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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타행성의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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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작품등록일 :
2019.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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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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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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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경매. 01

DUMMY




오늘도 저택은 평화로웠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은 딱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내려앉아 적당히 포근하고 좋았다. 며칠 전 테라가 가져온 꽃병에서는 아직까지도 향기로운 향이 나고 있었다. 정말 지내기 편한 곳이었다. 그래, 저 녀석만 없다면 말이다.


"···비엔."

"응?"

"뭐 해?"

"검 손질."


그걸 왜 내 방에서 하냐···.


비엔은 아침부터 방으로 쳐들어와선, 가져온 검을 지금까지 손질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탈출한 게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는데도, 벌써 이 저택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직접 찾으러 나가려고도 했으나, 테라에게 바로 저지당했다. 겉모습은 노블이지만 전혀 노블스럽지 않은 내 행동 때문이었다.


"나가서 노블한테 끌려다니는 네 동족을 봐도 그냥 지나칠 수 있어? 정말 가족만 찾아서 올 수 있는 거야?"


나는 그런 테라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냐면 당연히 그러지 못할 테니까. 침묵하는 나를 보며 테라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알겠어."


노블의 실험실을 손쉽게 찾아낸 테라였지만, 레지스탕스의 본거지에 대한 정보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겨우 노블 한 명에게 들킬 정도였다면, 레지스탕스는 진작에 전멸했을 것이다. 우리 대장님은 입은 무척 거칠지만 머리 하나만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분명 내가 죽은 뒤에도 많은 작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지구인은 물론, 다른 타행성인도 이전보다 더 구해냈을 테고, 그만큼 노블과의 전투도 많았을 터였다. 그저 죽은 동료가 조금이라도 적기를 바랄 뿐이다. 동료들 생각에 괜히 기분이 울적해지는데.


"어때??"


언제 왔는지 비엔이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방금까지 손질하던 검을 내밀었다.


"···손질 잘했네."

"그치!?"


비엔은 내 칭찬에 기뻐하며 검은 이리저리 휘둘렀다. 저러다 실수로 가구라도 박살 내면 테라에게 비엔의 강냉이가 박살 날게 분명했다.


"갑자기 검 손질은 왜 해?"


혹시라도 비엔이 정말로 가구를 박살 내기 전에 말려야겠다 싶어, 아무 질문이나 던져봤다.


"너 주려고."

"···나?"

"네가 원래 쓰던 건 잃어버렸잖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네가 내 몸뚱이만 달랑 챙겨왔으니 그렇지.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굳이 비엔에게 말하진 않았다. 일단 나를 생각해준 게 아닌가. 한 달 동안 지내본 결과, 비엔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냥 노블과 싸우는 걸 좋아할 뿐, 처음 본 내 말도 제법 잘 듣는 녀석이었다. 물론 비엔과 싸운 노블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테지만 말이다.


"고마워."


비엔이 건네준 검은 딱 보기에도 꽤 좋아 보이는 검이었다. 굳이 날 생각해서 비엔이 직접 손질했다는 것에 괜히 더 마음이 갔다.


"마음에 들어?"

"응. 상당히 좋은 검이네."

"그럼 이제 검도 생겼으니 나랑 놀 수 있겠네?"


잠시라도 비엔의 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과거의 내가 바보같았다. 역시 이 녀석은 그냥 미친놈이다. 달려드는 비엔을 밀쳐내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저택의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엔은 그 소리에 창문 밖으로 반쯤 몸을 빼며, 저택을 향해 걸어오는 테라에게 인사했다.


"테라 안녕!!"


테라는 그런 비엔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곤 곧바로 저택으로 들어왔다. 평소와는 달리 과자나 차도 없이 바로 내 방을 찾은 테라는, 나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정보가 들어왔어."


이곳에 있었던 한 달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나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아직 소파에 앉지도 않은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레지스탕스의 위치를 찾은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바로 돌아오는 테라의 대답에 순간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테라는 분명 정보가 들어왔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말을 조용히 기다리자, 테라는 소파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

"곧 경매가 하나 열릴 거야."


경매?


테라의 말에 눈만 멀뚱히 뜨고 있자, 그녀는 방금 전 나에게 건네준 서류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서류에는 노블들 사이에서 열리는 경매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경매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나와 같은 타행성인이었다. 서류의 내용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타행성인 경매 중에서는 규모도 가장 큰 데다, 노블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경매야."

"이게 아이들과 관련이 있어?"


테라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곤, 한쪽 손등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최근에 노블에 들어온 타행성인은 지구인이야. 그래서 경매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대부분은 지구인이지."


테라의 말처럼 그녀가 건네준 서류에 적힌 이전 경매의 상품들은 대부분 지구인이었다.


"아마 레지스탕스도 이걸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경매에 참가할 방법이 없었겠지. 왜냐면 이 경매는 노블만 참가신청이 가능하거든."


테라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만약 레지스탕스가 아이들과 함께 있다면.


"맞아. 그들을 이용해 경매에 참가하고자 하겠지. 이번 경매에서 당장 일을 벌이진 않더라도, 자주 열리는 경매가 아닌 만큼 조사 정도는 하러 올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차피 레지스탕스는 입장 못하잖아?"

"이 경매장은 노블이 데려온 노예나 실험체도 노블과 함께 입장할 수 있어."


노블이 데리고 다니는 노예나 실험체라면 분명 타행성인이다. 그렇다면 레지스탕스 일원들은 아이들의 노예로 위장하여 경매장에 침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결론에 다다르자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이 경매가 유명한 건 상품 때문이 아니야."


하긴, 타행성인을 사고파는 일은 노블들 사이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유명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 경매에서 사용되는 판돈은 일반적인 화폐가 아니야. 여기서는 노블이 데려온 노예나 실험체가 판돈으로 사용돼."


그렇게 말하는 테라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의 주인이 그날의 상품을 가져가는거야."


오늘따라 한층 짙어 보이는 테라의 빨간 눈이, 그 눈에서 느껴지는 동정심이, 나와 내 동족들을 막다른 벽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루나, 그곳은 경매장이라기보단 오히려 투기장에 가까워."


그곳에서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며, 그렇게 내 동족들이 노블의 여흥거리고 되고 있었다.





"곧 들어가겠네."


테라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나는 테라의 말에 창문에 쳐져 있는 커튼을 걷었다. 커튼이 걷힌 창문 너머로 많은 노블들이 보였다. 우리처럼 성문을 통과하려는 노블들이었다.


"···심심해."


비엔이 툴툴거렸다. 며칠 동안 계속 마차 안에만 있다 보니 짜증이 난 듯했다.


"너까지 안 와도 괜찮은데···."


진심이었다. 가능하다면 이 녀석과는 조금이라도 떨어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테라는 비엔이 도움이 될 거라며 함께 가길 권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도 비엔이 정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닌 듯했다. 이상하게 테라는 유독 비엔을 챙겼다. 이전에 그 이유를 묻자 테라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의 후견인이야."


번식능력이 없는 노블에게 가끔 세계수에서 태어나는 어린 노블은 종족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성인이 된 노블은 어린 노블의 후견인이 되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비엔에게는 후견인이 없었다. 분명 같은 노블을 향한, 그의 이상하리만치 강한 관심 때문이리라. 테라는 그런 비엔이 가여워 그의 후견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에게 검을 가르친 것도 나야."

"비엔이 널 공격하진 않아?"

"···비엔은 절대 나를 공격하지 않아."

"네가 더 강하니까?"


그때 테라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테라의 통행증으로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자, 창문 밖으로 노블의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번화한 거리 사이로 노블들이 웃고 떠들며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본 노블의 도시는 굉장히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가장 큰 노예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노블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 도시의 모든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 촤악.


"굳이 보지 마."


테라가 다시 커튼을 쳤다. 나를 배려하는 것이리라. 커튼이 쳐진 창문을 바라보고 있자 왠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긴 여행에 피곤이 몰려왔나 싶어 눈을 감고 마차 소파에 몸을 기댔다. 비엔이 그런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냥 나와 싸우고 싶은가 보다 싶어 그런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잠시 쉰다는게 그대로 잠들어버렸는지 일어나보니 마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차에서 나오니, 테라가 여관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의 피부색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우리 아~까 도착했어."

"···죄송합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서있자 근처에 있던 비엔이 다가오더니 나를 놀려댔다. 테라는 종업원과의 이야기가 끝났는지, 이내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의 마부석으로 다가갔다.


"저녁식사 전에는 돌아올 거야. 바날, 뒤는 맡길게."


바날이라고 불린 여성은 테라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테라가 노블로부터 구해준 타행성인 중 한 명이었다. 자유롭게 살라는 테라의 말에 함께 하겠다고 답한 바날은, 테라의 저택에서 그녀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다녀올게, 바날."

"나도!"


나와 비엔이 인사를 건네자, 바날이 다녀오라는 듯 미소 지었다. 바날과 헤어지고 테라의 안내를 따라 어두운 골목길을 몇 분 정도 걸어가니, 한 남성 노블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테라는 그를 한번 보곤,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노블에게 경매에 참여하겠다고 말하면 돼."

"어? 내가 해?"

"응. 우린 이 경매에는 이미 얼굴이 알려져서 안되거든."


그렇게 말하는 테라와 뒤에 서있던 비엔은 어느새 후드를 쓰고 있었다. 테라의 말로는 이전에 딱 한 번 비엔과 함께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비엔이 경매에 참가한 노블을 일부 쓸어버리는 바람에 출입 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그럼 너희는 못 들어가는 거 아냐?"

​"굳이 얼굴을 다 확인하진 않아. 그리고 우리가 다른 노블과 함께 다닐 거라곤 생각 안 할거야."


그러니 내가 대표로 등록만 하면 된다는 의미였다. 하긴 누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이단아 두 명과 함께 다닐 생각을 하겠는가.


···응? 그거 나 아닌가?


살짝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어쨌든 대표로 참가 신청을 하기 위해 벽에 기대어 서있는 노블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 뒤에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서있는 테라와 비엔을 한 번씩 바라보곤 말했다.


"3명?"

"···어?"

"뭐야, 너 처음이야? 참가하는 거 총 3명이냐고."

"아, 응."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이 기대어 서있던 벽을 향해 마나를 흘려보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벽으로 마나를 조금 흘려보내자 갑자기 벽이 스르르 열렸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었다. 아마 나와 아이들이 있던 실험실도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벽이 다시 닫히자 그는 수속이 끝났다는 듯 나에게 이만 가보라고 말했다.


"저걸로 괜찮은 거야?"

"네 마나를 기록한 거야. 얼굴은 마법으로 바꿀 수도 있으니 마나를 이용해서 확인하는 거지."


하긴 노블의 마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었기에, 다른 노블이 위장을 한다고 해도 마나로 구분이 가능할 터였다.


"경매는 오늘 참가할 거야?"

"아니. 오늘 경매는 이미 끝났어. 우리가 참가할 건 내일 열릴 경매야."


테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비엔이 한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봐. 쟤가 오늘 경매 상품인가 봐."


비엔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목줄이 채워진 타행성인이 노블을 따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노블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늘은 저 노블이 판돈으로 올린 실험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모양이다.


"엄청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왜 저런 거에 입찰한 거지? "


평소라면 비엔의 이런 말은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했을 텐데, 오늘따라 표정관리가 잘 안되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노블의 도시에 있다는 것만으로 여러모로 버거운 상태였던 모양이다. 굳은 내 표정을 봤는지 테라가 화제를 돌렸다.


"바날이 기다리겠다. 이만 돌아가자."

"···그래."


쳐진 기분에 그저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새 여관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단체 손님 때문에 재료가 다 떨어졌다며, 아까 테라와 이야기하던 종업원이 덜덜 떨며 사과했다. 테라는 그런 그에게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금화를 하나 쥐여주곤 계단을 올라갔다. 비엔과 함께 그녀를 따라가는데, 등 뒤로 종업원이 벙 찐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분명 이상한 노블들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쉬고 있어. 바날이랑 같이 간단히 먹을 거라도 사 올게."


바날은 혼자 가도 된다는 듯 손사래 쳤지만, 테라는 결국 바날과 함께 여관을 나갔다. 바날을 혼자 보내는 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상냥하다니까.


그렇게 생각하곤 침대에 풀썩 누웠다. 몰려오는 피곤함에, 테라와 바날에게는 미안하지만 밥이고 뭐고 얼른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진짜 먼저 자버릴까 고민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부터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옆을 바라보자 비엔이 평소와는 달리 웃지도 않은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평소와는 다른 비엔의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어보니, 비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평소의 밝은 목소리는 어디 가고 이상하게 기가 죽어있었다.


"···아까 말은 취소야."


설마 이번에야말로 나를 죽이려는 건가 싶어 긴장하는데, 생각치 못한 비엔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비엔이 아까 했던 말이라면 노블에게 끌려가던 타행성인에 대해 했던 말일 터였다.


···설마 내 눈치 보는 건가?


진짜로 비엔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몇 번이나 그런 무신경한 말을 해왔던 비엔이었기에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이상했지만, 이런 비엔의 행동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해졌다.


"딱히 화 안 났어."


아니, 사실 엄청 화났었지만 그냥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비엔은 그런 내 말에도 여전히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치만 아까 갑자기, 얼굴이 못생겨졌었잖아."


아까 내 얼굴이 굳어졌던 걸 말하는 듯했다. 단어 선택 참 특이하다.


"아니 그건 원래 그런거고."


스스로 원래 못생겼었다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묘해졌지만, 그런 내 말에 그제서야 비엔의 표정이 풀어졌다.


"뭐야 괜히 걱정했네."


왠지 모르게 저번에 테라가 비엔은 절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혹시 비엔이 같은 노블에게 가지는 관심은 어떻게 보면 동료애나 가족애 같은 게 아닐까. 그냥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표현할 줄 안다고 해도 일반적인 노블이 그의 감정에 답해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괜스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화난 거 아니면 테라랑 바날 올 때까지 나랑 놀아줘."


흐뭇하긴 개뿔.


나는 웃으며 다가오는 비엔에게 침대에 누운 채로 마주 웃어주며 답했다.


"싫어, 미친놈아."


하지만 그걸 들으면 비엔이 아니지. 결국 테라와 바날이 돌아올때까지, 달려드는 비엔으로부터 방 이리저리로 도망쳐야만 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판에, 방 밖을 지나는 많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야, 거기 우리 방 아니야."


계단을 올라오던 후드를 쓴 무리 중 한 명이 먼저 올라갔던 자신의 동료를 발견하곤 말했다. 그녀의 동료인 듯한 검은 후드를 쓴 남성이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이 방 엄청 시끄럽네. 내가 한소리 할까?"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문제 될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먼저 복도를 걸어가던 일행 중 하나가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띄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오라는 거였다.


"어휴, 그래. 간다, 가."


그녀는 툴툴대며 어느새 멀어진 일행의 뒤를 쫓아갔다. 검은 후드를 쓴 남성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방 쪽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를 따라 일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후드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그가 입고 있는 후드보다 더 짙은 검정색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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