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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홈런치는 괴물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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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水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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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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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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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약속 (1)

DUMMY

1.


야구는 은근히 힘든 운동이다. 격투기나 축구처럼 격렬한 몸놀림, 쉴 새 없는 뜀박질이 요구되진 않지만 3~4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으로 에너지 소모량이 상당하다.

일주일에 6일 연속으로 게임을 치르는 스포츠는 아마도 야구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즌 내내 선수들의 체력관리가 중요하다.

그 말인즉, 휴식일은 꼬박꼬박 쉬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같은 월요일엔 스트레스도 풀고, 여유롭게 늦잠도 자고 해줘야 하는데...


[스노우 강, 요즘 몸 컨디션은 어때?]

“별 문제없이 가뿐한 데요. 왜요?”

[투타 겸업하는데 지친 기색이 전혀 안 보여서 그러지.]


당연한 말씀. 얼마 전에 환골탈태 스킬이 Lv.5로 올랐거든.


[꼭 그것만은 아닐거야. 우리랑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녀서 피곤함이 덜한 걸 거야.]


밤비노의 어이없는 주장에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허허...허허허.”

<오빠. 그건 맞는 말잖아요. 결국 먹는 게 남는 거잖아요.>


귀신들은 쉬는 날마다 나에게 맛집 탐방을 가자고 졸라댔다.

참나. 지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뭐시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듣는 귀신 섭하네요. 증말.>


어쨌거나 오늘도 외출에 나섰다.

맛집 탐방까지는 아니고, 근처 볼일이 있어서 종로3가에 있는 부대찌개 집을 찾았다.


[음.. 이 음식은 많이 독특하네. 스노우 강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랑 된장찌개도 맛있게 먹었는데 그거랑 많이 달라. 음식 이름이 뭐라고?]

“부대찌개요. 옛날엔 존슨탕이라고 불렀거든요.”

“존슨탕?”

“미국의 존슨 대통령 이름을 딴 거죠.”

[왜 음식에다 쓸데없이 정치인 이름을 왜 갖다 붙여?]


밤비노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미국에서도 정치인은 썩 달가운 존재가 아닌 모양이다.


[내 이름으로 만든 음식은 없나?]

<베이브....루스탕?>

[하지 마. 어감이 별로구만.]

“6.25 당시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햄이랑 소세지, 콩 통조림을 재료로 써서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게끔 만들어졌어요. 가난한 시절에 사연이 많은 음식이죠.”

<한미합작 메뉴네요. 재료는 미국산, 요리는 한국식.>

[서로 다른 두 문화가 합쳐지면 기발한 발명품이 나오는군. 그래서 국물에 색다른 맛이 우러나오는 거 같아.]

<오빠, 나는 라면 사리 많이 많이요.>


화신 꼬마를 위해 부대찌개 국물이 짙게 밴 라면을 후루룩 흡입했다.


“밤비노는 한국 전쟁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지. 우리 후배들도 참전을 했으니까.]

“누가요?”

[음... 테드 윌리엄스?]

“와우~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 맞죠?”

<그 분은 사이영 님 직속 후배잖아요. 보스턴 레드삭스 출신의 전설적인 4번 타자.>

[꼬맹아. 따지고 보면 나도 보스턴 출신이야. 구단주 새끼가 뮤지컬에 투자해서 돈 없다고 날 뉴욕에 팔아먹어서 그렇지. 테드 윌리엄스는 실력을 인정을 하는 후배긴 하지.]


의외였다. 항상 자신만이 최고이고 남을 까고 보는 밤비노가 저런 칭찬을 할 줄이야.

스마트폰을 검색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대충 알고 있는 것보다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의 신이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타자였다.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도 3할을 훌쩍 넘기는 타자라고나 할까.

메이저 통산 장타율과 출루율 부문에서 밤비노와 1, 2위를 나눠 가졌고, 전성기 때 2번의 군복무(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공백에도 불구하고 통산 타율 0,344을 기록한 타자였다. 군 복무만 아니었다면 밤비노의 기록을 갈아치웠을지도 모르고.


“근데 아저씨는 한국 전쟁에 참전을 왜 안 했죠? 미국 유명스타들은 조국이 필요로 할 때 전쟁터에 나가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던데.”

<오빠... 그 말은 좀...>

“왜? 뭐가 어때서”

[스노우 강, 난 1948년에 죽었다네.]


에고. 실수했다. 무식해서 죄송하네요.



2.


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피닉스 본사.

여길 왜 찾아왔는고 하니, 피닉스 그룹의 사내잡지 표지모델로 내가 뽑혔기 때문이다.

처음엔 모델 제의를 한사코 거절했지만, 광고 홍보팀 팀장의 끈질긴 설득작업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야구팀도 그룹의 계열사인 만큼,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업무잖아요.”


팀장은 이같은 논리로 나를 설득했다.


[왜 너를 표지모델로 뽑았을까? 다른 잘생긴 친구들도 많을 텐데.]

“그거 농담이신 거죠?”

[진심인데?]

<우리 오빠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요? BTS 오빠들 보다는 못하지만...>

[BTS는 또 뭐하는 애들이냐?]

<끄응...>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화신 꼬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사 입구에 들어서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훑어봤다.


‘이만하면 제법 훌륭하구만. 왜 그러지?’


밤비노에게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래 봬도 그룹사 전 직원이 실시한 투표에서 제가 당당히 1등으로 뽑혔다고요. 표지모델로 초대했으면 하는 인물 1위로요.”

[그거야, 니가 요즘 야구가 잘 되니까 그런 거겠지.]

“아니죠. 외모와 실력, 인성을 총망라해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 게 분명해요. 명색이 대기업인데 프로스포츠단이 야구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자꾸 딴지 거는 걸 보니까, 오빠가 부러운 모양인데요?>

[쳇, 뭐가 부러워? 나도 왕년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사람인데.]


아니다. 밤비노는 부러워서 저러는 게 틀림없다.

저 아저씨가 야구 할 땐 지금처럼 다양한 홍보 매체가 없었을 테니까.

주체못할 쇼맨쉽에 떠벌리기 좋아하는 캐릭터상 내가 부럽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당시에 수훈 선수 인터뷰나 제대로 해봤겠냐고.

고작 라디오 중계가 전부였던 시절인데.


[스노우 강. 난 말야. 연습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못마땅할 뿐이야.]

“아이구. 알았다구요. 잔소리도 심하시네. 내일부터 죽어라 뛰면 될 거 아녜요.”


그룹 홍보실에 도착하자 며칠 전 통화를 나눴던 팀장이 나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강선호 선수. 저는 변하늬 팀장입니다.”


단발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큼지막한 눈망울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 얼굴.

그녀가 건네 준 명함에는 피닉스 그룹 광고 기획사 팀장의 직책이 박혀있었다.

이제 갓 2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나이에 어떻게 팀장 자리에 올랐을까.

잠시 의아한 생각이 스쳤지만... 내가 딱히 알 바는 아니고.

변하늬 팀장은 나를 기획사 스튜디오로 데리고 갔고,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찰칵 찰칵-


“스마일~ 웃으세요. 자... 좋습니다. 조금만 더... 더...”

“두 팔은 자연스럽게 허리 위에 올리시고... 편안한 자세요...”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포즈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졌다.

근데, 무슨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는거지?

표지 사진 포함, 두 장만 찍으면 된다면서.

1시간 넘게 억지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입술 주위로 경련이 일 정도다.

모델 작업이 이 정도로 강도 높은 막노동인 줄 꿈에도 몰랐다.


[거봐. 내가 뭐랬냐. 이 시간에 훈련이나 하랬지? 쯧쯧.]

<쉿! 오빠 집중하게 조용히 좀 있어요. 뚱보 아저씨.>

[우쒸...]


1차 후보 사진을 골라내고 재촬영에 들어갔다.

내 눈에는 전부 비슷하게 보여서 아무거나 갖다 써도 될 것 같았는데, 전문가 시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고된 작업인 줄 알았다면 끝까지 거절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쯤 촬영기사가 손뼉을 쳤다.


“자... 됐습니다. 의상 교체 후에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예?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변하늬 팀장이 말했다.


“표지 사진은 결정됐구요. 본문 사연에 포함될 사진이 한 장 더 남았습니다.”


사연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무슨 사연요? 아까 찍은 것 중에 고르면 되잖아요.”

“하하. 이번엔 단독 모델이 아니고요. 함께 찍는 모델이 있어요. 그 분도 오래 머물 순 없으니까 금방 끝날 겁니다.”


누구지?

혹시 윗 단추를 몇 개 풀고 미녀와 함께 야릇한 포즈를 잡아야 하는 건가?

그런거면 괜히 어색하고 부담 되는데... 꿀꺽.

변하늬 팀장은 대기실로 향하더니 또다른 모델을 데리고 나왔다.


“어...!!”


김상재 선배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의 손을 잡고 걸어나오는 아이는 모자를 쓴 지훈이였다.


“선배님이 여길 어떻게 오셨어요?”

“선호 너가 고생이 많네. 얘기 들었다. 이번 달 표지 모델이라고.”

“팔자에도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네요. 2시간 전부터 붙들려서 개고생 중입니다.”


일부로 변 팀장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게 다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 거지.”


지훈이가 아빠 뒤에 숨어서 선망의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랑 같이 촬영할 모델이 지훈이 너였구나”

“지훈아, 너는 선호형 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막상 앞에서 부끄러워하면 어떡하니?”


선배의 말에 지훈이가 선배의 등 뒤로 더욱 움츠려들었다.


“반갑다. 지훈아.”


나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고, 녀석은 수줍게 악수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번 사인볼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 녀석이. 아저씨라니. 형이라고 불러야지. 형이라고 하면 그까짓 사인볼은 앞으로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네... 형.”


녀석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이번 달 사내잡지에 실리게 될 내용은 소아암 수술을 앞둔 지훈이의 사연.

그룹 사원들의 일상을 소개하며,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 동료들의 자발적 도움을 유도하는 캠페인 코너였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강선호 선수가 꼬마 아이를 무릎 위에 한번 앉혀보실래요?”


나는 지훈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어디 보자. 이 녀석.”


모자를 푹 눌러쓴 핏기없는 지훈이의 얼굴이 눈앞에 와닿았다.

녀석을 안은 팔에는 무게감이 안 느껴질 만큼 비쩍 마른 몸무게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스태프들이 조명을 손보는 동안 지훈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사내 녀석이 이렇게 말라서 어따 쓰냐. 여자친구도 만들려면 밥도 잘 먹고 튼튼해야지. 안 그래?”

“저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데요.”

“뭐?”

“야구 선수되려면 여자를 함부로 만나면 안 된댔어요.”

“하하하. 누가 그런 말을 해?”

“우리 엄마가요”

“지훈이 너 나중에 커서 아빠처럼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거냐?”

“아니요. 형 처럼요.”

“나처럼?”


말로 하면 녀석의 다부진 각오가 공기 중에 달아날까 지훈이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찍습니다. 편안하게 서로를 보면 웃어주시고... 슛 들어갑니다.”


촬영팀은 아이의 컨디션을 감안하여 15분 이내로 작업을 서둘러 끝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훈이는 나와의 모델촬영을 즐거워했고, 나 또한 이 녀석 덕분에 쌓였던 내 피로감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렇게 빨리 끝낼 거였으면 진작에 나도 그렇게 해줄 것이지.

첫 대면과 달리 나에게 어느 정도 친근감을 느낀 듯 지훈이가 물어왔다.


“아저씨, 부탁이 있는데요. 들어줄 수 있어요?”

“응? 니 부탁이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5월 4일 날 홈런 하나만 쳐주세요.”

“어... 그날은 왜?”

“저 수술 받는 날이거든요.”


얼핏 듣긴 했지만, 수술 날짜가 그렇게 빨리 잡힌 줄은 몰랐다.

정확히 보름 후다. 김상재 선배에게 지난 번에 병원에 한번 찾아가겠다고 했던 약속이 빈말이 된 것 같아 미안해졌다. 더욱이 어린이 날 하루 전에 수술을...


[햐... 그러고 보니 나도 옛날 생각이 떠오르네.]


지훈이를 보자 촬영 내내 못마땅해하던 표정이 한층 누그러진 밤비노가 추억에 잠긴 듯이 말했다.


<어떤 생각이 나는데요? 아저씨>

[나도 병실에 입원해 있던 11살 꼬마를 위해 홈런을 쳤었거든.]

<아. 기억 나요. 그때 그 사연.>

[꼬마 아이의 이름은 조니 실베스터였지. 내가 쳤던 홈런 중에 가장 값지고 소중한 홈런이었어.]


나도 알고 있다.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은 아직도 회자되는 이야기니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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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공공의 적 (2) +9 19.03.07 10,966 313 12쪽
45 공공의 적 (1) +8 19.03.06 11,168 270 12쪽
44 라이벌 의식 (5) +10 19.03.05 10,965 300 12쪽
43 라이벌 의식 (4) +10 19.03.04 11,280 287 12쪽
42 라이벌 의식 (3) +7 19.03.03 11,497 269 12쪽
41 라이벌 의식 (2) +6 19.03.02 11,661 265 12쪽
40 라이벌 의식 (1) +7 19.03.01 12,250 27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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