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하늘에 뜨는 별, 天南星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퓨전

HaLy
작품등록일 :
2019.01.24 00:53
최근연재일 :
2021.04.15 22:1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4,642
추천수 :
8
글자수 :
405,756

작성
19.04.04 22:04
조회
75
추천
0
글자
17쪽

25화 위험한 수

DUMMY

어느덧 해가 중천으로 떠올랐다.


보덕을 향한 경고를 끝낸 은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방안은 침묵으로 고요했으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초여름 강렬한 햇빛만큼 뜨거웠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심학조였다.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 동안이나 빈궁전에 드시지 않으셨다 들었나이다.”


“......”


심학조의 말에 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은을 대신해 성헌이 항변했다.


“그간 일기(日氣)가 좋지 못했습니다. 비와 바람 때문에 합궁일이 번번이 취소되었지요.”


물론 이를 심학조가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은의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 듯, 아니 도리어 더 신경을 긁겠다는 듯 이어 말했다.


“일기만의 문제라면 다행이지요. 계속 이대로 합방에 이르지 못하시면 사림 일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빈궁마마를 폐하라는 상소가 줄을 잇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이판대감.”


“그, 그러하옵니다.”


이판은 어색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는 되도록 세자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는 싶었지만, 영상이 누군가. 여차하면 여식을 세자빈으로 재간택되도록 만들어 줄 장본인이 아닌가.


영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동을 달았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어찌 나오겠습니까. 세자 저하의 음위(陰痿:발기부전)가 알려지면, 저하의 입지 또한 위태로워지겠지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은의 앞에서 ‘음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사람은 없었다. 이는 은에 대한 도발이었고, 이 나라 국본 세자에 대한 불충이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대로 굳었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오직 은만이 괴어오르는 분노로 입술을 깨물었다.


저하 참으십시오. 지금 영상 대감의 말에 동요하여 저하의 심경을 드러내신다면, 그것이 바로 영상 대감이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꼬투리를 잡히지 마십시오.


성헌이 은을 지긋이 바라보다, 영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힘있게 말했다.


“지나친 언사십니다.”


성헌의 말을 들은 심학조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답했다.


“난 그저 세자저하가 걱정되어 충심으로 직언을 드린 걸세.”


말을 마친 심학조가 이번엔 은을 향해 시선을 두고 고했다.


“저하, 혹 노여우셨다면,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신은 정녕 저하가 저어되어 드린 말씀이었나이다. 듣기 좋은 감언이설만 고한다면 그건 진정한 충신이라 할 수 없지요. 이 노쇠한 신하의 쓴소리를 부디 달게 들어주시옵소서.”


노쇠한 신하가 아니라 노회(老獪)한 신하겠지. 아주 교활하기 짝이 없군. 내 오늘의 수모는 기억해두지. 영상.


은 역시 묘한 미소를 입에 걸고 심학조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충심 내 잊지 않겠네. 영상.”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하.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부디 윤 교리와 좋은 시간 보내시옵소서.”


심학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을 향해 예를 다하고, 밖으로 나아갔다.


뒤이어 하상문과 남건 역시 황급히 은을 향해 예를 갖춘 뒤, 꽁무니를 뺐다.


그들이 사라지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방 안의 열기가 빠르게 식어갔다.


차갑게 굳은 은에게 성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하. 괜찮으시옵니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무엇이 말입니까.”


“저들은 내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해서, 함부로 움직이려 들지 않겠지. 아니면......”


“아니오면......”


“그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네? 그게 무슨......오늘의 미행은 저들에게 경고하여, 세계 낭자의 뒤를 더 이상 쫓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사옵니까. 그런데 그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니요.”


“걱정 말아라. 보덕은 더 이상 어떤 일도 벌이지 못할 것이다. 그게 그자의 그릇이거든.”


“허면 저하께서는 지금 영상대감을......”


은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푸른 안광 너머로 세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주상전하와는 또 다른 서늘함이다.


“난 언젠가 터질 고름 같은 이와 나라를 논하고 싶지 않다. 그를 도려내야겠지.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이라면......”


“이제 영상은 나를 쳐내기 위해 움직이겠지. 내가 발톱을 드러냈으니.”


“하오면 저하께서는 그들을 도발하여, 처단의 발판으로 삼으시려는 겁니까. 너무 위험한 수이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 역시 아바마마처럼 나의 사람들을 잃게 될 것이다. 너도, 빈궁도, 그 여인도.....”


세계로 이야기가 이어지자, 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자꾸나.”


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설화정에 올 때만큼이나 재빠르게 몸짓에 성헌이 황급하게 뒤를 따랐다.




***




“아악!”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세계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주저앉았다.


아오-다리가 단단히 뭉쳤네.


“아씨. 다리도 성치 않은데, 또 어딜 가시려고요.”


말녀가 세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복수해야지. 영상인지 영감탱인지 하는 그놈 말이야. 그래서 아부지가 수모자(首謀者)가 아님을 밝혀내야지.”


“아씨. 저도 그 복수에는 찬성이어요. 우리 대감마님 억울함만 풀 수 있다면, 그 복수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제가 하겠네요. 그런데요. 지금 그냥 가서 뭘 어찌하시려고요.”


“일단 그 영감탱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라도 들어봐야지. 또 나쁜 계략을 짜고 있을지 모르잖아. 실마리 잡을 만한 건수라도 찾아내야지.”


점점 말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다 아씨 정체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땐 복수고 뭐고 다 날아가는 거예요.”


“네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만은. 그렇다고 이리 방 안에 있으면 달라지는 게 무에 있겠느냐.”


“아씨. 천천히요. 좀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셔야죠. 아니다. 제 입이 잘못했네요. 제 입이 방정이었어요. 괜한 이야기를 아씨한테 했네요.”


말녀는 제 입이 잘못이라는 듯 입을 톡톡 치고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말녀에게 세계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엉킨 머리를 곱게 빗어 땋아준 것도, 추운 겨울날 목화 솜옷을 지어준 것도, 첫 개짐을 만들어 준 것도. 모두 세계였다. 그녀에게 세계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엄마보다 더 큰 존재였다.


사건 이후, 세계가 조금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말녀의 마음까지 달라지진 않았다. 양반댁 아씨와 시비(侍婢)라는 수직 관계가 없어졌어도, 그녀를 아씨로 모시고 있을 만큼 세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다. 말녀는 세계를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세계도 말녀가 왜 그리 조심스러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급격하게 어두워진 말녀의 기분을 살피던 세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덕구를 좀 불러다오. 그이한테 물어보자.”



*


“오늘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지 원.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라겠네! 그래 무슨 일인가.”


종종걸음으로 말녀 뒤를 쫓아온 덕구가 푸념과 함께 물음을 던졌다.


“아까 영상 대감이 오셨다고 했지요. 여긴 자주 오십니까?”


“종종 오신다네.”


“혹 같이 온 손님들이 계셨습니까.”


“있었지.”


“뉘셨습니까.”


“이판 대감과 보덕 영감이 같이 오셨지.”


보덕 영감이라면 세자저하의 스승이자, 명선의.......


“그래, 맞네 그분이네. 나도 놀랐네. 영상 대감과 동석하시는 건 나도 처음 봤거든.”


세계의 생각을 읽은 덕구가 묻지 않는 질문에 답한 후, 이어 말했다.


“아 그리고.....”


“그리고 또 오신 분이 계셨습니까?”


“윤 교리께서도 친우분과 같이 오셨다네.”


“나리께서요? 아니 왜......”


성헌 나리께서 왜 영상 대감과 함께 계신 거지?


성헌 나리의 친우는 또 뉘인 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 자네는 설화정에 뉘가 왔는지 왜 궁금한가?”


“아니 그것이 아니라......여기 행수 어른께서 워낙 기예가 뛰어나시어......어......설화정에 오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고관대작이라길래......”


머릿속에 성헌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차, 덕구의 질문에 미처 답을 찾지 못한 세계가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왜? 줄이라도 대어보려고?”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


“뭐가 그리 궁금하단 말인가.”


답답하다는 듯 덕구가 되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답한 이는 따로 있었다.


“혹, 내 소식이 궁금한 것이냐.”


반짝이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허여멀건한 사내.


바로 은이었다.


저 사람은 세자잖아.


은의 등장에 세계가 눈만 끔뻑거리고 있을 때. 뒤이어 성헌이 나타났다.


성헌과 은을 번갈아 쳐다보는 세계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그럼 성헌 나리의 친우라는 분이......저하?”


은이 눈을 찡긋거리며,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이미 눈치 빠른 덕구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재빠르게 머리를 조아린 그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쇠, 쇤네가 노노노노높으신 저하의 요요요요용안을 알아 뵙지 못했나이다. 소소소소송구하옵니다.”


“되었다. 내가 이리 나타났으니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지. 끝까지 모르게 다녀가고 싶었는데...비밀을 지켜주겠느냐?”


“무무물론 입니다요. 입을 딱 붙들어 매겠습니다.”


은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청마루로 올라갔다.


“되었으니 자네는 그만 물러가네.”


성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덕구가 날파람 나게 사라졌다.


성헌은 은의 뒤이어 대청마루로 오르는 세계의 뒷모습을 보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시옵니까?”


낭자의 깊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감히 세자의 얼굴을 그리 빤히 쳐다봐서 아니 된다. 무례하다. 말해야 되건만. 그녀의 눈길이 나에게 닿은 것이......너무 좋다.


세계의 물음에 볼이 발그레해진 은이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 일이 있어 잠시 나왔다가 그대가 생각이 나서 들렀소.”


은의 대답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세계는 성헌을 바라보았다..


성헌은 대청마루에 오르며 답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건 답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질 않습니까?


왜 영상대감과 같이 계셨냐구요.


것보다 세자저하 때문에 설화정으로 피난 오듯 떠나왔는데, 왜 또 이곳으로 저분을 데리고 오셨냐 구요?


세계는 물음이 가득한 눈으로 성헌을 응시했지만, 성헌은 짐짓 모른 척 은의 뒤로가 설 뿐이었다.


“아, 저기......내가 좀 가지고 온 것이 있는데......”


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방금 전까지, 심학조와 날 선 신경전을 벌이던 세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부끄럽고, 조바심이 나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열없는 사내만 있을 뿐이었다.


“수! 수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은의 부름에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수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부르셨사옵니까.”


“아까 맡겨놓은 그것을 이리 다오.”


수가 품에서 종이로 곱게 싼 꾸러미를 꺼내어, 은에게 건넸다.


은은 그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세계를 향해 내밀었다.


세계는 꾸러미를 받는 대신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옵니까?”


“그것은 그대가 직접 열어보면 되질 않느냐.”


은이 받으라는 듯 꾸러미를 세계의 앞으로 더 내밀었다.


세계는 그것을 받아 열어보았다.


“이것은 꽃신이 아니 옵니까.”


세계의 물음에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꽃신이다. 일전에 보니 신이 불편해 보여서. 아 그리고 그 밑에는 비단도 있으니 옷을 해서 입어라.”


이, 이상하다. 왜 이렇게 이곳이 더운 것이냐. 더 이상은 더워 못 있겠구나.


쑥스러움으로 귀까지 빨개진 은이 황급하게 일어났다.


“그럼. 내 이만 가보겠다.”


“저기 잠깐만요. 저 이제 옷이랑 신 많이 있습니다. 이런 거 사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 그러냐? 여기 행수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내 사, 상이라도 내려야겠군.”


은이 황급히 댓돌 아래로 내려와 신을 신었다.




***




자선당을 나온 단혜가 월대 위에서 허우청거렸다. 뒤따르던 조 상궁이 얼른 다가가 단혜의 팔을 붙잡았다.


“빈궁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괜찮으니. 오늘 바깥바람을 많이 쐬어 조금 노곤했나 보구나. 얼른 중희당으로 가자꾸나.”


산책으로 인한 곤함이 아니시다. 빈궁마마께옵서는 또다시 상처를 입으신 것이다.


저하께옵서 윤 교리 나리와 함께 궁 밖을 나가셨다면, 필시 그 아이를 보러 가신 것이겠지.


나도 이리 짐작이 되는 것을 빈궁마마께옵서 모르실 리가......


그러나 조 상궁은 짐짓 모른 척 조용히 답했다.


“네 빈궁마마.”


단혜가 발끝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몹시도 무거웠지만 더 이상 조 상궁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얼른 중희당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멍한 상태로 도착한 단혜가 중희당 중문을 지났다.


그러자 중희당 앞을 지키고 섰던 나인 하나가 쪼르르 뛰어와 고했다.


“빈궁마마 중전마마께옵서 찾아계시옵니다.”


“중전마마께옵서?”


해쓱했던 단혜의 얼굴빛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


“중전마마. 찾으셨나이까.”


단혜가 지친 마음을 감춘 채, 단려하게 인사를 올렸다.


“빈궁. 이리 가까이 다가와 앉으세요.”


단혜가 중전의 곁으로 한발 다가가 앉자, 중전이 김 상궁을 향해 눈짓했다.


김 상궁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 다과상을 가져와 살포시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드세요. 앵두편입니다. 내일이 단오라 만들어 보았지요.”


“네 중전마마.”


단혜가 빠알간 앵두편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맛이 어떻습니까?”


“아주 맛이 좋습니다. 중전마마.”


단혜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중전이 말을 꺼냈다.


“빈궁. 방금 관상감이 다녀갔습니다.”


관상감이라는 말에 단혜의 얼굴에 희미하게 걸려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관상감이 다녀갔다면, 합궁 일이 정해졌다는 이야기겠지.


아니나 다를까 중전은 합궁 일이 정해졌음을 알렸다.


“빈궁. 돌아오는 이레에 합궁하면 세손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번 합궁 일에 세자의 예후(睿候)가 좋았지 않습니까. 이번 합궁 일은 분명 합일을 할 것입니다.”


“......”


“더구나 이번 합궁일은 지난번보다 훨씬 기운이 좋다고 합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리 좋은 기운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중전이 단혜의 손을 손을 붙잡으며 이어 말했다.


"빈궁,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일을 하셔야 합니다.”


단혜는 붙잡힌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중전마마. 소첩은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좋은 약도, 온갖 습속(習俗)도 소용이 없지 않았나이까.


게다가......저하의 심중에는 다른 여인이......다른 여인이 자리 잡고 있나이다.


그런데 저를 품어주시겠나이까.


쉽게 답하지 못하는 단혜를 향해 중전이 은밀하게 말했다.


“빈궁, 해서 말입니다. 빈궁께서 이번엔 좀......배움을 하셨으면 합니다.”


“배움이라니요?”


“세자의 양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일종의 건강비법이랄까요?”


“네?”


단혜는 중전의 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중전이 다시 김 상궁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빈궁마마. 저기......방중술(房中術)이라고 들어보셨나이까?”


방중술이라면......음양교접과 관련된......


어찌 그리 망측한 것을......


단혜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하를 더 잘 보필하기 위해 깨우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나 중전마마.”


“내 빈궁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벌써 후궁을 들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단 말입니다.”


“......”


중전의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는 좌의정인 아버지의 힘으로 사림의 압박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 일은 빈궁인 나뿐만 아니라 세자저하의 입지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빈궁. 이 일의 적임자를 알고 있습니다. 내일 그자를 궁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중전마마. 하오나 이 일이 알려지면......”


“그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자는 입이 무거운 자이지요.”


“......”


“빈궁. 나 또한 빈궁과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해서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지요.”


어마마마께서?


단혜가 놀라 고개를 들어 중전을 바라보았다. 중전은 다사로운 미소로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 말했다.


“빈궁. 더 넓은 마음으로 보세요. 그리고 더 멀리 보세요. 결국 세자의 마음을 가지는 이도, 세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 이도 빈궁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바람쯤은 거뜬히 감내해야 하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쪽 하늘에 뜨는 별, 天南星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1 60화 이치는 비슷하다. 21.04.15 10 0 13쪽
60 59화 들어봤습니다. 그 이름. 21.04.02 15 0 13쪽
59 58화 후회라는 건 그냥 일찍 해버리는 게 나아. 20.10.30 17 0 13쪽
58 57화 곧 그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20.09.12 14 0 13쪽
57 56화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20.05.16 41 0 14쪽
56 55화 개똥 같은 소리 20.02.21 29 0 13쪽
55 54화 네가 해다오 20.01.13 27 0 13쪽
54 53화 그녀를 곁에 둘 각자의 방법 19.12.31 27 0 12쪽
53 52화 그게 그토록 궁금하셨나요? 19.12.24 24 0 13쪽
52 51화 없던 병이 더 생기겠군. 19.12.06 30 0 14쪽
51 50화 천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 19.11.24 33 0 16쪽
50 49화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19.11.17 28 0 14쪽
49 48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19.11.10 35 0 12쪽
48 47화 그들의 속내 19.11.01 31 0 13쪽
47 46화 그 아이의 정체를 모르실 것 같은가? 19.10.27 37 0 14쪽
46 45화 모든 것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19.09.28 45 0 14쪽
45 44화 저를 궁으로 보내주십시오. 19.09.20 43 0 12쪽
44 43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 19.08.29 36 0 15쪽
43 42화 마마신의 저주 19.08.15 43 0 13쪽
42 41화 불안의 시작 19.08.11 40 0 12쪽
41 40화 붉은 입술 19.07.27 63 0 13쪽
40 39화 안개 속의 자두 19.07.20 53 0 17쪽
39 38화 합궁, 내 꼭 해주지. 19.07.12 78 0 13쪽
38 37화 역시 말렸어야 했다. 19.07.06 48 0 14쪽
37 36화 더 강력한 명분 19.06.28 47 0 12쪽
36 35화 선물이 향하는 곳 19.06.22 60 0 13쪽
35 34화 누구의 편이십니까? 19.06.16 54 0 16쪽
34 33화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정답은 하나 19.06.01 67 0 12쪽
33 32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05.26 57 0 12쪽
32 31화 익숙함이라는 것은 때론 무서운 것 19.05.17 73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