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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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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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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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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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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모델(3)

DUMMY

“아니, 강우가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


수연이 좀 전처럼 우진을 윽박지르며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강우가 그녀의 부탁으로 추모 영화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어제였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제가 부탁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리고 형이라면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들어나 보자. 뭔데?”


수연이 선심 쓰듯 말했다. 우진은 강우의 허락을 구하고자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들어나 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강우.


“화보 사진이요. 이번에 찍은 거.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게 누군데?”


우진이 잠깐 머뭇대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요.”


박우진은 고교 시절 모델을 꿈꾼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대립해야 했다. 그가 모델이 되겠다며 공부를 놓아버리자 아버지는 그것을 겉멋이라 치부하며 화를 냈고, 박우진은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는 대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집을 나와 모델아카데미 수강료와 생활비를 마련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딱 한 번 그를 찾아왔다.


여름 감기에 된통 걸려버려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날이었다. 찌는 땡볕 아래서 손님을 받느라 티셔츠가 온통 땀에 절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하루 종일 코를 풀어 대느라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코가 뚫리기만 한다면 뚫어뻥에 머리라도 들이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몸으로 12시간을 이 악물고 버틴 후 퇴근하던 밤.


“아······.”


잔뜩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우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낯익은 체구의 남자가 건물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우진의 방을 찾아온 것이다.


우진은 아버지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얼른 몸을 숨겼다. 7개월 만에 만난 아버지였지만, 반가움보다는 피곤함이 훨씬 컸다. 그새 자신을 이해했을 리 없는 아버지와 다시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아버지는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서 우진이 돌아오길 기다렸고, 우진은 골목에 웅크려 앉아 아버지가 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아버지가 못내 아쉬운 듯 먼저 발길을 돌렸다. 우진은 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건물로 들어왔다.


그런데 우진의 지하 방 문고리에 종이가방 하나가 걸려있었다. 원래는 흰색이었지만 때를 타 노래진 어느 죽집의 종이 가방. 우진은 그것이 아버지의 낡은 차 뒷좌석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임을 알아보았다.


종이가방 속에 든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순댓국이었다. 종이가방 속에서 순댓국이 포장된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종종 먹던 집 근처 순댓국집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차가워진 순댓국을 데우지도 않고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그는 시큰거리는 마음까지 삼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돌아서면서 몇 번이나 그가 사는 건물을 돌아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럴 거면 그 때라도 연락을 하지. 전화를 드렸어야지. 다음 날 찾아갈 수도 있었고.”


우진의 이야기를 듣던 수연이 말했다.


“우습잖아요. 자퇴까지 하고 집 나와서 7개월 동안 아무것도 한 거 없이 지하 방에서 아빠가 사다 준 순댓국이나 먹고 있는 모습이. 그 때 제 방 곰팡이도 얼마나 많았게요.”


우진이 밉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시작한 다음에 아빨 보고 싶었어요. 그 때 거역했던 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 위한 마음이었던 건 알지만 난 이렇게 내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 나를 좀 믿어 달라······ 뭐, 그런 거요.”


이후 우진의 아버지는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진은 더더욱 잠을 줄여 가며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모델아카데미 겨울 학기에 등록할 수 있었다.


이후로 한동안은 순조로웠다. 아카데미 수료 후 모든 지망생이 원하던 매니지먼트 오디션에 기적처럼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패션위크 무대까지 따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대에는 서지 못했고, 그로부터 6개월간은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 일이 잡힐지 몰라서 고정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하며 벌어 놓은 돈을 몽땅 까먹었을 때쯤. 매니지먼트가 실수로 나를 뽑고 방치해두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할 때쯤. 월세마저 밀려서 집주인의 독촉이 언제쯤 시작될까 눈치만 보고 있을 때쯤······.


‘스포츠아’의 화보를 찍게 되었다.


현장에 있는 포토그래퍼가 연결해준 디자이너 미팅도 잡혔다.


이번 화보가 나오면 다시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고민 하던 중 당일 알바를 구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 호프집에 난입한 괴한의 칼에 찔려 정신을 잃었다.


“이래서 효도는 때가 없다고 하나 봐요. 효도······. 웃기다. 저 이 단어 처음 써 봐요.”


우진이 민망해하며 웃었다.


강우는 수연과 대화를 나누며 우진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진의 부탁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런 문제라면”


강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수연과 우진, 두 영혼이 강우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직접 드리면 되는 거잖아요?”


수연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영혼은 물건을 집을 수가 없잖아. 알면서 그래.”


“영혼은 그렇죠. 하지만 육체로 돌아간다면, 가능하겠죠?”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육체로······. 아?!”


무심코 대답하던 수연이 뭔가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는 듯 눈이 커졌다.


영혼을 감싸고 있는 흰빛과 검은빛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우진이 흰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랬다. 박우진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배민주 대표도 ‘칼에 찔렸다’,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했지 죽었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야, 모델!”


수연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우진을 불렀다.


“너 안 죽었어. 몰랐지? 너 네가 완전히 죽은 줄 알았지? 아······. 얘는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거나 잊어 먹은 거였어!”


흰빛을 가진 영혼들이 기억을 부분적으로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린 수연이 말했다. 마치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듯 흥분한 모습이었다.


우진이 강우를 괴롭힐까 봐 날카롭게 굴면서도, 후회하며 아버지에게 사진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가 사실은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한껏 차오른 그녀의 감정은 우진의 말 한 마디에 급속도로 정리가 되었다.


“알고 있어요, 완전히 죽지 않은 거.”


이건 강우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수연의 눈이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알고 있다고? 그런데 왜 이런 부탁을 하는 거야? 돌아가면 되잖아!”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어이가 없다는 듯 잔뜩 인상을 구기는 수연.


“살아날 수 있는데, 그러기가 싫다고요?”


황당해서 말을 멈추어 버린 수연 대신 강우가 물었다.


“네. 저는 그냥··· 이대로 있다가 사라져도 좋아요.”


“음, 솔직히 저는 잘..”


강우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었다. 문 앞에서 배민주 대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원에게 무언가를 당부한 후 대표실 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방금 전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강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배민주대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두 귀신도 입을 다물었다.


강우는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새 우진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수연은 여전히 황당하다는 얼굴로 우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진짜 이해가 안 돼. 누군 살고 싶어 죽겠는데도 이미 죽어버려서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저래? 너 이해가 돼?”


강우가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쉴 새 없이 그의 동의를 구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철이 없는 거야, 저건. 어차피 죽을 거면서 아빠한테 사진은 왜 보여주고 싶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수연의 말을 들으면서, 강우도 나름대로 우진의 생각을 유추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한 제안, 고민은 하나 봐요?”


강우의 심각한 표정이 모델 제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운전을 하던 배민주 대표가 물었다.


“네······.”


강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은 우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져서 모델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척 핸드폰에 무언가를 입력한 후 수연이 볼 수 있도록 액정을 슬쩍 돌렸다.


[혹시 육체로 돌아간 영혼 얘기 들은 거 있으세요?]


수연이 곱씹을수록 황당하다며 펄쩍펄쩍 뛰던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글쎄. 직접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 영혼이 다시 몸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 자체를 너한테 처음 들은 거야.”


수연의 말을 들은 강우가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쉬울까요? 영혼이 육체로 들어가는 거요. 혹시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게 또 있는 건 아닐까요?]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다는 거지?”


[네. 흰빛과 검은빛 영혼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흰 빛 영혼들이 기억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렇고.. 점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건요.]


강우는 거기까지 입력하고 손가락을 멈추었다.


이지는 정말 기억을 잃은 것이 맞을까.

그녀 역시 어떤 이유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 건 아닐까.

그녀를 찾기만 한다면 육체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는 있을까.

잠든 육체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깨어날 수 있는 것일까.


답을 안다고 해도 어쩌지도 못하는 물음들이 끊임없이 피어 올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다.


수연도 그런 강우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승에 있는 귀신 중에는 200일을 넘긴 이들이 없다. 누가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귀신의 운명이라든지 저승의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영혼은 드물었다.


수연이 강우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선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지금 할 수 있는 거, 현재 상황의 최선.”


강우는 몇 분간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수연도 말없이 그의 침묵을 지켜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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