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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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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그린
작품등록일 :
2019.02.01 11:41
최근연재일 :
2019.04.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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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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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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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형제(6)

DUMMY

응급실 입구에서 강우는 갈 곳 잃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형.”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 강우는 얼른 몸을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진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서 환자를 여기까지 내려오게 만들어. 나 입원실로 올라왔어.”


재활을 하며 연기 트레이닝을 받는다더니 그는 제법 능숙하게 대사를 내뱉었다.


“아, 응급실에 있는 줄 알았지. 너 괜찮은 거야?”


강우 역시 자연스럽게 대사를 읊자, 채연 자매가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귀신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다닌 덕에 이 정도 연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돌려 서준우를 발견한 척하면 된다.


이들이 연기를 하는 곳은 서준우가 누워 있는 응급실 침대 바로 앞이었다. 우진이 입원한 병원이기도 했다. 강우가 우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혼자 응급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준우만 만나고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저기, 저기요.”


강우가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뜻밖에 서준우가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강우는 기껏 연기를 잘해 놓고도 거짓말을 들킨 사람처럼 삽시간에 귀가 빨개졌다. 이찬과 함께 집에 들어갔을 때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서준우가 먼저 아는 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 이찬이 형님 분 아니세요?”


귀가 시뻘게진 채로 대사는 곧잘 내뱉는 강우. 강우가 당황한 것을 눈치챈 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는 한 시간 전 강우가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일 때 강우의 도움을 받은 까닭도 있었지만, 깨어난 후의 일상이 무료하던 차였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귀신을 도와주는 강우를 자신이 도와주는 상황이 꽤 재미있었다.


“어디 아프세요?”


강우가 서준우에게 다가가서 모른 척 물었다. 잠시 머뭇대던 서준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오늘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병원에.. 계시려고요?”


“아뇨. 몸은 다 나았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서준우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환자였다.


“저녁에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빼기 힘든 거고요. 아무래도 병원에서 바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동생 저녁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요. 정말 죄송하지만······.”


서준우가 다시 한 번 말을 멈췄다. 염치가 없어서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어디 많이 안 좋으세요?”


강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다며 소매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는 서준우.


“매일 같이 술을 퍼부어 대니 몸이 견딜 수가 있나.”


쯧쯧쯧. 지켜보던 채연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혀를 찼다.


“이 몸을 하시고서 아르바이트에 가려고요? 안 될 것 같은데.”


강우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말했다. 병원에서의 만남이 우연을 가장하여 그에게 접근할 기회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서준우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런 마음은 쏙 들어갔다. 이찬을 친아버지에게 보내지 말라고 설득하기 전에, 서준우를 살리는 일이 더 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짜 빼기 힘들어서 그래요. 부탁할게요. 애를 굶게 할 순 없어서요.”


서준우가 묵직한 눈빛으로 강우를 쳐다보았다. 이찬에게는 말 한마디 걸지 않을 정도로 냉랭하더니······. 강우는 도통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바 가면 또 술 먹을 텐데.”


초련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강우는 저녁에 형제의 집에 들러 이찬의 저녁을 챙겨 주겠노라 약속하고, 적당한 핑계를 대며 그의 핸드폰번호를 받았다. 저녁때까지라도 병원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일단은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는 서준우를 만류하며 강우는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형, 나도 꼬마 만나러 같이 가면 안 돼?”


우진이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물었다. 재활과 연기 트레이닝만 반복하다 보니 일상이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강우는 그의 목발을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멘토링 일정이 아니므로 우진과 함께 가도 안 될 건 없었지만, 그가 재활 중이라는 사실이 걸렸다.


“내가 살다 보니까 알게 된 건데,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좋아해. 물론, 애들도. 걔가 말을 안 한다고 했지?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이 될지. 나랑 얘기하다 보면 그 꼬맹이의 진심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우진이 그렇게 말하고는 강우의 승낙을 얻기 위해 자기 딴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딱히 안 될 건 없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채연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우진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귀신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었다.


강우는 대신 다리에 절대 무리 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이찬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우진은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목발을 짚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있잖아. 궁금하지 않아요?”


채연과 달리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초련이 뜬금없이 물었다.


“뭐가?”


“뭐가요?”


채연과 강우가 동시에 답했다. 초련의 한쪽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저 둘의 마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처음엔 서로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보다 보니까 좀 묘하잖아. 저 형제.”


확실히 그랬다. 서준우와 서이찬은 앞에서는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찬은 의도적으로 서준우를 피했다. 서준우 역시 어린 이찬을 혼자 두고 밤마다 집을 비웠으며, 그를 친아버지에게 보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봐선 서로에게 그다지 애정이 없는 형제였다.


그런데 곁에서 보면 그게 아니다. 이찬은 형을 피하는 듯하면서도 그가 차린 따뜻한 밥상을 기다렸고, 준우는 동생에게 무심한 듯하면서도 누구보다 이찬을 걱정했다. 확실히 묘하다.


“그래서요?”


강우가 묻자 다시 한 번 씩 웃는 초련.


“이찬이는 자기 형이 죽는다고 해도, 형을 보려고 하지 않을까요?”


“네?”


“서준우는? 동생이 위험하다고 해도 무시하고 아르바이트에 가버릴까요?”


강우는 황당해서 뭐라 대꾸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나올 때부터 침묵하더니, 머릿속에서 말도 안 되는 계략을 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매가 김서현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일을 꾸몄을 때, 브레인이 주로 누구였는지 알 만했다.


“서준우가 8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거든요? 7시 30분쯤 연락하는 거죠. 서이찬이 없어졌다고. 그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여기니까, 이 근처에서 잠들었을지 모른다고.”


“오오, 그렇게 형제의 진심을 시험해 본다? 그럼 서이찬한텐?”


채연은 이미 동생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걔한테는······. 형 죽는다고 해.”


“죽어?”


“맨날 저렇게 술 처먹으면 어차피 빨리 죽어.”


강우는 자매의 대화를, 조금은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초련은 사뭇 진지했다.


“그건 좀.. 너무 위험하잖아요. 둘 다 많이 놀랄 텐데. 더군다나 서준우 씨는 환자고요.”


“서준우 저 몸으로 술 먹으러 가는 게 더 위험해요.”


강우의 말에 초련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어쨌든 강우는 그녀의 말을 따라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오늘은 그냥 저녁에 이찬이 밥이나 챙겨 주고 말래요. 며칠 안에 서태군 아저씨 깨어나시면 뭔가 형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겠죠.”


그렇게 말하며 초련의 계획을 거절했지만, 일이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강우는 학교로 가 수업을 듣느라 이찬의 하교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하게 저녁 시간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서준우가 알려준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이 텅 비어 있었다. 돌아왔어야 할 이찬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옷장이 열려있었고, 책상 위에 있던 저금통이며 인형 같은 것들이 사라진 것이 눈에 띄었다. 강우는 직감적으로 이찬이 가출을 감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강우는 이찬이 사라진 방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유 같은 것을 추측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애가 집을 나갔다. 빨리 찾아야 했다.


“뭐야. 얘 진짜 없어진 거야?”


초련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당황해서 그녀의 말에 반응해 줄 여유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준우와 이찬의 번호 중 고민하다가 우선 이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한 통, 두 통 세 통, 네 통······. 이찬의 방에 오도카니 서서 통화를 시도하던 강우가 포기할 때쯤. 철컥. 전화가 연결되었다.


“이찬아.”


“······.”


“이찬아?”


강우가 다급하게 이찬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 공부하는 날 아닌데..”


한참을 듣고만 있던 이찬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강우는 안도했다. 이찬이 어제처럼 말을 하지 않으면 전화가 연결된 의미가 없었을 텐데, 그가 입을 연 것이다.


“이찬아. 지금 어디야?”


“······.”


“이찬아, 괜찮아. 형한테 말해 봐.”


“끊을게요..”


이찬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핸드폰 저편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강우가 그를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 순간 초련과 눈이 마주쳤다.


“형이, 형이 오늘 죽을 것 같아.”


강우의 말을 들은 초련은 옅은 미소를 지었고, 지켜보던 채연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형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이찬이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그녀들은 확신하는 것 같았다.


“형이.. 죽어요?”


역시나 반응을 보이는 이찬. 자그마한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학교 운동장에서.. 누가 형을 죽이려고 해. 이찬이가 빨리 와줘야 할 것 같은데."


제발, 제발 통해라. 강우는 거의 나오는 대로 내뱉고 있는 거짓말이 어린 이찬에게 통하기를 빌었다. 우선 아이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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