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뭐, 그런 녀석들이 있기는 했었죠. 근데 대부분 실패했죠. 암살이라는 거··· 성공의 확률은 경호의 강도보다는 행동의 규칙성에 더 영향을 받죠. 항상 정해진 관례대로 행차를 하면 경비는 엄중해지겠지만 그래도 같은 일정이 반복되며 규칙성이 생기죠. 거기서, 노련한 암살자는 경호의 빈틈을 찾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예정도 없고 동선도 없고 그냥 시민들 다니는 길로 내키는 대로 돌아다녀서야 원··· 암살을 계획했어도 갑작스러운 출몰에 당황해서 신속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설령 허둥지둥 뭔가 해보려고 접근해도 그런 놈은 꼭 티가 나기 마련이죠. 뭐··· 그 이전에 저 양반을 굳이 암살까지 해서 죽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의 문제가 앞서기는 하겠지만···”
점점··· 더 머리가 아파온다. 아오, 시골 출신에 영업사원이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격식이 없었던 거냐? 이 정도면 황제 이전에 인간으로서 너무 가볍잖아!!! 뭔가 잔뜩 엄숙한 황제의 행렬을 기대한 내 생각과는 완전히 틀어진 황제의 행보에 나는 다시 한번 속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런 소동을 뒤로 하고 어가는 제국 원로원에 당도했다. 부콜레온 황궁보다는 작아도 그 모습 자체가 엄숙함과 완고함을 그대로 담고 있어 보이는 제국 원로원 의회 건물.
황제도 그곳에 당도한 다음부터는 시시껄렁하게 시민들에게 농담따먹기를 하는 대신에 조금 말을 자제하고 애써 위엄있어 보이려 노력하며 의회의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름 저렇게 엄숙하게 걸으니 왠지 내가 처음 이곳에 도달해서 첫인상에 속았던 것과 같은, 조금은 제대로 된 황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황제를 따라 아치가 드리워진 통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곧 문이 열리고 거대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누군가 소리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전원 기립하시오.”
그리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금 긴장했다. 거대한 돔으로 구성된 원형으로 구성된 공간에 수백여명의 의원들이 일제히 예복을 갖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하는 황제를 맞이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그들에게 조금 무표정한 얼굴을 지어보이고 걸음을 옮겨 중앙으로 위치한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로 보이는 곳에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당도하자 황제는 평소와는 다른 엄숙한 목소리로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의회에 서니 감회가 새롭군. 다들 예의는 충분하니 자리에 앉도록.”
황제 폐하의 말에 의원들은 수긍하며 자리에 앉았고, 황제는 그들을 조금 위에서 내려다 보며 말을 꺼냈다.
“우선,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소. 지난번 십자군 침공의 종전 이후 헝가리에서 평화의 사절로 보내온 템즈의 꽃이 자신의 조국을 대표하여 이번에 원로원에 인사를 하러 왔소. 여러 의원들은 먼 곳에서 온 공녀에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보내주기를 바라오. 카밀라 공녀. 여기 있는 모든 제국 원로원 의원들에게 조국을 대표하여 인사하시오.”
나는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래도 진짜 카밀라 공녀님이었다면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움을 억지로 억누르고 단상의 앞으로 나가 나를 주시하는 수많은 의원들을 향해 치마를 살짝 들고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카밀라 입니다. 오늘 제국의 여러 의원분들을 뵙고 조국의 이름을 대신하여 인사드리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디, 앞으로 제국과 우리 조국의 평화와 번영이 영원하기를···”
나의 귀족가의 레이디로서 예의를 갖춘 인사에 의원들은 조금 수근거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가벼운 박수를 치며 내가 의회에 인사를 하고, 이곳에 참관하는 것에 대해서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 시선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저번 전쟁에 대해 딴지를 걸던 그 사람··· 요하네스 의원이었다. 상당히 많은 의원들이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아, 왠지 알것 같다. 저 사람··· 이곳 의회에서 황제의 반대파의 수장 격인 사람이구나.
저번 어전회의에서 바실의 개선에서 나섰던 것처럼 튀진 않았지만 상당한 의원들에게 둘러쌓여 멀리서 나와 황제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분이 느껴졌다. 역시, 저번에 봤을 때 느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 아마도 만만치 않은 거물급 인사일 것이다. 나는 그의 강렬한 시선에 조금 긴장감을 느끼면서 인사를 마치고 뒤로 물러나 단상의 곁에 나를 위해 마련한 것 같은 의자로 향했다. 그리고 의회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황제가 전에 나에게 동행을 제안했을 때 했던 말처럼, 지난번 전쟁에 대한 결과와 강화 이후의 외교 관련 상황에 대한 의회의 질의가 주된 내용이었다. 확실히, 내가 지난번 전쟁에서 적성국으로 참전했다가 유일하게 제국과 강화를 맺은 조국의 인질이라는 점에서 내가 참관해야 할 의회 일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절로 왔다고는 해도 엄연히 패전국의 인질인 입장에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은 별로 없었다. 주된 대화의 공방은 전쟁과 강화에 대한 부분을 추궁하는 의원들이 이끌었다.
여기서 나의 입장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공개된 전리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지난번 전쟁이 무가치 하지 않고 승리를 거뒀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나의 존재를 의원들의 앞에 내세운 것이었다. 뭐, 기분나쁘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거 하라고 대역이기는 하지만 공녀로서 이곳에 보내진 것도 사실이니깐. 오히려, 같이 지내게 되면서 좀 한심하기는 해도 매일 수발들며 정든 황제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편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바라고 해야 할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입장은 의외로 의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역방향으로 생각할 소지를 만드는 것 같았다. 의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황제가 내세운 굴복한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 황제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정당화하고 과시하려는 수단이라 주장하고 싶어 했다. 지난 번 개선 이후 요하네스 의원이 바실에 대해서 합의되지 않은 전략 수행을 지적했다가 황제의 한마디에 깨갱한 덕분인지, 요하네스 의원은 나서지 않고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대신에 그의 심복으로 보이는 어느 뚱뚱한 의원은 열을 올리며 전쟁에 관련된 일에 대해 황제에게 질의를 가장한 공세를 폈다. 마치 요하네스 의원의 심중을 대변한 듯이. 그리고 그 공세의 방향은 지난번 요하네스 의원의 지적이 파해된 것에 교훈을 얻었는지, 영광의 승리를 깍아내리는 방향이 아니라, 그 후속으로 벌어진 외교적 행보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패배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황제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들의 땅을 불사르고 소금을 뿌려 볼모지로 만들까?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끌고 와 인간의 가격이 동전 한닢으로 떨어질 정도로 팔아 넘겨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국제 관례에 타당한 수준의 보상금과 외교적 우위, 그리고 정치적 간섭에 대한 권리를 손에 넣었소. 그것에 대해 대체 얼마나 그들에게 더 뜯어내야 만족할 것인가?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제국의 위엄을 망각하지 말길 바라네. 패티우스 의원.”
하지만 그 뚱뚱한 의원은 황제의 엄중한 경고에도 기죽지 않고 맞받아 쳤다.
“물론,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그런 과격하고 끔찍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오나, 폐하. 말씀하신 제국의 위엄에 대해 폐하야 말로 망각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물론 처리하신 바가 통상적인 패전국의 처리 방식을 생각해보면 타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패전국이 아닙니다. 잊으셨습니까? 그들은 같은 주님을 섬기면서도 오히려 우리 제국을 이단으로 보고 칼을 들이댄 신성동맹의 십자군의 일원이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제국이 그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거짓된 성전을 분쇄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이 우리 제국과 양립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들의 일원이었던 헝가리가 현재 신성동맹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였다고는 하여도··· 희희낙낙 십자군의 깃발 아래 병사를 몰아 제국에 발을 디딘 공범이라는 사실이 변치 않은 상황에서, 그들을 통상적인 패전국으로 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제국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자들의 일원이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서 그들을 대하시는 태도는 지나치게 관대하옵니다. 어찌하여 그들에게 그런 수순의 느슨한 태도로 감히 제국에 검을 들이댄 죄를 가벼이 여기시려 하십니까? 당연히 그들이 우리에게 하려 했던 것에 버금가는 혹독한 대가로 다시는 제국을 업수이 여기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대역이긴 하지만 파견된 사절이 참석한 자리에서 잘도 말하네. 아니, 오히려 내가 있기 때문에 더 보란듯이 말하는 것인가? 황제가 열을 올리는 패티우스에게 말했다.
“한때는 이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열을 올리던 그대가 지금은 왜 이리 강경한지 모르겠군. 지금 자네의 주장은 비겁하네. 죄를 묻자면 십자군 전쟁을 주도한 교황청과 신성동맹의 맹주들에게 물어야 함이 옳겠지. 참패하고 버려진 헝가리가 무슨 죄로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이미 헝가리는 패전과 부당한 전쟁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뤘네. 이렇게 그들의 꽃을 우리에게 보내 그 일에 대한 사죄를 하고 우리 측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지 않고 있는가? 그런 그들에게 다시 칼을 들이대는 것이 과연 제국이 해야 할 타당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대의 저의를 도무지 알수가 없군.”
그런데 그때, 패티우스의 눈빛이 빛났다. 그리고 슬그머니 뒤에 있던 요하네스 의원의 시선을 마주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저의를 알 수 없는 것은··· 오히려 폐하가 아니십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세간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번 전쟁에 대해 폐하께서는 겉으로는 절대 타협은 없다는 강경 노선을 주장하시면서도, 물밑에서는 오히려 그들 헝가리와 은밀히 협상하여 그들과 내통해서 승리를 거둔 다음에 그 대가로 그들에게 관대한 조건의 항복을 약속했다는 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망언을 하던가?!!! 그런 일을 해서 대체 제국에 무슨 득이 된다고!!!”
“그야 물론···. 황권의 강화와 외부 친위 세력의 구축이겠지요.”
“······!!!”
“무리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과거 우리 제국의 수많은 황제들께서 제국의 충신들을 외면하고, 외부에서 들여온 친위 세력을 통해 황권을 강화하고 제국의 시민과 의회를 무시하고 독재를 하려다 물러난 일들이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특히나··· 정통성과 지지기반이 부족한 선대 황제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셨죠.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만, 지금의 상황이 어째서 역사에서 배우는 당대의 시대상과 이리도 흡사한지 소신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