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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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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虎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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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마법사 아드리안 (2)

DUMMY

*


대마법사 안타레스는 내게 인장을 새겨준 다음 날 숨을 거뒀다.

손자를 잘 부탁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 그는 내가 가족처럼 돌봐주겠다고 마나에 맹세를 하자, 마치 미련을 떨쳐낸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겐 만경 전에 보상으로 받은 엘릭서가 있다.

엘릭서를 사용하면 안타레스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 밑에서 생활하게 될 제프리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애초에 안타레스는 죽음을 앞둔 상태였기에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기연자임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서 마법사로 당당하게 활동하기 위해 가짜 스승으로 안타레스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살아 있다면 두고두고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타레스의 죽음은 내게 필수 사항이었다.


“가자.”


나는 제프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제프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요?”

“우리 영지에 햇볕이 잘 드는 동산이 하나 있지. 그곳에 모시자꾸나.”


고개를 끄덕인 제프리가 내 손을 잡았고, 서서히 결계가 무너져내리는 안전구역을 등지고 안타레스의 시신과 재산을 아공간에 챙겼다.

7서클부턴 아공간을 생성할 수 있기에 도망자 신세여도 안타레스의 재산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재산은 모두 제프리의 것.

어차피 내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기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나를 사형이라 부르거라.”

“네.”


안타레스의 마지막 유언이 사형인 나를 따라가란 것이었다.

덕분에 제프리는 내 지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나는, 파울로 왕국의 갈색 숲을 벗어나 영지로 돌아갔다.


*


제프리는 성에서 영주 일가나 다름없는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다.

그리고 만경을 통해 영입한 사람들과 함께 마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데, 올해로 11살인 제프리가 벌써 3서클을 달성했다는 사실에 가르치는 선생도, 함께 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놀라워했다.

하지만 제프리는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는 사형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소영주님을 그렇게 불렀지? 왜 소영주님을 사형이라 부르는 거니?”

“우리 할아버지가 마법을 가르쳐줬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사형이에요.”


당연히 제프리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아무도 내가 마법사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영주님이 마법을 배웠다고?”

“네, 정확한 서클 개수까진 안 물어봤는데, 할아버지가 매우 강한 마법사라고 하셨어요.”

“어?”


덕분에 내가 마법사란 소문이 금세 영지에 퍼졌고, 기사단장 빌리엄을 비롯해 친하게 지내던 부하들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찾아왔다.


“소 영주님, 정말 마법을 배우셨습니까?”


그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네.”

“허···.”


무슨 문제 있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들은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아무도 물어본 적 없으니까요.”


내 대답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고 눈만 껌뻑였다.


“하지만, 소영주님께는 서클의 기운이···.”


특히 항상 곁에 붙어 있던 호위기사 바이스의 충격이 컸는지, 나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음에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사는 마력에 민감하니, 당연한 의문이었다.

길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느끼게 해주는 게 빠르다.

나는 서클 은폐 기술을 해제했고, 방안이 짙은 마력으로 뒤덮였다.


“나름의 생존법이었죠. 한창 마법을 배우던 시기에 밝혀졌으면 저만 위험해지니.”


마력을 개방했음에도 아무도 내 경지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나보다 경지가 낮기 때문이다.

기사라면 이 뜻을 모를 수가 없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


-라인하츠 왕국 수도 크리드


오늘은 왕실에서 미루고 미뤄왔던 논공행상이 진행되는 날이다.

상을 받을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전국 각지의 귀족이 초대되어 왕성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나는 시장통이나 다름없는 텔레포트 게이트 주변을 살피며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나라에 귀족이 이렇게 많았나요?”

“인구 전체에서 보면 0.01%밖에 되지 않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무시할 수 없는 숫자지.”


라인하츠 왕국의 귀족은 단승을 포함해 남작 이상의 작위자만 약 500명이다.

직계 가족을 더하면 수는 5~6배로 불어난다.

더구나 이번엔 승전 행사인 만큼 공을 세운 기사들도 다수 참여하여, 사회 기득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오오, 로렌스 자작 아닌가.”


아버지의 곁엔 어머니가, 내 곁엔 아르시아가 드레스 차림으로 함께했다.

우린 배정된 휴게실로 이동했는데, 텔레포트 게이트를 나서고 몇 발자국이나 움직였을까?

아버지가 다른 귀족에게 붙잡혔다.


“제스티 자작? 오랜만이네.”


그리고 아버지의 걸음이 멈추자 사방에서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들었네, 가문 내 불화가 있었다지?”

“내가 언제고 레이븐 변경백이 사고 칠 줄 알았다니까?”

“그래도 하늘이 도왔어. 천하의 레이븐 변경백이 그런 식으로 몰락할 거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귀족들 사이에서 제일 화젯거리는 레이븐 변경백과의 마찰이었다.

다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변경백을 욕하기 바빴는데, 마치 아버지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레이븐 변경백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할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의 목적이 무언인지는 금세 드러났다.


“그보다, 이야기 들었어.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소문이 자자했던 둘째 아들이 요즘 그렇게 잘나간다며?”

“맞아, 투자회사로 돈을 쓸어 담고, 약혼녀도 성지 출신의 오러 마스터라지?”

“완전 날개를 달았군. 자식 잘 둔 덕에 출셋길을 제대로 잡았어.”


권력과 돈.

귀족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사안이다.

자연히 주변 귀족들의 시선이 나와 아르시아에게 쏟아졌다.


“너흰 먼저 들어가 있어.”


그런데 내가 이런 자리를 질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우리의 등을 밀었다.


“그래, 그러렴.”


어머니까지 손을 흔들었고, 나는 알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두 분에겐 미안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취조받은 것은 사양하고 싶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귀족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자신들의 궁금증을 아버지에게 풀었다.

아버지가 빠지니 우릴 알아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나와 아르시아는 큰 방해 없이 배정된 휴게실로 향할 수 있었다.


“어머, 아드리안?”


휴게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여자라는 점에서 의문을 들었다.

내가 안면을 트고 지낸 여성이 워낙 적으니 말이다.


“반가워. 아카데미 졸업 후 5년 만인가?”


상대의 얼굴을 보자 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이유는 눈앞의 여성과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처럼 붉은 머리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고양이상의 얼굴.


‘발테르 백작가의 영애 올리비아.’


아카데미 시절 병적으로 나를 물고 늘어지던 현생의 악연 중 하나였다.

예전이었으면 그녀의 가문을 신경 쓰느라 표정관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잠깐, 무시하는 거야?”


그냥 깔끔하게 무시하려는데 그녀는 지금 이곳이 아카데미라 생각하는 건지, 올리비아는 거칠게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턱!


당연히 그녀는 바로 아르시아에게 제압되었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아악!”


팔을 꺾인 올리비아가 어정쩡한 자세로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르시아 버려.”

“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휴게실 문을 열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아르시아는 올리비아의 팔을 놓으며 가볍게 그녀를 밀쳤다.


-쿵!


엉덩방아를 찧는 올리비아.

하지만 아르시아는 뒤도 보지 않고 듯 휴게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문밖이 잠잠한 것을 보니, 쪽팔려서 도망친 모양이다.


‘왕성에 오니 쓸데없는 인간도 만나는구나.’


아카데미 시절 가문의 위세를 믿고 깝치던 녀석들이 잠시 떠올랐지만, 지금 상대해주기엔 너무 조무래기들인지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귀족의 세계는 의외로 좁다.

때문에 왕립 아카데미에서 굳어진 인연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리비아가 속한 사교모임이 그러했다.


“아드리안이? 미쳤네.”

“잘나신 애인 덕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네.”


이들의 자랑거리라곤 고위 귀족의 자제란 것과 학창시절 왕처럼 아카데미에 군림했던 이야기뿐이다.

그런 이들에게 눈에 띄는 먹잇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귀족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투자의 귀재 아드리안과 그의 약혼녀인 오러 마스터였다.


“어떻게 할 거야?”


그렇다고 아드리안을 공격하고자 작당 모의를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단순하게 아드리안을 자신들의 클럽에 가입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클럽의 얼굴마담인 올리비아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폭력적으로 쫓겨났단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아드리안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백작 이상 작위를 가진 가문에 소속되어 있다.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뭘 어쩌긴 어째 사과하게 만들어야지.”

“어떻게? 옆엔 오러마스터인 약혼녀가 경호원처럼 붙어 있잖아?”

“오러마스터라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어? 우리들의 가문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골치 아픈 건 아드리안 쪽이야.”

“맞아. 오러 마스터가 무슨 대수라고, 이미 시대는 바뀌었어.”


과거 체이스 왕국과 발터 왕국 사이의 전쟁에서 한 명의 오러마스터가 11대의 천공요새를 파괴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물론, 단독으로 동시에 11대를 상대한 것은 아니지만, 오러 마스터는 뱅가드 상위의 존재로서 여전히 전쟁의 중요 전력임은 분명했다.

그런 오러 마스터를 무시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만,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 해도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대귀족 여럿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다.


“얘들아, 행사 시간이야.”

“행사 끝나고 바로 아드리안에게 찾아가자. 우리가 몰려가면 오만한 녀석이라도 당황할 테지.”

“난 그 자식 아카데미 시절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어딘가 깔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잖아.”


그렇게 올리비아를 비롯한 사교 클럽 패거리는 행사장으로 향하며 아드리안을 어떤 식으로 위협할지 고민했다.


“논공행상에 앞서, 우리 라인하츠 왕국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생겼음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올리비아 패거리의 계획이 물거품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늘이 축복하시어 7서클의 마법사와 오러 마스터가 탄생했도다.”


라인하츠 왕국의 국왕 바르토스 2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을 호명한 것이다.


“새로운 대마법사 아드리안 로렌스, 새로운 기사장 아르시아 플로란스는 짐의 앞으로 나서도록.”


이미 언론에서 실컷 떠들었기에 그 오러 마스터가 아르시아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대마법사의 등장은 금시초문이었기에 모두가 의아함을 표했다.

그런데 설마 그 대마법사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아드리안이란 것이 알려지자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뭐, 뭐야? 저게.”


당연히 올리비아 패거리 역시 크게 당황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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