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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후작가의 망나니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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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1.15 18:47
최근연재일 :
2019.02.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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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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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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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준비(1)

DUMMY

눈을 뜨자마자 커다란 가슴이 날 반겼다.

확실히 신분 사회란 게, 상류층에 있을 수 있다면 좋기는 좋은 것 같다.

지구에 있을 땐 한번 만져 보겠다고 그 고생을 하던 가슴이다. 그게 코앞에서 흔들흔들 진자운동을 하고 있다.


"큼."


헛소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아침부터 왜? 부른 적이 없는데."

"그, 그러니까요."


내 질문에 세이나는 빨개진 얼굴로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저 앳된 얼굴로 저러고 있으니 보는 입장에서 굉장히 묘하다.


"제 가슴이 제일 크다고··· 매일 저보고 아침에 잠을 깨우라고 하셔서···"


잘했다. 레이기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가슴은 언제나 옳다. 한국이라면 미투로 인생 조지기 딱 좋은 발언이지만 여긴 로스타 대륙이 아닌가.

내가 아무 말을 않고 있자 세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부턴 다른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 다른 사람은 불편해. 그냥 네가 해라."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피온 경께서 기다리세요."


슬슬 세이나를 물리려고 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 들려왔다.

원작의 등장인물도, 현실에서 알고 있는 녀석도 아니다.

하지만 이유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피온, 피온. 곰곰이 되뇌어보니 뭔가 생각이 날 것도 같다.


"걔가 누군데?"


세이나가 대답하기도 전이다.


"후작님의 명입니다. 실례하겠습니다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젊은 여기사 하나가 터벅터벅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침하셨습니까."


여자치고 큰 키에, 마치 얼음을 연상시키는 듯 굳은 얼굴.

누가 기사 아니랄까 봐 짧게 친 머리는 특이하게도 은발이었는데, 한 번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비단처럼 윤기가 좌르르 흘러내렸다.


두근!


그녀를 보자마자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뭐지? 이 느낌은?


"기억을 잃으셨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군요."


모델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 정도로 예쁜 건 인정한다만.


여자치고 큰 키도, 슬렌더한 몸매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까지도. 모조리 내 취향과는 일억 광년은 넘게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릴까?

생소한 감각에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피온이 무감정하게 속삭였다.


"제 얼굴을 보고도. 뺨을 치시지 않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 한 마디에.

결투장을 봤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라졌던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


밝게 뜬 달 아래에서, 저 피온이라는 여기사가 레이기스와 함께 있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서로를 보는 그들의 눈엔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공자님!"


손이 절로 들려 피온의 얼굴 앞까지 움직였다.

그대로 따귀를 치지 않은 건 순전히 세이나 덕분이었다.

세이나가 날 꽉 끌어안고 있지 않았더라면, 피온의 볼은 분명 내 손찌검으로 새빨개졌을 것이다.


"기억이 돌아오셨습니까?"

"아니. 그냥 한 대 때리고 싶어서."

"후작가 제일의 망나니답습니다. 기억을 잃어도 그 본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군요."


나는 그제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형언할 수 있었다.


애증(愛憎), 심장을 가득 채운 애증이 그녀의 뺨을 후리라 명한다.


"어찌 망설이십니까? 이 못난 기사의 뺨을 쳐 기분이 풀리신다면 얼마든지 그리하소서."


난 초월적인 인내력으로 그녀의 얼굴 앞까지 들이댔던 손을 세이나의 어깨에 얹었다.


"햐악!"


미안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참을 것 같았거든.


"세이나, 말려줘서 고맙다."

"처, 천만에요!"


세이나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나서 피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왜 왔는데? 기다렸다며. 설마 뺨이 맞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테고."


내 질문에 그녀가 냉소했다.


"윈덱스 후작님의 전언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셨다면 최대한 빨리, 집무실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아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다.

헌데, 당연히 이겼어야 할 라이너가 팔이 부러져 기사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무슨 일이 터졌는지 궁금할 만도 하지. 하루를 기다린 것만 해도 대단한 참을성이다.


"알았어. 금방 갈게."

"후작님의 전언은 최대한 빨리. 였습니다."

"그러니까 금방···"

"업히십쇼."


축객령을 내리기도 전에 피온은 뒤를 돌아 주저앉았다. 어서 업히라는 듯한 모습.

그 광경을 본 세이나가 입을 헤 벌렸다.

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이마를 짚었다.


"뭐 하십니까?"


뭐 하는지는 내가 묻고 싶었다.

혹시 농담인가? 생긴 거랑 다르게 이런 장난 좋아하는 거 아니야?


"급합니다."


아닌 것 같다.

여자치고 키가 조금 크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마르고 여리여리한 여자다.

갑자기 저런 짓을 하니, 가슴속을 가득 채운 복잡미묘한 감정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가만히 멍을 때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자세를 바로 하고 나에게 터벅터벅 다가온 그녀가 가볍게 내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내 안다리를 재끼며, 업어치기를 하듯 등을 보였다.

어? 어? 하는 틈에 중심을 잃고 피온의 등 위로 쓰러진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유술 실력이었다. 이거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꽉. 잡으십시오."

"뭐?"


그 말을 끝으로 피온이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단언컨대, 피온의 돌주엔 나에 대한 배려가 개미 눈곱만큼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 미친!"


빠르다.


체육관에 있다 보면 체력과 우정을 동시에 기를 겸, 그런 훈련을 한다.

같은 팀원들끼리 서로 업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거다.

많이 업어도 보고, 업혀도 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속도는 느껴보지 못했다.


이게 정녕 사람이 뛰는 속도란 말인가? 자동차를 탔다고 해도 믿겠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무려 십 분이 넘게 걸었던 연무장마저 일 분이 안 되는 사이에 주파했다.

위아래로 흔들거려 당장에라도 토가 쏠릴 것 같다.


그러길 대략 이삼 분.


"도착했습니다."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작은 건물 앞에서, 난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


나를 문 앞에 버려두곤 피온은 할 일이 있다며 어딘가로 급하게 도망쳤다.

굳이 도망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무감정한 얼굴에도 후작과 만나기 싫다는 티가 팍팍 났기 때문이다.


"왔군."


내가 방문을 열기도 전에 후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러 마스터들은 다 초인이라더니 그 말이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아마 설정이 원작대로라면,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감으로 내가 왔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겠지.

피온이 왜 도망갔는지도 이해가 간다.

악어나 호랑이 같은 맹수 앞에 발가벗고 선 기분이다.


'이 사람이 윈덱스 후작.'


하나하나가 전략 병기 취급을 받는 왕국의 여섯 마스터 중 하나이자, 망해가는 가문을 고작 창 하나로 일으켜 세운 장본인.


"라이너와 싸웠다지?"


전장에서 푸른 늑대라고 불리던 그가 나에게 물었다.

심드렁한 태도였다. 하지만 저절로 긴장돼 가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미 다 큰 것 같긴 하다만··· 그래, 자식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그러니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헌데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레이기스. 왜 그랬냐?"

"라이너와 함께 있던 기사가 절 모욕했습니다."


내 답에 후작의 눈매가 미묘해졌다. 설마 그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모욕이라, 좋지. 모욕당할 명예도 없는 네놈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동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미묘한 눈매가 경멸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말실수를 한 모양. 하긴, 내가 생각해도 참 궁색한 변명이긴 하다.


"말을 실수로 잃었다면, 반성하고 마구간이라도 고쳐놔야 하는 법이지요."


모욕당할 명예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찾으면 된다. 그런 뜻을 담아 말했다.

그게 후작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는데, 표정이 살짝 풀리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맞는 선택지인 것 같다.


"집 나간 말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네놈의 말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느냐?"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한 번쯤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난 용기가 붙어 입을 조금 더 털어봤다.


"그리고 저도 후작가의 사람입니다. 어찌 가진 명예가 없겠습니까."

"하, 그런 놈이 페이튼의 여식을 건드려?"


후작의 그 말에 난 잠시 입을 닫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제가 건드렸단 증거가 있답니까?"


잘못을 인정한다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한 번 세이나에게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물어봤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달 전쯤 일어난 왕도의 축제에서, 레이기스가 게르하 센츄리온에게 얻어맞고 혼절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걸 자진해서 신고한 사람이 센츄리온과 페이튼 커플.


그 중 게르하가 말하길, '자신의 약혼자를 강간하려 하는 걸 목격해 자기도 모르게 과하게 대응해버렸다.'


레이기스야 평소에 그러고도 남을 망나니다.

결국 다른 목격자나 증거는 없음에도 강간미수범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들도 증거가 없으니, 결투를 신청한 게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레이기스가 강간을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 두 커플이 꽂뱀짓을 한 건지는 모른다.

떠오른 기억도 센츄리온에게 맞은 것뿐이고 말이야.


정황상 전자가 진실일 가능성이 크지만, 요는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리고 증거가 없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결투에서 승리한 자의 말을 믿는다.

신이 무고한 자의 편을 들어 결투를 승리로 이끈다고 하던가?

중세 시대의 지구에도 있던 전통이다.


"하긴, 진실은 상관없지. 하지만 네놈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떠드는 게냐?"

"결투에서 승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말은 참 쉽구나. 이겨 보이겠다? 게르하를? 그것도 네놈이 직접?"

"예."

"헛소리. 녀석은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다. 몸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는 네놈이 어찌."


익스퍼트. 일국의 기사단에서 한몫을 할 수 있는 경지다.

당연히 일반인인 나로선 절대 상대할 수 없다.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계획대로만 되면 할만할 것 같아서.


"돌겠군. 그래. 게르하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로퍼는 어쩔 셈이냐? 난 네 녀석에게 기사를 지원해줄 생각이 없다. 내 직접 결투에 참여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

"그 역시, 상관없습니다. 대신 돈이 많이 필요하니, 돈이나 섭섭지 않게 챙겨 주시지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대체 무슨 자신감인 건지."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둘 중 하나의 결투라도 패배한다면, 이름을 버리고 윈덱스를 나갈 테니 염려하지 마소서."


내 말에 윈덱스 후작이 잠시 입을 닫았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만약 내가 윈덱스의 이름을 버린다면, 결투에서 패배한 건 윈덱스가 아닌 레이기스가 된다. 고로 후작가의 명예가 떨어질 일은 없다.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귀족에게 있어서, 돈을 처발라 명예가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그게 얼마가 되었든 남는 장사다.

하물며 돈이 썩어 넘치는 윈덱스 후작가임에야.


"좋다."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내가 결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가 싸지른 똥은 그래도 알아서 치우는군. 기억을 잃었다더니 사람이 되었구나."


적어도 자기 가문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딱 그 정도의 감상.

나는 후작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기대하시지요."


푸른 눈동자가 내 두 눈을 응시한다.

그럼에도 처음의 압박감은 없었다. 이 녀석들은 어차피 소설 속의 인물. 고작해야 내 동생의 창조물이다.


-모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창문 밖에서 하얀 빛줄기가 석양을 가르고 쏟아져 내렸다.


-신들의 게임. '라그나로크'를 시작합니다.


드디어, 주인공을 만날 시간이다.


***


잠깐만.


-오류! 설정되지 않은 지구인의 영혼을 발견.

-아카식 시스템 실행, 룰 일부 개정.

-당신을 로스타크 대륙의 101번째 플레이어로 설정합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 못 챘다.


상태창? 이게 왜 나한테 보여?!


작가의말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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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1) 19.01.20 295 7 12쪽
3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2) 19.01.16 323 8 11쪽
2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1) 19.01.15 399 9 8쪽
1 프롤로그 19.01.15 427 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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