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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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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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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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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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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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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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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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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쌍둥이(5)

DUMMY

운전석에서 내린 쪽이 김철구였다. 등산을 함께할 친구를 태우고 직접 운전해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들 곁에 두 명의 검은 영혼이 함께 있었다.


너무 어두운 데다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았던지라 처음에 강우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 역시 미처 수연과 강우를 발견하지 못하고 김철구와 그의 친구를 따라 산을 올랐다. 스산한 검은 빛이 감싸고 있는 두 영혼은 채연과 초련이었다.


“역시 산은 새벽에 오르는 게 최고야. 시커먼 어둠 속에서 느끼는 차갑고 깨끗한 공기, 이게 참 좋거든. 그렇지 않나?”


김철구가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며 말했다. 고요한 산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몸을 숨긴 채 그들을 따르고 있는 강우에게까지 또렷하게 전해졌다.


“저야 의원님 따라 몇 번 와 본 게 전부지만, 올 때마다 머리는 참 맑아집니다.”


김철구와 함께 온 남자도 들고 있던 손전등을 켰다. 그들 주변이 환해지면서 함께 있던 채연 자매의 모습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남자의 곁에 있던 채연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김철구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남자가 바로 자매의 아버지 이장고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같이 오자고 한 거 아니겠나.”


“네. 애들 사고 이후에 이리저리 챙겨주시는 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고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강우는 자신의 발소리가 들릴까 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떡할 거야? 저 애들이 저렇게 붙어 있는데, 김철구한테 말을 걸 수 있을까?”


김철구 일행과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자 수연이 말했다. 채연 자매와 마주친 건 강우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김철구와 이장고가 등산을 함께할 정도로 가까워 보인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물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는 있다. 김철구가 가자고 하는 것을 그의 운전기사인 이장고가 거절하는 것이 쉽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김철구가 직접 운전까지 하며 모시듯 이장고를 데려왔다? 이상하긴 했다.


“그냥 부딪쳐 봐야겠어요.”


“원래 계획대로?”


“네. 어차피 김철구한테 부친의 유언장에 적힌 돈 주십사 만나려는 거였으니까요. 이장고나 그 딸들이 보는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음······.”


수연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강우도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십수 년을 주지 않고 버틴 돈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강우가 죽은 자매를 들먹인다 해서 김철구가 순순히 돈을 내놓을 확률은 0%에 가깝다. 거기다 채연과 초련이 보는 앞에서 김철구가 뻔뻔한 말을 쏟아 내기라도 한다면, 그녀들의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다. 수연은 너무나 뻔하게 그려지는 그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고, 이렇다 할 방법도 없다. 강우는 조용히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뒤따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검푸른 새벽하늘에 선홍색 빛이 조금씩 섞여들기 시작했다.


“이 기사.”


김철구가 낮은 목소리로 이장고를 불렀다.


“네, 의원님.”


“우리 서현이가 밉지?”


“······.”


이장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 있는 채연과 초련이 김철구를 노려보았다.


“미울 거야. 여행은 같이 가 놓고 혼자 살아 돌아왔으니.”


“······ 서현이 잘못이 아닌 거 압니다.”


이장고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 대답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한테도 서운했을 거야. 한 식구처럼 지내던 자네 딸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난 내 딸만 챙겼으니까. 그 애가 아무렇지 않은 척 독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거든. 그래서 막상 더 큰 상처를 입은 자네를 챙기지 못했어.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 불쌍한 애들한테 미안해할 사람은 의원님이 아니라 저지요. 아비가 변변하질 못해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그 예쁜 나이에 가버렸으니 얼마나 억울할지..”


이장고가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제 남은 자네랑 제수씨가 편히 지내다 올라가는 게, 그 애들 맘 편하게 해주는 일 아니겠나.”


“자식 앞세운 부모가 그럴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런 말 하지 말고 인제 그만 그 돈도 찾아가야지. 아니, 내 진작에 억지로라도 줬어야 했는데.”


등산로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우와 수연이 눈을 마주쳤다. ‘그 돈’이라고? 채연과 초련 자매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이장고가 돈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의원님.”


“말하게.”


“제가 이렇게라도 사람 구실하면서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의원님 덕분입니다.”


이장고가 김철구를 향해 갑작스레 허리를 숙였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와 수연, 채연과 초련 모두 당혹스러웠다.


“아빠, 지금 뭐하는 거야!”


이장고가 김철구에게 허리를 숙이는 순간 초련은 욱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이고, 이러지 말게. 자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당황한 건 김철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김철구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핸드폰이 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황급히 등산복 지퍼를 열고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이장고가 천천히 허리를 펴고 김철구를 바라보았다.


“어, 권비서구만.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뭐? 확실해?”


급한 전화가 걸려온 듯 김철구의 목소리가 돌변했다. 이장고가 편하게 전화를 받으라는 손짓을 하자 김철구는 몸을 돌려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장고는 이내 조금씩 스며들 듯 산의 어둠에 섞여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김철구는 통화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채연과 초련 자매가 이장고의 뒤를 따랐다. 김철구의 통화가 길어질 것 같자 혼자 바람이라도 쐬려는 것 같았다.


강우는 김철구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가 혼자 남게 된 지금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혼란스러웠다. 산을 오르며 지켜 본 김철구와 이장고의 관계가 강우가 상상하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근데 저 두 사람, 생각보다 친해 보이지?”


수연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그게 이상해요.”


채연 자매에게 들었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거의 원수처럼 지내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오히려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래, 날 밝는 대로 김의원이랑 최의원, 박의원 해서 자리 바로 마련하는 게 좋겠네.”


김철구가 통화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강우는 슬슬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악!”


산속에서 어둠을 찢는 비명이 들려왔다. 조금 전 이장고가 사라진 방향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김철구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바위 위에 앉았다.


울음이 섞인 비명은 점점 커졌다.


“그 애들 목소리야.”


수연이 말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들은 채연과 초련이었다. 그래서 김철구가 듣지 못하는 것이다.


몸을 일으킨 강우가 뚜벅뚜벅 김철구 앞으로 걸어 왔다. 그가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강우는 김철구를 지나쳐 이장고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긴 했지만, 산 속은 아직도 꽤 어두웠다. 그러나 자매의 비명 덕분에 강우는 어렵지 않게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장고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가파른 절벽은 아니었지만, 아래는 낙상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큰 바위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다.


“아빠,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채연과 초련이 울먹이며 이장고가 선 바위 양쪽에 서 있었다. 그는 조금씩 허공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죽은 자매를 생각하며 이승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딸들이 옆에서 울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저씨, 그만하세요.”


한걸음만 더 떼면 바위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찰나. 강우가 몸을 날려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팔에 힘을 주어 그의 몸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강우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 위에 나뒹굴었고, 그의 몸 위로 이장고가 떨어졌다. 이장고가 몸에 힘을 빼고 있던 상태라 위험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자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장고를 찾기 위해 나섰던 김철구가 그 상황을 목격하고, 그들에게로 뛰어들었다.


“아빠, 으흐흑······.”


긴박한 상황을 넘긴 채연 자매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장고를 구해낸 사람이 강우라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김철구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이장고의 손을 부여잡았다.


“으윽.”


강우가 허리를 짚으며 김철구의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많이 아플 것 같은데. 얼른 치료 받아야 하지 않아?”


이장고를 몸으로 받아낸 강우의 허리에 관심을 줄만한 여유가 있는 이는 그 자리에 수연 밖에 없었다. 강우가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 손짓하고, 그들에게서 조금 더 떨어졌다. 김철구와 이장고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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