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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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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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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진상(2)

DUMMY

능글능글 웃던 남자는 점점 반협박 조로 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생이 소주를 잘못 갖다 줘서 내 입맛을 버렸다고. 이거를 마시다가 저거를 마셨으니 어떻게 되겠어? 술이 속에서 섞여. 섞이면 어떻게 돼? 머리도 띵하고 빨리 취하고 숙취도 심할 거라고.”


혀가 잔뜩 꼬부라진 남자는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가 찼다.


쩔쩔매던 민규가 강우를 쳐다보며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그나마 강우밖에 없었다. 강우는 민규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차라리 냉면 한 그릇 말아서 줘버리는 게 낫지, 더 상대하는 게 손해였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나······.


“손님, 그러면 제가 주방에다가 물어보고..”


“아니, 근데 알바가 돼서 말이야. 손님 말을 뭐 하나 고분고분하게 들어주는 법이 없어?”


진상 남자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강우는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느껴졌다. 혼자 능글거리다가 중얼중얼 술주정 하더니, 뜬금없이 분노 표출이다.


처음엔 이 정도로 취한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을 하는 동안 점점 더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말투가 험악해지는데도 그의 일행들은 익숙하다는 듯 남자의 행동을 무시한 채 여전히 자기들끼리 대화에 푹 빠져있었다.


“야, 너 몇 살이야? 어?”


민규는 난처한 듯 쩔쩔매다가 지금은 화를 참는 듯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민규가 자신을 무서워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 여겼는지 더욱 강하게 그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거기.”


그런데 민규의 대답 대신 시니컬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상 남자의 일행들마저 일제히 집중할 만큼 힘있는 목소리였다. 조금 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저씨, 적당히 드셨으면 그만 집에 들어가시죠.”


처음엔 자기를 부르는 말인 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해 있던 남자가 목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강우도 목소리의 주인공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정의 엄마였다.


“뭐야, 당신은? 왜 시비야?”


남자가 풀린 눈으로 유정의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시선으로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쪽에서 그, 어린, 애한테 걸고 있는 게 바로 시비고요.”


제대로 들으라는 듯 단어와 단어 사이를 뚝뚝 끊어 말하는 그녀. 확실히 남다른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라고 강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위태한 상황이었다. 겉보기에는 유정의 엄마가 훨씬 세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상대는 남자였다. 그것도 술에 취한 남자.


강우는 허리에 묶고 있던 앞치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른들 싸움에 끼어 봤자 더 난장판이 될 뿐이다. 말려줄 다른 이들이나 사장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땐 경찰을 호출하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그의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는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뭐 못할 소리 했나? 손님이 서비스 좀 달라는 게 죄야? 어?”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테이블과 시비를 붙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의 일행들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야, 저 새끼 또 왜 저러냐.”


“몰라, 아까부터 알바 잡는 것 같은데. 그만해라, 그만해.”


그러나 남자는 일행들이 반응하자 더욱 힘이 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무슨 얘길 하든 말든 그쪽이 상관할 건 없잖아? 먹던 거나 조용히 먹고 꺼질 것이지, 남의 일에 오지랖은 왜 부려? 어?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정도껏 짖어야 듣고 있죠. 자식뻘 되는 애 그렇게 잡으면 좋아요?”


유정의 엄마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오히려 도발했다. 그녀를 말려줄 사람은 없었다. 함께 고기를 먹던 유정과 그의 친구는 술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뭐, 뭐? 짖어? 짖어? 짖어어?”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앞에 있던 맥주잔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잔이 ‘쨍’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몇몇 일행들은 정신이 번뜩 든 듯 남자를 말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아,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그를 부여잡고 밖으로 나가면서 유정의 엄마와 민규에게 사과하는 이도 있었다. 남자는 일행에 의해 질질 끌려나가면서 유정의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받은 것이 좋은 건지 조금 의기양양한 눈치였다.


“미친놈.”


유정의 엄마가 작게 읊조렸다.


“하여간 저 새끼 술만 먹으면 꼭 끝이 이래. 아이고, 죄송합니다.”


일행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옷을 챙겨 들고 식당을 나가기 시작했다.


“애들 상대로 싸게 파는 고깃집 와서 꼴랑 술 댓 병 마셔 놓고 뭘 달래? 무식하기는.”


남자가 일행들에게 끌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유정의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동의를 구하는 듯 강우를 향해 있었다.


민규는 잠깐 밖에 나가 사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고, 유정과 그의 친구는 테이블에 엎어져 있으다. 그녀가 동의를 구할 사람이 강우 밖에 없기는 했다.


강우는 수긍의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계산 할게요. 얼마죠?”


유정의 엄마가 강우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홀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워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아, 강우 학생은 계속 안 보이더니 주방만 하나 보네요.”


“네. 저는 주방 알바예요. 그리고 방금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알바 친구가 혼자 많이 난처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강우 학생한테 고맙단 얘기 들을 일은 아니죠. 그건 그렇고..”


그녀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강우에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강우는 갑작스럽게 내민 명함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BAEMJ 대표/디자이너 배민주.


명함을 확인하고서야 흡사 연예인 같던 그녀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정의 엄마 배민주는 자신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옷 하나 선물 하고 싶어요. 나한테 과한 거 절대 아니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받아줬으면 좋겠는데.”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자신이 일하는 고깃집까지 와서 감사의 말까지 전했는데, 따로 선물까지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을 거절하는 일이 마치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망설여졌다. 방금 진상 퇴치에 도움을 주기까지 했는데, 안 받겠다고 말하는 게 예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우습게도 그랬다.


“으휴, 답답이. 애면 애답게 좀 굴자. 어른이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줄도 알아야 해.”


그 때 젊은 여자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강우는 유정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테이블에 엎어진 상태였다.


“나지롱.”


강우와 유정의 엄마 사이에 수연이 불쑥 나타났다. 강우는 너무 놀라서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직도 귀신을 보고 놀랄 수 있다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우 학생?”


유정의 엄마가 괜찮냐는 듯 강우를 쳐다보았다.


“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선물 같은 거 안 주셔도 돼요. 마음만 정말 감사히 받을 게요.”


현우가 애써 그렇게 말했다.


“유정인 나한테 하나 밖에 없는 딸이에요. 얼마 전에 애 아빠가 죽었어요. 그래서 사고 났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쩌면 큰 흉이 남을 수도 있는 사고였는데, 강우 학생이 그러지 않게 해줬잖아요. 뭐라도 성의 표시 하는 게 내 맘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요.”


“저렇게까지 말 하시는데 안 받을 거야? 뭐 어때서 그래~ 저 브랜드 옷 진짜 예뻐.”


강우가 대답하기 전에 수연이 또 끼어들었다. 며칠 만에 밝은 모습을 보게 된 건 반가운데, 활기찬 수연은······ 역시 정신이 없었다. 난데없이 일하는 식당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했다.


민규가 통화를 끝내고 들어왔다. 그는 강우와 유정의 엄마를 흘끔 보더니 깨진 유리잔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애초에 강우를 찾아온 사람들이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 한 번 샵으로 꼭 와요. 진짜 내가 너무 입혀보고 싶어서.. 아니, 선물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네, 그러면 제가 언제 한 번 찾아뵐게요.”


강우가 체념한 듯 말했다. 언제 한 번 방문 하라는데 사양하는 건 우스웠다. 그리고 수연이 계속 방해를 해댈 것 같았다.


“고마워요. 그럼 언제 올래요? 내일 어때요?”


“네?”


예의상 답했을 뿐 사실상 거절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여겼던 강우의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수연은 강우의 표정을 보며 큭큭거렸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밌는 것 같았다.


“9시부터 6시 사이 아무 때나. 매장 와서 배민주 대표 찾으면 돼요.”


강우를 배려하는 듯 시간을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으면서도 ‘내일’로 약속을 못 박아버리는 배민주 대표. 강우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 말하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수연이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강우가 수연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무 고마워서, 고맙단 말 하러 왔지!”


오늘따라 고맙단 말 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 수연은 사람이 아니긴 했다. 강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현우 말이야. 도와줘서 고마워.”


히 –

수연은 강우가 만든 결과가 정말 만족스럽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강우는 낮에 카페에 혼자 두고 왔던 현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연은 그 이후에 강우의 모습을 보고 온 것 같았다.


“현우, 방금 애들 만나고 고시원 돌아왔어. 희지, 태권이, 가을이, 자운이, 선지. 다 만났어.”


강우가 의외라는 눈빛을 띠었다. 현우가 차차 정리를 하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따라 갔었어요?”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묻지 않았다. 어떤 핑계를 대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진실을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그 광경을 지켜보는 수연은 가슴 아팠을 것이다. 변명을 했다면 수습하기 위해 쩔쩔 매는 현우의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테고, 진실을 말했다면 그를 향한 오마주 멤버들의 차가운 시선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었을 테지.


그래도 다 끝났다. 강우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방금 현우가 방에서 잠들었어. 난 그 애가 그렇게 가벼운 표정으로 잠든 건 처음 봐.”


수연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꼭 해야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그런데.. 이지 말이야.”


“이지?”


강우가 식기세척기 안에서 건조된 그릇들을 가볍게 정리하다 말고 수연을 돌아보았다. 드디어 수연이 이지의 흔적을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그런데 수연이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자기가 꺼내 놓을 말에 확신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현우는 어느새 말라버린 침을 꿀꺽 삼키고, 수연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강우의 눈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돌아와야 할 곳을 못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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