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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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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머게
작품등록일 :
2019.01.0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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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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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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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굴-3

DUMMY

바닥이 질척거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발이 빠졌다.

“음...”

진흙밭중앙에 위치한 허름한 목조건물이었다. 진흙밭에 건물을 짓다니. 이 근처 지리를 모르는 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광경이었다.

이곳은 주기적으로 늪과 마른 땅이 번갈아 나타나는 지형으로 몇백 년, 혹은 몇 년에 걸쳐 지하수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이곳에 건물을 세운 이는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 분명했다.

에렐이 말했다.

“여기 맞아?”

-웅...

작은 돌인형이 진흙밭에서 부르르 떨었다. 토리도 물기 있는 땅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드라코는 사막 같은 기후를 좋아한다고 배웠는데 왜 이런 곳에 온 거지? 마른 땅에선 반대쪽이고.”

에렐이 건물 문 가까이 걸어갔다.

집이 아직 온전한 모습을 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다른 곳에 비해 땅은 물이 적고 단단했다.

몇 시간에 걸쳐 겨우 뭍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올라온 에렐이 발에 묻은 진흙을 떼어냈다.

“며칠을 쫓은 거야.”

본래 이곳은 자신이 통과할 지점이 아니었다. 기준점에서부터 한참은 떨어진 이곳에 온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물건을 훔쳐 간 용아족 하나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에렐의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잡히기만 해봐.”

“살려줘.”

“그만해. 기록자라고.”

에렐의 바로 옆 나무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헉.

나무문 판자 틈 사이로 여러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그것들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났다.

“아차.”

에렐이 재빨리 머리 덮개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발밑이 훤할 정도의 달빛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당신들, 고들한테 잡혀 온 건가요?”

“고들?”

“큰 개구리 인간들이요.”

“그 녀석들이 고들이야?”

안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커졌다. 자신들끼리 몇 차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에렐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기 제 물건을 가져간 사람이 있어서 왔어요. ”

하얀 동그라미들이 끔뻑였다가 서로를 마주했다. 다시 몇 마디 말이 오가는 듯했지만 역시나 아무도 아는 바가 없는 듯 조용해졌다.

“양피지로 만든 지도인데...”

“저...저기,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풀어주면 안 될까.”

울음이 섞인 여자 목소리였다. 곧이어 남자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만둬. 기록자잖아.”

“당신은 조용히 있어 봐. 그래도 혹시라도. 그렇지? 구해줄 거지?”

“저 녀석들한테는 우리가 굴러가는 돌만도 못한 존재라고. 다른 방법을 찾자. 힘만 빠질 거야.”

에렐이 문에서 눈을 뗐다. 고개를 내리니 누군가의 발자국인 듯한 작게 파인 웅덩이에서 손톱만 한 돌멩이 하나가 뱅그르르 돌고 있었다.

에렐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역시 그렇겠지. 좋게 보일 리가.’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기 말이야, 저기. 얘. 이렇게 부르면 좀 그렇지? 기록자님, 찾는 그 사람, 우리를 구해주면 찾게 도와줄게. 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너희들이 그렇게 나쁜 쪽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도와줄 수 없어요.”

에렐이 말했다.

“기록자들은 다른 종의 일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을 의무가 있어서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건 절대 간섭해선 안 되는 일이에요.”

문 너머에서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웅성거리는 목소리 중에 몇몇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욕이 반쯤 섞여 있었는데 대상은 에렐 자신인 것 같았다.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재수 없는 것들! 뭘 잃어버렸건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냥 꺼져버려!”

”진정해. 괜히 소리 높여봤자 우리한테 좋을 게 없다고.”

“너도, 너도 꺼지라고! 내가 말했잖아. 너무 멀리 나왔다고. 돌아가자고 했는데. 다 너 때문이야, 이 망할 말 대가리야!”

“아니, 이 여자가.... 날 꼬드긴 게 누군데. 당신이 남편한테 들키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조용히 해!!”

찰싹. 찰진 소리가 들린 뒤 남자와 여자가 엎치락뒤치락 뒹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마 여자를 때릴 수는 없었는지, 망설이던 남자는 여자의 발길질에 턱을 맞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여자의 손에 들린 나막신을 겨우 가로챈 제복남이 말했다.

“워워, 진정하시고. 기록자 씨,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 게 어떤 물건인지 가르쳐줄 수 있겠소? 여기 들어온 인간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볼 테니까.”

“뭐하러 찾아주려는 거예요. 도와주지도 않겠다잖아요.”

제복남이 달려드는 여자를 손을 들어 제지했다.

“거 가, 가만히 좀 있어 보시오. 혹시 아나, 방법이 있을지.”

“나흘 전에 가져간 물건이에요. 양피지로 된 지도인데 ”

“이틀?”

제복남이 기닌을 바라보았다.

기닌은 아까부터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은 기록자에 고정한 채 어떤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제복남이 부르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에실린... 에실린? 아니...”

“이봐, 당신.”

사내가 어깨를 건드리자 기닌이 움찔했다.

“어.... 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틀 전이면 당신 아니오?”

기닌이 제정신을 차리자 제복남이 다시 말했다.

“혹시 아는 거 없소? 나흘 전이면 그동안 들어온 건 그쪽하고 저기 용아족 말고는 없으니까. 지도를 찾는 거 같은데.”

“지도?”

기닌이 품속을 급히 뒤졌다.

‘어디에 넣어뒀더라. 여기 어디였는데. 이 녀석들 그것도 가지고 간 건가. 여기 어딘...’

“아, 이건가.”

아무래도 개구리들은 기닌의 주머니에 든 것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숫자가 적힌 종이 쪼가리와 양피지로 만든 지도, 라이터라고도 부르는 정체 모를 네모난 것뿐이었으니까. 그 외에 허리에 찼던 방망이와 자신의 배낭은 깨어났을 때 이미 없었다.

“혹시 초록색 쐐기 표시가 여러 개 찍혀 있는 걸 말하는 거야?”

에렐이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 두루마리를 보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그거에요!”

일부러 억누르고 있는 듯했지만 기쁜 듯 음이 올라간 목소리였다.

하얀 손가락 두 개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두루마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기닌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도리어 기닌이 한걸음 물러나자 에렐이 말했다.

“이리 줘요, 그거.”

“음...”

“저기요?”

기닌이 뒤돌아봤다. 정말 수면제를 썼는지 용아족 아이는 상황에서도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글쎄. 어쨌건 난 음식값 대신 받은 거니까.”

“음식값?”

“돈이 없는 용아족 아이가 내 저녁을 먹고는 이걸 줬다는 거야. 그러니 그냥은 못 주겠지?”

“하지만...”

“모두 구해달라고는 하지 않아. 주인은 나니까.”

기닌은 생각했다.

용아족의 일방적인, 기닌이 허락하지도 않은 거래였지만. 한 끼 식사와 목숨을 구할 기회를 바꾼다면 아무래도 이쪽이 훨씬 이득이 아닌가.

제복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 봐, 설마 혼자서 나갈 생각은 아니지?”

사람들의 눈이 기닌을 향했다. 아까와는 다른, 반짝거리는 눈빛에 사뭇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은 문을 열게 해야죠.”

기닌이 말했다.

“아무리 기록자라도 이 인원을 한꺼번에 막지는 못할 거니까. 누구라도 도망친 사람은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을 찾아서 알리는 겁니다. 치안대가 구하러 올 겁니다.”

”치안대라....”

제복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치안대들은 그렇게 빨리,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보통 한 지역에 소속된 치안대 숫자는 50명이 되지 않으니 모자란 사람들을 차출해야 할 것이다. 이시기는 수확 철이니 쉽게 사람을 빼기도 힘들 것이니까 시간도 걸릴 테고.

기닌은 도망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끌려간다고 했다. 사람이 나간 만큼 개구리들에게 먹힐 확률은 높아질 테고 도망치려던 사람은 아마도 먼저 먹힐 것이니까.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까지 쉬지 않고 걸어도 사 일에서 오 일. 치안대가 있는 성내까지 소식이 도착하고 바로 출발한다고 해도 오는 시간은 합쳐서 이주일 넘게 걸릴 것이다.

즉, 이번에 도망치지 못하면 죽는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경우다.

‘개구리 조심’

팻말이 있다는 말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아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기닌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외양간 벽에 붙었다. 그리고는 문 가까이 천천히 모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래?”

“그래도 당신들을 구해주는 건....”

‘기록하되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이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다니는 말이라고 했다.

“중요한 물건이면 스스로 지켰어야지.”

치익. 기닌이 불을 켰다. 두루마리 아래가 조금씩 그을리는 게 보였다.

“잠깐! 여기서 빼내 주면 되는 거죠?”

“거기에 안전한 장소까지 보호해 주는 것도 추가로.”

곧 거친 나뭇결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며 하얀 달빛이 비집고 들어오자 하늘색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벽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숨죽이며 기닌을 바라봤다.

기닌이 에렐 옆을 스쳐 지나갔다.

“고마워.”

기닌이 미소지으며 두루마리가 든 손을 내밀자 에렐이 지도를 잡으려 했다. 기닌은 재빨리 양손으로 에렐의 손목을 쥐며 외쳤다.

“지금!”

“어?”

사람들이 일제히 문을 향해 달렸다.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 밀치고 당기는 통에 몇몇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들 중 하나가 문 가까이 접근했을 때, 에렐이 말했다.

“토리, 막아.”

흙더미가 땅에서 솟구쳤다. 문이 있던 자리는 암석이 섞인 진흙더미로 막혀 빠져나갈 구멍 하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커다란 흙 거인이 솟아나 흙더미를 문 안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다.

“제가 진짜 믿을 거라 생각했어요?”

기닌이 놀란 듯 아무 말도 못하자 에렐이 기닌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에렐이 걸쇠를 문에 마저 끼웠다.

“이제 가요. 약속은 지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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