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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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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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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형제(3)

DUMMY

강우는 남자를 질질 끌다시피 들쳐 엎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대충 문만 닫을 수 있게 밀어 넣고 갈 생각이었는데, 자매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집 안에 있는 서태군이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소멸도 아닌데, 귀신이 어떻게 이러죠?”


자매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그 방 안에 서태군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우는 거실 한쪽에서 잠든 남자를 한 번 쳐다본 후 심호흡을 했다. 남의 집 방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긴장이 되어서 몸이 굳었다.


“길에서 얼어 죽을 뻔한 거 구해줬잖아요. 셀프 보상받는 거라 생각해요.”


“맞아요. 나쁜 짓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채연과 초련이 한 마디씩 했다. 강우가 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 역시 그냥 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귀신들이랑 다니다 보니 귀신 같은 일만 일어나는 건지, 운 좋게 서태군의 집에 들어와 놓고 그를 만나지도 않고 돌아갈 순 없었다.


“서태군.. 선생님?”


방문을 열자 침대 옆에 쓰러져 있는 서태군의 영혼이 보였다. 강우가 불렀지만, 자매의 말대로 그는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우린 아무 짓도 안 했어. 와보니까 이 상태였어.”


채연이 제 발 저린 표정으로 말했다.


“귀신 되어서라도 남한테 필요한 일 좀 해보려는데, 별일이 다 생겨.”


초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골치 아프다는 듯 서태군과 강우를 번갈아 보고 있는 채연과 달리 그녀는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아, 이거 혹시?”


강우는 일주일 전 우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영혼이 이승의 물건을 건드리면, 며칠간 의식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 게 가능해?”


초련이 그간 몰랐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더욱 구겼다.


“그렇단 말이지?”


채연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자매의 눈빛을 확인한 짧은 순간, 강우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녀들이 여태 이 사실을 몰랐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나저나 서태군은 어쩐다. 뜻밖에 마주친 상황은 또다시 좌절이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이지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다. 강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우울해 하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초련이 태어나서 위로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삐딱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서태군은 조만간 깨어날 것이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늦어도 일주일이면 정신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어떻게 정확히 안 단 말인가.


“매일 와볼 수도 없는 거고······.”


강우가 그렇게 말하며 자매를 쳐다보았다. 서태군의 집안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그녀들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린 초련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매일 와서 확인해주는 거 어렵지 않죠. 하지만 그보다 그쪽이 직접 드나들면 어때요?”


“야아, 왜 그래?”


초련의 말에 어색하게 강우의 눈치를 보는 채연. 그녀는 강우에게 기왕 보답하는 거 확실하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 아닌가. 게다가 일주일 정도 매일 드나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초련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으니까.”


실은 초련도 채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움을 받은 만큼, 확실하게 돌려주자. 그녀는 강우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제대로 도와줄 작정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그건 죽어서도 마찬가지죠. 이쪽에서 간절하게 찾는 것을 저쪽에서 쥐고 있는데, 그게 절대로 쉽게 구할 수 없는 거라면? 저쪽에선 그걸 순순히 내놓는 게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자기한텐 전혀 필요 없는 거라고 해도.”


“이지 이야기를 해주는 대신, 아저씨가 뭔가를 요구할 거란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죠. 저라면 그럴 것 같거든요.”


이미 그랬거든요······. 강우가 초련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튼, 그녀의 말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게 순리다. 더군다나 자신은 귀신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자매가 그랬던 것처럼, 서태군도 정보를 내주는 대신 무언가를 요구하리라는 예상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럴 수 있지. 근데 그게 지금 다 무슨 소용이야? 이 아저씨가 이러고 있는데.”


강우가 하고 싶은 말을 채연이 대신했다. 그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태군이 정신을 차린 다음 일일 것이다.


“아니지. 이 아저씨가 뭘 원하는지는 우리가 이미 들었잖아?”


초련이 한쪽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


운만 좀 따라 준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지.


고시원에 돌아온 강우는 초련이 의미심장하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서태군의 가족이 사는 지역의 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대학생 멘토 추가 모집’이라는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모집이 끝났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첫 번째 운이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초련이 발 바르게 생각해낸 묘안은 바로 강우가 서태군의 둘째 아들 서이찬의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자매가 서태군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이찬이 아직 집 안에 있었다. 그는 등교 준비를 하다 말고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다. 가방을 챙기다 급하게 앉았는지, 책가방이 활짝 열린 채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방문을 연 자매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이찬 보다 정신을 잃은 서태군을 먼저 발견했다. 잠시 당황하던 그녀들은 이내 각기 다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채연은 서태군을 깨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손을 쓰러진 그의 몸에 통과시켜 보기도 했다. 반면 초련은 서태군이 정신을 잃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예리한 눈초리로 방 안을 훑었다. 이 상태가 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된 거야 도대체?”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초련이 짜증을 냈다. 그때 그녀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아이의 중얼거림.


“그러게. 빨리 오지 그랬어.”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초련이 휙 몸을 돌렸다. 방 안에 영혼이라고는 자신과 언니 채연, 서태군 밖에 없었다. 서태군은 말은커녕 눈도 못 뜬 채 쓰러져 있었고, 채연은 그를 깨우느라 정신이 팔려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도대체 누가? 초련이 책상에 앉은 꼬마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 안에 셋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은 몇 분 전에 발견했다. 그런데 이 애가 내 말에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초련이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강우처럼 우리를 볼 수 있는 거야?’


초련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꼬마의 눈앞에 희뜩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찬에게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녀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초련이 얼굴을 치우려는데, 꼬마가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어젯밤에 쓰고 잤어야지.”


초련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가 들은 건 서이찬의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선생님이 오늘은 꼭 내라고 했잖아. 또 혼날 거야?”


마치 누군가가 꾸짖듯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이찬.


“괜찮아, 이찬아. 화 내는 거 아니야. 빨리 쓰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건,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돼.”


“혼자서도 잘 쓸 수 있어. 이런 건 원래 혼자 쓰는 거야.”


채연이 결국 서태군을 포기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혼잣말을 해대는 꼬마. 그러다 벌떡 일어나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금 전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놓은 종이를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서.


이찬이 작성한 건 멘토링 신청서였다. 대학생과 지역 내 초, 중학교를 연계한 구청 사업 중 하나였다. 초련은 이찬이 벌떡 일어나기 전까지 그가 작성한 신청서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이찬의 혼잣말과는 달리 원래는 부모님이 써주는 것인 듯 문항이 꽤 상세했다.


특별히 보완하고 싶은 과목, 멘토링 시간에 지도해 주길 바라는 활동, 멘토 성별, 바라는 멘토 성향까지? 될 수 있는 한 아이와 멘토의 성향을 맞춰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신청서였다.


그런 후 강우에게서 서태군이 일주일 안에 깨어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초련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강우는 초련에게서 들었던 이찬의 신청서를 토대로 구청 홈페이지에서 대학생 멘토를 신청했다. 멘토 역시 원하는 학년과 자신 있는 과목, 성격 등을 상세하게 입력할 수 있었다. 이찬의 학년, 지도받길 원했던 과목, 원하는 멘토 성향 등 이찬의 신청서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었다. 그를 두고 이찬에게 다른 멘토를 매칭시키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 될 수준으로.


다음 날 구청에서 바로 전화가 왔다. 원래는 모집 기간과 발표일이 정해져 있었지만, 강우는 수시로 진행되는 추가 모집에 지원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담당자는 같은 날 추가로 신청이 들어온 멘티 아이와 신기하게 딱 맞는다며, 전화선 너머로 호탕하게 웃었다. 강우는 모른 척 침착하게 전화를 끊었다.


멘티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구청에서 멘토링 사업 담당자를 찾아낸 채연이 확인하고 알려준 덕분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전화를 끊고 그 말을 떠올린 강우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강우와 매칭된 멘토는 예상대로 이찬이었다.


멘토링은 월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우선 학교로 가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첫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이제 주말 사이에 서태군이 깨어나 주기만 하면 완벽하다. 그의 부탁은 아마도 아들들에 관한 것일 터. 이찬과의 접점이 생긴 강우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초련 말대로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채연 자매는 강우가 서태군의 집에 드나들 수 있게 될 때까지 지키겠다며 아예 이찬의 방에 눌러 앉았다. 덕분에 강우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오후엔 오마주 모임이 있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날 강우는 식당 사장님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는 의사를 전했다. 학교생활과 이지를 찾는 일, 동아리 활동에 이찬의 멘토 일까지 하면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웹툰 작가 차누, 이찬우 덕분이었다. 급조된 계약서를 쓰고 스토리를 가져갔던 그가 강우에게 정말로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통장에 입금된 금액은 강우의 생각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강우 덕분에 웹툰 완결은 물론 영화 판권 문제까지 해결된 이찬우가 통 크게 쏜 것이다.


남의 이야기로 이득을 본다는 것이 찝찝하긴 했지만, 막상 목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을 확인했을 땐 묘하게도 든든했다. 게다가 스토리의 진짜 주인인 이찬오가 강우에게 진 신세를 동생이 갚아 주어 다행이라며, 흔쾌히 쓰라고 했던 돈이었다.


“그 형제 말이야. 둘 다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일요일 저녁, 채연 자매가 고시원에 찾아와 서태군이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며칠간 집 안에서 지켜본 형제는 생각보다 문제가 많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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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형제(4) 19.03.17 173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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