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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후작가의 망나니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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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1.15 18:47
최근연재일 :
2019.02.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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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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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왕성(2)

DUMMY

"영 아니꼬우면, 내쫓아 보시던지."


내 말에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 빠지기 전 레이기스를 떠올리게 하는 몸매다.

내 행동이 심기에 거슬렀기 때문일까.

부들부들 떨리는 지방이 멀리서도 훤히 보였다.

아마 저 녀석이 페이튼 백작인가 보다.


"네놈, 레이기스! 철면피를 깔고 연회장에 온 건 이해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내 딸을 겁탈하려 하다못해, 전야제를 망쳐!!"

"철면피는 댁이 깔고 계시는 게 철면피고."


처음 소설 속으로 들어왔을 때, 레이기스가 강간을 저지르려 했다는 말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주인공 일행한테도 찝쩍거리다 맞아 죽는 판국인데 뭘 못할까 싶었지.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페이튼 영애는 레이기스가 게르하한테 얻어맞는 동안 웃고 있었다.

자기 애인이 구해줘서 안심했다 치더라도.

그 상황에서 웃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무려 강간이다.

그런걸 당할 뻔 했다면, 당연히 공포를 느끼는 게 정상일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웃고 있었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아예 미쳐서 실성해버렸거나.


"연기 잘하는 딸을 둬서, 참 자랑스럽겠수?"


그 상황을 자기가 유도했거나.


마땅히 짐작 가는 이유도 있었다.

레이먼드 왕국과 세이크리드 제국은 훗날 전쟁을 벌이게 된다.

윈덱스가 왕국의 대표 가문이라면, 센츄리온은 제국의 대표 가문.

만약 레이기스가 센츄리온의 약혼자를 강간하려 했다면, 그건 외교 문제로까지 커질 수 있다.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페이튼 백작은 레이기스를 전쟁의 방아쇠로 삼으려고 한 거다.

마치 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된 사라예보 사건처럼.


"이 자식이."


페이튼 백작은 얼굴이 벌게진 채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해되자 자신의 앞에서 수군거리던 귀족마저 밀쳐댄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그 연기에 손뼉을 쳐 줄 수밖에 없었다.

백작의 모습은 자기 딸이 강간당할 뻔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아버지 그 자체였으니까.

어지간한 연기자들은 혀 빼물고 죽어야 쓰겠다.


"네놈!"


코앞까지 다가온 백작이 내 멱살을 잡았다.

옷의 재질이 꽤 빡빡했기에 바로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귀족들이 나와 백작을 떼어놓기 위해 달려들었다.

모두 페이튼 백작과 어울리고 있던 귀족들이었다. 당연히 내가 예뻐서 그런 건 아니겠지.


"페이튼 백작, 진정하시오!"

"망나니의 꾐에 넘어가실 생각이십니까?"

"결투가 내일이오. 지금 건드려서 전혀 좋을 게 없소!"


귀족들은 그런 말들로 백작을 말렸다.

한참이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기사들까지 달라붙고 나서야, 페이튼 백작은 씩씩거리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를 따라나간 인원이 무려 절반이나 된다.


"결투,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백작이 마지막에 남겼던 말이 귓속을 맴돈다.

역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하시던지.


***


시간이 지나 전야제는 흐지부지 종료되었다.

우리는 다시 시종의 안내를 따라 배정된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피온 얘는 자기 방으로 갈 생각은 없나 보다.

내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 있다.


"뭐 해. 가서 자."


사실 레이기스와 피온의 관계는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언젠가 머릿속에 떠올랐던 피온과 레이기스가 마주보던 장면, 늘 틱틱대던 피온의 모습, 결정적으로 피온을 볼 때마다 느껴지던 격한 감정까지.

딱 봐도 전 애인 아닌가.

괜히 건드렸다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무시했지만···


"싫습니다."


이래선 더이상 그럴 수도 없다.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한 걸음 더 다가온 피온.

자연스럽게 팔뚝을 잡고 이쪽을 올려다보는데, 그 눈망울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왜."

"먼저, 이 말부터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됐다.

피온의 말 하나하나가, 그리고 또 몸짓 하나하나가.

단단히 먹었던 마음을 다시 무르게 만든다.

이것도 이거 나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건 내 감정이 아니다.

레이기스. 이 도움 안 되는 놈의 감정이지.


"혼자 이상한 분위기 잡지 마. 나 옛날 기억 하나도 없어."

"압니다."

"진짜라니까?"

"상관없지 않습니까."


피온이 방 안으로 내 손을 이끌었다.

어? 어? 하는 틈에 침대에 반쯤 내던져졌다.


"기억을 잃고 저를 다시 보신지, 두 달이 되었지요."


분위기가 싸했다.

침대에 마주앉아 가만히 서로를 마주 보는데, 온몸에 닭살이 바싹 돋았다.


"야, 야. 잠깐만. 옷 벗지 말아봐."

"그동안 보신 저는, 공자님이 안기에 부족합니까?"


얘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그,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기억이 되돌아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난 피온에게 덮쳐졌다.


그리고 이건 나도 잘 몰랐는데.


아직 나보다 피온이 더 강했다.


***


결투 당일.


전야제와는 다르게, 정식 연회에는 제레인트와 세이나까지 동행했다.


"자신감이 넘치나 보구나."


복도를 걷던 와중 제레인트가 그리 물었다.


"그야, 그렇죠."


나로선 제레인트의 말에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르하가 어엿한 한 사람의 기사 몫을 할 수 있는 오러 유저라지만, 이젠 나 또한 오러 유저다.

페트리아도 있는데다가 정말 무리한다면 프로키온의 심장까지 써먹을 수 있다.

이미 답이 빤히 보이는 상황.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아니 그게 아니라 이놈아."

"예?"

"진짜 모르는 거냐? 너희 때문에 잠도 못 잤다, 이것들아. 아주 온 동네 광고를 하지?"


얼굴에 피가 확 몰렸다.

나는 급히 피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방음이 된다고 들었습니다만."

"흥. 오러 마스터의 감각을 무시하는 게냐? 그리고 방음은 무슨. 나 아니더라도 앵간치 귀 밝은 사람은 다 들었을 거다."


나와 피온은 동시에 얼굴을 수그렸다.

소리를 질러댄 건 피온인데 왜 나까지 부끄러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 자신이 있다면 좋구나. 하지만 로퍼는 어쩔 생각이냐?"

"상대해줄 놈이 있습니다."

"그러냐? 도움이 필요하면 자존심 세우지 말고 말해라. 로퍼 그 녀석은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압니다."


우리는 그런 잡담을 끝으로 연회가 벌어지는 장소에 도착했다.


"와! 예뻐요!"


결투가 벌어질 것을 고려했기 때문일까.

이번 연회가 벌어지는 장소는 실외였다.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의 연회장엔 초목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는지, 서리가 끼는 날씨였음에도 훈훈한 온기가 몸을 감싸 안았다.


"세이나. 저거 맛있어."

"저도 먹어도 되는 건가요?"


군데군데에 세워진 건물에선 맛있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점심을 먹었음에도 입맛이 확 당겨올 정도였다.


"일단 자리로 가지."


윈덱스 후작가에게 배정된 테이블은 왕의 단상 바로 앞이었다.

같은 줄에 왕국의 두 공작가와 센츄리온 공작가의 테이블이 있는 걸로 보아 후작가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우리가 일찍 왔나 보군."


그 말대로 테이블은 절반 이상이 비어있었다.

둥글게 앉아 멍을 때리기도 뭣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안 돌아다니시렵니까?"

"난 됐다. 나이가 먹으니 움직이기 싫어."

"피온이랑 세이나는?"

"아, 저흰 괜찮습니다. 마침 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어째, 따라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도로 앉기도 뻘쭘하다.

결국 난 혼자서 테이블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홀로 연회장을 돌아다녔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 아는 체를 하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얼굴이 천으로 모조리 가려져 있어서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현실에 강제로 현현시킨 것과 같은 모습이다.

어떤 묘사를 해도 그녀에겐 미치지 못했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거늘, 그녀를 묘사하기엔 내 어휘력이 너무 빈약했다.]


하지만 그런 묘사가 떠오른 건 왜일까.


난 그녀가 다가오기 전에 권능을 발동했다.


+


이름: 헤카티아 우드리엘

성별: 여

종족: 하이 엘프


<특수>

-푸른 잎사귀 부족의 수호자입니다.

-세계수와의 강한 연대가 느껴집니다.

-현재 정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


몸이 굳었다.


'당황하지 말자.'


나는 그런 말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새겼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지,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저 미친 엘프에겐, 절대 찍히면 안 된다.


'헤카티아.'


천 년을 살아온 하이엘프이자, 엘프 역사상 세 번째로 '수호자'의 칭호를 얻은 엘프족의 영웅.

저 녀석에겐 그 강한 제레인트조차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날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그녀가 말을 꺼냈다.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나랑, 비밀 친구 안 할래요?"


그리고 그녀가 꺼낸 말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아니다. 다른 애가 보면 채갈 것 같은데, 그 전에 미리 결혼해요."


싫은데요.


나는 목젖까지 차오른 그 말을 겨우 삼켰다.


작가의말

연휴 잘 보내셨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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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망나니 정령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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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성(2) +1 19.02.08 157 7 9쪽
9 왕성(1) +1 19.02.03 192 8 9쪽
8 악마의 심장(2) 19.02.01 197 6 10쪽
7 악마의 심장(1) 19.01.30 219 6 10쪽
6 준비(3) 19.01.23 240 7 9쪽
5 준비(2) 19.01.21 270 7 11쪽
4 준비(1) 19.01.20 294 7 12쪽
3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2) 19.01.16 323 8 11쪽
2 아무래도 나는 좆된 것 같다.(1) 19.01.15 399 9 8쪽
1 프롤로그 19.01.15 426 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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