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에렐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머게
작품등록일 :
2019.01.05 23:57
최근연재일 :
2019.01.26 20:28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22
추천수 :
0
글자수 :
30,027

작성
19.01.05 23:59
조회
26
추천
0
글자
5쪽

0.

DUMMY

숲의 경계에서 조금 올라간 곳.

후드를 깊게 내려 쓴 소녀가 무언가를 노트에 끄적이고 있었다.

이따금 북에서 불어 내려온 쌀쌀한 바람이 소녀의 푸른 머리카락을 후드 밖으로 길게 흩날리며 장난을 쳤지만, 당사자에겐 펜을 놓을 만큼의 일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에서 남으로 121키미르 동으로는 13키미르. 고도는...”

바쁘게 펜을 움직이던 에렐이 옆에 있는 허리높이의 나무 설치물 위에 손을 올렸다.

설치물은 수직으로 꽂은 허리높이의 나무기둥 끝에 길쭉한 자의 중심 부위를 꽂은 것이었는데, 자 가운데에는 공기 방울이 남아있는 유리 물병이 있어 수평을 맞추기에 쉬웠다. 자의 뒤편에는 나무에 금을 그어 만든 반원의 각도기와 손바닥만 한 곧은 대롱이 달려있었다.

에렐이 대롱 끝에 눈을 대고 그것의 연장선을 아래로 움직이자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중심부가 보였다.

깃펜을 쥔 손이 다시 노트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도는 아래로 21도, 여기까지 74미르니까 높이차는 30미르. 이곳이 59미르니까...”

얼굴보다 조금 작은 노트에는 모래알 크기의 글씨들이 줄을 이뤄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지형, 날씨, 식생 등 지리학 사전에나 나올법한 내용이었다.

글자를 나열하던 에렐의 손이 멈췄다.

“아...”

중심부에서 조금 내려온 변두리 쪽이었다.

대롱의 둥근 시야 사이로 성인으로 보이는 인간 남자 몇 명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보였다. 남자들은 자신의 키 만한 작은 나무들을 수레에 싣고 있었고 여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긴 넝쿨에 솔방울 같은 것을 걸어 그 위에 같이 싣고 있었다. 바빠 보이는 그들 대부분은 표정이 밝아 보였다.

지켜보던 에렐의 입술 끝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탄신절 준비인가.’

-웅...

그때 발에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에렐이 고개를 돌리자 동그란 모양의 작은 돌멩이가 보였다. 흙으로 빚은 눈사람과 같은 그것은 눈사람의 나뭇가지 대신, 되다만 고드름처럼 튀어나온 조막만 한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돌멩이는 두 팔로 에렐의 신발가죽을 잡아당기려 했지만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이라 쉽게 잡을 수 없는지 몸만 뒤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쿵.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돌멩이는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에렐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알아, 토리. 안 그럴 거야.”

손바닥으로 돌사람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제야 진정된 듯 토리의 진동이 멈췄다.

“먹을 것도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에렐이 바위에 기대놓은 몸통만 한 가방을 열자 가방의 윗입 사이로 가죽 주머니 두 개가 보였다. 말린 고깃덩어리와 옥수숫가루를 넣은 주머니로 아직 반 이상 남아있어 인간 마을에는 당분간 방문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음, 그런데 물은 다 마셨네. 토리, 근처에 물 구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줄래?”

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너무 길었던 걸까. 한숨을 내쉰 에렐이 가방에 매어둔 대나무 물통을 들어올렸다.

-퉁.

손가락으로 물통을 두드리자 토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금세 사라지는 토리에 잠시 지켜보던 에렐이 뒤따랐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조금 따뜻한 바람이었다.

바람은 소녀가 놓고 간 정체 모를 나무 설치물과 먹을 것 냄새가 풍기는 가방을 맴돌았다. 하지만 설치물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고 주머니의 음식 냄새는 평범했기에 바람에겐 흥밋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번엔 바람이 노트 위를 맴돌았다. 멀찍이서 훔쳐보던 노트의 다른 장을 보기 위해 열심히 핥아보았지만, 노트 위엔 주먹 반 크기의 조약돌이 있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은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다른 건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던 바람은 때가 탄 누런색의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오래된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는 때가 타 회색빛이 듬성듬성했는데 미쳐 신경 쓰지 못했는지 두루마리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바람은 두루마리에 혀를 내밀었다. 저것만 챙길 수 있다면 기분좋게 남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닿기 전이었다.

어디선가 불쑥 솟아난 검은 그림자가 두루마리를 뒤덮었다.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바람에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에렐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19.01.09 12 0 -
7 1.개골-6 19.01.26 12 0 10쪽
6 1.개굴-5 19.01.21 13 0 9쪽
5 1.개굴-4 19.01.18 17 0 11쪽
4 1.개굴-3 19.01.12 18 0 10쪽
3 1.개굴-2 19.01.10 16 0 10쪽
2 1.개굴 19.01.08 20 0 12쪽
» 0. 19.01.05 27 0 5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아머게'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