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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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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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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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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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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쌍둥이(2)

DUMMY

비례대표를 거쳐 파주시에서만 두 번 당선된 3선 의원 김철구. 그의 아버지는 맨몸으로 정계에 입문해 내리 4선을 이어간 김정광 의원이었다.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한 인터뷰에서 20년 정치 인생 중 가장 절친했던 친구로 자신의 운전기사 이재식을 꼽았다.


장장 20년을 함께하며 김정광의 손발이 되어주었던 이재식. 그는 폐암으로 김정광보다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늘에 좋은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던 김정광.


혹자는 국회의원이 운전기사를 친구로 생각하겠느냐며 빈정대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 하늘로 떠났을지언정 그들의 20년 우정은 끊어지지 않았다. 김정광이 눈 감는 순간까지 이재식의 가족들을 살뜰히 챙긴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았지.”


“우리가 막 태어났을 때 일이거든요.”


강우는 뒷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서웠다. 두 노인의 아름다운 우정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원한으로까지 이어지게 될지 알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김정광은 이재식의 식구를 자신의 집 별채에 살게 했다. 덕분에 그의 아들 김철구와 함께 자란 이장고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들 집안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그런데 김정광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집안 사이에 돈이 끼게 된다. 그가 이재식의 아들 이장고에게 평생 먹고 살만큼의 유산을 남긴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장고에게 돈을 직접 남긴 건 아니었다. 이장고가 10년 간 문제 없이 운전기사 생활을 한다면, 그 돈을 내어주라고 김철구에게 유언을 남긴 것.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더 지나도록 김철구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이장고의 식구들은 3대에 걸친 별채 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쌍둥이 딸이 바로 이채연과 이초련이었다. 그리고 김철구의 딸이 김서현이다. 김서현은 그녀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야말로 ‘공주’였다고 한다.


“아빠가 3선 의원이니까 말 다했죠.”


“어렸을 때부터 뭐 좋은 거 하나 생기면 쪼르르 달려와서 자랑하고, 지 싫증 나면 꼭 거렁뱅이 적선하듯 우리한테 던져 줬어요.”


“무슨 시녀 부리듯이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우리 식구들이 자기 눈치 보는 거 아니까 그걸 이용해서 엄청 괴롭혔죠.”


“아닌 척 하면서 교묘~히. 무시하고 깔보고, 은근히 윽박지르고. 걘 정말 악마였어.”


초련이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학여행비.”


채연과 초련이 동시에 말했다.


자매는 김서현과 함께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던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부모님은 가디건 하나를 입어도 고가 브랜드만 이용하는 그곳 학생들의 수준을 맞춰줄 형편이 못되었다.


수학여행도 그랬다. 열흘에 걸친 유럽 수학여행의 1인당 경비는 3백만원을 웃돌았다. 채연과 초련은 둘이었기에 6백만원이 넘는 금액.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학여행을 꼭 가야 하냐고 묻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부모님에게 그녀들이 먼저 가지 않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한참을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애들한테는 따로 가족여행 간다고 했죠. 쪽팔리잖아요.”


“근데 쉬는 시간에 김서현이 우리 반에 왔다가 애들이 우리 안 가는 것 때문에 아쉬워하는 걸 들은 거예요. 근데 거기서 그년이 뭐라 그랬게요?”


채연이 말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강우와 수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 수학여행비 우리 아빠가 내준다고 했어.”


채연이 서현의 말을 옮기자마자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초련. 아직도 생각하면 치 떨리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기분. 그녀들은 며칠 동안 반 아이들의 멸시 어린 목소리로 가득 찬 환청에 시달려야 했다.


돈 없어서 못 가는 거였어?

그러면서 가족여행 간다고 거짓말 한 거네.

쟤네 집 거진가 봐······.


결국 그들은 김철구 의원이 비용을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열여덟 여고생들에게 그 순간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기억인지 서현은 끝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걔는 그거 말고도 사사건건 우리가 자기 집에 얹혀사는 운전기사 딸이라는 걸 애들 앞에서 티 내지 못해서 안달이었어요. 차라리 모른 척을 하지.”


강우는 산호를 떠올렸다. 한집에 살면서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한 번도 자신을 아는 척 한 적 없었던 이종사촌. 아마 서현이 그녀들을 모른 척 했다면 또 그 나름대로의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후 서현은 대학을 졸업한 후 플로리스트로 승승장구했고, 채연과 초련 자매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한 집에 살다 보니 졸업을 한 후에도 그녀와 종종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했지만, 중소기업 신입의 월급으로는 독립하기도 애매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현은 ‘20년 지기’니 ‘절친’이니 하는 말들을 갖다 붙이며, 자주 채연과 초련 자매를 찾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그녀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하는 걸까.


결국 독립을 선언하며 경제적 지원을 부탁하는 그녀들에게 아버지 이장고는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김철구 명의의 통장에는 수 억에 달하는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김정광 의원이 우리 아빠한테 남긴 돈에다가 20년 간 김철구가 아빠 월급의 일부를 매달 떼서 입금한 통장이었죠.”


“우리 아빠 순진하게도 김철구가 그 돈을 줄 거라 믿더라고요. 이미 10년 전에 줬어야 할 돈인데 말이에요.”


당장 돈을 받아 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지금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채연 자매는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밤낮없이 일하는데도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것. 그러면서도 부모님이 김철구의 집을 끝끝내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 김철구는 돈을 볼모로 무려 20년 간이나 순진한 아버지를 잡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자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버지가 받아내지 못한다면 자신들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철구가 쥐고 있는 아버지의 돈을 빼앗아 올 방법을 고민했다. 20년 동안 틀어쥐고 있던 돈을 순순히 내어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간 채연과 초련은 아버지의 몫을 찾아올 방법을 연구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서현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 그들은 여행을 떠났다. ‘일탈’이라는 것을 해보자는 채연 자매의 제안이었다.


“좋다. 산냄새, 풀냄새, 꽃냄새 다 너무 좋아.”


서현은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르는 채 친구들과의 여행에 들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초련은 깊이 더 깊이 차를 몰았다.


“서현아, 이거 마셔.”


앞자리에 있던 채연이 서현에게 레몬 주스를 내밀었다. 마침 갈등이 났던 지라 작은 음료 한 병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빈 뚜껑을 바닥에 내려놓는데, 하늘이 타 들어갈 듯 새빨간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저거 봐. 노을 진짜 예쁘다.”


“응, 예쁘다. 예뻐야지. 근데 서현아.”


왜인지 말투가 조금 달라진 느낌. 서현이 고개를 돌리자 백미러를 통해 앞자리의 채연과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 섬뜩했다.


“너 부모님한테 어디 간다고 했어?”


그녀가 물었다. 여자 셋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걱정하실 테니 대충 둘러대자고 초련이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나 부산. 특1급 호텔 연출 때문에 출장 가야 된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해는 산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김서현 씨를 납치한 거야? 둘이서?”


이야기를 듣던 수연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철구는 20년이나 우리 돈을 볼모로 가지고 있었는데, 며칠 그 사람 딸 데리고 있는 게 뭐가 어때서?”


채연이 싸늘하게 말했다.


“돈만 받아낼 생각이었어. 어떻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뭐가 문제야?”


오히려 뻔뻔하게 되묻는 초련.


“그런데 결국 돈을 받아내지 못한 거네요.”


강우가 말했다. 귀신이 된 그들이 다시 서현을 납치하려 한다는 것은 그 날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뜻한다.


“그 날 쓰러진 김서현을 펜션 창고에 묶어 두고 우린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다시 서울에 올라가려고 했죠. 펜션으로는 다른 사람이 와 주기로 했었거든요.”


공범이 있었다는 건가. 강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그 날 밤 우리가 잠들어 있던 건물 쪽에 불이 났어요. 재수가 더럽게 없었죠. 건물은 큰데 워낙 낡아서 다 부서져 내리는 바람에 탈출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워낙 외진 곳이라 소방차가 들어올 수도 없었고,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 들고 불 끄러 왔을 때 우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김서현만 살았어요. 창고까지 불이 안 번진 덕분에.”


서현은 병원에서 깨어나 채연과 초련 소식을 듣고 실신을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후에는 자신이 창고에 묶여 있었던 것처럼 채연과 초련도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진짜 그렇게 믿는건지, 우리 죽었다고 동정하는 건지.”


못 받은 돈이 눈에 밟혀서 이승을 떠날 수가 없었던 채연 자매는 저승사자가 채 도착하기 전에 현장을 탈출했다. 우리가 귀신이 되어 버리다니. 허공에 대고 수없이 분통을 터뜨렸다. 누구에게라도 억울한 사연을 털어 놓고 싶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사고가 났다는 여자 영혼을 만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녀들의 주장대로라면, 그 영혼이 바로 이지였다.


이후 서현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어느 노인 귀신과 대화하는 수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찾았다.

귀신이 되어서도 복수할 방법.

그녀들은 똑 같은 생각을 하며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서현의 병원에 가는 대신 수연의 주위를 맴돌았다. 강우에게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수연이 너무 많은 곳을 빠르게 떠도는 바람에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고시원 방까지 따라 들어 갔었지만, 사람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밤새 그녀가 혼자 방을 지킬 뿐이었다.


결국 수연에게 직접 접촉하는 방법을 택했고, 드디어 강우를 만났다. 억울한 사연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도대체 뭐가 억울하다는 건데?”


수연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채연 자매는 이제 수연을 무시하기로 했는지, 그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강우가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만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오겠다며 사라졌다.


이상한 유언을 남긴 김정광, 그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이장고에게 돈을 내주지 않은 김철구, 자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김서현, 그녀를 납치하려다가 되려 사고를 당한 채연과 초련. 누구 하나 이해되는 사람이 없었다.


서현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 의식으로 평생을 살아 온 자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때 수연이 대뜸 말했다.


“김서현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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