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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머게
작품등록일 :
2019.01.0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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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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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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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굴

DUMMY

며칠 뒤, 붉게 변해버린 숲의 가장자리. 아직 잎이 떨어지기엔 조금 이른 시기였다.

해는 이미 한참 전에 떨어졌다.

가끔 냇물에 어른거리는 달빛이 아니었다면 창문 없는 지하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검은 어둠이었다.

사내 하나가 달이 뜬 냇가를 앞에 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에 얼굴은 연한 황갈색이었는데, 걷은 소매 아래의 연한 피부색으로 보아 장시간의 여행으로 자연스레 탄 것 같았다.

무언가를 쥔 사내가 엄지에 힘을 줬다.

-칙.

번쩍이는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여러 번. 작은 심지에 불꽃이 피어났다. 검지 한마디보다 작은 불꽃은 태어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써버렸는지 비실대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했다.

‘벌써 기름이 다 된 건가.’

그때 바람이 불었다. 불꽃이 위태롭게 흔들리자 사내, 기닌이 손바닥으로 불꽃을 감쌌다.

“휴....”

겨우 되살아난 불꽃이 야윈 몸을 일으켜 남자가 입에 물고 있는 갈색 막대 끝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작은 불씨 하나가 공중에 매달렸다.

짙은 담배 연기가 습하고 쌀쌀한 공기를 갈랐다. 폐를 거친 따뜻한 연기는 금세 흩어져 희미해지고 투명해졌다.

기닌은 연기를 멍하니 쳐다봤다. 지금만큼은 연기가 부러웠다.

허리를 굽혀 냇가의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휙 가볍게 던지자 천천히 흐르는 물에 파문 몇 개가 생겼다. 파문은 넓게 퍼져 물위에 솟아난 장애물에 하나씩 감겨들었다.

길게 자라난 풀줄기, 반쯤 썩은 나무, 두툴한 두꺼비의 등.

그리고 희미한 빛을 머금은 불어터진 손.

핏기없는 하얀 손은 검지를 들어 기닌을 가리켰다.

-여기, 이곳이 네가 있을 자리야. 내가 아닌 네가 있어야 했을 자리야.

갈라진 손톱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기닌이 눈을 감았다.

한참 지나 눈을 다시 뜨자 시체의 손은 물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매끈한 작은 바위가 되었다. 달빛이 반사되어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그저 평범한 바위. 하지만 등에 난 소름은 아직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닌이 담배를 땅에 비벼 껐다.

“제기랄.“

신경질적으로 밟고서 간이부싯돌을 상의 안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으려 했지만, 미리 들어가 있는 종이 다발들이 손을 막았다. 반대 손으로 그것들을 끄집어내 보았다.

영수증이었다. 달빛을 비춰보니 대부분 작년과 재작년 것으로 급하게 처리할 건은 아니었다. 장부 기재용으로 챙긴 것일 테니 이미 필요 없을 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은 가지고 있는 게 아무래도 좋을 듯 했다.

기닌이 냇가를 뒤덮은 기다란 풀을 헤쳐나갔다.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이 쌓여 있었지만 물기가 많은 진득한 기운이 가죽신의 밑창 너머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좀 더 걸어 들어가자 나무 틈으로 보이는 붉은 불빛이 선명해졌다. 코로 공기를 들이키자 희미했지만 구운 고기의 달콤한 향이 나고 있었다. 기온이 제법 내려간 것에 놀라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음?”

기닌의 걸음이 멈췄다. 귀를 기울이자 조금씩 들리던 소리가 명확해졌다.

-달그락.

기닌은 소리 없이 손에 든 나뭇가지를 내려놓고는 허리춤에서 검게 칠해진 나무 방망이 하나를 꺼냈다. 항구의 어느 정신 나간 노인네가 준, 이름 붙이기로는 ‘팔로의 3호’였던가. 아무튼, 평범하기만 한 방망이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쥔 기닌이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냥 짐승이었으면 좋겠는데.’

-달그락. 달그락, 드륵.

기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시야를 막고 있는 나뭇가지를 왼손으로 살며시 걷어내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뭐냐, 넌?”

모닥불 앞에 앉아있던 녀석의 동작이 멈췄다. 키는 대략 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사내로 보이는 녀석은 자신이 마련해둔 자리에서 냄비로는 얼굴을 가린 채 한쪽 눈만 옆으로 슬쩍 내밀었다.

타오르는 듯한 핏빛의 눈동자가 보였다.

“용아족....”

기닌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직 어렸지만 녀석의 갑주를 찬 듯한 붉은 손과 붉은 눈동자는 분명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왜 저 녀석이 여기 있는 거야.’

용아족.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용아족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은 꽤 들어본 터였다.

평소에는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용아족은 위험을 느낄시 자신의 신체를 변형한다고 했다.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버릴 정도의 악력을 가지게 되며 피부 또한 더럽게 단단해져서 웬만한 칼과 창으로는 갈라지지 않는다고.

물론 이것으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심하고 심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니까.

진짜 문제는, 취향이 독특한 귀족들이 노예로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반항 못 하는 어렸을 때 납치해서 약으로 길들인다고는 하지만 간혹 실패하는 때도 있었다.

용인들이 산다는 마른 땅은 이 대륙의 서쪽 끝에 붙어 있다. 녀석은 아직 어려 보였고 입고 있는 옷은 흙먼지와 지푸라기가 붙어 꼬질꼬질하긴 했지만 비단으로 만들어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니까.’

저 놈은 노예로 잡혀가 도망친 녀석일 것이고,

그런 녀석은 인간에게 반감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식은땀이 흘렀다.

‘도망쳐야... 되겠지.’

어려서 변형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된다면 자신의 묫자리가 어디인지는 뻔해 보였다. 어린 용아족이야 보통 인간어린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지만 말이다.

그때, 뒷걸음치던 기닌의 눈에 맞은편에 놓인 자신의 가방이 보였다. 특별히 튼튼하게 제작한 가방엔 가죽 고리마다 금속제 식기와 잡기들이 가득 묶여 있었다.

외진 곳에 물건을 파는 것이 기닌의 일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온 것이 거의 한 달이 넘었다. 목적지까지는 이제 나흘 거리. 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저걸 들고 제이 산맥을 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기닌이 천천히 방망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안녕?”

녀석은 기닌과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떨리는 동공으로 기닌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손에 든 냄비는 놓지 않았다.

기닌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앞으로 한 걸음 걸었다.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아직 많이 있으니까. 하.하.”

그리고는 두 손을 조금씩 흔들었다. 봐. 나는 널 공격할 의사도 무기도 없다고

“넌 이름이 뭐냐? 말은 알아듣지? 난 나쁜 사람 아니라고.”

기닌이 스승에게 배운 ‘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이 정도면 알겠지?

“악!”

기닌이 코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아파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녀석이 사라진 뒤였다. 붉은 눈의 용아족 아이 대신 속이 말끔히 비워진 냄비가 모닥불 옆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망할 자식!”

냄비를 던지다니!

기닌이 한마디 더 크게 내 지르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다행이네.’

별다른 문제없이 마무리된 것에 감사함마저 느껴졌다. 물론 저녁을 늦게 먹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말이다.

기닌이 냄비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낯선 두루마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게 바로 그때였다.

.................

길은 습지 초입에 이르고 있었다. 습기에서 발을 보호해주던 나뭇잎과 가지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고 바닥은 진흙과 흙탕물이 대부분이었다. 시체 썩은 내가 나는 물에서 발을 뺄 때마다 길게 자란 실뿌리나 넝쿨 같은 게 감겨 올라왔다.

힘들게 걸음을 옮기던 기닌이 멈춰섰다.

‘이게 뭘까.’

어젯밤 방문한 불청객이 남기고 간 두루마리 한 장. 기닌은 그것을 손에 든 채 오전 내내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된 양피지였다. 가장자리는 젖은 종이같이 쭈글쭈글하고 색은 누렇게 변색한 지 한참 되어 손가락으로 비비면 겉껍질이 일어나 벗겨질 것 같았다.

‘지도는 맞는 거 같은데.’

닳아 지워진 몇몇 섬과 지형을 표시하는 가장자리 굵은 선을 보아서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크란 대륙처럼 보였다. 점선으로 칸을 나눈 각 지역의 중앙에는 지역명을 적어놓은 것 같았지만 자신은 알 수 없는 문자였다.

‘설마 보물... 지도?’

기닌은 고개를 저었다.

지도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찍혀있는 작은 쐐기 모양은 있었지만 찍혀있는 수가 어림잡아 40개가 넘어 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결국 지도는 다시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갔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물건인 건 확실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고물상에 팔아버리면 될 것이다. 오래된 고문서를 모으는 취미가 있으신 높으신 분들에게는 꽤 비싼 값에 팔릴지도 모르니까.

생각을 멈추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2시간 넘게 늪을 가로질러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쉬어갈까.’

잠깐 멈춰 주위를 둘러보니 진흙밭 위로 올라온 작은 동산이 보였다.

뭍으로 올라선 기닌이 신발에서 진흙 덩어리를 한 움큼 뜯어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래도 이 근처 젖지 않은 땅은 이곳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해는 이제 막 정오쯤. 현재 있는 곳은 산맥에서 남으로 내려와 사이나 강의 수원인 저습지와 맞닿은 지역으로 이 속도라면 마른 땅에 도착하기에 넉넉잡아 반나절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발이 쑥 빠지는 진짜배기 늪지는 아직이었지만, 웅덩이를 건너오며 묻은 물방울들로 신발은 이미 홀딱 젖은 상태였다.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몸을 눕히니 늪 쪽에서 다시 우렁찬 그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의 나무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다.

줄기에서 뻗어 나간 서로 비슷한 두께의 붉은 뿌리들이 나무의 둥치를 물에 닿지 않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뿌리는 한 그루에 열 개에서 그보다 많았고 밑으로 길게 내린 매끈한 문어 다리 같았다.

그리고 뿌리 아래에는 시끄러운 개구리들이 있었다.

-개굴개굴.

“망할 녀석들.”

두 시간 전, 진흙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기닌은 표지판 하나를 발견했다.

<개구리 주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각목에 어깨보다 조금 좁은 널빤지를 못을 대어 박아 넣은 것인데 습기가 덜한 위쪽에는 이끼가 무성했고 아래쪽은 거의 삭아 넘어지기 직전이었다. 표지판에는 커다란 글자로 ‘개구리 주의’가 적혀있었다.

그때야 늪이니까 당연히 개구리가 많겠지 했다. 지금 와서 보니 개구리가 얼마나 많은지 새소리, 바람 소리는 온 데 없고 개골거리는 우는 소리만 들렸다. 몇 시간 동안 같은 소리만 들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물이 많지 않은 진흙땅에도 이 정도라면 본격적으로 늪이 시작되는 안쪽에는 얼마나 많은 개구리가 있을지 짐작이 안 되었다.

기닌은 배낭에서 흙이 조금 묻어 있는 천을 빼 들어 손을 닦았다.

기닌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개굴.”

가방 옆에 자리 잡은 얼룩 개구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기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닌이 개구리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너희는 매일 이렇게 시끄럽게 우냐. 그렇게 할 말이 많아?”

“개굴”

“개굴밖에... 어?”

개구리가 별을 내뱉었다.

‘어?’

개구리는 하나 둘 몇 십 개의 빛나는 별을 내뱉고는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때야 기닌은 뒷통수를 울리는 따끔한 기운과 함께 자신의 머리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써봤지만 금세 땅이 얼굴에 다가왔다. 쿵. 바닥에서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옆을 보니 녹색의 무언가가 뿌옇게 보였다.

‘발? 아니... 물갈퀴.‘

눈의 초점이 잡혀 흐릿해진 시야가 되돌아온다고 느낀 순간, 다시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기닌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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