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ake Keb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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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빌런
작품등록일 :
2019.02.04 15:21
최근연재일 :
2019.04.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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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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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돈만내면 뭐다?

DUMMY

분명히 서류 몇 개 가져다놓고 오라고 보내놨더니 서류를 종이부터 새로 만들었는지 이제야 돌아오는 테오도라를 보며 엘레프테리오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조숙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 같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애초에 그런 서류쯤은 직접 가져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저 아이가 총독의 앞에서는 유독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걸 알면서도 일이 바쁘다고 움직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자책해 보기도 한다.


혹시라도 또 총독한테 이상한 이야기라도 했으면 그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아무리 총독이 이상하게 테오도라한테는 관대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이 아이의 무례를 눈감아 줄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이야기를 조금 나눴을 뿐이에요.”


자신의 말에 감추지 못하는 불퉁함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하는 테오도라의 얼굴을 보며 엘레프테리오스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 모습을 보면 아무 일도 없었을 리가 없다.


“총독각하께는.”


“신신당부하신대로 존칭 잘 사용하고 예의바르게 이야기 했어요.”


“그 얼굴로 말이냐?”


엘레프테리오스의 말에 테오도라도 할 말이 없었는지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그는 한숨을 숨기지 못한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네 감정이 어떻든 간에 공은 공이다. 너도 잘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믿고 나오라고 했지만 계속 그렇게 할 생각이라면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거라.”


뒤이어 ‘네가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은 있다.’라고 까지 말하자 테오도라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간다. 꽤 좋은 학교에 입학했는데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학교에 있는걸 참 싫어하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차라리 총독부에 나와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을 알고 던진 극약처방이었던 만큼 답변은 확실하게 돌아왔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을 테니까 그러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제가 총독각하 앞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을 테니까...”


총독도 안 좋아하면서도 저렇게 할 정도로 학교가 싫은 것일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아까의 화났다는 표정을 유지하며 엘레프테리오스가 말을 이었다.


“잘 할 수 있겠느냐?”


“예.”


애초에 겁을 주려고 했던 말인 만큼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걸 보면 역시 테오도라도 아직은 애라는 생각에 엘레프테리오스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다.


“오늘은 일단 들어가거라.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또 그런다면 정말로 그럴 테니 명심해라.”


“예.”


그것과 별개로 테오도라의 저런 태도는 고쳐질 필요가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엄포를 내렸고, 기가 죽은 테오도라는 거기에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렇게 한 개의 문제를 해결한 엘레프테리오스였지만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것은 아직도 처리되지 않는 서류들뿐이다.


그나마 총독이 돌아와서 업무를 봄으로써 분담이 되니까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총독이 올림픽 모금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들고 왔으니 체감 업무량은 별 차이가 없었다.


오늘은 언제쯤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별로 긍정적인 결과는 도출되지 않았다.


그렇게 총독의 사악한 마수에 걸린 불쌍한 대리인의 업무는 끝날 줄은 모른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업무가 이어졌다.


몇 장의 서류를 둘러봤고, 몇 번이나 사람이 오갔으며 몇 잔의 음료를 마셨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세 가지 모두 많다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해가 기울어가려고 할 즈음의 시간.


이제는 눈에 들어올 정도로 줄어든 서류의 산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불쌍한 관료는 그제야 방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 용무가 있어서 들어왔다면 기척을 냈을 텐데 아무것도 없이 들어와 있는 건 누구일까. 조금의 궁금증과 조금의 불안감을 안고 시선을 보내니 그곳에는 익숙한 앳된 얼굴이 보인다.


“어떤 일이십니까 총독각하.”


물리적인 거리는 굉장히 가깝지만 얼굴을 마주할 일은 생각처럼 생기지 않는 어린총독이 특유의 묘한 웃음을 지은채로 엘레프테리오스를 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나이다운 웃음이지만, 지금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총독에게 시달려온 사람으로써는 그걸 마냥 고운 시선으로 봐주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라도 있나.


어린 총독에게는 미안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처음으로든 생각이었다.


“음, 그냥 보고 싶어서?”


제 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거기에 돌려줄 우호적인 말 따위는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안면 근육이 조절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테오도라한테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지 않았을까.


그리고 눈이 있는 이상 그것을 못 볼 리가 없는 총독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정정했다.


“밑에 사람들 일 잘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김에 들렸어요. 겸사겸사 할 말도 있었고.”


역시나 할 말이 있었다. 순수한척은 다 하지만 별로 순수하지 않은 소년다웠다.


“어떤 일입니까?”


“어, 일단. 올림픽 모금에는 참여했어요?”


엘레프테리오스는 모르겠지만 총독은 몇 시간 전에 테오도라에게 물었던 것과 동일한 말을 그에게 던졌다.


“예.”


큰돈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기에 한 푼을 보탰던 것을 기억하며 그가 그렇게 대답한다.


“올림픽 기대되죠?”


“예.”


당연한, 그리고 총독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한 답이 이어진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고요 속에서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스는 많이 가봤죠? 아테네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했던가?”


“예, 거기서 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그리스에 좀 갈수 있어요?”


“예?”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고개를 들어 총독의 얼굴을 살폈다.


뜬금없이 그리스에 가달 라니.


“당장은 아니고, 모금활동이 끝나면 그리스에 그걸 전달해야 하니까요. 아, 이건 IOC쪽으로 가야 하던가?”


“이 돈들이 올림픽 비용을 위해 간다면 그리스 쪽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그야 직접 가면 그리스에서 받아주기나 할지 의문이라서?”


“애초에 왜 가야합니까?”


가끔. 아니, 자주 이 총독의 머릿속의 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야 모금액이 전달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사건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총독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이 행동 자체가 총독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여하튼 모금액을 전달하는데 굳이 총독이나 그 대리인 같은 인물들이 가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심지어 크레타라면 더욱이.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거니까?”


거기서 실실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총독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고. 그리스에 가는 김에 그쪽에 전달했으면 하는 이야기도 있네요.”


“전달했으면 하는 이야깁니까?”


그 순간 엘레프테리오스는 일순간이지만 ‘이 총독이 드디어 그리스와 내통하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았다.


당연하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총독이 해온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생기는 것도 기분 탓은 아니다. 심지어 지금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는 크레타 내에서도 그리스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에노시스 운동의 지지자 아니던가.


물론 엘레프테리오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IOC쪽에도 의사를 전달할 생각이지만. 어차피 거기 위원장이 그리스 왕자니까 거기다가 전하는 쪽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총독은 히죽, 왠지 껄끄러운 미소를 짓는다. 꿍꿍이가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그리스에서 올림픽을 한다는데 돈만 보내고 손가락 빨고 있으면 재미없죠?”


“예?”


“우리 대리인님은 스포츠에는 좀 관심이 있으신가?”


“그 이야기는.”


“그리스에 전달하세요. 우리도 올림픽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엘레프테리오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 슬퍼해야 하는 일일까.


마음의 고향으로 그리스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야 올림픽은 꼭 참가하고 싶은 이벤트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오스만 제국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이야기였다.


“오스만 제국이 말입니까?”


“아뇨, 그러면 받아줄 리가 없죠?”


여기서 총독이 말이 이상하다.


“오스만 제국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룸. 이라고 해두도록 하죠.”


“룸?”


“그리스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에 우리가 그리스인이다. 라고 이름을 달고 참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 이름으로 참가하자는 거죠.”


희희낙락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총독의 얼굴을 다시금 이상한 사람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는 있는 것일까?


“그 이야기는?”


룸. 로마인이라는 의미로 옛날, 그리스 왕국이 건국되기 이전에 이 나라에서 그리스인들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런 이름을 달고 올림픽에 참전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뻔하다.


“일단은 시간도 없고 하니까. 그나마 이 행사에 가장 관심 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할 생각이에요.”


거기에 뒤이어 ‘다음 올림픽에는 더 다양한 사람으로 꾸리면 더 좋을 텐데.’같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 총독의 얼굴은 평화롭다.


“아, 국가 소속은 크레타 총독부 쪽으로 할 예정이니까 크레타 대표라고 해도 되려나?”


“그...”


“그러니까 모금이 끝나는 대로 그리스로 한번 다녀와 주는 걸로. 알았죠?”


그렇게 마음대로 말을 마무리지은 총독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리고 아무리 그리스가 좋아도 돌아오지 않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쪽처럼 일처리 잘 하는 사람은 놔줄 수 없으니까.”


작가의말

오늘도 한 편 씁니다.


예상치 못하게 여러분들이 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것 때문이라도 농땡이를 못 피겠네요 흑흑.


그런데 요즘 편이 좀 안쓰이네요. 퀄리티가 낮아도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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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얼굴마담? +11 19.02.23 2,350 89 14쪽
21 21. 크레타의 왕자 +11 19.02.23 2,651 93 10쪽
20 20. 이 나라를 해체하겠습니다. +8 19.02.22 2,409 8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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