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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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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머게
작품등록일 :
2019.01.05 23:57
최근연재일 :
2019.01.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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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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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골-6

DUMMY

천천히 걸어오던 고들이 순간 창을 높이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큭...”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창대를 잡기는 했지만 충격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고들이 창을 때어내려 했지만 기닌은 온 힘을 다해 창을 붙들었다.

기닌이 창을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들은 곧바로 다른 곳을 노렸다.

“개골!”

-퍽!

기닌은 복부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창을 쥔 손은 놓지 않았다. 지금 창을 놓는다면 다음에 복부에 꽂힐 건 무릎이 아니라 창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기닌이 창을 놓으려하지 않자 고들이 다시 무릎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기닌도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흡!”

창을 당기자 고들이 제 힘에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기닌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고들 위에 올라탔다. 이대로 창에 체중을 실어 고들의 목을 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쓰러진 고들이 뒷다리로 뒤를 박차자 기닌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기닌이 기적적으로 창을 놓지는 않았지만 고들과 위아래 자리가 바뀌어버렸다. 반대로 고들이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 창을 누르기 시작했다.

기닌이 창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대는 점점 낮아졌고 눈앞이 흐려졌다. 몸을 빼내려고 해봤지만 고들이 뒷다리로 허리를 잡고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골!”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고들이 더 몰아붙이기 위해 몸을 들어 올렸다.

‘설마 이렇게....’

기닌의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퍽.

무언가 축축하고 길쭉한 것이 기닌의 얼굴을 덮었다. 눈을 뜨자 검붉은 고들의 혓바닥이 보였다. 기닌이 슬쩍 밀어내자 고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뭐...야?”

불을 비추니 고들의 머리에는 무언가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 기닌이 불을 들어 시야를 넓히려고 했지만 심지에 매달린 작은 불꽃은 버티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칙. 칙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기닌이 엄지를 당겨봤지만 불꽃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곽을 흔들어 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름이 다한 것 같았다.

그때, 기닌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분명 이곳은 빛이 들지 않는 지하였고 주변을 밝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이렇게 밝은 거지?’

기닌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공 안 어둠 속에 커다란 불꽃 하나가 서있었다.

기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고개를 몇 번 젓고서야 기닌은 그것이 헛것이 아닌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망토를 뒤집어쓴 그것의 팔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팔의 딱딱한 피부를 흐르는 빛나는 동맥은 검붉은 껍질과 대비돼 화산을 흘러내리는 용암처럼 보였다.

몸집이 불었는지 용아족의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던 덩치도 지금은 기닌보다도 커 보일 정도였다.

기닌이 말했다.

“너, 뭘 한 거야?”

기닌의 물음에 용아족 소년이 팔을 바라봤다. 자신도 놀랐는지 한참을 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닌이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소년이 물러서며 말했다.

“먹을 것.... 값....”

“뭐?”

용아족 소년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

용아족을 따라 동공을 나오자 전에 지나쳤던 웅덩이가 보였다. 뒤따르던 기닌이 말했다.

“이건가...”

웅덩이를 가로진길 위에는 고들의 알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웅덩이 위로 끌어올려 발로 짓이겨 놓은 것 같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짐작이 가는구만.’

양식이 될 인간이 도망친 데다 자신들의 알까지 깨버렸으니 분노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용아족은 아무일 없다는 듯 그 위를 걸어나갔다. 기닌도 따라나서니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신발 너머로 느껴졌다. 분명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 녀석들의 알이었지만 이상한 불쾌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당한 데로 갚은 거니 이해는 가지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지럽게 찍혀있는 발자국 사이에 용아족 소년이 멈춰 섰다.

“... 여기.”

“응?”

소년이 무언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붉게 빛나던 팔과 몸은 이미 식어 인간의 그것과 같았다.

배를 보인 고들 하나와 엎드린 인간 하나가 보였다. 장소와 머리에 난 상처, 옆에 있는 바위를 보아 기닌이 둥지에 들어가기 전 기절시킨 녀석 같았다.

가까이 다가간 기닌이 먼저 고들을 살폈다. 고들의 복부에는 나무 창이 땅과 수직으로 박혀있었는데 정신을 잃은 상태라 반항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기닌이 등을 보인 인간을 뒤집었다.

“아...”

미친 노인이었다. 제복남과 같이 당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입구까지는 무사히 나온 모양이었다. 배를 보니 관통당한 상처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고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

기닌이 한숨을 쉬었다.

‘악몽이 하나 더 늘었군.’

한쪽에서 흙거인과 고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구고들이 창을 내지르며 에렐에게 달려들었다. 흙거인은 에렐을 손으로 보호하며 다른 손으로는 찔러 들어오는 창을 잡았다. 하지만 진흙으로 된 손은 고들의 창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다.

-퍽.

회수된 창이 흙거인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뚫었다. 구고들의 머리의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입꼬리가 치켜 올라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토리는 가슴에 박힌 창에 아랑곳 않고 구고들에게 달려들었다.

“골?”

분명 치명상을 먹였을 텐데도 상대가 아무 일 없듯 공격해오자 큰 고들은 당황한 듯 두꺼운 뒷다리를 이용해 뒤로 풀쩍 뛰었다. 뛰쳐나오며 뽑힌 창에서 흩뿌려진 흙들이 사방에 튀었다.

크게 뛰어 자리를 잡은 큰 고들은 우둘투둘한 팔로 나무창의 중앙과 뒤 끝을 잡은 채 자세를 다시 잡았다.

-개골개골.

소매로 진흙을 걷어낸 에렐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아무래도 큰 고들의 공격에 토리가 밀리자 용기를 얻은 것 같았다. 이제껏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던 고들들 몇몇이 자신의 창을 들고서 에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옆에 있던 녀석들도 그 모습에 동해서 하나둘씩 뒤를 따라 에렐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쩐다.’

고들 사이로 보이는 두루마리는 이미 반틈 불에 타들어가 회색빛이었다. 타닥 두루마리의 타는 소리가 에렐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고들 몇이 높이 뛰어 창을 찔러왔다. 에렐을 노리던 창은 흙거인의 손등에 막혔지만 점차 개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골.”

이번엔 구고들이 달려들며 창을 내질렀다. 이번엔 가슴이 아니라 머리였다. 방향은 에렐 쪽이었는데 토리가 에렐을 보호하느라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콰직.

예상대로 창은 진흙으로 만든 머리를 간단하게 관통했다. 토리가 계속 움직이자 구고들은 잠깐 놀란 듯 했지만 곧장 창을 든 손을 바꾸며 발을 내디뎠다.

-후웅.

하늘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에렐의 허리 아래로 떨어졌다. 에렐은 허리를 숙여 피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공격이었다.

구고들이 재차 창을 휘둘렀다. 이번엔 처음부터 에렐이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토리 대신 에렐을 목표로 삼은 것 같았다.

허리를 숙여도 피하기 애매한 높이에 에렐은 뒤로 몸을 날리며 창을 피했다. 토리가 손으로 떨어지는 에렐의 허리를 잡아챔과 동시에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갑작스런 토리의 움직임에 에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피가 머리끝까지 몰리는 감각에 의식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잠... ”

흙거인이 에렐을 잡은 방향으로 발을 내밀며 뒤꿈치를 땅에 고정시켰다. 그리곤 반대쪽 팔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 큰 고들의 머리를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세에 고들은 창을 옆으로 세웠다. 휘두르던 토리의 팔이 창에 막혔지만 팔꿈치 아래쪽은 떨어져 나와 돌팔매 하듯 고들의 거대한 머리를 가격했다. 순간 구고들의 몸이 기울었다.

“그얼...”

구고들의 한쪽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자 토리가 고들의 몸을 덮쳤다. 아직 의식을 잃지는 않았는지 구들이 창으로 흙거인의 목을 베었지만 토리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우오오...

흙거인이 몸을 울리며 잘린 팔을 치켜들었다. 말끔하게 잘린 팔꿈치 위로 다시 팔, 주먹이 솟아났다.

거인의 주먹이 고들의 머리를 연속으로 내려쳤다. 첫 번째는 고들의 두툼한 뺨을 정통으로 때렸고 두 번째는 구고들의 창에 막힌 것 같았다. 하지만 첫 번째가 타격이 컸는지 세 번째는 막지 못했다.

“이제 그만해.”

다섯 번째 주먹이 정확하게 큰 고들의 턱을 치고 터졌을 때, 구고들은 정신을 잃은 듯 커다란 혓바닥을 진창 위에 내놓았다. 재차 타격하려면 토리는 에렐의 말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 정도면 됐어.”

에렐이 말했다. 아직도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지만 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묶어만 둬.”

에렐이 토리의 몸에서 내려서자 흙거인은 그대로 무너져 큰 고들의 몸을 덮었다. 흙거인은 옆에서 다시 솟아나 구고들의 몸을 덮었다. 같은 행동이 수차례 이어지자 곧 작은 동산 하나가 만들어졌다.

“죽지는 않았으니까 얼른 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하나 둘 모여든 고들들이 나무창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아...”

두루마리 앞에 선 에렐은 한숨을 쉬었다. 두루마리는 이미 타버려 끄트머리만 조금 남은 상태였다.


고들 둥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 큰길에 다다르기 전이었다. 해는 높이 떠서 나무의 정수리를 비추고 있었다.

토리를 쫓던 에렐이 걸음을 멈췄다.

“줘요.”

에렐 옆 나무 사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았어?”

“...즈라구요.”

기닌이 수풀에서 몸을 일으켰다. 품에서 낡은 두루마리를 꺼내들자 에렐이 손을 뻗어 붙들었다.

“당신...”

“진정해. 맞는지 확인은 해봐야지.”

에렐이 기닌을 째려보며 두루마리를 펴 들었다. 색이 바랜 지도가 양피지 위에 그려져 있었다.

에렐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며칠 만에 겨우 맛보는 안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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