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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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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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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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쌍둥이(3)

DUMMY

4일 뒤 김서현의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는 연남동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녀와 연관된 장소 중 강우가 알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수연과 강우는 채연 자매와 헤어진 후 무작정 갤러리 앞으로 왔다.


평일 오전인데다 전시 기간이 아니어서 갤러리를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서현이 이곳에 나타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나타난다고 해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인터넷에 노출된 김서현의 사진은 대부분 꽃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미지 사진이었다. 얼굴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힘들었다. 건물 앞을 오가는 젊은 여자들이 죄다 김서현처럼 보일 정도였다.


“근데 김서현을 만나면 뭐라고 하지?”


강우와 나란히 서서 건물을 마주 보고 있던 수연이 물었다. 만나보자 제안은 했지만, 별다른 방도는 없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죽었던 당신 친구들이 귀신이 되어서 나한테 그쪽을 납치해달라고 부탁을 해요.”


“······.”


“안 되겠죠?”


“신고 당하기 딱 좋겠다.”


나름 심각한 상황인데도 머리가 멍했다. 아무 말 없이 갤러리 입구만 쳐다보고 선 강우와 수연. 검은색 롱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긴 앞치마 주머니에 꽃을 한아름 꽂고 있는 장발의 남자 귀신이 그녀 곁에 있었다.


“저 귀신한테 물어볼까?”


수연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 안에서 나왔으니까 귀신이 김서현을 알 수도 있다.


여자와 귀신은 정확히 강우의 편은 편으로 걸어왔다. 여자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작은 액정에 고정된 시선과 높은 하이힐이 위태로워 보였다. 장발의 귀신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강우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다다랐을 때쯤 우뚝 발걸음을 멈추는 여자. 수연이 귀신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여자가 어디론가 황급히 전화를 건다.


“저 김서현인데요.”


그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자리를 옮기려던 강우가 동작을 멈췄다. 귀신에게 서현의 위치를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 수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바로 온실 온도 체크 좀 부탁드려요. 제가 말씀드린 온도에서 A동 1도 떨어졌고, B동은 2도나 떨어졌거든요.”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는 김서현. 초조함이 묻어나긴 했지만 정중한 말투였다.


“저기요?”


서현이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 수연이 장발의 귀신에게 말을 걸었다.


“이 여자가 김서현이에요? 혹시 플로리스트?”


장발의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역시 플로리스트라며 앞치마에 꽂혀 있는 꽃들을 가리켰다. 수연이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예쁘다며 웃었다.


“근데 아저씨는 누구예요? 이 여자 잘 알아요?”


아저씨라는 호칭이 거슬렸는지, 장발 귀신이 수연을 흘겨보았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꽃들을 잔뜩 보고 싶어서 김서현의 곁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연이 귀신과 몇 마디 더 주고받는 동안, 강우는 서현에게서 조금 떨어져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통화를 시작할 때쯤 건물에서 나왔던 남자가 어느 새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전시 기간 동안 완벽하게 사용하려면 관리가 정말 중요해요. 수입해온 꽃들이라 상하기라도 하면 날짜 맞춰서 다시 들여오기가 힘들거든요. 정말 죄송한데,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부탁드릴······.”


남자가 서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돌아보자 핸드폰을 달라며 손짓하는 남자. 빼앗다시피 들고 있던 전화를 받아 든다.


“저 기획총괄 우규혼데요. 꽃 컨디션 떨어지기만 해요. 그쪽에다 책임 묻고 반드시 배상 청구 할 겁니다.”


부드럽게 부탁하던 서현과는 반대로 남자는 거의 협박하듯 윽박지르다 전화를 끊었다.


“왜 화를 내요.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그 분들도 열심히 하고 계신데.”


서현이 싫지 않는 눈빛으로 규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일이기도 하고, 내 일이기도 하니까.”


방금 전 거친 목소리로 통화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규호. 두 사람은 척 보기에도 연인 사이 같았다. 다정하게 갤러리 앞 카페로 들어가는 서현과 규호. 장발의 귀신도 흐뭇하게 웃으며 서현을 따라갔다.


“남자친구래.”


수연은 짧은 시간 동안 장발 귀신과 꽤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일주일 후 소멸을 앞두고 있었다. 190일 이상 꽃과 함께 이승을 떠돈 것이다. 그는 소멸 전에 김서현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만으로도, 200일간 이승을 떠돈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서현의 전시는 4일 뒤. 약 2주간 진행되며, 문화기획사 대표이자 그녀의 남자친구 우규호가 기획 총괄을 맡았다.


“같이 일하다 보니 남자친구가 내내 저렇게 붙어 있대. 그런데 무슨 수로 저 여잘 납치하겠어?”


수연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자친구가 계속 그녀의 곁에 붙어 있으면, 채연 자매가 납치를 종용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내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그런 걱정 해 달라고 안 했는데?”


채연 자매가 어느새 그곳에 와 있었다. 수연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우규호의 약점을 우리가 쥐고 있거든.”


초련이 우규호 따위는 애초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비릿한 웃음이 찬 바람이 되어 목덜미를 오소소 파고드는 것 같았다. 소름이 쫙 끼쳐왔다.


“약점이라니? 그건 또 뭔데?”


“김서현은 모르는데, 쟤 우리랑 고등학교 동창이야. 완전 찐따였지. 근데 2년 전에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우리랑 딱 마주친 거야.”


“살도 많이 빼고 몸집도 좀 커졌더라고. 아, 이름도 바꿨다. 암튼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는데, 지가 먼저 우리한테 아는 척을 하더라고.”


“그 이후엔 우리가 저 찐따가 김서현이랑 사귈 수 있도록 도와줬지. 김서현 이상형, 좋아할 만한 거, 자주 가는 곳······.”


채연과 초련이 번갈아 가며 우규호와 자신들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약점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강우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채연이 말했다.


“그리고 신분 세탁을 도와 줬지.”


“쟤 아빠가 전과 11범 사기꾼이거든. 그 사실을 알면 김철구가 자기 딸이랑 사귀게 가만 냅두겠어?”


“백강우 씨가 우규호한테 가서 ‘우경태’라는 이름만 얘기하면 돼요. 전과 11범 쟤네 아빠 이름이죠.”


그녀들의 계획이라는 건 고작 우규호를 협박해 김서현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든 후 그녀를 납치하라는 것이었다. 강우는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고, 수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지 입술만 씹어 댔다.


D-day는 전시회 바로 전날인 3일 후.


“그 때 어떻게든 백강우 씨가 김서현을 집에 데려다 주는 거예요. 물론 우규호의 도움을 받아야겠죠.”


강우는 동조하는 척 채연 자매를 설득해 보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채연과 초련은 이미 서현과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외 다른 감정은 불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자매의 계획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김서현을 좋아해서 신분 세탁까지 하며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 우규호가 단지 아버지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이 겁나서 납치 계획을 도와준다? 납치한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데, 자매는 이상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 때 우규호와 김서현이 나란히 카페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우규호한테 말을 걸어요. ‘형’이라는 호칭 정도가 좋겠네요, 성재 형. 우규호가 개명하기 전 이름이죠. 우성재.”


“성재 형, 오랜만이야. 나 알바 자리 준다고 오라고 했잖아. 김서현 앞에서는 이 정도의 대화만 하는 거예요. 옛날 이름을 들은 우규호는 당황해서 그녀가 없는 곳으로 백강우 씨를 데려가겠죠.”


“그 이후에는 우리가 옆에 있을 게요. 얘기해주는 대로 듣고 우규호한테 말하면 돼요.”


규호와 서현이 점점 강우가 있는 곳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채연은 얼른 움직이라는 듯 강우에게 눈짓했다.


강우는 사실 조금 전부터 자매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그가 느낀 이상한 기분을 놓지 않고 붙잡았다. 그리고 채연 자매가 우규호의 진짜 약점을 숨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혹시······.


“이것들이 진짜. 강우가 무슨 너네 아바타야?”


그 때 자매의 검은 계획을 듣고만 있던 수연이 폭발했다. 그러나 채연 자매는 쩌렁쩌렁 울리는 수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양 눈빛으로 강우를 재촉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저런 것들 말 듣지 마. 이지는 내가 좀 더, 어떻게든······.”


수연이 돌아가자는 말을 하기 위해 강우 옆에 바짝 붙었다. 그런데 강우가 그녀의 말을 끊고, 채연 자매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들 나한테 부탁하는 거 아닌가요?”


수연은 강우에게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서늘하리만치 딱딱한 목소리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강우의 입에서 예상 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채연 자매도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강우는 분노를 터뜨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억누르며 말하려는 노력이 그의 말투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었다.


채연 자매가 서현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해도, 서현의 아버지가 자매의 아버지에게 어떤 잘못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김서현에게 한 짓이 합리화되진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강우를 이용해 또 다시 그녀에게 해를 가하려 드는 채연과 초련. 거기다 우규호의 정체까지 추측해낸 강우는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이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아쉽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정도는 아니에요. 당신들이 이지를 봤다면, 그 애를 본 또 다른 누군가도 있겠죠.”


강우의 말을 들은 수연이 빙긋 웃었다. 그녀가 강우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돕지 않겠다는 건가요?”


“선택권은 나한테 있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는 거고요.”


확실하게 발을 빼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뉘앙스의 말. 강우의 그런 태도가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지에 대한 정보를 볼모로 ‘절대 갑’처럼 굴던 채연 자매의 어조가 묘하게 달라진 것이다.


작가의말

추천과 선작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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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모델(1) 19.02.12 379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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