 무림의 끝과 끝이다. 절강에서 강숙까지의 거리와 비슷한 정도이다. 일류고수가 밤낮가리지 않고 죽어라 경공을 펼쳐야 간신히 한 달 안에 도착할까 말까한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것도 산길, 물길을 타지 않고 단순히 거리상으로 계산했을 때다. 단순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북해빙궁을 찾는데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여정이다.

그런데 그거리를 어떠한 이정표없이 대강 북서쪽으로 가라고 한다. 그야말로 사막에 떨어트린 바늘 찾기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청현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가서 무엇을 해야하나요?”


“고맙구나. 사실 할애비의 애검 빙설은 북해빙궁의 대대로 전해져오는 가보이니라. 철없던 어릴 적에 이 검을 들고 집을 나섰으나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부탁한다.”


고명옥이 허리춤에서 빙설을 꺼내 건네자 청현은 검을 두 손으로 곱게 받았다.


“제가 반드시 전해줄게요.”


“고맙구나. 이제 나는 쉬어야겠다.”


고명옥은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 표정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며 평온했다.

청지촌의 모든 이들은 고명옥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노괴들은 고명옥의 숨이 끊어진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 챘다.

혈우진이 크게 고함을 지르며 대성통곡 하자 모든 이들의 눈시울이 다시금 축축히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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