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후작가의 망나니 정령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HOB
작품등록일 :
2019.01.15 18:47
최근연재일 :
2019.02.08 20:2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703
추천수 :
74
글자수 :
40,958

작성
19.01.23 20:28
조회
238
추천
7
글자
9쪽

준비(3)

DUMMY

"소윤 양도, 날 알잖아?"


확신했다.


레이기스는 소설 밖에선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설 안에선 왕국의 최강 가문 중 하나인 윈덱스 후작가의 장남이다.

회귀자인 그녀가 레이기스를 모를 턱이 없다.

그러니까 원작에서 얠 패려던 주인공을 그렇게 뜯어말렸었지.


"어떻게, 그리 단언하시는지."


보라. 지금도 저리 당황하고 있지 않은가.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녀에게서 주도권을 잡은 것만으로도 묘한 흥분이 일었다.


천소윤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던 신비주의 캐릭터다.

회귀자라는, 그 이점을 바탕으로 작품 후반까지 압도적인 모습만을 보여줬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니.

일명 '소윤 코인'에 탑승했던 나로선 이 상황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걸 지금 말해도 되나? 보는 눈이 많은데."


나는 즐겁다는 듯 물었다.


그 말에 소윤의 시선이 주인공과 레니아에게 부딪힌다.


그녀가 보기에 주인공 커플은 그저 친밀한 동료겠지만.

시간이 되감긴 지금, 그들은 천소윤을 알지 못한다.

최소한의 신뢰만이 쌓인 상황. 언제 관계가 무너져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도.


주인공의 눈엔 한 줄기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태도를 눈치 빠른 소윤 양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나중에 하자고. 나중에. 지금은 거래부터."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툭, 하고. 반짝이는 녹색 덩어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권능 '초월안'이 발동합니다.


+


<타이드리안의 정령석>

등급: 전설(Legend)

유형: 소모품, 계약 매개체


-초월자 타이드리안이 만든 정령석입니다.

-사용 시 무작위 정령을 소환,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소환되는 정령의 등급은 최소 '중급'입니다.

-낮은 확률로 최상급, 더욱 낮은 확률로 특수 정령을 소환합니다.


+


"물건은 확실하군."


평범한 정령석은 아니었다.

하긴, 튜토리얼에서 나온 아이템이란 늘 이런 법이다.

초월자가 만든 만큼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음?"


내가 정령석에 눈길이 빼앗겨 있을 때였다.

어느새 제정신을 차린 그녀가 도로 정령석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언제 당황했느냐는 듯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뭘 주실 수 있죠?"


나는 감탄했다.


확실히, 이게 바로 천소윤이다.

결코 당황하지 않고, 설령 당황하더라도 금세 이성을 되찾는다.

아무리 주도권을 잡았다고 한들, 꽁으로 정령석을 받을 순 없겠지.


하지만 어차피 쉽게 얻을 생각은 없었다.

그것도 저리 귀한 물건을 말이야.


연기라도 하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난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읊기 시작했다.


"돈."


난 흥정에 재능이 없다.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동대문 옷가게에 가서도 종종 호구를 잡히곤 했다.


"명예."


다행인 건, 지금의 난 가난한 김태식이 아니다. 후작가의 장남 레이기스다.


"기사 작위."


김태식이 줄 수 없는 걸 레이기스는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잔뜩 퍼줘서라도 가져오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모두."


순순히 넘겨. 소윤아.


난 그게 가지고 싶거든.


***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내 손에는 정령석이 들려있었다.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무려 주인공 일행으로부터 정령석을 얻어낸 거다.

물론 그 대가로 내준 금화가 물경 수백. 고작 돌덩이 하나에 매기기에 큰 액수긴 하지만 결코 아깝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령석은 거래가 되는 물건이 아니다.

정령석의 소유자인 엘프들이 인간과 교류하려 들지 않는데, 구할 수 있을 턱이 없지.


"여기까진, 만족스러워."


나는 정령석을 손안에 천천히 굴리며 생각했다.

이제 이걸 힘껏 부숴버리기만 한다면 나는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어떤 정령과 계약을 맺게 될 것인가.


최상급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상급 정령만 되더라도 결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후. 그래.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목욕으로 부정 좀 벗기고, 액땜도 조금 한 다음···"


그 순간이었다.


"공자님!"


방문을 벌컥 열리더니 갑자기 세이나가 침대를 향해 달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놀랐느냐면, 그래. 애지중지 손에 굴리던 정령석을 놓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내 손에서 벗어난 정령석은 격렬하게 땅과 키스했고.


쩅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옘병."


녹색 연기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시야를 가려 한 치 앞도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세이나가 뒤늦게 창문을 열어 방문을 가득 찬 연기를 빼냈다.


-뭐냐! 이곳은!


연기가 가시고 모습을 드러낸 건 주먹만 한 정령이었다.

팔짱을 끼고 이쪽을 노려보는 회색 꼬맹이. 어떤 정령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고민할 필요는 없지.'


나는 손가락을 튕겨 초월자의 눈을 발동했다.


+


<시간의 정령 페트리아>


-고대에 탄생한 특수 정령 중 하나입니다.

-본신의 격은 최상급 이상. 그러나 현재는 봉인된 상태입니다.

-계약자의 성장에 따라 봉인이 해제됩니다.


+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보통 어린아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건 중급 이하의 정령들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게 미안해진다. 특수 정령이라면 차라리 상급 정령보다도 낫다.


게다가 관장하는 속성이 무려 시간!

이 녀석만 잘 키워도 살아남을 걱정은 안 해도 좋으리라.


-하, 그렇군. 망할 엘퀴아. 날 그딴 곳에 가둬?


나는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페트리아에게 다가갔다. 조그마한 녀석이 이쪽을 올려다보는 게 썩 귀엽다.


"안녕?"


-뭐냐, 인간.


"뭐긴 뭐야. 네 계약자지."


-계약자? 웃기지 마라. 내가 고작 인간 따위와··· 어?!


허둥지둥 당황하는 페트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정령석에 소환된 건 처음인 모양이다.


-아니 어떻게! 난 너 같은 녀석과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


그러시겠지.


안타깝게도 정령석에 의해 소환된 정령은, 그 자체로 소환자와 계약을 맺게 된다.


-싫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나 보다.

빨리 자신을 풀어달라고 떼쓰기 두어 번. 이젠 아예 침대에 누워 땡깡을 부리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니 의외로 페트리아는 금새 진정되었다.


-흠흠. 인간, 추태를 부렸구나. 미안하다. 허차원에서 하도 갇혀있다 보니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아니, 내가 미안하지. 바쁜 정령을 붙잡고 있었네. 도로 허차원으로 돌아갈래?"


-절대 아니다! 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허차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길래?"


-세상의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 곳··· 질서의 신에게 권능을 부여받은 나로선 지옥보다 끔찍한 곳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어, 미리 말할게. 미안."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나도 처음 정령이랑 계약 맺은 거거든. 그래서 그런가··· 정령력이 좀 달린다."


-네놈 설마···


"응. 곧 역소환 될 것 같은데?"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미 그곳에서 수천 년을 갇혀있었다!


페트리아의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눈물을 흘리면서 내 팔에 달라붙는 게 안타깝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금방 다시 소환해 줄게. 미안."


-안돼!


몸의 말단부터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 모습이 에너지파를 맞은 악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페트리아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넌 왜 또 왔어. 세이나."


내 시선은 세이나를 향해 돌아갔다.

힉, 하고 움찔 떨면서도 그녀는 입을 뗏다.


"검술 스승님이 새로 오셨다고 하세요. 아까부터 밖에서 기다리시는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그를 마주치자마자 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강자다. 용족화에 용린마저 봉인된 지금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천천히 검을 부여잡는 나에게 노인은 그리 말했다.


"너, 내 제자 해 보지 않으련?"


왕국의 여섯 검 중 최강. 제레인트 제니스와의 만남이었다.]


***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너, 내 제자 해 보지 않으련?"


소설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대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문제가 있다면, 저 소리를 주인공이 아니라 나한테 했다는 거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작가의 망나니 정령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왕성(2) +1 19.02.08 155 7 9쪽
9 왕성(1) +1 19.02.03 191 8 9쪽
8 악마의 심장(2) 19.02.01 196 6 10쪽
7 악마의 심장(1) 19.01.30 218 6 10쪽
» 준비(3) 19.01.23 239 7 9쪽
5 준비(2) 19.01.21 269 7 11쪽
4 준비(1) 19.01.20 293 7 12쪽
3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2) 19.01.16 321 8 11쪽
2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1) 19.01.15 397 9 8쪽
1 프롤로그 19.01.15 425 9 2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HOB'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