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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음악천재를 위하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고광(高光)
작품등록일 :
2019.01.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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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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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천재를 위하여 - 033화

DUMMY

음악천재를 위하여 – 033화



동틀 녘의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붉디붉은 울림판에는 검은 줄기가 가득하다. 세월을 머금은 단풍나무의 변질일까, 아니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눈물이며, 악마가 아로새긴 선율의 자국이라고. 지판 위를 가로지르는 현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같이 은빛으로 번들거린다. 활 끝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폐부를 휘젓는다. 아아, 저 선율을 듣기 위해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염원했던 것일까.


“옳거니, 그래 환상 그거였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모를 수 없는 악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들었던 희대의 명기이자 비운의 명작. 지난 삶 한 줌의 재로 사라져버린 환상을 두고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명기를 소지했던 중국의 한 부호는 환상이 스스로 발화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었지. 하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는 순간 그 부호의 말이 실감났다.


터벅.


그때 손유하가 홀린 듯 바이올린을 향해 걸어갔다.


“할아버지, 이거 뭐에요?”


어린 아이의 눈에도 평범한 바이올린으로 보이지는 않을 터였다. 아마도 눈앞에 자리한 악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고요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기에.


“할애비가 현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란다.”


나를 위해서?


그제야 왕회장과 두었던 바둑이 생각났다. 설마하니 선물로 준다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였다니! 환상의 경매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악기로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중국의 부호에게 낙찰되었으니 해외토픽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었지.


“현아, 싫으냐?”


어떻게 싫을 수 있겠는가.


두근 두근 두근.


환상을 보는 순간부터 심장이 미칠 듯 뛰고 있었다.


*


-금발의 악마를 조심하라.


그라모폰에 전해져 내려오는 또 다른 이야기. 때아닌 장대비에 금발의 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약속 장소에 들어섰다. 그라모폰의 편집장 애덤 위쇼가 그녀를 보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정말 날씨 하나 지랄맞군.”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거친 말을 내뱉은 미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어찌나 다리가 긴지 모델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라모폰의 또 다른 수석 편집장 샤론은 능숙하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술집이다 보니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샤론의 모습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애덤, 출장을 다녀왔다지?”


뭉게구름이 천장에 닿을 즈음 샤론이 자세를 앞당겼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난 되바라진 새싹들을 개조시키는 것에 힘을 쏟았다고, 그라모폰에 들어오면 대부분 자신이 뛰어난 비평가라도 되는 줄 알지. 실상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갓난쟁이에 불과한데 말이야.”

“샤론, 수석 편집장의 위치쯤 되면 그렇게 모두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 항상 보는 건데 자네는 이 런던의 날씨만큼이나 까탈스러워. 그래서 모두가 자네를 피하는 게 아닌가?”

“얼씨구,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샤론은 맞은 편에 앉아있는 애덤이 싫지 않았다. 그라모폰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유일한 상대였으니. 그건 그렇고.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 런던 심포니가 추천장을 썼다더군.”

“스펜서가?”


샤론은 긍정의 의미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런던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로 혁혁한 명성을 떨친 스펜서였다. 스펜서 자체가 런던 심포니를 대표하는 격. 하지만 그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콩쿠르의 추천장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눈높이를 넘어설 만한 신예가 없기도 했지만, 거장으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일 터. 그런 그가 추천장을 썼다라,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돈 것인지.


“이게 다가 아니야, 또 다른 거장도 추천장을 썼다더군. 바로 런던 심포니와 동일한 인물에게 말이지.”


샤론의 금발이 크게 출렁였다.

애덤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두 거장이 어째서 한 인물에게?


“당신이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퀸, 그녀가 추천장을 썼다고 해.”


그 순간 애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떠졌다. 감정의 변화가 적은 애덤의 갑작스런 모습에 샤론이 의아함을 머금었다. 애먼 담배연기만이 허공을 헤맬 때였다.


“누군가?”


뭘, 묻는 것일까.


“런던 심포니와 퀸에게 동시에 추천장을 받은 인물 말이야.”

“그건 아무래도 허황된 소문이잖아?”


샤론은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다. 애덤의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았으니. 거짓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추천장을 받았다는 인물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샤론은 담배연기를 깊게 머금었다. 고민할 때면 생기는 습관, 이윽고 안개처럼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현.”


금발의 악마가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


“허.”


왕회장이 나지막이 감탄을 터뜨렸다. 설마 저 바이올린을 거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클래식에 문외한 범인이 볼지라도 평범치 않은 악기. 보는 것만으로도 현혹되리만큼 매혹적인데,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은 당최 어떻게 느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영감탱이, 방금 전 현이 눈빛을 봤는가?”


왕회장의 질문에 유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은 처음이었으니.


“그런데도 무르더군, 완전히 주겠다고 했는데도 말이지. 결국 콩쿠르 때만 빌리겠다고 하지 않는가?”


어린 아이의 자제력이라 보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바이올린에 닿을 듯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손을 거두는 것이 자못 슬퍼보이기까지 했었다. 안목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왕회장도 두손 두발 다 들었으니 말 다했다. 일순 왕회장이 유회장의 손을 덥석 마주 잡았다. 헌데 그 눈빛이 심상찮다.


“크흠.”


유회장이 기침을 하며 손을 뺀다. 아무래도 급한 쪽은 자신이 아니었으니.


* * *


벨기에 브뤼셀로 바이올린계의 거장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두문불출하며 음악만을 바라보는 그들이 한데 모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퀸엘리자베스를 위하여. 무려 사 년 만에 돌아온 현의 전쟁, 새로운 별의 탄생을 기다렸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후.”


에바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거장들을 맞이했다. 한 명 한 명이 국가에서 귀빈급 대우를 받을 정도로 저명한 음악계의 인사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 또한 제각각이기에 마치 섞이지 않는 물감을 한데 풀어놓은 것 같았으니. 그런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이올린을 누구보다 애증 한다는 것.


“퀸과 런던이 동시에 한 명을 지목했다는데 사실인가?”


러시아의 거장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장내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퀸과 런던이 각각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들 중에는 퀸과 런던에게 좌절감을 맛봤던 이들도 있었다. 적막한 고요가 계속될 즈음이었다.


“그럼 그 친구부터 봅시다.”


중국의 거장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운을 띄웠다. 에바는 온몸을 옥죄는 압박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지원하는 글로벌 예선, 일차적으로 선택받은 이들에 한해 그들의 연주영상이 심사위원들에게까지 향했다. 브뤼셀에서 바이올린을 켠다는 것에는 그만큼 높은 벽이 자리했다.


치직.


짧은 침묵을 끝으로 널찍한 브라운관에 한 영상이 투영되었다. 퀸과 런던이 동시에 한 명에게 추천장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모두가 뜬 소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허나 소문이 아닌 사실로 입증된 지금, 거장들의 관심사는 그 어떤 신예에게도 향해있지 않았다. 과연 바이올린의 계절이 다시 도래할 것인가.


그때였다.


“도대체.”


누군가 의문 섞인 탄식을 뱉어냈다. 척 봐도 연주홀은 아니었다. 예컨대 호텔의 연회장일 것이리라. 헌데 단상 위에 오른 아이의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리다. 저토록 어린 아이가 퀸과 런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이 되지 않았다. 거장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순간 드디어 아이가 활을 들어 올렸다.


*


‘아오, 그냥 받을 걸 그랬나.’


요 며칠 마음이 심란하다 못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것도 그럴 것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환상의 모습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왜 줄 때 넙죽 받지 않았냐고?


‘왕회장이니까!’


스트라디바리의 가격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망설여졌다. 특히 환상은 훗날 소더비에서 악기 중 최고가를 달성할 정도로 값비싼 작품. 왕회장이 아무 이유 없이 그만한 물건을 내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삶 제일그룹의 장학생으로 있으며 재벌가의 생리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설마.


일순 한 명의 인물이 생각났지만 얼른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여자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다. 암, 아니고 말고.


“현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오늘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셨잖아요, 기대돼서요.”


표정을 지워내고는 실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김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실리 호텔에 도착했다. 지난 삶에서도 몇 번이고 와봤던 레스토랑. 하지만 처음 가본다는 듯이 할아버지의 뒤꽁무니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환상을 떠올리며.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모델인가?’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백인 커플, 헌데 두 사람 다 길쭉길쭉한 것이 웬만한 모델 저리가라다.


*


“애덤, 이 넓은 한국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내겠다는 거야?”


그라모폰의 수석 편집장 샤론이 투정을 하듯 금발을 출렁였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만을 알고 날아온 한국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현’이라 불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애덤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즐기고 있을 뿐.


“애덤, 지금 스프가 넘어가? 이 대책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그라모폰의 사원들이 봤다면 숨을 집어삼켰을 광경. 그라모폰에 전해져 내려오는 세 명의 악마 중, 두 명이 서로를 마주 보며 식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샤론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주변의 시선도 모아졌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기보단 두 사람의 화려한 외모에 더욱 많은 이목이 쏠렸다.


“하필 담배를 피지도 못하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말이야, 정말이지. 애덤 당신이란 인간은 마음에 안 든다고. 인터뷰하러 와서 오히려 계획에도 없던 금연을 하게 생겼잖아.”

“그러니까 샤론, 누가 따라오라고 했나?”


소문난 애연가인 샤론은 담배를 피지 못하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디너가 아무리 맛있으면 무엇하랴, 담배가 없거늘. 그때 샤론의 눈동자가 맞은편 한 소년의 시선과 마주했다. 이윽고 샤론의 푸른 눈동자가 소년의 입 모양에 점점 집중되었다.


조용히 해, 아줌마.


소년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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