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망나니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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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1.11 19:18
최근연재일 :
2019.03.1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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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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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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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3.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1)

DUMMY

머리가 멍했다.

눈앞의 메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니.

하지만 내 특성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과거와 현재가 적혀있는 책이다.


그런 책의 내용을 바꾸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 정말로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다면··· 이건 너무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능력이다.


그래. 정말 그렇다면··· EX등급이라 부를만하다.


‘테, 테스트다. 테스트.’


사탄을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마치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스템 메시지 밑, 홀로그램처럼 펼쳐진 자판에 손을 가져다 댔다.

A 버튼을 꾹 누르고, 엔터를 눌렀다.


띠링!

[System :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띠링!

[System : 진리의 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


사탄은 눈앞을 어지럽히는 시스템 메시지와 귓가에 울리는 알림을 무시하며, 시선을 올려 수정한 페이지를 살폈다.


『스킬 - 요리(F)를 습득하기 위해 사탄 18세가 재빠르게 ‘예’를 선택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의 개입으로 요리 스킬 등급이 A로 변경되었다. 사탄 18세는 ··· (중략)』


‘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단지 요리(F)를 습득하겠냐 묻는 시스템 메시지의 F를 A로 바꿨을 뿐이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그에 맞춰 저절로 자연스럽게 변했다.


[System :

이름 : 사탄 18세

레벨 : 37(↑1)

종족 : 악마

능력 : 근력(16)/체력(21)(↑1)/민첩(20)/감각(20)/마기(43)

특성 : 진리를 탐독한 자(EX)+

스킬 : 요리[변형](A)+, 피스 검술[변형](D)+

선행 포인트 : 2095(↓42500)

]


“어?”


변경된 요리 스킬의 등급을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던 사탄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2095밖에 남지 않은 선행 포인트.


사탄은 그제야 조금 전 알림과 함께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에 시선을 돌렸다.


[System : 진리의 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선행 포인트 42,500이 사용됩니다.]


“이런, 씨! 진작 알려줬어야지!”


어떻게 모은 포인트인데··· 진작에 알려줬어야지!

평소에는 예, 아니요. 잘만 물어보더니!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런 사기적인 능력에 추가적인 선행 포인트가 요구되지 않을 리 없다.

테스트라면 F를 E나 D로 바꿨어도 충분했는데, 공짜인 줄 알고 너무 욕심을 부렸다.

요리 스킬에 선행 포인트 42,500개를 쏟아붓다니··· 너무 억울해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


특성 ‘진리를 탐독한 자’가 왜 EX등급인지는 확인됐다.

말 그대로 extra.

과거를 변경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규격 외 능력의 특성.


하지만 사탄은 특성의 엄청난 능력에 마냥 감탄하지 못했다. 귀하디귀한 선행 포인트를 4만 점 넘게 허공에 날려 먹은 기분이었으니까.


사탄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


마왕성 주방 앞에는 마족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까치발을 하면서 연신 주방을 힐끔거렸다.


“오늘도 왕자님이 요리하신다지?”

“그래, 그러니까 은근슬쩍 새치기하지 말고 늦게 왔으면 뒤로 가. 나는 아침도 안 먹고 서 있는 거라고”


새치기라는 단어에 주변 마족들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집중되는 사나운 눈빛에 질문했던 마족이 펄쩍 뛰었다.


“에이, 이 마족놈아! 새치기라니!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오해를 풀지 않으면 몰매라도 맞을 분위기였기에 연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잠시 앞으로 와본 거야. 뒤쪽에는 먹어봤다는 놈이 없더라고. 왕자님이 만든 음식은 뭐가 다르다던데··· 음식은 다 똑같은 거 아니야?”

“그래, 음식이란 거 다 똑같은 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어제 왕자님이 한입 먹어보라며 내민 음식을 맛보기 전까지는···”


그리 말하며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제 한입 먹었다던 음식 맛이 떠오른 모양이다.


질문했던 마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음식이란 그저 힘을 얻기 위해 섭취하는 영양분일 뿐이다. 인간도 아니고 무슨 마족이 음식에서 맛을 운운한단 말인가.


“왕자님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우리도 인간들처럼 음식에서 맛이란 걸 느낀다, 이거야?”

“······”

“침만 흘리지 말고, 대답이나 좀 해봐. 대답 기다리다 숨넘어가겠네!”

“너 인간 먹어본 적 있지?”

“인간? 매일 먹잖아. 직원 식당에서 나오는 거.”

“그거 말고, 영혼.”

“영혼? 어렸을 때, 인계 출입 가능했을 때 먹어봤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거잖아.”

“그래. 그거, 그 맛이나. 왕자님이 한 요리에서는 조금이지만 영혼의 맛이 난다고.”

“!”


주방이 시끄러워졌다. 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엿듣던 마족들이 전부 탄성을 내지르며 각자 한마디씩 떠들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주방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던 사탄이 인상을 쓰며 문가를 한번 훑었다.

웅성거리던 마족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저 사탄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쳐다볼 뿐 자리를 뜨는 마족은 한 명도 없었다.


‘쯧···‘


사탄은 혀를 차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어제, 요리하는 내내 주방에서 일하는 마족들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하도 쳐다보길래 요리를 끝내고 조금씩 나눠줬었다. 근데 그게 소문이 난 모양이다.

오늘은 마왕성에서 일하는 마족 중에서 짬이 좀 되는 마족들이 죄다 몰려들어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함부로 나눠줄 수는 없지’


어제는 뭣 모르고 음식을 나눠줬지만, 음식에 버프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생각 없이 마구 뿌릴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사탄은 타란툴을 잡고 마계로 돌아와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허무하게 날려 먹은 4.2만 점의 선행 포인트가 너무 아까워서 시름시름 앓은 거였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끙끙 앓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질리도록 요리 스킬을 써먹겠다는 생각으로 타란툴로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A등급 요리 스킬로 만든 음식에 의외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타란툴이 워낙 등급 높은 몬스터라 그런지, 타란툴로 만든 요리에는 일시적으로 스탯을 상승시켜주는 버프 효과가 있었다.


‘이제 마무리로 영혼을 뿌려볼까?’


자글자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며, 기분 좋게 미소짓던 사탄이 허공에 손을 내밀어 쥐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쥐었건만, 그의 손에는 타란툴의 영혼이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인벤토리 최고야. 짜릿해, 늘 새로워!’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하고 있을 때,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푸른색 연기를 발견했다. 이게 뭔가 싶어 손을 뻗었더니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System : 질 좋은 영혼 재료를 습득했습니다. 영혼 인벤토리에 보관됩니다.]


인벤토리라는 게 존재하는 세계관이 아닌데··· 갑자기 인벤토리 타령을 해서 조금 당황했었다.

영혼을 소지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A등급 요리 스킬과 영혼을 주식으로 삼는 악마라는 종족 특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결과였다.


사탄은 적당히 뚝 떼어낸 타란툴의 영혼을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 가루를 낸 뒤, 치즈 가루 뿌리듯 완성된 요리 위에 뿌렸다.


문 앞에서 사탄을 구경하던 마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음식 재료로 변질돼 인벤토리를 오가는 타란툴의 영혼은 볼 수 없지만, 가루가 되어 음식에 들어간 영혼의 냄새는 맡을 수 있었기에.


마족들은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황홀한 냄새에 연신 침을 삼켰다.


“왜 음식에서 영혼 냄새가 나지? 이거 저기서 나는 냄새 맞지?”

“그, 그러게. 그것도 상급의 영혼 냄새야!”

“킁킁, 냄새만 맡아도 행복하다. 저거··· 나눠 주시려나?”

“어제도 냄새가 좋긴 했지만··· 오늘은 너무 심한데? 나 손 떨리는 거 보여?”


마족들이 속닥거리는 소리를 반찬 삼아 사탄이 식사를 시작했다.


타란툴 다리 살과 내장으로 만든 리소토.

한 숟갈 떠 입에 넣자마자 리소토는 사르르 사라졌지만, 그 향과 풍미는 입안을 떠나지 않고 사탄을 괴롭혔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혀가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발끝이 저릿해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눈을 감고 잠시 여운에 잠겼던 사탄이 남은 리소토를 내려봤다.

아직 많이 남았다. 그게 너무 두려웠다.

체통 없이 아랫것들 보는 앞에서 기괴한 신음을 흘리게 될까 봐.

첫 수저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지만, 끝까지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너무 맛있어서 먹는 게 고역이었다. 행복한 고문이라 생각하며 사탄은 마저 수저를 떴다.


‘마족을 현혹하는 맛과 향’


성장이 끝난 하급 마족을 등급으로 따지면 E급 정도 된다.

그리고 D급 이상의 마족은 억지력에 의해 인간계 출입이 금지된다. 정 가고 싶다면 티끌만큼의 힘을 낼 수 있는 분신을 내려보내야 하는데, 위험부담이 크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기에 시도하는 마족은 그리 많지 않다.


고로, 마족 대부분은 D급 이상의 영혼을 먹어본 적이 없다.


E급의 능력일 때 인간계에서 D급의 몬스터나 인간을 잡아먹어 본 실력파 마족이 아니라면, 어쩌다 한 번씩 마계로 흘러들어오는 상급 영혼은 귀족 악마들이 전쟁을 불사할 만큼 귀하기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등급이다.


‘그런데 타란툴은 C-등급이지’


영혼을 먹어 능력을 강화하는 마족에게 A등급 스킬로 조리하고, C- 등급의 영혼을 뿌려 만든 이 리소토는 강해지고자 하는 마족의 본능을 일깨우는 맛과 냄새였고, 거부할 수 없는 미혹이었다.


띠링!


땀을 뻘뻘 흘리며 리소토를 먹던 사탄이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System : 상품(上品)의 음식을 섭취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마기가 3 상승합니다. 마기 회복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마기가 5 상승합니다.]


사탄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리를 탐독한 자 특성으로 확인했던 타란툴 요리법에는 당연하게도 영혼을 넣으라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영혼 재료라는 단어가 신경 쓰여 혹시··· 라는 생각에 넣어봤는데 정답이었다.

영혼을 뿌리자 버프 효과와 더불어 영구적인 스탯 상승효과가 있었다.


‘이거야말로 전화위복이지!’


특성에 대한 몇 가지 확인을 거친 결과, 요리 스킬에 선행 포인트를 쏟아부은 것이 그다지 나쁜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등급 ’진리를 탐독한 자‘ 특성의 특수 능력.

과거를 변경할 수 있는 이 능력을 나는 부르기 쉽게 ’과거개변’이라 이름 지었다.


나는 어제 과거개변의 정확한 사용 방법을 위해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봤다.

시중드는 마족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린 뒤, 과거개변을 통해 그 부분을 제외하거나 변경해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첫째. 나 외에는 그 누구도 과거의 변경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둘째. 과거개변을 통해 변경되는 변동 폭이 크면 클수록 선행 포인트의 요구치가 많아진다는 것.


테스트한답시고 요리가 아닌 피스 검술의 등급을 수정했다면 검술 등급을 한 단계도 올리지 못하고 선행 포인트만 날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피스 검술 자체가 워낙 어렵고 난해한 검술이기도 하지만, 피스 검술로 각성자는 물론 마나를 사용하는 제국군을 엄청나게 살육했었다.

피스 검술의 등급을 수정하려면 그 모든 과정 또한 수정되어야 하는 거다.

얼마나 많은 선행 포인트를 요구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요리는 아주 기본적인 스킬이고, 요리 스킬은 배운 이후, 요리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게 유효했다.

수정된 과거는 스킬을 배우고 기뻐하던 자신의 반응과 타란툴을 사냥한 뒤 F+등급으로 등급이 상승했던 것. 두 가지 과거밖에 없다.

당시 사용됐던 42,500 선행 포인트 대부분이 요리 등급을 A등급으로 상승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보면 된다.


- 스킬 : 요리[변형](A)/패시브

ㄴ 궁극에 닿은 요리 실력. 재료의 진정한 맛과 효능을 끌어낸다. 종족 특성상 영혼을 다뤄 요리할 수 있도록 변형되었다. (시그니처 요리 – 타란툴 내장 소스 리소토(A))


지금 당장 배우고 싶은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행 포인트를 마냥 쌓아놓고 놀리느니, 쓸만한 재료만 있다면 언제든 요리를 통해 영구적으로 스탯을 올릴 수 있는 A등급의 요리 스킬을 적절히 써먹는 게 이익이다.

타란툴의 사체는 아직 많이 남아있고, 영혼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스탯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생각을 정리한 사탄은 먹다 남은 리소토와 옆에서 새로 끓이고 있던 리소토를 섞은 뒤 휘휘 저었다.


‘깨끗이 먹었으니까 뭐···’


먹다 남은 음식을 적당히 재활용할 생각이다. 영혼은 아예 안 넣으려 했는데··· 먹다 남았으니 특별히 넣어주는 거다.

영혼을 아예 넣지 않은 리소토보다는 맛과 향이 더 좋을 거다.


흠흠. 괜히 찔려 주변을 한번 훑어본 사탄은 적당히 뒤섞인 리소토를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타란툴 껍질을 조각해 작은 괴수를 만들어 데코레이션을 추가했다. 궁극에 다다른 요리 실력에는 칼질도 포함된다.

사탄은 타란툴의 껍질로 괴수 모양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우측 여백이 괜히 아쉬워 토끼 모양도 하나 더 만들어 올렸다.

어린이 세트 볶음밥 느낌이 물씬 났다.


“집사! 이거 발락님 가져다드려!”


그 외침에 온몸이 붉고 쭈글쭈글한 마족이 사탄 앞에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내 앞에서 무릎 꿇지 말랬지? 추진력을 얻어 나를 공격하려는 속셈이 아니면 꿇지 말라니까?”


사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집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저 이상한 농담은 언제 들어도 어색하다.


“본능적인 겁니다. 마왕님과 왕자님은 천지를 지배할 지배자의 기운을 타고나셨으니, 저 같은 하급 마족은 그저 절로 무릎이 꺾일 뿐이죠.”


“집사가 무슨 하급 마족이야? 그리고 그럼 쟤네는 뭐야?”


사탄이 주방 앞을 가득 메운 마족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사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 있던 마족들이 움찔 떨었다.


“지배자의 기운도 느끼지 못하는 무지렁이 같은 것들이죠”


집사는 사탄에게 부드러이 웃으며 말했지만, 마족들을 향해 쏘아내는 기운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분명 집사는 저들에게 근무 시간에 맡은 바 일은 하지 않고, 사탄을 귀찮게 한 벌을 톡톡히 받아낼 터였다.


“어휴, 됐어. 그냥 해본 말이야. 무릎 꿇지 말라는 건 진담이고”


“제가 한 모든 말은 진담입니다.”


사탄이 더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하고, 식기 전에 이거나 발락님 가져다드려. 발락님 성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이거 가져다드리면서 다음번 제사 받을 때, 대형 냉장고 하나 제물로 받아서 나 달라고 해. 그럼 이런 거 하나 더 만들어 드린다고”


“냉장고 말씀입니까?”


“어, 허접한 거 말고, 마석 좋은 거 박혀서 빙(氷) 계열 마법 쌩쌩 나오는 거”


비싸서 그렇지, 내 육잔치 때 쓰였던 조명도 그렇고, 이 세계는 마법이 접합된 다양한 물건이 있다.

그러면서도 비누 같은 건 없어서 주인공이 손쉽게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참으로 주인공 입맛에 딱 맞춰진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음식을 받아 들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집사를 잠시 질린다는 듯 쳐다보던 사탄이 표정을 바로 했다.


“그래··· 그런 너니까 맡기는 거긴 하다.”


사탄의 중얼거림에 집사가 온몸에 힘을 가득 주었다.

손에 든 음식에서 풍기는 강렬한 냄새에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저도 모르게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눈시울에 핏발이 선다.


그런 집사의 모습을 보며 사탄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줬다. 내일은 네 것도 만들어줄 게 고생해라. 그렇게 말하고선 주방을 나섰다.


집사는 멀어지는 사탄의 등을 응시하다가 문 앞에 잔뜩 모인 마족들에게 시선을 뒀다.


음식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오랜만에 매타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냄새를 맡고 나니 오히려 저놈들이 자랑스러웠다. 이 참기 힘든 냄새를 그토록 오랫동안 맡으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으니까.


정신력이 낮거나 왕자님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마족이었다면 진즉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거다.


‘왕자님도 알고 계셨을 터···’


냄비에는 음식이 조금이지만 남아있었다. 왕자님이 저것들 먹으라고 준비해 놓은 게 분명하다.


‘역시, 솔직하지 못하신 분···.’


집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질서정연하게 딱 반 입씩만 먹고 썩 꺼지라고 소리쳤다.

만약 싸웠다는 소리가 들리면, 내일 왕자님이 자신에게 내린다고 했던 음식을 나누지 않고 혼자 먹어버리겠다며 엄포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집사는 가장 먼저 한입 먹고 사라졌다.


“에이, 씨! 반 입씩 먹으라더니 지는 한입 먹고 갔어!”

“이런, 우라질! 딱 봐도 집사님 때문에 한 명은 못 먹을 거 같은데?”

“내일 혼자 먹으려고 큰 그림 그린 거 아니냐 이거?”

“아, 비켜봐! 일단 나부터 좀 반 숟갈 먹어보자!”

“야! 싸우지 말라고! 내일 집사님 혼자 먹는 꼴 보고 싶어?”


싸우는 듯, 싸우지 않는 듯 마족들은 그 오묘한 선을 지키며 사탄이 남기고 간 음식을 나눠 먹었다.


***


집사는 마왕성 중앙 문을 걸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성 내부에서의 이동은 상관없지만, 성 내부와 외부의 이동은 보안 때문에 이동 마법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중앙 출입문으로 이동한 뒤, 걸어서 마왕성을 빠져나가 발락의 성 앞까지 이동 마법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봐, 거기 너! 뭘 들고 있는 거지?”


앙칼진 목소리가 집사의 발을 잡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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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 EX특성(5) +1 19.02.04 550 11 14쪽
8 2. EX특성(4) +3 19.02.03 590 15 21쪽
7 2. EX특성(3) +3 19.01.27 614 18 16쪽
6 2. EX특성(2) +1 19.01.24 669 14 19쪽
5 2. EX특성(1) +2 19.01.24 682 14 14쪽
4 1. 미운 6살(3) +1 19.01.19 793 18 16쪽
3 1. 미운 6살(2) +3 19.01.16 1,029 1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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