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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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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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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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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5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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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쌍둥이(4)

DUMMY

“직접 납치에 얽히는 게 꺼림칙하다면, 백강우 씨는 돈만 받아줘도 좋아요.”


강우를 아랫사람 대하듯 명령조로 일관하던 채연 자매가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한테 공범이 있다는 거 기억하죠? 그 사람이 조만간 김서현을 다시 납치할 거예요. 근데 나랑 초련이가 죽고 없으니, 처음 약속했던 우리 몫을 자기가 꿀꺽하겠죠. 백강우 씨가 그 사람한테 돈을 받아서 부모님께 전해 주세요. 그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다른 말 못하도록 납치부터 같이 해주는 게 사실 제일 좋겠지만······. 그게 정 내키지 않는다면 돈만 받아서 전해줘도 우리가 만난 그 여자, 당신 친구의 정보를 드리죠.”


채연과 초련이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돈이었다. 아버지의 돈을 찾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억울함을 풀고 싶었다.


“공범이 도대체 누군..”


“우규호 씨죠?”


수연과 강우가 채연 자매를 향해 동시에 말했다. 강우의 입에서 ‘우규호’라는 이름이 나오자 수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채연 자매를 쳐다보는 수연.


“혹시라도 쓸데없는 정의감으로 김서현에게 우규호 정체를 얘기하는 건 아니겠죠?”


우규호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자, 수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조금 전에 보았던 우규호의 부드러운 눈빛이 떠올랐다. 서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시선 속에 이토록 비열한 반전이 숨어 있을 줄이야.


“말한다고 해도 김서현 씨는 제가 아니라 남자친구를 믿겠죠. 증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규호 씨는요?”


우규호가 강우를 순순히 도와줄 이유가 없지않냐는 물음이었다. 채연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증거가 없진 않아요. 그 증거가 우규호를 움직일 거고요.”


“증거가 있다는 말인가요?”


“전화 내용을 녹음해 놓은 파일이 있어요. 화제 현장에서 핸드폰은 망가졌지만, 백업해놓은 게 있죠. 그걸 언급하면 우규호가 돈을 혼자 먹으려 들진 못할 거예요.”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납치를 모의하는 내용이 담긴 우규호의 음성 파일은 채연 자매가 죽어서도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증거가 되어줄 터였다. 강우가 그것을 들고 나타난다면, 우규호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알겠습니다. 조금 더 고민해보죠.”


“아니, 지금 당장 우규호한테 가서..”


초련이 답답해하며 소리치다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강우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한 번만 더 나에게 명령한다면, 고민조차 하지 않겠노라 말하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간 눈빛이었다.


“좋아요. 어차피 며칠 시간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확답을 줘야 할 거예요. 우규호한테 접근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가진 정보를 하찮게 생각한다면, 백강우 씨 후회할 거예요. 2주 이상 헤매고 다녀도 찾지 못한 정보를 찾는 게 그리 쉬울까요? 더군다나 곧 소멸이라는데.”


초련이 수연 쪽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일 다시 뵙죠.”


강우가 초련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뒤돌아서 갤러리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수연이 말없이 그를 따라 걸었고, 채연 자매는 분한 표정으로 강우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우야.”


채연과 초련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자 수연이 입을 열었다


“네.”


강우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너 좀 달라진 것 같아. 그러고 보니까 모자도 안 썼네?”


죽었다가 살아난 후 그의 시간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귀신들과 얽히며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 동안, 남들 앞에 나서거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일이 많았다.


지난 2주간 겪은 모든 순간이 사고 이전의 삶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역시 그랬다.


그런 삶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강우에게 시나브로 변화가 찾아오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지랖이 좀 넓어졌나 봐요. 몰라도 될 일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요. 그리고 모자는······.”


강우가 변명하듯 말을 쏟아내자 수연이 싱긋 웃었다.


“좋다고, 그래서.”


강우도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살짝 웃었다. 맞은 편에 걸어오던 외국인이 혼잣말을 쏟아내는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김서현을 위해서 오지랖 한 번 부려 볼 작정이지?”


채연 자매에게는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강우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강우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감 넘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다치게 될 범죄가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마냥 모르는 척하긴 힘들었다.


이미 얽혀버린 이상 힘닿는 데까진 김서현을 도와주자. 강우는 그렇게 정리했다. 고민해보겠다고 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강우는 멈춰 있던 버스 한 대에 급하게 올라탔다.


“이거 학교로 가는 버스 아닌데?”


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는 대답 대신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 수업 결석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약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파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축제 현장 특유의 달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파주도서페스티벌’이라는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강우는 각종 푸드트럭과 행사 부스를 지나, 가장 큰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여기서 해야 할 수업 과제라도 있는 거야?”


수연은 버스에 사람이 많은 데다 강우의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통에 이곳에 온 이유를 듣지 못했다.


“김철구가 올 거예요.”


강우가 걷는 속도를 높이며 말했다. 행사장에는 잠시 후 축제 개회식이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철구라면······. 김서현 아빠? 그 국회의원?”


수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김철구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강우는 김서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갤러리 건물 앞으로 찾아가면서, 김철구를 만날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원흉이 김철구였기 때문이다. 김철구가 이제라도 부친의 유언에 따르기만 한다면, 채연 자매가 굳이 서현을 납치할 이유가 없었다.


서현의 남자친구 우규호가 독단적으로 납치극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채연 자매만 마음을 돌려주면 그를 막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잠시 후 제28회 파주도서페스티벌 개회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내빈 및 관람객 여러분은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출판단지 내 복합문화공간에 들어서자, 개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다시 한 번 흘러나왔다. 강우는 서둘러 행사장으로 들어와 곧장 무대 앞쪽으로 걸어갔다. 파주시 홈페이지에서 본 도서페스티벌 개회식순에는 분명 김철구의 축사가 있었다. 그가 참석한다는 뜻이었다.


“강우야, 여기!”


수연이 무대를 마주 보고 있는 원형 테이블 앞에서 소리쳤다. VIP 테이블 위에 놓인 ‘김철구’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 자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남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행사장 우측에 서 있던 강우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수연도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려 보이며, 테이블 근처로 갈 수 없는 강우를 대신해 그곳을 지켰다.


강우가 이번 행사에서 김철구와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가 찾고 있는 건 귀신이었다. 제발 한 명만 있어라. 강우는 긴장된 얼굴로 김철구가 입장하길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대여섯 명의 VIP들이 한꺼번에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세 명의 영혼이 그들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이내 강우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VIP 테이블에 착석한 김철구 곁에 어떤 영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주까지 달려온 보람이 없었다.


무대 위로 등장한 사회자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강우는 아쉬운 마음에 행사장을 눈으로 훑어 보았다. 이백여 명의 군중 가운데 얼핏 봐도 열 명이 넘는 귀신이 함께하고 있었다.


“휴우.”


귀신이 붙어 있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모르고 온 건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VIP 테이블을 향했다.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김철구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곁에 검은색 치마를 입은 여자 귀신이 보였다. 강우가 서둘러 행사장을 두리번거렸다.


“나 찾아?”


어느새 강우에게 바짝 다가온 수연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저 여자 귀신 보이세요? 김철구한테 방금 음료수 갖다 주고 간 젊은 남자 옆에 있는 귀신이요.”


강우가 속삭였다. 다행히 애국가가 막 흘러나오기 시작했던지라 그의 목소리가 튀지 않았다.


“저 남자는 김철구 수행비서. 그리고 저 여자 귀신은 두 달 전에 죽은 저 남자 전 여자친구.”


수연이 이미 다 알아 왔다며 싱긋 웃었다.


“와, 누나 빠르네요.”


강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수연이 이미 그녀에게 접근해 필요한 정보를 빼 온 것이다. 김철구가 행사장에 입장하기 전부터 수행비서는 VIP 테이블 근처에 나와 있었고, 수연이 우연히 그의 옆에 있던 귀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김철구는 축사 끝나는 대로 국회 들어가 봐야 한대.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건 힘들 거야.”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곳에서 김철구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저 여자 말로는, 김철구가 일주일에 3일은 아침 일찍 등산을 한대. 자기 남자친구가 초반에 좀 친해지려고 따라붙었다가 포기했다고 하더라고. 시간이 너무 이르고 동네 뒷산인데도 꽤 험해서.”


강우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가 딱 원하던 정보였다. 도대체 수연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만난 귀신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멋있지?”


수연이 뽐내듯 말했다. 강우가 웃으며 엄지를 올렸다.



***


새벽 4시 20분. 확실히 산을 오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강우는 30분 전 택시를 타고 기광산 입구에 도착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무리 입산 제한 시간이 없는 산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너무 캄캄했다.


“4시 30분부터 산 오르는 거 진짜 맞죠?”


강우가 깊은 산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스산한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수연에게 말을 걸었다.


“응.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동트는 거 보는 게 김철구 취미랬어. 특히 이 산 중턱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라고 자주 온다는데, 오늘은 꼭 올 거라고 했어.”


“그런 것까지 수행비서한테 말하는구나.”


“친구랑 일출 보고 막걸리 마시겠다고 밤까지 일정 없는 거 확인했다고 하더라고.”


친구와 함께 온다는 말에 강우가 눈썹을 찡그렸다. 기회를 봐서 김철구에게 말을 걸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누가 같이 있으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그때 기광산 입구로 올라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강우가 몸을 숨긴 곳 바로 앞쪽에 멈춰 섰다. 운전석과 보조석에서 중년의 남자 두 명이 내렸다.


“어? 뭐야, 저건.”


그때 수연이 몸을 잔뜩 웅크린 강우 옆에 슬그머니 앉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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